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지속은언젠가는 깨진다. 그것은 단번에 전체가 깨지는 방식이 아니라, 서서히 금이가면서 깨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카스티야의 블랑슈와 성왕 루이 9세의 시대에 파리 주변의 농노(여기에서 농노는 인두세, 결혼세, 상속세의 세 가지 봉건 부담을 지는 사람이다)와 자유농으로 구성된 농민이 영주에 대항하여 자유를 획득한 것과, 농노해방(affranchissement, manumission)이 증가했다는 것-사실 자유민이 농노와 섞여 있으면 언젠가는 그들 자신도 농노가 - P353

될 위험이 있었다 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띤다. 그리고 오를리, 쉬시-앙-브리, 부아시 등지에서처럼 농민이 유리한 경제적 배경을 이용하여 돈으로 그들의 봉건부담을 사버렸다는 것 역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넓게 퍼져갔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농민의 자유는 마치질병처럼 유럽 일부에 퍼져서 우선 경제활동이 활발한 지역부터 먼저 건드리고 그다음에는 이웃 마을과의 교류에 힘입어 덜 활발한 지역까지 건드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 P354

서유럽 세계가 명백한 후진성을 드러내는 곳은-아라곤이라는 예외적인 곳을 빼면 모두 주변(périphérie) 지역이다(그러나 아라곤의 경우도 이베리아라는 복합적인 세계 속에서는 수 세기 동안 주변 지역이었다). 소수에 불과하며 아주 좁은 지역에 한정된 선진지역과 변두리에 몰려있는 후진지역을 나타낸 지도를 상상해보자. 정체해 있거나 아주 느리게 진화하는 지역, 즉 영주제적이며 동시에 봉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시대에뒤처져 있지만 그러면서도 서서히 변화해가는 그런 지역들은 이 지도상에서특별한 색깔로 칠해져야 할 것이다. 유럽 전체를 보면 농업자본주의가 차지하는 부분은 결국 아주 소수이다. - P406

선구산업이란 현재 또는 가까운 과거에 자본과 이익, 노동력을 자신에게 끌어모으는 산업이며, 원칙적으로 그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주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발전을 이끌어줄 수 있는(가능성만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산업을 말한다. 과거의 경제는 사실 통합성이 부족해서, 오늘날 저개발 국가들에서처럼 흔히 분해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 반드시 그 경계를 넘어 이웃 영역에 영향을미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전산업화 시기의 세계는 현대 산업처럼 분야 간에 차이가 생기고 또 대단히 앞선 분야가 있는, 기복이 심한 면모를 가지고있지 않았고 또 가질 수도 없었다는 점을 우선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전산업은 상대적으로는 중요성을 가진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 전체를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어오지 못했다. 실제로 산업혁명기까지는 전산업이 결코 경제성장을 지배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확실한 성장을보이는 데다가 고장과 급정거를 겪는 경제 전체가 전산업을 지배했다. 전산업이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옮기고 툭툭 끊어진 곡선을 보이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이다. - P430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자본가들다시 말해서 다양한 활동을 무차별적으로 하던 "대상인들은 생산에 전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결코 대지에 두 발을 굳건히 뿌리 박은 지주가 아니었다. 간혹 지대 수취인인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진짜 이익을 얻고 신경을 쓰는 곳은 다른곳이다. 이들은 또 자기 일에 갇혀 있는 수공업 작업장의 주인이나 수송업경영자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업가들 중에 누군가가 배를 한 척소유하든가 혹은 배의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면, 또 선대제를 가까이에서 통제했다면, 그것은 참된 그의 모습과 관련을 가질 때에 한정되어서의일이다. 그의 참된 모습이란 시장, 거래소, 상업망, 긴 교환의 연결망 등에서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분배야말로 이익을 내는 참된 분야인 것이다. - P508

우리가 받는 인상(자료가 분산되어 있고 불충분하기 때문에 단지 인상만을이야기할 수밖에 없다)은 언제나 이윤이 높은 경제 분야가 있게 마련이지만그런 분야들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매번 경제 자체가 변화함에 따라 이윤율이 높은 분야도 변화하면, 그때마다 활동적인 자본이 이것들을 좇아가고 이곳에 머물고 번영을 구가한다. 일반적인 법칙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자본이 그런 영역을 창조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 P593

유럽 어디에서나 편재하는 밀을 보더라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틀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그것은 자체 소비의 대상으로서 물질생활이라는 1층에 머무를 수 있다. 그것은 또 대개 일상적인 곡창지대로부터가까운 도시-이 도시는 주변 농경지대에 대해서 "위치상의 우위를 가진다까지의 교역과 같은 근거리 사이의 규칙적인 교역품이 되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지방 간의 불규칙적인 그리고 때로 투기적인 교역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기근이 심화되고 반복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원거리상으로 일어나는 대단히 큰 규모의 활기찬 투기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상업세계 내에서 층이 바뀔 때마다 다른 경제주체들과 다른 경제 행위자들이 개재되는 것이다. - P630

왕정은봉건제의 마그마로부터 나온 것이다. 프랑스 국왕은 영주들 중에 한 명으로서 단지 그들 중에서 뛰어난 인물일 뿐이며, 그들의 언어와 원칙을 함께 나누어 가지면서 동시에 그들을 뛰어넘은 자이다. 이런 식으로 국왕은 그 기원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귀족은 국왕과 동질적이다." 국왕은 귀족과 싸우지만 그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그는 궁정의 화려한 허식 속에 귀족들을 가두어두지만 그들과 함께 그 역시 갇혀 있는 셈이다. 국왕은 귀족을 근원으로부터 단절시키지만 반대로 귀족에게 상업의 문을 활짝 열어주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거두어서 책임을 져야 했다.
도시에 대해서 국왕은 특사와 특권을 많이 부여하면서도 한편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소득의 일부를 앗아간다. 그러나 도시로서는 조금씩 형성 중인전국시장으로부터 이익을 보았다. 또 도시귀족과 부르주아지는 상업의 독점권을 누린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국왕은 그의 권력의일부를 "상품으로서" 판다. 국왕의 관리들은 도시 출신이다. 도시민은 관직을 샀다가 다시 팔아버리거나 자손에게 물려준다. 관직 매매는 부르주아지의 일부를 봉건화했다. 관직은 마치 예전에 토지 조각들을 봉토로 주는것처럼 국가가 양도하는 공적인 권위의 조각들이다. 관직 매매는 피라미드처럼 위로 쌓아가는 왕정사회를 형성했다. 이 피라미드의 상층에는 성격이모호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계층인 법복귀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귀족은국왕의 변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느리기는 하지만 핵심적인 행정기관이 발달하고 국가의 필요가 생기면서 만들어졌다. - P763

나 자신의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다소의정도 차이는 있으나 독점의 성격이 강한 과거와 현재의 자본주의 모두는그 자신이 유래한 (게다가 그것을 먹이로 삼고 있는) 자유경쟁을 완전히 배제해버리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자유경쟁의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공존한다." 왜냐하면 15-18세기의 경제 옛날부터 발달해온 몇몇 "중심들"로부터시장경제와 교환경제의 승리를 통해서 공간을 정복한 역시 레닌이 19세기말의 "제국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제시한 수직적인 구분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혹은 법률상의) 독점과 경쟁이 그것이며, 달리 말하자면 내가 정의하는 바의 자본주의와 발전 중인 시장경제가그 두 개의 층이다. - P802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경제발전이 마침내 찾아서 도달하게 된 약속의 땅이며 진보의 최종적인 만개로 보였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면) 그는 자본주의를 결코 취약하거나 일시적인 체제로 보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의죽음, 혹은 적어도 일련의 연속적인 격변이 그렇게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현재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 중이다. 어쨌든 그것은 "이제 더 이상역사발전의 최종 단어로 보이지는 않는다. - P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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