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에게는 성서, 십자군, 이슬람,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 등이 끝없이 의식되지 않을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선구자들이었음과 동시에, 동양화된 동양, 곧 오리엔탈리즘의 학자들이 만들어 낸 동양도 통과해야 하는 시련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억제 현상으로 오리엔탈리스트 저술이,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공적인 요구에 의해 과도하게 제약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 P296

네르발과 플로베르는 스스로의 동양적인 소재를끊임없이 수정하여, 그것을 스스로의 개인적이고 심미적인 사업의 특수구조 속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이는 동양이 그들 작품에서 부수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레인(그의 작품을 네르발과 플로베르는 부끄러움도 없이 차용하고 있다), 샤토브리앙, 라마르틴, 르낭, 사시와 같은 저술가들과는 대조적으로-그들의 동양은,
파악되고 착복되고 환원되고 기호화된다고 하기보다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광대한 장소로 거기에서 살고, 미와 상상을 위하여 이용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작품의 구조가 자율적 심미적 • 개인적인 사실로서문제되었을 뿐, 어떻게 하면 희망대로 동양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그것을 생생하게 서술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는 무관했다. 그들의 자아는결코 동양을 흡수, 동화하지 못했고, 또 동양을 동양에 관한 기록이나 - P318

텍스트 의존적인 지식(요컨대 공식의 오리엔탈리즘)과 완전히 동일시한 적도 없었다. - P319

르낭과 사시 그리고 레인과 같은 초기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역할은 자신들의 작업과 동양의 쌍방에 대하여 무대장치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뒤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학술적인 사람이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든 간에 이 무대를 철저히 지켰다. 나아가 그 뒤에 와서는 무대가 경영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경영이라는 게임을 위하여 개인보다 제도를 설정하고 정부를 개입시키는 쪽이 훨씬 낫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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