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늪지대에 상륙해 숲을 거쳐 행진한 끝에 한 기지에 이르러 야만적인 습속이, 그것도 아주 철저히 야만적인 습속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느꼈을 걸세. 숲속에서, 정글 속에서 그리고 야성적인 인간의 가슴속에서 격동하는 황야의 신비로운 생명을 모두 느꼈을 거야. 그런 신비의 의미를 이해할 도리야 물론 없지. 전혀 이해되지 않고 그래서 역겹기까지 한 것들의 한가운데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 신비에는 매혹적인 면도 있어서 결국 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지. 말하자면 그건 역겨움이 주는 매혹이야. 점점 깊어지는 후회, 도망치고 싶어 못 견디는 마음,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혐오감, 굴복, 증오심 같은 걸 상상해 보게나."
그들은 그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손에 잡히는 것을 다 움켜잡았을 뿐이야. 그것은 폭력적인 강도 행위요, 대규모로 자행되는 흉측한 살인 행위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 행위에 덤벼들었어. 그것은 일종의 암흑 세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나 아주 적합한 행위지. 이 세계의 정복이라는 것이 대부분 우리와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에게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아. 그런 꼴사나운 행위를 대속(代贖)해 주는 것은 이념밖에 없어. 그 행위 이면에 숨은 이념이지. 감상적인 구실이 아니라 이념이라야 해. 그리고 그 이념에 대한 사심 없는 믿음이 있어야지. 이 이념이야말로 우리가 설정해 놓고 그 앞에서 절하며 제물(祭物)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이거든
한쪽 끝에는 일곱 가지 무지개색으로 표시된 크고 번질거리는 지도가 한 장 놓여 있더군. 붉은색 9) 이 차지하는 면적이 아주 넓었는데, 그곳은 언제 보아도 우리를 흐뭇하게 하지. 거기서는 어떤 실질적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야. 파란색 지역도 꽤 넓었고 녹색 지역 약간에 귤색도 보이더군. 그리고 동해안의 자줏빛 지역은 명랑한 발전의 선구자들이 그 좋다는 라거 맥주를 마시고 있는 곳을 가리켰어. 그러나 나는 그런 색이 칠해져 있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는 게 아니었지. 노란색 10)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어. 그곳은 지도의 한복판에 있었어. 바로 거기에 그 강이 마치 뱀처럼 매혹적으로 무시무시하게 놓여 있었지.
그 모든 사업이 내세우던 박애적 구실, 그들이 주고받은 말, 그들의 운영 체계, 그들이 보여 준 사업의 겉모습 같은 것들만큼 그 기색도 실감 나지 않았으니까. 실감 나는 느낌이 있었다면 그것은 상아를 구할 수 있는 거래소 근무 명령을 받고 사업 실적에 따라 일정 비율의 성과급을 벌어들였으면 하는 욕구뿐이었어.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들은 서로 음모를 꾸미고 헐뜯고 미워했지만 실제로는 손가락 하나도 절대 까닥하지 않았어. 정녕 이 세상 이치(理致)는 어떤 사람에게 말을 훔치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말의 굴레를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나 봐. 눈치 보지 않고 말을 훔치겠다고? 좋아. 실제로 말을 훔쳐 타고 다닐 수도 있겠지. 그러나 말을 훔치기는커녕 굴레만 쳐다봐도 가장 자비로운 성인들까지 화를 내게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야.
‘그분은 연민과 과학과 진보, 그 외에 여러 가지 것들을 전파하는 사자(使者)지요.’ 그가 갑자기 웅변조로 말하기 시작했어. ‘유럽이 우리에게 위탁한 대의명분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뭐랄까, 보다 높은 지성, 넓은 공감력, 단일한 목표 같은 것이 필요하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내가 물어보았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요.’ 그가 대답하더군.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글을 쓰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그처럼 특별한 분이 이곳에 온 거지요. 바로 이 점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 세계로 들어왔을까? 우리가 그 말 없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세계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까? 말을 할 줄 모르고 아마 귀까지 먹었을 그 세계가 실로 엄청나게 거대하다는 것을 나는 절감했어. 그 세계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이 검은색의 영문 모를 광기의 가장자리에서 기선은 느린 속도로 끙끙대며 기어갔어. 그 선사 시대의 인간들이 우리를 저주하는 건지 환영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에게 기도하는 건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우리는 주위로부터 차단된 채 그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마치 정신 병원에서 수용자들이 벌이는 신들린 듯한 소요를 지켜보는 성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영문을 몰라 내심 겁을 먹은 채 유령처럼 미끄러지듯이 그곳을 지나갔어.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세계가 우리와는 시간적으로 너무 멀어 우리가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우리가 태초의 밤, 아무런 흔적이나 기억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시대의 그 캄캄한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내게 가장 괴로웠던 건 그들 또한 비인간적이지 않다고 여겨졌다는 거야. 그런 생각은 서서히 떠오르는 법이지. 그들은 소리지르며 깡충깡충 뛰거나 제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어. 그러나 그 광경을 바라보던 우리를 몸서리치게 한 것은 그들 또한 우리처럼 인간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소동이 우리와 먼 친족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 그건 흉측한 생각이지. 아무렴, 흉측한 생각이야. 하지만 우리가 참으로 용기 있다면 그 무섭게 솔직한 소동에 우리가 마음속으로 희미하게나마 맞장구치려 한다든가, 우리가 태초의 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는 하되 그 소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걸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그네들, 여인들 말이야, 그들은 내 이야기와 관련 없고 마땅히 관련 없어야 해. 우리는 여인들이 자기네 아름다운 세계에 머물러 있도록 도와야 하거든. 그래야만 우리의 세계가 좀 더 어려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아, 그러니 그 여인도 내 이야기에서는 빠져야겠네.
우리는 기선에 상아를 가득 채웠고 갑판에도 많은 상아를 쌓아 두어야 했네. 그리하여 그는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오래도록 상아 더미를 보며 즐거워할 수 있었어. 그가 그 혜택을 고맙게 여긴다는 기색이 죽는 날까지 그의 표정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가 ‘내 상아’라고 하는 소리를 자네들이 직접 들어 보았더라면 좋을 텐데. 아무렴, 나는 들을 수 있었지. 그는 ‘내 약혼녀, 내 상아, 내 주재소, 내 강, 내……’ 어쩌고 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했어.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밀림이 그만 하늘에 박힌 별들을 뒤흔들 정도로 굉장한 웃음을 터뜨리지나 않을까 싶어 나는 숨을 죽이곤 했지. 그는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것은 하찮은 주장이었지.
위엄 있는 선의(善意)를 가지고 그 거대한 이국적(異國的)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어. 그 구절을 읽으니까 나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더군. 그건 무한한 달변의 힘이었고, 말의 힘, 불타는 듯 고귀한 말의 힘이었다니까. 그 어구들의 마력적 흐름을 방해할 만한 힌트는 실제로 전무했어. 예외가 있었다면 그건 마지막 쪽 밑부분에 써 둔 일종의 메모였는데, 훗날 떨리는 손으로 갈겨썼음이 분명한 그 메모는 하나의 방안을 밝힌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지. 내용은 단순했어. 온갖 종류의 이타적(利他的) 감정에 감동적 호소를 해 오던 글의 끝부분에서 그 메모는 마치 청천벽력의 섬광처럼 휘황하고 무서운 빛으로 나를 향해 ‘모든 야만인을 말살하라!’라며 불타오르는 듯했어.
‘소총을 모두 끄집어내 일제 사격을 하는 것보다 삐익 하는 기적 소리를 한 번 울리면 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원주민들은 그만큼 순박하니까요.’
커츠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어조에는 의욕과 망설임이 섞여 있었는데 그게 나에게는 기이하게 느껴졌어. 커츠가 그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의 생각을 사로잡는가 하면 그의 감정까지 좌우하고 있었던 거야. ‘무슨 대답을 기대하십니까?’ 그가 소리치더군. ‘그분은 마치 천둥과 번개처럼 원주민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일찍이 그런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아주 무서워한 겁니다. 그분이 아주 무서운 사람으로 비쳤던 거지요. 우리가 커츠 씨를 판단할 때는 보통 사람들을 판단하듯이 할 수 없다고요. 없고말고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상아를 건져 내야 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좀 보세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지요? 그의 방법이 건전치 않기 때문이랍니다.’
나는 커츠 씨를 배반하지 않았어. 그를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내 소명(召命)이었고, 비록 악몽일망정 스스로 선택한 악몽에 충실해야 한다고 내 운명에 씌어 있었던 거야. 나는 그 허깨비 같은 사람을 혼자서 상대하고 싶었어. 오늘날까지도 나는 그 체험 특유의 암흑성을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데 그 이유는 모르겠어.
인생이란 우스꽝스러운 거야.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니까.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 지울 수 없는 회한(悔恨)이나 거둬들이게 돼. 나는 죽음을 상대로 씨름해 왔어. 그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다툼 중에서도 가장 맥 빠지는 다툼이야. 어떤 막연한 회색 공간에서 그 다툼을 하게 되는데, 발로 딛고 설 땅이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며, 구경꾼도 없고, 소란도 없고, 영광도 없고, 승리를 향한 커다란 욕구도 없고, 패배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도 없으며, 미지근한 회의(懷疑)로 가득한 진저리 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많은 믿음도 없고 우리의 적수인 죽음에 대한 믿음은 더더구나 없이 다투기만 하는 거야. 만약 이런 것이 궁극적 지혜의 형식이라면 인생은 우리 몇몇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가 돼. 나는 삶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마지막 기회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지만, 어차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 것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을 뿐이야.
그 눈은 촛불을 보지 못했지만, 온 우주를 감싸 안을 듯 활짝 뜨고 있었고 암흑 속에서 고동치는 그 모든 심장 속으로 침투할 수 있을 만큼 꿰뚫고 있었어. 그는 자기 삶을 요약한 후 ‘무서워!’라는 말로 판정을 내렸던 거야. 그는 주목할 만한 사람이었어.
한때 커츠의 소유물이었던 것이 모두 내 손에서 빠져나갔어. 그의 영혼, 그의 육신, 그의 주재소, 그의 계획, 그의 상아, 그의 필생의 과업 같은 것 말이네. 남은 것이라고는 그에 대한 기억과 그의 약혼녀뿐이었어.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것들마저 과거로 넘기고 싶었던 걸세. 나는 아직 내게 남아 있던 그의 잔재를 인간의 공동 운명에서 마지막 경지라고 할 수 있는 망각의 세계로 손수 넘겨주고 싶었던 거야. 나는 내 처사를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 내가 진실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분명히 몰랐으니까. 아마도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커츠에게 충실하자든가 아니면 인간 존재의 여러 면모에 도사리고 있는 기이한 필요성 중 하나를 수행해야겠다는 충동이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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