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인도, 문명의 나무가 뻗어나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1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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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영역은 폭넓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전시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회화가 압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서양화다. 그러다보니 미술 하면 뭔가 모르게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술은 결코 회화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조각, 서예, 전각, 일상 용품 등 다양하다. 이처럼 미술품은 결코 특별하지 않으며 눈 닿는 곳에 모두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릴 적 보고 자랐던 옛 장롱, 베개 자수, 한복의 무늬 등이 지금은 미술품이 되었던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싶다. '평범한 것이 위대하다’ 라는 챕터의 제목은 평소 내가 생각하는 바와 맥락이 닿아 있어서 더 공명했던 것 같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권은 인도의 미술 이야기다. 


인도에 대해서는 책의 질문자처럼 나도 IT가 발달된 곳, 바라나시, 소, 갠지스 강(에서의 목욕) 정도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인도는 불교가 시작된 곳이니 불교 관련 미술이 있을 거야 하는 생각 정도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인도는 파키스탄의 지명인 ‘신드’에서 유래한 말로 짐작할 수 있듯 인도 미술의 범위는 오늘날의 ‘인도’만이 아닌, 아프가니스탄 일부와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미술까지 포함한 지역이다. 과거에는 인도가 이 모든 지역들을 커버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흔히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인 1974년 인더스 강 유역에서 메르가르 유적이 발굴되면서 인더스 문명보다 더 앞선 문명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나도 앞선 문명이 있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었는데 충격적이었다. 선인더스와 인더스 문명의 유적을 통해서 사실적인 신체 동작과 살의 촉각을 생생하게 표현하려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인장을 저렇게 입체적으로 새긴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특히 ‘춤추는 소녀’는 당시 어떻게 저런 아름다움을 갖춘 조각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고 사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BC 322년 인도에 마우리아 제국이 세워진다. 마우리아 제국의 세 번째 왕이었던 아쇼카 왕은 인도 남단을 제외한 대륙 전체를 정복했다. 그는 불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석가모니를 의미하는 사자 조각을 통해 석가모니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작업을 한다. 현재 인도를 대표하는 공식 국장에는 네 마리 사자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의 사자 조각에서 기원한 것이다. 


불교는 인도의 아쇼카 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불교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기본이 되는 종교 중 하나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도 불교에서 온 용어가 많다고 하는 것에 놀랐다. 예를 들어 ‘기특하다’, ‘불가사의하다’ 같은 말이나 관념, 대중, 살림, 심지어 지식이라는 말이 인도에서 왔다고 한다. 또 ‘주인공’이라는 단어는 불교 경전에서 깨달음을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왠지 ‘주인공’이라는 단어가 달리 보이지 않나.  


아쇼카 왕은 스스로 ‘전륜성왕’이라고 칭했어요. 성왕은 성스러운 왕, 전륜은 구를 전(轉)에 바퀴 륜(輪)을 써서 바퀴를 굴리는 성스러운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바퀴는 당연히 법륜이죠. 아쇼카 왕은 석주를 통해 자기가 우주의 진리이자 불교의 법을 전파하는 위대한 왕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주장하는 겁니다. 

이후 전륜성왕이란 이름은 불교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대명사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진흥왕이 6세기에 한강 유역을 정복하고 불교를 수용해 나라를 정비하면서 자신을 전륜성왕이라 칭했습니다. - P242


일찍부터 마연한 조각과 토기를 만들다가 마우리아 제국 때 와선 돌이 들어가는 데는 모조리 마연하죠. 궁전 기둥도 그랬고요. 

우리나라 돌은 대부분 입자가 거칠고 단단한 화강암이거든요. 세밀하게 조각하기 어려운 돌이죠. 하지만 ‘석탑이 마멸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봤을 거예요. 화강암이 조각하긴 어려워도 내구성 하나는 끝내줘요. - P254~255


인도의 조각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세밀한 게 특징인데 이는 무른 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만큼 바람에 잘 날아가기 때문에 형태 보존이 어려워 ‘마연(갈고 닦아서 반질반질하게 하는 것)’을 한 것이라고. 우리는 화강암을 쓰기 때문에 단단한 대신에 상대적으로 세밀한 조각은 어려웠던 것 같다.


석가모니는 당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감흥을 주었다. 석가모니 사후 여덟 개 나라의 왕들이 유골을 팔 등분 한 다음에 각각 돌아가서 스투파를 세운 것이 스투파의 시작이었다(근본8탑). 그러나 보통 사람이 그 탑들을 직접 찾아가기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아쇼카 왕은 사리를 나눠 전국 곳곳에 8만 4천 기에 이르는 스투파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8만 4천기라니, 지금도 그 정도의 숫자가 세워진다고 하면 놀랄 만한데 당시에는 진짜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석가모니의 복음의 위세가 강했다고 보아야 하겠다. 거기에 독실한 불교 신자인 아쇼카 왕이 있어서 스투카가 곳곳에 세워질 수 있었다. 

사실 스투파는 납골당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불교의 위세가 커지자 석가모니의 무덤만을 가리키게 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스투파는 나중에 투파, 탑파, 솔도파 등으로 불리다 중국을 거치면서 우리가 아는 ‘탑’이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된다.

스투파는 차트라(산개), 야슈티(찰주), 하르미카, 안다(복발), 토라나(문), 베디카(외곽 울타리)로 구성된다. 복발의 둥근 형태는 알을 뜻하며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스투파는 다양한 조각을 끼워넣을 수 있도록 울타리나 문에 홈을 내어 놓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조각에는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포함되면서 자연스레 그의 생애와 불교의 교리가 전파될 수 있었다. 


불교가 인도를 넘어 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스투파가 곳곳에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다만 인도와 거리상으로 교류가 쉽지 않았던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은 인도의 스투파의 형태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목탑부터 시작되었다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목탑을 본떠서 만든 석탑이라고 하는 것이 신기했다. 입구가 있는 것, 찰주, 배흘림 기둥, 처마처럼 높이 올라간 지붕 모서리에서 스투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 문을 만들었다는 게 바로 목탑을 본떴다는 증거예요. 동북아시아의 탑은 애당초 목조 건물을 본떠 만들었으니 오히려 문이 없으면 더 이상하지요. 이 문만 봐도 우리나라 탑이 인도 스투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인도의 스투파는 바깥 울타리에 문이 있긴 해도 복발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없습니다. 석가모니를 화장해 몇 겹짜리 사리함에 넣어 꽁꽁 싸맨 다음 묻었는데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달 이유가 없지요. - P419

돌을 툭툭 쌓아 올린 돌기둥이 보일 겁니다. 이 돌기둥이 야슈티, 즉 찰주예요. 인도 스투파에도 찰주가 있었습니다. 우산처럼 생긴 산개가 있고, 그걸 받치는 우산대 같은 게 찰주였지요.

스투파에서 찰주는 특별한 기능이 없었어요. 그냥 복발 꼭대기에 꽂은 기둥 정도였죠. 동북아시아에서는 탑 층수가 높아지면서 찰주가 중심을 잡아주는 축이 돼요. 쉽게 샌드위치에 꽂은 이쑤시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찰주의 존재는 동북아시아 목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에요. - P420


신장위구르 지역에 모여 살던 월지족은 흉노족의 강성함에 밀려 인도 북부 지역까지 이동하였고 기존에 있던 그리스-박트리아 제국을 물리치고 1세기 경 쿠샨 제국을 세운다. 쿠샨 제국의 영토는 지금의 인도 북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부에 걸쳐져 있었다. 통일을 이룩한 인물은 3대 왕인 카니슈카 왕이다. 그도 마우리아 제국의 아쇼카 왕처럼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는 최초로 불상을 탄생시키면서 지금의 불상의 표식을 정형화시켰다.    특히나 쿠샨 제국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시아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한반도에는 삼국 시대 불교가 수입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장점이 많다. 우선, 질문자와 대답자가 말을 주고 받으며 궁금증을 풀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가 자연스레 그 과정에 동참하게 한다. 두 번째로, 챕터별로 핵심 정리를 해 놓아서 독자로서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세 번째로, 시기별로 역사를 도표상으로 나열하고 이를 미술품과 같이 배치함으로써 그림과 도표로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다. 


분량이 많았다 싶었는데 쉽게 읽혀서 이틀이면 너끈히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시아 문화권은 불교 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만큼 인도 미술의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는 동양 미술을 더 자주 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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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4-03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 미술 범위가 넓네요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난 곳이라는 것만 알지도... 그런 것도 거의 잊고 사는군요 불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데, 중국이나 한국하고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4-03 08:57   좋아요 1 | URL
같은 불교권 문화라도 유물이나 유적의 형태가 달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맞아요. 불교는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는 삼국 시대 무렵 들어왔죠. 벌써 천 년 넘게 이 땅에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종교라기보다는 마음의 수양을 쌓는 하나의 방편이 된 것 아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