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1974-75년 일제전범기업 연쇄폭파사건
마쓰시타 류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힐데와소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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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건물에 폭탄이 투척되어 지나가던 행인들이 사망하거나 중경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사망자나 부상자들 중 미쓰비시 중공업 근무자들 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피해가 있었다는 데 있다. 

폭탄을 투척한 이들은 도쿄 행동위원회의 '늑대' 멤버들이 주축이 되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호칭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이름은 전쟁 전부터의 제국주의적 체질을 그대로 질질 끌며 지금도 여전히 동아시아 국가들에 경제 침략을 계속하는 일본을, 침략당한 측의 인민과 연대하여 이 나라 내부에서 타도해 가자고 결의한 그들의 사상과 의지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 호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 P177


늑대라는 호칭에서는 아직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고고한 울림이 느껴졌다. 타협도 공모도 세차게 거절하고 싸우는 짐승이 늑대다. 인간에게 막다른 곳으로 몰려 사라진 일본 늑대를 떠올려 보면, 늑대를 부대의 이름으로 함으로써 자신들 역시 억압받은 사람 쪽에 있다고 선언하게 될 것이다. - P178


그들은 일본인이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와 대결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무장 투쟁을 통해 혁명을 쟁취해야 한다 생각했다. 다이도지 마사시, 다이도지 아야코, 가타오카 도시아키, 사사키 노리오, 에키다 유키코, 사이토 노도카, 구로카와 요시마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베트남 전쟁, 1965년 한일조약 소식이 들리자 일본의 민중들도 들고 일어섰다. 사회당/공산당 데모를 비롯하여 학생 운동이 도처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다양한 색채의 분파들로 나뉘어 있었다(중핵파, ML파, 사청동해방파, 프롤레타리아 군단 등). 마사시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도쿄의 많은 집회나 데모를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고료 고등학교 선배들이 주축이 된 사회주의 운동 단체에 아야코를 합류시킨다. 마사시는 1970년 미일안보조약이 개정된 후 무장 투쟁의 붐이 사그라들었으나 오히려 무장 투쟁을 생각한다. 이 때 마사시와 아야코 두 사람을 만나면서 늑대의 주요 구성원이 꾸려지고 이후에 도시아키, 요시마사 등이 합류하였다. 


1971년은 폭탄의 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행동을 시도했고 일부는 성공했다. 이들의 목적지는 전쟁을 미화하고 제국주의 행동을 실천한 이들을 순국이라 명명하고 세운 위령비나 묘지가 그 대상이 되었다. 중국인, 조선인인 뿐 아니라 아이누인, 오키나와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식민지라 명명하는 시기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들은 하라하라사계라는 병사독본을 만들어 자신들의 투쟁 이론을 체계화했다. 《하라하라 시계》의 기술에는 종래의 좌익 또는 신좌익의 이론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우선 글 어디에도 마르크스, 레닌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일본의 노동자 계급 자체도 제국주의 본국인으로서 부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늑대‘가 유일하게 연대를 표명하는 노동자는 산(山) 등 인력 시장의 유동적 노동자(그들은《하라하라 시계》에서 사용한 유민=날품팔이 노동자를 나중에 이런 표현으로 바꿨다)뿐이다. 나아가 자주 나오는 것은 아이누이고 오키나와 인민이며 조선 인민이다. - P58


그렇다면 이들이 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건물에 폭탄을 터뜨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이들의 행동 목표는 다른 것이었다. 

왜 이 나라에서는 반권력 투쟁이 지속하지 못하는지 논의했습니다. 확실히 소수의 투쟁은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지속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압도적으로 젖어 있기 때문이고 또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가운데 싸울 상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천황을 공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 P281~282

실 목적은 이렇게 (황족 전용열차를 탄) 천황을 암살하는 것(무지개 작전)이었으나 결국 실현되지 않았고, 또 이 무렵 한국에서 박정희의 권총 저격과 함께 육영수가 사망하면서 이들의 마음은 조급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들의 폭탄 투척은 실패했고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들의 피해가 있었다. 그들은 폭탄을 터뜨리기 전 예고 전화도 하고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폭탄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충격에 빠진다(이들은 작전 전에 청산가리 캡슐을 준비한 바 있다). 


멤버들이 체포가 되자 가족들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가해자의 부모가 되었고 피해자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에 의해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이 피해 다니면 “응당 사죄를 해야 하지 않나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그건 오해입니다 라고 말하기에는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마사시는 왜 기업 연쇄 폭파를 시도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늘 해외에서 여러 가지 자원이나 재료 공급처를 찾았고 그 결과 타이완, 조선, 중국, 인도차이나에 대해 군사 침략을 하고 식민지화하여 그 이익으로 일본의 사회 구조를 구축해왔습니다. 그리고 전후에는 표면적으로 형태가 가드리잠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여 값싼 노동력을 구함과 동시에 해외 국가에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공해 물질을 방류하여 이른바 기업에 의한 침략을 했고, 기업 침략에 의한 착취로 일본의 사회 구조를 형성해 왔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한편 기존 좌익은 혁명을 일본의 노동자 계급에 의한 투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일본의 노동자 계급은 식민지화나 기업에 의한 침략에 편입된, 이른바 제국주의 노동자이고, 그에 따라 진정한 혁명은 바랄 수도 없는 것이며, 저는 기업 침략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이른바 식민지 노동자의 투쟁에 의해서만 진정한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 P77

그러니까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이 다른 좌익과 다른 점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으로 부를 쌓은 기업의 노동자를 평범한 노동자가 아닌 제국주의 논리에 편승하는 노동자로 보는 인식이 다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몇 가지 단상들이 있었다. 


폭탄의 위력을 확인하지도 않고 투척을 감행한 것은 애시당초 위험의 강도를 너무 가볍게 판단한 것은 아닌가?

꼭 무장 투쟁이어야만 했는가?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전쟁에 반대하고 나와 가족을 지키는 일이 중요할까 아니면 지금의 체제를 뛰어넘은 혁명을 위해 뛰어드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했는가?(일상과 가정을 지키는 일은 내팽개쳐도 되는가?)

인민, 대중에 집중했을 때 사라질 수 있는 개별 인간의 구체성과 특수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늑대 멤버들의 생각 중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정당성을 비판하는 일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과연 그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할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라 곱씹어봐도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아무래도 계속 고민해보면서 정리해보고 싶은 사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름 방학 한달을 제외하고는 4월부터 매달 역사 독서 모임을 통해서 여러 주제의 책을 읽고 있다. 이번 달에는 이 책이 주인공이었다. 나도 결론 내리지 못한 사안들이 많아서 무척 열띤 토론이 되지 않을까 추측하는데 그 전개 과정에서 나올 다양한 이야기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어떤 책을 읽고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책은 적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만한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속뜻을 모르고 제목만 보고 뻔한 내용일까봐 우려했던 나를 철저히 반성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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