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기존의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에 제3의 - P588

세력이 등장한 것은 향후에 전개될 역사 변화의 단초이다. 이 세력은 상업자본주의를 통해 부를 축적해가던 신흥 부르주아지와 새로운 지식/사상을통해서 기성 세계를 변화시키려 한 지식층=독서층을 그 두 핵으로 했다.
재산과 지식의 위력은 기존 세계를 서서히 무너뜨리게 된다. 근대 서구의정치철학은 바로 이 지식인 세력 (the intellectuals)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리고 그 궁극의 의미는 곧 새로운 정치적 주체, 즉 정치적 맥락에서의 선험적주체인 근대적 시민주체의 탄생이었다. - P589

홉스의 인간은 악하지만 합리적인, 합리적이지만 악한 존재이다. 홉스철학의 의미는 절대왕정의 옹호라는 그 표면상의 주장이 아니라, 바로 이철저한 ‘개인주의(individualism)‘,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에 있다.
홉스의 세계에서는 국가와 다중이 있을뿐, 개개인들이 서로간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하는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의 법과 시민사회 고유의 도덕, 관습, 문화 차원들사이의 구분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 P598

스피노자는 개인들이 수직적인 계약을 통해서만 안전과 번영을 누릴 수있다고 보지 않았다. 수평적인 전이, 연합, 동일시, 모방, ...………을 통해 두 사람이, 나아가 여러 사람이 마치 패치워크를 짜나가듯이 관계망을 형성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때 ‘multitudo‘는 단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다중이 아니라 일종의 질적 다양체로서의 다중(多)일 수 있다. - P601

로크에게서 자연권의 기초는 사유재산이다. 로크는 그 자신이 확립한 경험적 주체 개념에 입각해 정치적 주체를 사유했다. 인식론적 맥락에서 주체적 경험은 곧 인식이다. 이에 비해 정치철학적 맥락에서의 주체적 경험은바로 노동이다. 전자의 주인공이 마음이라면 후자의 주인공은 몸이다. 노동이란 한 주체가 자연을 가공해 변형하고, 그 변형을 통해 그 자신도 변형되는 과정이다. 23) 이때 가공된 대상은 곧 그 노동주체의 ‘소유‘가 되며("노동가치설"), 그 소유를 통해서 주체는 그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서 ‘property‘를 가지게 된다. 노동은 이렇게 한 주체 고유의 ‘property‘를 생성시키는데, 노동 이전에 한 개인이 천부인권으로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생명과 자유이므로 결국 한 개인의 ‘property‘는 그의 생명, 자유, 재산을 뜻한다. - P605

루소에게 사회계약은 개인들 모두가 동등한 자격에서 참가하는 계약이며, 예외 없이 모두가 동의해야만 성립하는 계약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각자의 권리의 양도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오로지 전체에 대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각자의 입장에서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다는사실이다. 루소는 사회계약을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 일반의지라는 최고 지휘권 아래에둔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 구성원을 전체와 불가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사회계약론』, I, $6) - P608

18세기 계몽사상이 전개되면서 자연법사상은 도전받기에 이르고 ‘논리적 구성‘에 의한학문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학문이 보다 각광받게 된다. 이 과정은곧 정치철학이라는 큰 분야가 여러 사회과학들로 분화되는 과정이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들이 철학에서 독립해새로운 학문들로서 성립한다. 또한 이 과정은 역사학이 새로운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 과정이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역사철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태어나기도 했다.

흄은 경험주의 인식론을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기존의 철학자들이 전제하던 보편성과 필연성을 회의에 부쳤다. 나아가 그는 자아의 동일성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가 볼 때 인간을 보다 일차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정념이다. 하지만 흄은 이런 폐허 위에 습관/관습이라는 구축물을 남겨놓았고, 완화된 회의주의에 입각해 윤리, 종교 등을 다시 세웠다. - P615

사회는 개개인의 질시와 알력으로 얼룩져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역사는 점점 더 발전해간다는 것이 칸트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이런 발전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향하는가? 칸트는그것을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로 파악한다. 역사는 인간의 자유가 실현되는 장이지만, 어디까지나 법의 제한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법이 지배하는 자유로운 시민사회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준 핵심적인 잠재력이라는 것이 칸트의 통찰이다. 하지만 한 공동체/국가에서 설사 이런 경지에도달한다 해도, 국제정치적 갈등은 그 성과를 한순간에 산산조각 낼 수도있다. 때문에 법이 지배하는 자유로운 시민사회는 국제정치적 안정을 전제한다. 이것이 앞에서 논했던 ‘국제연맹‘, 보편적인 세계시민적 공동체가 요청되는 이유이다. - P631

그의 역사철학은 전형적인 근대적 진보사관이다. 역사는 자유를 향한 여정인 것이다. 동양에서는 한 사람만 자유로웠고, 그리스에서는 일부 사람만 자유로웠지만, 게르만적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다는 그의 주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사회적 사회성에 해당하는 헤겔의 논리는 곧 ‘이성의 간지‘이다. 역사를 살아가는 개개인은 자신의 정념과 욕망에 따라 행위하지만, 역사 전체는 그러한 행위들을 매개로 해서 오히려 이성의 실현을 이루어나간다는 논리이다. - P633

밀은 ‘경제 법칙‘은 생산의 영역에서 성립한다고보았다. 자연과 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생산의 차원은 필연적 법칙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배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인간의 관계에 상관적이다. 그것은 필연성의 양상이 아니라 가능성의 양상을 띠며, 사실차원이 아니라 당위차원의 문제이다. 요컨대 생산이 자연적 필연성의 문제라면 분배는 역사적 가능성의 문제인 것이다. - P645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의 산물로부터, 노동의 활동으로부터, 그리고 타인들의 인정으로부터 3중으로 소외당한다. 마르크스는 철학을 순수 사변으로부터 이런 현실의 장으로 끌고내려가고자 했고, 동시에 점차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해가고 또 조금씩 단결해가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철학적 의식을 심어주고자 했다. - P654

시아파의 철학적 기초를 다지고 본연의 종교적 차원을 굳건히 한 인물이 물라 사드라(1571/2~1640)이다. 물라사드라는 시아파 고유의 신비주의 전통과 (이븐 루쉬드 이후 쇠락하긴 했지만) 이슬람세계에서 면면히 내려온 철학(‘팔사파‘)의지성(‘이르판‘)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찍이 페르시아-이란 지역이 배출한 두 걸출한 철학자는 이븐 시나와 수흐라와르디였다. 그리고 이들의 철학은 ‘동방철학‘, ‘빛의 철학‘이었다.(1권, 10장) 물라사드라는 이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페르시아적 철학을 새롭게 재건했으며, 이 빛의 철학에 다른 이슬람 전통들을 광범위하게 종합했다. 일찍이 이븐 시나가 본질과 실존을 구분했거니와, 그는 이슬람 철학을 본질주의에서 실존주의로 전환시키고("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흔히 ‘초월적 신지학(theosophy)‘으로 불리는 그의 철학체계를 세웠다. - P676

힌두교에 근간을 두면서도 이를 근현대의 맥락에서 새롭게 표현해야 하는 과제를 철학적 수준에서 성취한 인물이 오로빈도 고슈(1872~1950)이다. 영국의 직접 통치 이래 영국 제국주의에 투쟁하는 각종 흐름들이 전개되었거니와, 대체로 온건파, 급진파, 과격파의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급진파의 대표적 인물들 중 한 사람인 오로빈도는 정치적 투사로서 그리고 철학자로서 현대 인도의 형성에 큰 족적을 남겼다.) 샹카라, 라마누자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 오로빈도, 그리고 라다크리슈난(1889~1975) 등 많은 현대 인도의 철학자들은 베단타철학을 인도 철학의 정수로 보고 연구했다.
오로빈도는 샹카라의 가현설을 비판하면서 라마누자의 전변설을 받아 발전시켰으며, 이는 곧 ‘아바타라‘, ‘多中--中多‘, ‘화‘의 논리 등 인도 사유의 면면한 전통을 현대에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P686

관건이 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모순된 것들의 ‘변증법적 지양‘이 아니라 그것들의 생존경쟁을 통한 ‘적자생존‘ㅡ‘자연도태‘가 되는 것이다. 한 생명체의 자손을 남기는 것을 포함해서) 생존 여부가 그것의 성공 여부가 되는, 생물학의 테두리 내에서는 의미 있을 수 있는이 관점이 인간의 차원으로까지 투사됨으로써, 인간의 다른 차원들이 망각된 채 생존 여부로 인생에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때, 그 결론은 인간의모든 생각, 감정, 행동이 결국 생존으로 이어질 때에만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이 부박(浮)한 논리에 따라 삶은 생존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 이래 사상사의가장 큰 비극들 중 하나는 자연과학에서 성립하는 패러다임을 인간/사회에덮어씌워온 것이었다. - P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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