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해방이며, 개방이며, 또다른 세계로의 접근이다. 그것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과 인간이 교환하는 잉여는 조금씩 조금씩 이 좁은 틈을 통과해간다. 그것은 애초에는 성서에서 말하듯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지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그 구멍은 점차 커지고 또많아지며, 그러다가 이 과정의 마지막에 가면 "시장이 일반화된 사회(sociétéà marché généralisé)"가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은 그 과정의 마지막에가서, 즉 뒤늦게 이루어진 일이며, 그것도 지방마다 제각각이어서 결코 같은 때에 같은 방식으로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장의 발전에 관한 단순하고 단선적인 역사는 없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것, 고졸한 것, 근대적인 것, 대단히 근대적인 것 등이 혼재한다. 오늘날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 P25

화폐는 교환을 확대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언제나 불충분하다. 광산에서 산출되는 귀금속의 양이 모자라고, 해가 갈수록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며, 퇴장(退)이라는 심연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은 결국 상품-화폐(marchandise-monnaie)-다른 모든 상품이 반영되며 측정되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상의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표시-화폐 (monnaie-signe)를 의미한다. 11세기 초에 중국에서 최초로 이것을 만들었다. 467) 그러나 지폐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실제 사정에 맞게 유통시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중국에서는 서양에서처럼 지폐가 자본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사실 유럽은 아주 일찍부터 해결책 - 그것도 여러 해결책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제노바, 피렌체, 베네치아에서는 13세기부터 환어음(lettre dechange)이라는 위대한 혁신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교환 속으로 아주 조금씩밖에 침투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침투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 P143

교역에 필수적인 지폐가 실제로 도입되는 데에는 거래소와 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모든 지폐를 시장에 내놓으며 거래소는 공채증권과 주식이 단번에 유동성 있는 지불수단이 될 가능성을 마련했다. - P144

지폐에서 금속화폐로, 또 그 반대로 쉽게 전환하는 것은 거래소가 제공하는 본질적인 장점이다. 영국의 연금은 단지 "바람장사"의 기회만은 아니다.
그것은 보조화폐이며 충분한 보증을 가진 화폐인 데다가 이자까지 붙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소유자가 유동성[현찰화폐/역자]을 원하면 곧 거래소에가서 그 증서를 판매하면 된다. 수월히 얻을 수 있는 유동성, 유통, 이런 것이야말로 네덜란드와 영국의 사업이 훌륭한 성과를 거둔 비밀이 아니었을까? - P145

16세기의전진은 정기시에서 정기시로 현찰과 크레딧이 이전되는 우월한 유통의 영향 아래 위로부터 조직되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모든 것은 꽤 높은 수준에 있는 국제적 유통―"공중(空中)에서의" 유통에 매여 있었다.525) 그후이것은 속도가 떨어지고 더 복잡해지다가 급기야는 엔진이 쿨럭거리기 시작한다. 1575년 이후 안트베르펜-리옹-매디나 델 캄포를 잇는 순환이 막혔다. 제노바인들은 이른바 브장송 정기시를 통해서 이것을 다시 이어보려고했으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17세기에는 상품을 통해서 모든 것이 다시 작동했다. 나는 이 재출발에 대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암스테르담이나 그곳의 거래소 때문에 가능해졌다고하지는 않겠다. 물론 그것들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보 - P173

다는 차라리 작은 반경, 나아가서 극도로 작은 반경을 가진 소박한 경제 유통로 속에서, 즉 기본적인 밑바닥에서 교환이 증가한 데에 그 원인을 돌리고싶다. 중요한 특징 내지 결정적 모터는 상점이 아니었을까? 이런 조건에서(16세기의) 물가상승은 상층 구조의 지배와 상응한다. 이와 반대로 하락과정체를 겪던 17세기에는 하층 구조의 우위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설명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계몽주의 세기(18세기)의 재출발과 약진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1720년 이후의 움직임은 아마 모든 층위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핵심사항은 체제(system)에 균열이 생겼으며 그 균열이 점차커져간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시장에 대항하여 반(反)시장(contre-manché)이 작용했다(나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사거래[private market]라는 말보다는 이 반시장이라는 강한 뜻의 말을 더 좋아한다). 정기시에 대항하여 창고와 보세창고 교역이 증대한다. 정기시는 기본적인 교역의 차원으로 복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거래소에 대항하여 은행들이 번성했다. 은행들은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해도 점차 수가 늘어나고 독자적인 기구가 되면서 식물의 꽃이 피어나듯 사방에서 뚫고 나왔다. - P174

지금까지 우리가 그려본 모델은 단지 서양에서만 타당하다. 그렇지만 일단 이렇게 만들어본 모델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유용성을 제공하지 않을까?
서양 발전의 핵심을 두 가지 들어보면 첫째, 상부에서 여러 [교환/역주] 도구가 발달한 것이고 둘째, 18세기에 여러 수단과 방법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어땠을까? 유럽과 가장 거리가먼 경우는 중국으로서 이곳에서는 제국의 행정이 경제의 계서화를 가로막았다. 단지 효율성 있게 돌아가는 것은 하층의 읍 및 도시의 상점과 시장뿐이었다. 유럽과 가장 유사한 경우는 이슬람권과 일본이다. 물론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의 비교사를 다시 시도해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확하게 문제를 제기하도록 해줄 것이다. - P175

유럽 중세 및 근대에 벌어졌던 정치투쟁과 종교적 열정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고 외국에서 소수 집단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과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도시들은 싸움질이 일어난 말벌집과도 같았다. 성벽내에는 시민만이 아니라 망명자가 따로 있었는데, 이들은 너무나도 수가 많아서 푸오루쉬티 (fuorusciti : 망명자들)라는 총칭적인 이름으로 하나의 사회카테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쫓겨난 후에도 자신을 내쫓은 도시의 중심부에 재산과 사업관계를 계속 유지하다가 어느 날 다시 그 도시로 돌아가고는 했다. 이것은 제노바, 피렌체, 루카 등 여러 도시에서 많은 가문이 겪은역사이다. 바로 이 푸오루쉬티가, 특히 그들이 상인인 경우에, 큰 부를 쌓은것이 아닐까? 그들이 큰 사업을 할 경우에는 "원거리 교역"을 수행한다. 그들은 이 일을 맡을 수밖에 없다. 추방된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먼 곳에 나가있다는 이유 때문에 번영을 구가하는 것이다. - P220

금과 은이 언제나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유럽은 은을 유출시켰고 이 은은 세계를 일주했다. 그 대신 유럽은 금을 과대평가했는데, 이것은 금을 집에 묶어두고, 상인과 상인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중요한 결제에 씀으로써 유럽이라는 "세계경제"의 내부에서 금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또 중국, 수단, 페루 등지로부터 확실하게 금을 수입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 P274

은의 대량 유출은 유럽 경제의 내부에서도 빈번한 고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대신 이것은 지폐라는 임시방편이 큰 성공을 거두도록 하는 데에 일조했다. 또 먼 곳에서 광산을 개발하도록 부추겼고 상업에서 귀금속을 대체하는방편을 찾도록 만들기도 했다. 레반트에 직물을 보내고, 중국에 면직과 아편을 보내는 것이 그런 예이다. 아시아는 은을 얻는 대가를 직물, 특히 향신료, 약품(drogues), 차와 같은 식물로 갚으려고 한 데에 비해서 유럽은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 광공업에서의 노력을 배가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이것은유럽이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 도전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확실한 것은,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유럽이 향신료나 중국풍 물품 같은 사치품을 얻기 위해서 자기 피를 뽑아서 팔았기 때문에 빈혈에 걸렸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275

•시장이라는 말은교환, 유통, 분배 등과 상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시장이라는 말은 흔히 상당히 규모가 큰 교환 형태, 이른바 시장경제, 다시 말해서 하나의 체제를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에서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복합체(complexe)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경제생활, 나아가서 사회생활이라는 전체 속에 옮겨놓고 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 복합체 자체가 끊임없이 진보하고 변화하며, 따라서 어느 한 순간에라도 같은 의미, 같은 범위를 가지지 않는다. - P304

아무리 활동적인 경제라고 해도 변두리만이 아니라 그 중심부에-
서도-상당히 넓은 영역이 시장의 움직임과 거의 무관한 채로 남아 있었다.
단지 화폐나 외국의 희귀한 물건이 도착하는 것과 같은 몇몇 모습들만이 이 - P305

작은 세계가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와 유사한타성 내지 정체성은 조지 시대의 영국이나 활발하기 그지없었던 루이 16세시대의 프랑스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가 성장하면서 바로 이러한 외진 지역들이 줄어들게 되고 그곳들이 생산과 소비의 일반 흐름에 동참하도록 만든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마침내 시장 메커니즘을 일반화시킨 것이다.
자체조절적이고 경제 전체를 지배하며 합리화시키는 시장, 이것이 경제성장의 역사의 핵심이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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