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장

제국은 ‘문명과 미개‘의 차별성을 전제한 도덕적 위계를, 그리고 ‘천하‘는 화이(華夷)라는 형태로문명과 야만의 차별화를 담은 도덕적 위계를 내포했다. 제국과 천하가 공통적으로 가진 또 하나의 개념적 기능은 중심부 권력자의 지배영역의 광역성 내지 초국성(超國性)을 표상한다는 데에 있다. - P417

필자는 제국개념의 적절한 용법에 관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제국 개념은 누구도근본적인 이의가 없을 시대의 제국 현상을 가리키는 데 한정되어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주권국가체제가 전 지구적으로 정착한 탈식민시대 이전의 전통시대 및 근대 제국주의 시대에 쓰인 ‘제국‘ 개념은 중심과 주변의 공식적 위계를 전제한 질서의 중심부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였다. 그런 개념적 용도로 이 개념을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근대 서양이 주도한 제국주의 시대에 서양의 제국들과 일본제국이 구축한 제국의 질서는 공식적 위계였을 뿐만 아니라 지배와착취의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근대 서양적인 중심-주변부 관계의 착취적 성격 때문에 동아시아의 전통시대 중국 중심의 질서는 동일하게 ‘제국‘의 질서라고 개념화하기 보다는 ‘천하체제‘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필자는 생각해왔다. - P439

동아시아질서라는 맥락에서 볼 때, ‘천하체제‘는 진시황 이후 특히한 제국의 성립 이래 중국과 북방민족, 그리고 다른 동아시아 사회들사이의 관계까지도 포괄하는 2,000년에 걸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담은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심과 주변 사이의 정치적인 공식적위계와 함께 도덕적인 문명과 야만의 위계를 담은 질서표상의 개념이었다. - P440

탈냉전의 동아시아에서 잠재적 갈등을 가볍게 여기게끔 이끄는주요인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탈냉전 이후 본격화한 전 지구적 경제통합과 상호의존의 증가다. 그런데 경제통합과 상호의존의증가가 국제관계의 안정과 평화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대분단체제론은 순전한 자유주의적 관점보다 ‘경제적 현실주의‘(economicrealism) 관점에 가깝다‘ 세계화가 내포한 자본의 해외이전과 무역증가가 나라들 사이의 교류와 협력에 이바지하면서도 국제관계에중장기적으로 불안정과 갈등을 유발하는 이중성을 주목한다. - P454

천하는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반면에 국이란 일정한 지리적·영토적 범위를 내포한 개념이었다. ‘國‘이라는 한자어의 형태 자체가 일정한 공간적 범위를 획정하는 형상이라는 것은 시사적이다
반면에 칭제한 지배자들의 명분론적인 정치적 개념체계에서 아베 다케오가 언급한 두 가지의 천하 관념 가운데 ‘광역천하‘의 관념은 지리적·영토적 범위를 초월한 개념이다. 이러한 차이가 중국의 전통적인정치적 개념체계에서 천하의 수장을 가리키는 ‘황‘이나 ‘제‘가 ‘국’과결합되지 않았던 개념사적 현상의 한 배경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 P503

일본인들은 고대국가 시기에 "황제의 나라=천하"라는 중국의 개념체계를 모방하되, 중국이 말하는 천하는 중국에 국한시키고, 자신의 천하는 일본이라는 나라(日本國)에 국한시킴으로써 자기화된 천하의 논리를 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중국과 달리 일본에게는 지배자의 이념으로서의 천하도 ‘국‘의 개념과 양립해 결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훗날의 전통시대에 ‘황국‘(皇國)이라는 개념을광범하게 사용하는 조건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이러한 배경이있었기에 근대 일본 역시 서양어 ‘엠파이어‘를 ‘제국‘으로 번역해 곧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제국일본‘으로 표상하는 것도 용이했을 것이다. 다만 고대국가 시절 천황제가 구성되어가는 시점에서는 일본은 중국의 개념체계를 모방하는 데 집중하여, 천하와 천조를 중심으로질서표상과 자기표상의 개념체계를 구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 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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