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대 신채호의 '텍스트'와 민중

'민중'이라는 단어는 1920년대 이후 통용되기 시작

1920년대 신채호의 사상에서 '민중'이 가진 의의는 사상적 의미가 아니라 텍스트의 장르적 차이의 구분(비학술적 글쓰기와 학술적 글쓰기)을 드러내는 지표




· 이기백 역사학의 민족과 민중-자유 개념의 변주와 역사의 종언

이 제 민족의 세계는 틀림없이 인간에 의해 창출된 것이기 때문에(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의심할 여지 없는 근본원리이다), 그 양태는 우리 자신의 인간 정신 변화 양태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인간은 <있어야 했고, 있어야 하고, 있을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든 자 자신이 스스로 말하는 것만큼 정확한 역사는 없다.


이러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은 결국 정신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성으로 그런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행하는 것은 운명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선택을 바탕으로 하여 그런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또 우연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그렇게 행할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는 영원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 잠바티스타 비코 『새로운 학문』, 동문선

-> 비코의 사상에는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당시 물리과학이 최고라고 자부하던 시대에 역사학이야말로 진리에 근접한 것이라 주장하면서 실재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이기백은 1941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3년간 수학하며 역사주의 이론에 관한 다양한 저작을 만났다. 이 중 그에게 영향을 준 철학가는 랑케, 헤겔, 마이네케였다. 그들의 저작을 읽으며 세계사란 자유를 향하여 발전하는 것이고, 그 발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은 시대적 상황 안에서 상대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정리한다.



이기백은 민족에 신비성을 덧입히는 것을 경계하며 민족성을 역사적 과정에서 재고찰했다. '민족'을 한국사에 대입하면 그 중심에는 '민중'이 있었다고 정의한다.


그의 대표작인 <한국사신론>에서 그는 '지배 세력의 변화'에 따라 시대 구분을 나누었다. 개정이 됨에 따라 초반에 시대적 구분에 딱 들어맞지 않았던 측면을 수정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목차 >

1.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

2. 원시공동체의 사회

3. 성읍국가와 연맹왕국

4. 중앙집권적 귀족국가의 발전

5. 전제왕권의 성립

6. 호족의 시대

7. 문벌귀족의 사회

8. 무인정권

9. 신흥사대부의 등장

10. 양반사회의 성립

11. 사림세력의 등장

12. 광작농민과 도고상인의 성장

13. 중인층의 대두와 농민의 반란

14. 개화세력의 성장

15. 민족국가의 태동과 제국주의의 침략

16. 민족운동의 발전

17. 민주주의의 성장

18. 한국사의 발전과 지배세력


하지만 역사적으로 소수의 집권자였던 지배 세력 중심의 한국사적 시대 구분은 절대 다수인 민중을 역사 무대에 끌어올리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또 민중이 전면에 나서서 역사를 바꾼 경험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나타나는데 이전의 역사는 그럼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은 보이지 않는다. 

헤겔은 국가의 완성을 역사의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1987년 6월 혁명으로 한국 민중은 자유민주주의 완성 목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가 멈춘다면 민중의 의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 주체 사관에서 인민과 민족의 자리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유럽 중심)의 아시아 인식은 식민주의 역사학과 친화성을 지녔다.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는 한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반식민주의 역사학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보았다. 식민주의 역사학인 정체성과 타율성론을 비판하고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법칙이 한국사에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백남운은 조선 민족은 특수한 전통을 지니지 않고 일반적 인간일 뿐이라 밝혔다(하지만 백남운의 주장은 마르크스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백남운의 역사학은 민족이라는 근대 역사학의 전제를 옹호했다. 

1930년대 이병도의 실증사학이 해방 후 남한의 역사학의 토대가 되었다면, 백남운의 실증 사학은 북한의 역사학의 토대가 된다. 




민족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강조로 나타났다. 북한의 역사학은 '당성' 및 '역사주의' 원칙에 대한 강조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양립시키려 하였다.


1980년대 형성된 북한의 주체사관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결제 결정론과 계급투쟁 사관을 비판하고 인민대중을 역사의 주체로 삼았다. 둘째, 인민대중은 당과 수령의 영도를 통해서만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셋째, 민족주의가 더욱 강력한 형태로 다시 살아났다.


그 문제의식이란 신채호의 역사연구가 독립운동의 일환임을 지나치게 의식한 점, 그리고 그의 사상을 단일한 것으로 전제하는 태도, 또는 사상의 변화를 동시적이고 전면적이며 발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인식 등을 포괄한다. 이런 점을 좀 더 일반화하면, 각각은 ‘학문의 실천성‘, ‘주체의 동일성‘ 및 ‘총체적인 발전 구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P298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는 이기백 역사학을 상징하는 유명한 구절은 그의 민족주의적 입장 및 종교적 믿음을 잘 보여주지만, 여기에는 양자를 매개하는 논리로서 ‘민족=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과 ‘진리=일관된 신의 섭리로서의 보편성‘을 등치시키는 역사주의의 발상이 존재한다. 또한 이기백은 실증을 "역사학의 기초조건‘으로 중시하면서도 이를 ‘실증사학‘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자연과학에 가까운 실증이 곧바로 역사학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기백은 만약 실증주의가 역사학 그 자체로 치환된다면 "역사학은 학문이기를 그만두고 취미로 전락해버리고" 만다고 경고한다. - P317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체이고 그러한 인민은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국경을 넘어 동시대 비판적 역사학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그렇다면 주체사관의 고유한 특징은 혈통적 민족 개념을 도입하고 민족 자주성을 지키려는 면면한 투쟁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반식민주의 역사학이라는 북한 역사학의 원점이자 근대 역사학의 하나의 모습이었다. 주체사관을 주변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역사주의 실증사학의 흐름 속에 자리매김해야 하는 이유다. - P359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1-29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딩 때 신채호의 조선사 연구 저서 읽으려고 드문드문 쓰여진 한자 찾기 위해 옥편 전자 사전을 광클 검색했었네요.


거리의화가 2022-11-29 11:34   좋아요 1 | URL
예전 책들은 국한문 혼용인 경우가 많아서 옥편 찾기는 필수죠^^ 근데 고딩 때 그 책을 읽으셨어요? 개인적으로 읽으신 거겠죠? 저희 학교에서는 국사 시간에 그저 외우라고 닦달하기만 했습니다ㅠ 역사 관련 소설도 좀 읽고 저서도 읽고 그랬으면 더 재미나게 배웠을텐데 말이죠.

mini74 2022-11-29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남운, 역사교과서에서 정말 짧은 문장으로 만났던 기억이 나요. 언젠가 읽어보고 싶단 책이 보입니다. 지배세력으로 시대를 구분한 한국사신론 궁금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30 10:14   좋아요 1 | URL
저도 백남운 그냥 외웠던 걸로 기억해요. 그의 저작을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사신론은 한국통사의 고전 중 한 권입니다. 참 오래된 책인데 여전히 팔리는 걸 보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