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 탈역사화

[패전의 우울과 희생자의식]
전후 한참이 지나도 독일인의 대다수가 나치즘은 좋은 생각이었지만 잘못 적용됐을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 히틀러의 희생자 - 연합군의 희생자, 독일인에 의한 희생자 의식 없어 -> 탈나치화
유대인의 희생, 이스라엘에 대한 사과와 배상에도 소극적
동독 정권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이 진정한 위협이라 생각해(반제국주의 투쟁이 시급) - 나치즘의 과거는 자연히 극복된다
‘전 국민 희생자론‘이 전후 일본의 문화적 기억을 떠받치는 기둥. 제국의 기억이 포스트식민주의 문법으로 구성되면서 전후 일본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기억 문화로 자리잡아.
일본 우파, 자민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 평화헌법 지지자, 평화운동가 모두 희생자 신화에 목을 매고 있음

[공습의 기억과 원리적 평화주의]
드레스덴 폭격의 기억은 동독에서는 연합국을 가해자로 몰고 서독에서는 스탈린과 소련을 가해자로 만들었다. 폭격의 기억은 동서독 모두 독일 민간인을 희생자로 만드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했다.
일본이 인류 유일의 피폭국이었다는 사실은 아시아 이웃에 저지른 전쟁 범죄와 가해 행위를 가리는 가림막 기억으로 작동했다.
전후 평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제기할수록 전쟁과 원폭 투하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책임이 가려진다. (모든 전쟁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는 전투적 평화주의는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다) -> 탈역사화된 평화주의는 위험
‘도덕적 비가시성(moral invisibility)‘이 근대 문명의 기계화된 폭력을 가능하게 했다(by 바우만)
히로시마 위성도시 구레가 일본 태평양 함대의 모항이었다는 것이나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중공업이 군함 건조 기지였다는 것, 오쿠노섬에 독가스 공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가려지고 지워진다.

[실향민 · 전쟁포로와 가해의 망각]
나치의 폭력 vs 소련군의 폭력 - 비대칭성
전후 독일과 폴란드 등에서 국경선의 조정이 일어나면서 대량의 피난민이 발생 -> 독일 피란민은 폴란드어로 독일인을 뜻하는 ‘Niemiec‘의 첫 글자 ‘ N‘ 표식을 가슴에 달고 다녔음. 폴란드 수용소에서 독일인 피란민에 대한 고문이나 학대, 가해, 살해 행위가 빈번하였음.
체코도 독일 피란민에 대한 가해 행위 자유롭지 않아
독일의 강제 추방 희생자들(70% 정도가 서독에 정착. 가톨릭 교회와 돈독한 관계.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에 주요 지지 세력이 됨)은 자신들에게 가해 행위를 한 동유럽 국가들에 사과를 요구
아데나워 행정부는 독일 피란민의 고통을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희생과 동일시하면서 탈역사화 시도
일본 피란민 히키아게샤도 독일의 1/4 정도 규모(320만)지만 대부분 전 재산을 빼앗기고 유리걸식, 기아, 추위, 현지인의 복수에 시달렸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본토 일본인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 소련과 중국의 포로수용소 출신은 공산주의자로 의심당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전 직장으로 복귀할 수도 없었음.
《요코이야기》, 《게걸음으로》 모두 패전을 앞두고 서둘러 피란길에 올라야 했던 일본, 독일 피란민의 수난을 그렸으나 역사적 감수성의 차이로 다른 취급을 받아.
《게걸음으로》에서는 가해와 피해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기억을 배치. 하지만 《요코이야기》는 개인의 고통만 강조되고 일본인이 저지른 범죄나 잔학행위에 대한 비판이 없음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억류된 전쟁포로의 기억도 탈역사화되어 슬라브 공산주의자들의 억압과 박해라는 집단 기억을 강화
서독이나 일본이나 모두 귀국한 전쟁포로에게 패전의 책임에 더해 폭력 이미지가 덧붙여져 악당 취급받아.


패전 직후 지구적 기억구성체에서 집단적 희생자라는 역사적 위치는 유럽과 아시아 전선에서 먼저 전쟁을 도발하고 이웃 국가들을 침략한 독일과 일본 같은 추축국의 가해자들이 선점했다. 인류 역사상최악의 비극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와 전쟁 책임 문제가 기억에서 지워지고 탈역사화하자, 전쟁은 어느 날 문득 할퀴고 간 자연재해처럼 기억되었다. 자연재해에는 가해자가 없고 피해자만 있다. 가해자를 꼭 찾아야 한다면, 신이거나 운명이거나 비인간의 영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전쟁을 탈역사화하고 희생의 역사적 맥락을 지워버리는 순간, 역사의 가해자는 희생자로 위치를 바꾸고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당화한다.

원자폭탄의 섬광이 번쩍인그날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1964년 도쿄올림픽의 최종 성화주자로 평화의 불을 밝힌 것까지야 에피소드로 넘길 수 있지만,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의 건립 역사는 불편하다. 자료관의 건립 전시실은 1949년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및 자료관 설계 공모에서 당시 도쿄대학 조교수였던 단게 겐조(三)의 설계안이 1등으로 당선되었으며, 그의 설계안에 따라 1955년 8월에 자료관이 개관되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전시실의 설명에는 단계의 설계안이 ‘대동아건립기념영조계획(大東亞建立記念營造計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생략되어 있다.

원폭에 대한 탈역사화된 평화주의는 점령군의 엄격한 검열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점령군의 검열체제는 원폭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억누름으로써 풀뿌리 기억의 영역에서 일본의 희생자의식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희생자를 서열화하는 것도 기억의 폭력이지만, 모든희생의 기억을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놓고 추상적 고통으로 획일화하는 것도 폭력이다. 피해자의 고통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고통의 서열화와 획일화를 경계해야 하는 기억의 장은 불편하고 모순된 긴장으로가득 차 있다.

희생의 비대칭성은 종종 더 큰 희생자가 작은 희생자의 희생을 부정하고 희생자의 지위를 독점하는 논리적 근거로 작동하면서 화해의 발목을 잡는다. 자신의 가해 사실과 상대방의 희생을부정하면, 가해자가 회개할 이유도 희생자의 용서를 구할 이유도 없다. 용서가 없으면 화해도 없다. 자신들의 희생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독일이 저지른 죄를 대속했다는 독일 피란민의 입장은 역사적 화해를더 어렵게 만들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아도 회개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독일과 일본은 전근대의 잔재와 일탈한 자본주의적 발전 때문에 봉건 지배계급과 군부, 대자본가가 결탁한 위로부터의 파시스트적 혁명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의 ‘특수한 길‘ 테제는 독일과 일본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사무직 노동자, 중하층 관료, 노동자계급, 농민 등 대다수 민중이야말로 위에서 강요된 파시즘과 폭력적인근대화의 희생자였다는 전제를 안고 있다. 소수의 나치와 군국주의자가 선량한 민중을 총동원체제로 밀어 넣었다는 ‘특수한 길‘ 테제는 추상의 사회 체제와 구조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나 희생자를 처형장에 몰아넣고 총을 쏘고 스위치를 당겨 사람을 죽인 가해자는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작은 행위자들이었다. 전쟁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는것은 구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특수한 길‘ 테제는 전쟁과 식민지

의 현장에서 잔학행위의 가해자였던 작은 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사적 담론이었다.
환전후의 자기 변명적 집단 기억 속에서 평범한 독일인과 일본인은사악한 나치와 전근대적 군부의 최초의 희생양이었으며, 전쟁이 끝날무렵에는 최후의 희생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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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1-15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이라는게 참 그런거 같아요.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그나라 국민은 다 피해자가 맞아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수도 없고~

거리의화가 2022-11-15 13:54   좋아요 3 | URL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가 희생자화된 경우)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역적인 범위에서 탈영토화되어 지구화(세계화)된 의미로 쓰이는 것이 왜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죠. 우리만 해도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이기도 한데 희생자를 강조하며 성역화시키는 부분도 분명히 있잖아요. 책이 지나치게 두껍다는 생각인데(사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1~2에서 2~3장 정도면 충분할 듯한데 구체적인 사례가 많이 들어가서) 메시지는 결국 하나인 듯 싶습니다^^*

mini74 2022-11-15 17: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의 묘 도 그런 의미로 비판 많았지요. 게걸음으로 읽어보고싶네요

거리의화가 2022-11-15 17:45   좋아요 2 | URL
네. 개인적인 수기라도 역사적 감수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게걸음으로>가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체크는 해두었는데 왠지 미니님이 더 먼저 읽으실듯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