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강대국의 입김 속에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코리언에게는 한국전쟁을 코리언화하는 작업이 가장 시급하다. - P87
전쟁, 특히 문명국가 간의 전쟁은 분명히 권력의 또 다른 행사이고 정책의 실천이다. 그런데 권력의 획득과 자원 분배로서의 정치는 경제 및 사회 상황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치활동은 곧 자원의 분배이자 이익의 조정이며, 정치적 역학은 이해의 균열이나 경제적·사회적 세력의 분포에 좌우된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사회에서 군사적인 것의 핵심은 정치적인 것이며, 군사적인 것과 정치경제적인 것은 직접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 P99
근대국가 건설이란 곧 누가 국가의 지배집단이 되는가 하는문제이다.
계급투쟁의 가장 극적인 표현으로서의 혁명 혹은 - P109
혁명적 노선은 계급 간의 질서 있는 대립이 아니라,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려는 적나라한 폭력의 행사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성격의 혁명 과정에서는 혁명을 거부하는 현상유지세력의 강력한 저항이 존재하게 마련이고,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갈등은 통제되지 않는 범위로 확장된다. 즉 초기에는 큰대의와 명분으로 출발한 혁명이 진행 과정에서 반드시 선의의 희생자를 낳게 되고, 결국 민중들의 원초적인 계급적 분노가 개개인들의 사적인 분노와 혼합되어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 P110
전쟁의전선이 바뀜에 따라 ‘영토‘가 바뀌고, 국가조직이 바뀐 영토를 따라 움직일 수 있었지만, 국민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국민은 적 치하와 국가 치하에 편입될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새로운 국가에 충성을바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움직이는 국가, 즉 전선을 따라 이동하던군대는 주둔지의 주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였다. 이 경우 국가, 즉 군대가 움직이자 그 이전의 ‘다른 국가‘에 충성을 바친 적이 있었던 국민은 그 국가를 따라 움직여야 했지만, 그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 P172
재판 현장에서 생과 사의 결정은 동원된 주민들 목소리 크기에 의해결정되기도 했다. 즉 죽이자고 외치는 사람이 많으면 곧 죽게 되었던것이다. 생과 사의 결정이 단순히 이념적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소의 인간관계 · 인격. 타인과의 원한 여부 등 아주 사적이고 우연한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 P235
6.25 발발 후 이승만 정권이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 과정에서 저지른 가장 큰 사건은 ‘국민방위군사건‘이었다. 정부는 1950년 12월 21일에 공포된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거하여 제2국민병역에 해당하는 만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장정을 국민방위군에 편입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서울과 지방에서 국군이 후퇴작전을 펴자 각 지역에서 징집된 방위군도 자연히 후방으로 이송해야 했다. 그런데 이송 도중이나 후방 도착 시 장정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많은 돈을착복하여 방위군에 대한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수많 - P255
은 방위군이 질병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행군 도중 병자나 아사자가 생겨도 보살피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이동은 ‘끌어가고 끌려가는 슬픈 행군‘이었다. ‘포로‘도 아닌 국군으로 징집된 그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거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죽어갔다. - P256
전쟁 당시 학살의 사실이 이렇게 은폐되고 또 학문적으로도 접근되지 않은 것은, 한반도 통일은 물론 21세기 동아시아에서 평화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데에도 대단히 심각한 장애가 된다. 한국전쟁기의 학살을거론하지 않고서 지난 시절 한반도 냉전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한국 사회 내의 통합을 이루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 P283
좌·우익 주민들 간의 폭력과 상호 살해는 그 출발점에서는 분명히신분. 계급 간의 갈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당시에는 소작인 · 머슴 등억압받고 못사는 사람들이 대체로 좌익에 공명하였으며, 지주층이 주로 우익 측에 섰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지주나 양반층 자제들 중 상당수가 사회주의 이론의 영향을 받아 좌익에 가담하였고, 하층민 출신들이 신분상승을 위해 경찰과 군에 투신한 경우도 많았으므로 경찰과 민간인의 대립을 계급 간의 갈등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 P318
반란과 부역의 담론은 이승만과 대한민국, 김일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하나의 절대적 공동체, 군주 혹은 군주국가와 유사한 정치 단위로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태생적 공동체 혹은 백성과 군주가 피로써 맺은 체제에 대한 배반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는 반란자와 그의 가족은 모두 한 사람의 반란행동에 연대책임을 진다는 가족주의와 같은 궤를 이루고 있다. - P370
이승만을 구원해 주고 남한의 지배집단을위기에서 구제해 준 이 전쟁을 통해 형성된 국가는 반공주의‘의 신성함을 과시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였다. 그것은 이민족 혹은 적의 핏자국 위에 세워진 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적으로 의심되는‘ 수많은 동족의 핏자국 위에 세워진 국가였다. 그 국가는 이제 안보‘를 위해 ‘아름다운 나라‘와 완전히 한 몸이 되어 국가의 군사적. 경제적 하부구조와 정신적·문화적 자양분 등 거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의존하게 되었다.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전투의 기억‘들과 ‘미국으로 - P399
대한민국 지배집단의 다수는 국가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자식들을 모두 해외에 유학 보내거나 정치적 압력과 뇌물 등을 통해 자신과 자식의 군복무 - P402
를 면제받고, 고급정보를 빼돌려 투기와 부정축재에 앞장서 왔다. 국무총리가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서 탈법행동을 하고 불명예 사퇴를 하는 등 이들의 도덕성이나 국가에 대한 헌신은 보통의 국민들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6.25 발발 다음 날 고위관리들이 식솔과가재도구까지 챙겨 관용차를 타고 서둘러 도망가던 것과 크게 다르지않은 행동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P403
우리는 한국전쟁을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이러한 세계자본주의, 그것의 정치적 표현인 국제적 군사대결체제라는 틀 속에서 보아야 하고,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서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과 인권의 실현이라는 전망을 놓치지 않은 채 그 부정적 유산을청산할 길을 찾아야 한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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