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고통의 힘 19세기 여성의 시
15장 체념의 미학

여성의 ‘성취‘ (분명 20세기 사상가들이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새롭게 정의한 19세기 개념)를 강박적으로 비판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시를 찬미할 때는 일반적으로 그 시가 ‘여성적‘이기 때문이고, 반대로 비난받을 때는 그 시에 ‘여성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 P924
시 쓰기(신비로운 ‘영감‘, 신적 영감, 음유시인의 의식)는 전통적으로 성스러운 소명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까 - P927
지 대부분 유럽 사회에서 시인은 특권적이고 마술적이라 할 역할을 수행했다. 낭만주의 사상가들이 미학의 영역에 신학적 어휘를 차용한 이후 ‘그(시인)‘는 유사 성직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문화에서 여자는 성직자가 될 수 없다.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이 법칙의 유일한 예외는 비주류인 성공회뿐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성직자인데) 어떻게 여자가 시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 P928
울프의 말마따나 사실상 ‘19세기 초에 여자가 거친 모든 문학적 훈련은 인물 관찰과감정 분석이었다. 26 따라서 재능 있는 여자는 시보다 소설을 쓰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고, 말하자면 죄책감을 덜 느 - P930
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그들‘이다. 그녀는 일인칭 서사를 쓸 때도 삼인칭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시인은 삼인칭으로 쓸 때조차 ‘나‘를 말한다. - P931
여성 작가 자신에게 그녀는 ‘아무도’ 아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갖고 있는 / 영혼에는 겸손이 어울린다 / 의심 - 그것이 진정으로 공정하려면ㅡㅡ 그 완전한-진주를 갖기 위해 / 남자는-여자를ㅡ묶는다- / 그녀의 영혼을 옥죄기 위해 모두를 위해-유명 인사가 된다는 것이 ‘따분하거나‘ 속되게 ‘이름을 알려’ ‘누 - P942
군가’가 되는 일이라는 방어적인 확신에 의해 지지를 받을 때조차, 그런 단호한 겸손은 시인의 예술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 P943
분명 아무도 아닌 존재는 시를 출판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 때문에, 디킨슨은 ‘출판이란 인간의 정신을 경매에 넘기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출판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중부정은 의미심장하다. 다중부정이 이시인 주위에 사회적 문법의 무시무시한 벽을 둘러친 듯 보이기때문이다. 1866년경 디킨슨이 자신의 여생을 그녀의 ‘가장 작은 방‘에서 자신과 바깥의 금단 세계 사이에 ‘문을 조금만 열어둔 채‘ 보내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 벽은 거의 완벽하게 밀폐되었다. - P943
그의 시는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를 노래하노라‘고 오만하게 시작하고, ‘내가 취하는 것을 당신도 취하리라‘라고 말하며 만일 당신이 ‘오늘 낮과 밤을 나와 함께 머문다면 […] 당신은 모든 시의원천을 얻을 것이다‘라고 음유시인다운 자신감으로 약속한다. ‘집에서 가장 사소한 존재‘인 디킨슨은 자신을 아무도 아닌 존재와 일치시키는 반면, 휘트먼은 상냥하게 묻는다. ‘내가 모순된말을 하는가? / 좋다, 나는 모순된 말을 한다. / (나는 거대하고나는 군중을 품는다.)‘ 디킨슨은 자기 방에서 문을 살짝만 열어놓은 채 떨고 있는 반면, 휘트먼은 ‘문의 자물쇠를 풀어라! / 문 - P944
설주에 달린 문의 나사를 풀어라!‘고 외친다. 디킨슨이 상징적인 흰옷으로 자신을 감싼 채, ‘나는ㅡ 큰 소리를 내며ㅡ사는것을 견딜 수 없다 / 큰 소리가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다‘고쓴 반면, 휘트먼은 ‘나를 통해 금지된 목소리들, / 성과 욕정의목소리들, 베일로 가려진 목소리들, 나는 베일을 걷는다, / 외설적인 목소리들은 나에 의해 명료해지고 변화된다‘고 외친다. 디킨슨은 늙어갈수록 자기 안으로 침잠해가지만 (마치 말 그대로자신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듯, 그녀 시의 길이와 너비도 줄어들지만), 휘트먼의 걸작은 살을 찌우며 고통스러운 거부와 공격에도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을 광고하고 융성해간다. - P945
한편 여자들은 가장 열렬하게 서로 업적을 인정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디킨슨이 일생 동안 만났던 독자들 중에오로지 헬렌 헌트 잭슨만이 디킨슨을 완전히 지지했고, 은둔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너는 위대한 시인이야. 네가 살아 있는 날까지 소리 높여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이야 하는믿음을 주었다. 59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디킨슨 시의 사후 - P954
출판을 둘러싸고 어처구니없이 얽혀 일어난 음모(소송, 해적판, 전기, 반전기)는 매우 상징적이다. - P955
디킨슨은 고통스러운 단념이 주는 역설적 쾌락을 칭송하는 시를 다수 썼다. 사실 너무 많이 써서 대다61수 독자(예를 들면 리처드 윌비)는 ‘화려한 빈곤’을 그녀 예술의핵심 모티프로 간주했다. 이것이 디킨슨 시의 라이트모티프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또한 에밀리 브론테와 조지 엘리엇이 쓴 시의 모티프이기도 하다. - P956
여성의 쾌락과 여성의 힘, 독단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독단적인 여성의 말 사이의 그런 관계는 유구하다. 이브의 이야기와 디킨슨의 시는 둘 다 그런 관계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같은 우상 파괴적인 페미니스트에게 쏟아진공격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권리 옹호』는 ‘매춘부 홍보를 위해교활하게 만들어진 경전‘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 P963
오로라 리의 가슴속 ‘열기와 과격성‘이 아무리 길들여진다 해도 그 서광 같은 불길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배럿 브라우닝이 사방으로 ‘여성 선배들’을 찾아다녔고, 그녀 자신이 영국과 미국을통틀어 모든 현대 여성 시인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여지가 없다. 분명 브라우닝은 에밀리 디킨슨의 정신적 어머니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에밀리 디킨슨은 브라우닝의 타협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브라우닝의 ‘통찰적 시선‘에 매번영감을 받았고, 바로 그 시선을 통해 시를 쓸 때 여성 시인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했다. - P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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