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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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부모를 잇따라 잃고 누이와 함께 바람도 쐴 겸 1983년 8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5개월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도 꼭 같은 병으로 3년 전에 돌아가셨다니 두 남매 모두 그 슬픔이 컸을 것이다. 저자는 벨기에의 브뤼주에서 헤랄드 다비드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이라는 그림을 보고 꽂힌다.
캄비세스왕은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군주인데 그림 속 주인공은 판사로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사망했다. 저자도 화가의 이름이나 이력이 생소했다고 하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림을 보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져 사실 계속 보고 있기가 어려웠다(이런 그림이 또 있는데 이는 뒤에 언급하겠다). 아무튼 헤랄드 다비드가 활동하던 당시 벨기에의 브뤼주는 세심하게 그려진 정물화가 유행이었다. 정물화는 색감이 화사하니 보고 있으면 기분 전환이 되어서일까 어디에 놓고 보기에 안성맞춤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귀족들에게 정물화는 인기였다고.
저자는 이 그림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고 한다. 1920년대 아버지(저자에게는 할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저자의 아버지는 고국의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좀 더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떠했겠는가 그런 착잡함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내맘대로 되는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그런 감정들이 내게도 와 닿았다.

저자의 두 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바가 있었다(당시는 한 개인을 정치적 이슈로 몰아가 파멸로 이끌기에 넘치는 흑색 시절이었다. 저자의 두 형은 그렇게 감옥에 몇 년을 가 있게 되었다. 이 책에도 여러 번 형에 대한 상황과 저자의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실려 있다).

저자는 여행 전 루브르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아야만 한다고 점찍어두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싶어했던 형을 대신해 저자가 직접 보고 그 감상을 전하기로 한 것이다.
밧줄로 묶여 있는 노예는 상체와 하체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뒤틀어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동자는 볼 수 없지만 시선은 저항하는 눈빛임을 느끼게 한다. 이 조각상은 ‘반항하는 노예‘라는 제목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이를 보면서 저자는 형의 상황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일부러 보러 가지 않았더라도, 우연히 스쳐 가다가 봤을지라도 상황상 형이 생각났을 것이다. 조각상을 감상하고 흔들리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을 그림엽서 속 편지의 내용과 그걸 받았을 형의 마음을 생각하니 나도 좀 울컥했다.

형에 대한 이야기는 고흐의 ‘거친 하늘과 밭‘ 그림을 보면서도 나온다. 고흐는 알려져있듯 테오라는 동생이 조력자였는데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자부심과 생활 사이에서 그는 여러 번 번뇌했다.
내 생활을 뿌리가 뽑히고 내 걸음걸이도 휘청휘청한다. 나는 내가 너희들의 저주스러운 짐짝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전적으로 그렇진 않을지 몰라도 어쨌든-염려하게 되었다. - P60
형의 존재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저주스러운 짐짝‘이 아닐 리 없다. 현세적인 가치관에 대한 순수한 저항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의식주 따위 현세적인 뒷받침은 필요하다. (고흐의 경우는 화구까지도. 그것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 단순한 모순이야말로 옛날옛적부터 창조자·구도자·혁명가를 괴롭혀왔다. ...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짐짝‘인 것이다. - P69
예술가라고 해도 생활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지 못한다면 생계를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가. 그럼에도 대중에게 먹히고 팔릴 그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 고뇌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테오는 고흐를 뒷바라지하면서 형이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어쩔 때는 힘에 부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처럼 살아 있는 생애 고흐를 괴롭힌 것은 생활 문제였다. 저자도 형의 처지와 상황이 안타까우면서도 그의 존재가 때로는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진품을 보지 않으면 그 훌륭함과 기막힘을 알 수 없는 그림이 있다. 모름지기 명작이라는 것이 다 그렇다 할 수 있겠지만 「게르니까」야말로 바로 그것이다. 도판으로 보면 「게르니까」에서 삐까쏘가 채택한 표현의 참신성이라든가 기발함 따위는 느낄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의 깊이, 분노의 격렬함 같은 것은 알기 어렵다.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러한 참신성이 산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을 깨달을 수는 없다. ...
일본에는 전쟁에 협력한 그림은 있어도 「게르니까」에 비길 만한 것은 없다. 전쟁 찬미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한다하는 명인대가들이 전쟁에 협력한 그림을 그린 그 자체를 ‘없었던 일‘처럼 괄호 속에 묶어넣어둔 채 능청거리고 있는 퇴영적 정신에서는 「게르니까」가 태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 P88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담은 게르니카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좋았다. 이는 게르니카를 언급하기 전에 일본 화가인 코이소 료오헤이가 그린 그림 ‘낭자관 행군‘을 언급함으로써 대비 구도를 만든 것이다(그의 그림은 전쟁이 아니라 어느 사막을 군인들이 지나가다 잠시 쉬고 있는 풍경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이 군국주의를 향해 나아가던 때 당시 화가들은 전쟁을 미화하거나 선전하고 찬양하는 그림은 그렸어도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그림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그림 요소들을 보면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우성치고 뒤틀린, 몸부림치는 몸들을 말이다. 피카소는 한국전쟁 시기 학살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처럼 전쟁은 예술을 위한 하나의 표현적 배경이 된다. 예술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단번에 대중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동조하게 만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화가, 작품들이 많다. 그중 레온 보나라는 화가가 있다.

일반적으로 19세기 프랑스 미술사는, 들라크루아, 꾸르베, 밀레, 도미에, 마네, 모네 나아가서 고갱이나 고흐 같은 선구적 반역자들과, ‘쌀롱‘을 근거로 하는 권위주의적이고 공식적인 아카데미즘 화가들, 곧 뽕삐에들과의 투쟁의 역사로 이해된다.
보나는 오로지 그러한 뽕삐에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미술사상의 적방인 것이다. (이렇게) 보나가 살았던 19세기 후반, 보나는 빛나는 승자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1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는 완전히 미술사상의 패자 무리 속에 처박혀버렸다. 비정하다고 할 만큼의 콘트라스트이다. - P119, P122

레온 보나는 처음에는 지지부진했지만 초상화가로 이름을 알린 후에는 계속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당시로 말하면 프랑스 미술사에서 주류 화가계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화가 누이의 초상‘ 그림을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그러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고흐나 마네, 밀레, 고갱 등의 이름과 그들의 그림은 알려져 있지만 레온 보나(와 그 그림)는 거의 알려지지 못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안 읽었으면 그 이름도, 그림도 보지 못했을 것 같다. 하긴 고흐도 생전에 자신의 그림이 이리 인기 있게 될 줄 몰랐을테니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제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그림을 마지막으로 소개할 차례다.

이 치졸하고 짝이 없는 무명의 그림장이는 ‘죽음을 생각하라‘는 외침 속에서, 그의 시대의 요구에 미련하게 충실한 응답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졸렬함으로 인하여 진실을 나타낼 수 있는, 으스스하고 더러운 한 폭의 그림을 남긴 것이다. 선남선녀들은 이 그림 앞에 망연자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압도당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 P194

제목만 ‘죽은 연인들‘로 남아 있는 이 그림은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모양이다(찾아보니 15세기 독일의 어느 고딕 화가가 그렸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기괴하기도 하기도 으스하기도 하고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인다. 만약 내가 관 속에 묻힌다면 저런 모습이려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사람은 죽으면 시체가 되어 썩고 부패한다. 혼이 있다고는 하지만 남아 있는 것은 육신의 모습 뿐이니 흙이 되기 전까지는 적나라한 과정이 진행이 될 것이다. 마치 그 과정의 어느 한 순간을 그림으로 포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임에도 이제야 읽게 되었으니 너무 늦은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림이나 화가의 원문을 발음이 나는 대로 한글로 표현했다는 점(미껠란젤로, 삐까쏘, 게르니까 등)인데 이것이 좀 어색한 독자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자는 정착자의 시선이 아니다. 경계인이자 이방인인 저자의 시선이 여행자의 위치와 오버랩된다고 느꼈다. 여행 일기이자 자신(과 주변)의 처지와 상황에 대한 읆조림, 그림과 절묘하게 섞이는 설명이 참 인상적이었다.

청한 하늘이 금세 먹구름에 뒤덮이듯이, 하나의 희망 뒤엔 금세 새로운 불안이 밀려든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 세계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좋은 변화가 많이 있었다고는 하기 어려우며, 가까운 미래가 희망에 차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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