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제 운명은 대체 어떻게 전개될까요? 불확실한 내일과 보장 없는 미래, 그리고 앞으로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할 수 없는 현실만 생각하면 전 괴롭기만 합니다. 과거는 돌이켜 보는 것조차 무서워요. 잠깐만 회상을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으니까요. 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악한 사람들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수많은 세월을 울고 또 울어야겠지요. - P21
⟪가난한 사람들⟫에는 ‘가난’으로 비참한 현실에 미래를 꿈꿀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장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집세가 없어 내몰릴까 걱정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주인공들의 상황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습기가 가득한 가을, 도시는 온통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날씨는 좋지 않고, 거리는 질퍽거리고, 도시엔 낯선 사람들의 무리만 가득했다. 그들은 불친절했고, 뭔가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고,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 됐건 우리는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식구들 모두 정신없이 분주했고 그렇게 새살림을 꾸렸다. 아버지는 항상 집에 안 계셨고, 어머니는 잠시도 편할 새가 없으셨다. 나는 모두에게서 완전히 잊힌 존재였다. 새집으로 이사 온 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우울하기만 했다. 우리 집 창문은 어떤 집의 노란색 울타리 쪽으로 나 있었고, 거리는 언제나 더러웠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그나마 가끔 보이는 행인들은 아주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추웠던 것이다. - P48
과거의 기억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은 슬픔의 무게가 커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부모님 집에 식구들이 모이면 과거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번 명절 때도 그랬는데 사실 나는 아픈 기억이라 되도록 그때 이야기를 안 했으면 하지만 부모님은 매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과거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희미해지고는 있어도 종종 몇몇 장면은 선명히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바보 같은 머리를 탓하며 가슴을 치곤 한다(한번 떠오른 기억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다).
새벽부터 등교하여 몇 바퀴 미친 듯이 돌던 중학교 운동장. 역한 냄새를 풍기던 반지하의 집. 사람들로 북적이던 새벽 도매 시장. 물 비린내 나던 식당 등…
가난한 사람은 까다로워요.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누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씁니다. - P162
돈이 없을 때는 그것 자체로 서러운데 사실 그것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에도 수중에 돈이 없었던 적이 오랜동안 이어졌는데 모임 회비조차 없어서 몇 년간은 친구들과 연락을 아예 단절했었던 기억이 난다.
독서든 문화 생활이든 기본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임을 이해한다.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책을 살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것을 할 시간조차 없음을 말이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재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겁니다>라고 그는 말하겠죠. 하지만 그래요, 그는 거지입니다. 하지만 그는 존경할 만한 만한 거지입니다. 노동의 가치에 비해 돈은 조금밖에 못 벌지만, 아무에게도 굽실거리지 않고 먹을 것을 구걸하지도 않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꽤 많습니다. [중략]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잖습니까. - P220
<너 하나만을 위해 사는 것은 이제 그만해. 너는 가난한 구두장이가 아니잖아.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너는 애들도 건강하고 마누라도 밥 달라고 보채지 않잖아. 주위를 한번 둘러봐. 좀 더 고결한 무엇을 찾아보라고!>라고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이 부자의 옆에는 없단 말입니다. - P225
도스토옙스키의 이런 문장들이 나는 빛난다고 생각했다. 그저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장으로 당시 사회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보여 준다고 생각해서다.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고 빈부 격차는 지금도 존재한다. 개인 간에 도울 수 없다면 사회 제도가 이를 뒷받침해주어야 하는데 사회 공공망은 너무나 얕고 허술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읽은 ⟪백야⟫도 좋았는데 역시 이 작품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