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성왕을 도와, 그의 아들 백금으로하여금 봉지인 노땅으로 가도록 했다. 주공이 백금에게 훈계하여말했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의 동생이며, 성왕의 숙부이니, 나역시 천하에서〔신분이 낮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번 머리 감는 데 머리카락을 세 번 움켜쥐었고, 한 번 밥을 먹는데도 세번을 뱉어내면서 일어나 선비를 우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천하의 어진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하였다." 네가 노나라 땅으로 가더라도 나라를 가졌다고 교만하지 말고 남에게 삼가라." - P122
주공이 풍읍에 있을 때 병이 들어 죽으면서 말했다.
"반드시 나를 성주成周에 장사 지내어 내가 감히 성왕을 떠나지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 주시오." 주공이 죽고 나서성왕도 겸손해하면서 주공을 필畢 땅에 매장하고 문왕의 뜻을 좇으면서 자신이 감히 주공을 신하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확실히 했다. - P125
나중에 백금이 정치의 상황을 늦게 보고한 것을 듣고는 한탄하며말했다. "아! 노나라는 후세에 아마도 신하가 되어 제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다. 대개 정치란 간소하지 않고 쉽게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친근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치가 평이하고 백성들에게 친근하면 백성들은 반드시 귀의하게 되는 것이다." - P127
[은공] 11년 겨울, 공자 휘揮노나라 대신가 은공에게 아첨하며 말했다. "백성들이 당신을 받들었기에, 당신께서 마침내 자리에 오를 수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위하여 윤을 죽이고자 하니 당신께서저를 재상으로 삼아 주십시오." 은공이 말했다. "이전 임금의 명이 있었는데, 윤이 어렸으므로 내가 그를 대신하였던 것이다. 이제 윤이 성장하였으니, 나는 바야흐로 토구菟裘의 땅에 집을 짓고 노년을 준비할 것이며, 아들 윤에게 정권을 넘겨줄 것이다." - P131
"은공이 드디어 왕의 자리에 오르려고 그대를 죽이려고 하니, 그대는 이 점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대를 위하여 은공을 살해하겠습니다." 아들 윤이 그렇게 하도록 했다. 11월에 은공은 종무제鍾巫祭어떤제사인지 분명하지 않음를 지내고, 사포동산의 이름에서 재계하고는, 위씨蔿氏노나라 대부 집에 묵었다. 휘가 사람을 보내어 위씨 집에서은공을 죽이고 아들 윤을 자리에 올렸으니, 이 사람이 환공桓公이다. - P132
〔문공] 18년 2월, 문공이 세상을 떠났다. 문공에게는 왕비가 두명 있었으니, 첫째왕비는 제나라 여자애강으로, 아들 오惡와시親를 낳았다. 둘째 왕비 경영敬嬴은 총애를 듬뿍 받아 아들 퇴俀를낳았다. 퇴는 양중襄仲과 사사로이 일을 꾸며, 양중이 그를 왕위에세우려고 하니, 숙중叔仲이 말했다. "안 됩니다." 그러자 양중은 제나라 혜공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혜공은 막자리에 오른 터라 노나라와 친하게 지내려고 이를 허락했다. 겨울10월, 양중은 오와 시를 죽이고 퇴를 세우니, 이 사람이 선공宣소이다. 애강은 제나라로 돌아가다가, 저잣거리를 울면서 지나가며 말했다. "하늘이시여! 양중이 도의에 어긋나게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웠습니다!" 저잣거리 사람들이 모두 우니, 노나라 사람들이 그녀를 ‘애강姜‘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노나라는 이 때문에 공실이 약해지고 삼환이 강성해졌다. - P138
도공의 시대에는 삼환이 강성해졌으며, 노나라 군주는 하찮은 제후와 같아, 삼환의 가족보다 세력이 낮았다. - P149
"내가 듣건대 공자가 일컬어 말하기를 심하구나! 노나라의도가 쇠약해졌으니! 수수 사수 사이에서 [예의에 관한]와 논쟁이 끊임없구나!‘ 라고 했다. 경보와 숙아, 민공의 때를 관찰해보니, 어찌 그다지도 혼란하였던가? 은공과 환공의 사건, 양중이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운 일, 삼환이 북쪽을 바라보는 신하가 되고서도 소공을 직접 쳐 소공을 달아나게 한 일 등이 그렇다. 노나라가읍양揖讓의 예를 따르는 듯하면서 사건을 일으킨 것이 어찌 그리[도리에 어긋나는가?" - P151
[정공] 10년, 정공과 제나라 경공이 협곡에서 회맹하였는데, 공자孔子가 상相의 일을 대행했다. 제나라가 노나라 군주를 몰래 치려고했는데, 공자가 예의에 따라 계단을 올라 제나라의 음란한 음악을꾸짖으니, 제후齊侯가 두려워서 그만두었고 노나라에게서 빼앗은땅을 돌려주며 사과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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