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상태나 그에 뒤따르는 모든 환경은 새롭고 확고하고 대담하며 어쩌면 필사적이기까지 한 행동을 하기에 알맞았다. 내겐 잃을 것이 없었다.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싫은 과거의 황량한 삶으로는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하려는 일에서 실패한들 나 말고 고통을 당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내가 먼 곳에서 ‘집에서 먼 곳에서‘라고 말하려 했으나 내게는 집이 없었다―잉글랜드에서 먼 곳에서 죽은들 누가 울어줄 것인가? 고통이야 따르겠지만 나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죽음 자체에 대해서도 나는 곱게 자란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이 없었고, 차분히 죽음을 지켜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계획을 세웠다. - P75
돌벽이 있다고 감옥이 되는 건 아니고철창이 있다고 새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네.
몸이 건강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 특히 자유의 날개를빌릴 수 있고 희망의 별빛의 인도를 받는 한, 위험과 외로움과 불안한 미래는 우리를 짓누르는 악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 P85
아주 쉬운 영어로 말하자 그녀가 통역을 했다. 나는 지식을 넓히고돈을 벌기 위해 어떻게 조국을 떠났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나쁜 일이나 비열한 일만 아니면 쓸모 있는 일은 어떤 것이라도 할 준비가되어 있으며, 유모나 하녀 일이라도 좋고, 내 기운으로 할 수 있다면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베끄 부인의 표정을 살펴보니 마음이 동하는 모양이었다. "영국 여자들은 모두 모험심이 대단하군요." 그녀가 프랑스어로말했다. "여기 이 여자분처럼 영국 여자들은 모두 대담한가봐요!" - P99
감시라는 방법으로 학교를 다스리는 만큼 베끄 부인은 당연하게도 감시원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이런 도구들의 자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가장 더러운 일에 가장 더러운 도구를 거리낌없이 쓰고는, 그런 인간들을 즙을 다 짜고 난 오렌지 껍질을 버리듯이 내던졌다. 반면에 깨끗한 용도를 위해서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가장 순수한 금속을 찾아냈다. 그리고 일단 녹이 슬지않은 흠없는 도구를 발견하면 비단과 솜에 싸서 소중히 보관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을 만한 도구가 이해관계에 들어맞는 지점을 한치라도 넘어서서 그녀에게 의지하려고 든다면, 남녀 불문하고 큰화를 당할 것이었다. 이해관계야말로 베끄 부인의 성격의 핵심이자 동기의 주요 원천이었고, 삶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 P112
"앞으로 갈 거예요, 뒤돌아 갈 거예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처음에는 사택과 통하는 작은 문을 가리키고 다음에는 교실로 통하는커다란 이중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앞으로 가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런데," 내가 상기되자 오히려 그녀가 냉정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적대감에 부딪히자 나는 도리어 힘이 나고 결심이 확고해졌다. "학생들을 대할 수 있겠어요? 너무 흥분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약간 빈정대는 투였다. 과민한 흥분을 부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돌처럼 차분해요." 나는 발끝으로 판석을 치며 말했다. "그리고 부인처럼요."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 P118
나는 그 첫 수업과, 그 수업에서 시작된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나란 인물에 대한 모든 암시를 잊을 수 없다. 그때 처음으로 소설가나 시인의 이상인 ‘소녀‘와 실제 ‘소녀‘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나는POTE앞줄에 앉은 세명의 귀족자제들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하녀" 따위에게는 영어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결의에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전에도 싫어하는 선생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베끄 부인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 없는 선생은 언제라도 내쫓 - P120
고 시원찮은 선생은 자리보전하는 걸 도와주지 않으며, 싸울 힘이나 이길 재주가 없는 선생은 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스노우 선생님‘을 보며 그들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 P121
빌레뜨는 국제적인 도시였고, 이 학교에는 유럽의거의 모든 나라에서 온 각계각층의 소녀들이 있었다. 라바스꾸르는 국가의 형태는 공화국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공화국이나 다름없어서 전반적으로 평등이 실현되고 있었다. 베끄 부인의 학교책상에는 백작의 딸과 부르주아의 딸이 나란히 앉았다. 겉모습만보고는 누가 귀족이고 누가 평민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귀족들은 오만과 기만이 교묘하게 균형을 이룬 태도를 보이는 반면, 평민들은 훨씬 더 솔직하고 깍듯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 P124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베끄 부인은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호감을 살 만한 역할은 독차지하고, 성가신 위기가 닥치면 선생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다. 위기 상황에서 적절하고 신속하게대응해봐야 인기만 떨어질 뿐인 걸 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믿을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 P126
"현재 내 관심사는 약속이나 맹세를 해서 이런저런 남자에게 매이는 게 아니라 젊음을 즐기는 거야. 이지도르를 처음 만났을 때, - P139
첫눈에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 그 역시 내가 예쁘기만 하만족하리라고 생각했지. 우리가 두마리 나비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날갯짓을 하며 행복해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하, 그런데 이것 봐! 그는 때로 판사처럼 엄숙한데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남자더라고. 쳇! 난 그런 사색가나 진지하고 열정적인 남자는 밥맛이야!" 나한테는 알프레드 드 아말 대령이 훨씬 더 잘 맞아. 잘생긴 멋쟁이에다 근사한 바람둥이면 돼! 즐거움과 쾌락 만세! 위대한 열정과엄격한 정조 따위 물러가라!" 그녀는 장광설을 늘어놓고 대답을 기다렸으나 나는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멋쟁이 대령이 난 좋아." 그녀가 계속 말했다. "그의 라이벌을좋아하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야. 난 부르주아의 부인 따위 되고 싶지 않아!" - P140
이 아이는 연기를 잘했으며 그 어머니의 연기는 그보다 한수 위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뻔히 알면서도 베끄 부인은 놀랄 정도로 뻔뻔스럽게 그 말을 믿고 걱정하는 시늉을 해냈다. 내게 놀라운 일은 존 선생―젊은 의사는 피핀더러 자기를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쳤고, 우리 모두 그녀를 따라 이렇게 불러서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으며, 포세뜨가에서는 그 이름만 알고 있었다―이 암암리에 베끄 부인의 술수를 받아들이고 동조했다는이었다. 사실 그는 잠시 우스꽝스럽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딸과어머니를 번갈아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자문하더니 마침내 기꺼이 이 소극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맡기로 결심했다. 데지레는 아귀처럼 먹어대면서 밤낮으로 침대에서 겅중대고 시트와담요로 텐트를 치고 베개를 쌓아놓고 터키인처럼 길게 눕거나, 심심하면 하녀에게 신발을 던지거나 동생들에게 인상을 쓰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했다. - P148
수녀원과 고해성사가 있는 이 나라에서 ‘여자기숙학교‘에 그렇게 젊은 남자가뻔뻔스럽게 드나드는 것은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온 학교가 쑤군대고 부엌에서 속삭이며 시내에 소문이 퍼졌고, 부모들의 비난 편지와 방문이 쇄도했다. 베끄 부인이 심약한 사람이었다면 분명히물러섰을 것이다. 십수군데의 경쟁 학교들에서는 이 잘못 만일이것이 잘못된 조치였다면을 이용해 그녀를 파멸시킬 태세였다. 그러나 베끄 부인은 심약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어느정도는음흉한 구석이 있었음에도, 그녀의 유능한 태도와 숙련된 솜씨, 강인한 성격, 확고한 결의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마음속으로 "브라보!"를 외쳤다. - P153
"베끄 부인에게 젊은 의사에 대해 충고하는 게 낫지.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베끄 부인은 스스로에게 충고한 듯했다. 그녀는 나약하게 행동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사실 극복해야 할 정도로 강한 감정도, 비참하게 고통에 빠질애정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시간을 채워주고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관심을 분산시켜줄 진정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녀가 평범한 여자나 남자가 가지지 못한, 진정으로 훌륭한감각을 지닌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 여러 장점들이 결합되어 그녀는 현명하게 행동했다. 다시 한번, 베끄 부인 브라보! 당신은 편애라는 아바돈"에 맞서서 아주 잘 싸웠고, 그리고 이겼군요!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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