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에 형성되었던 초기의 공식(formulation) 이후로, 생물학에 관해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생물학이 기원에 관해, 창세기에관해,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근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가부장제적 목소리로부터 물려받았다. 생물학은 아버지의 말에 의해 잉태되고 창시된 생명과학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부계로부터 지식을 전수받았다. 그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자 갈릴레오의 말이며, 베이컨의 말이고 뉴턴의 - P128
말이자, 린네의 말이고, 다윈의 말이었다. 반면 육신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리고 말씀은 자연스럽게 육신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젠더화되어 왔다(engendered). 샌드라 길버트(Sandra Gilbert)와 수전 구바(Susan Gubar)는 19세기 여성작가들을 연구하면서, 목소리를 구성하고, 권위를 가지고, 텍스트를 저술하고, 이야기를말하고, 말씀을 출산하려고 애쓴 여성들의 노고에 관해 논의한다. 저술한다는 것은 창시하고 이름 짓는 권력을 갖는 것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배워야만 했던 우리의 자매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학적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합법적권위를 부여받았던 텍스트인,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을 읽어내야만 했다. - P129
남아 있는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다양한 목소리로 여기서, 무엇을말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목소리 하나를 여성은생물학을 바라본다』의 후기가 제공한다. 남성 인간/자연의 안티테제는 인간에 의해 발명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자연과 더불어 인류의 통일성을 실현하게(현실화한다는 말뜻 그대로) 될, 그리고 내부로부터 이해하게 될 관계를 재발명하는 것이다. (...) 과학은 인간의 자연 지배가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목표처럼 보였던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 출현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구성물이다. 그런 조건들은 변했고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그 길이 자연을 설명하고 향상시키기보다 파괴하기 쉬울 것이라는 점을 이제는 알고 있다. 여성들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의 운명은 제대로 보살펴 주지 않았던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을 남성들보다 훨씬 더 빈번히 인정해 왔다. 이제 우리는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실천해야 한다. (허버드 외, 1979) - P145
생물학의 규칙을 탈신비화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해 보인다. 자연은 구성되고 역사적으로 구축되지, 화석 지층이나 열대우림에서 헐벗은 형태로 발견되지 않는다. 자연은 논쟁 대상이며, 여성은 그 싸움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일부 여성에게는 과학적인이야기의 저자가 될 수 있는 사회적 권위가 있다.
여성 학자를 포함한 많은 영장류학자들은 젠더가 자연과학의 내용을 물리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결과는 형편없는 과학이라고 일컬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증거가다른 해석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젠더는 관찰에서 피할수 없는 조건이다. 계급, 인종, 국가도 마찬가지다. - P192
여성 과학자들이 남성에 비해 더 착하거나 심지어 더 자연적인 이야기를 생산해 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과학이라는 규칙의 안내를 받은 사회적 학문을 공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들은 규칙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구체적인 여성의 삶 속에서 훈련된 에너지를 사용하는 평범한 문제인 것이다. 과학적 이야기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 비교 설화들의 의미를 향한 의무, 모델의 지위를 책임질 의무는 다면적이고 신비롭지 않으며 과학의 ‘내부‘와 ‘외부‘에 있는 평범한 여성들에게 잠재적으로 열려 있다. 과학을 만드는 사회적 과정을 무시하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데 실패하고, 과학적 작업의 결과만을 사용하거나 오용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나는 현재의 역사적 조건속에서 여성, 양육 그리고 남성의 전쟁으로 얼룩진 오염에서 자유롭다고 주장되는 다른 무언가를 이상화하는, 자연에 대한 반과학적 설화를 추구하는 것은 책임감이 훨씬 덜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 P193
포함과 배제는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혹은 국적과 같이 고정된 범주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픽션 읽기라고 일컬어지는 고도로 정치적인 실천을 통해 생산된 포함과 배제, 동일시와 분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읽기 자체 속에서 생산된다. 모든 읽기는 잘못된 읽기이자, 다시 읽기이며, 편파적인 읽기이자 강제적읽기이며 상상된 텍스트의 읽기이기도 하다. 텍스트는 원래부터궁극적으로 그냥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세계가 원래부터 무너져 있었던 것처럼, 텍스트는 이미 언제나 서로 경합하는 실천과 희망으로 뒤엉켜 있다. 여성 의식을 표시한 당대의 지1도 위에서 대단히 특수하고 순수하지 못한 지역적/지구적, 개인 - P224
적/정치적인 우리의 위치에서 비롯된, 이들 각각의 읽기야말로교육적 실천이다. 그런 실천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여성 경험‘이라는 막강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권력으로 충전된 차이, 특수성, 친화성이라는 호명을 통해 작동한다. 만회 불가능한 하나라는환상의 상실은 차이 속에 자리한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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