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와 도가 중의 장자학
1. 장자와 초나라 사람 정신
- 장자는 송나라 사람이었으나 사상은 초나라 사람과 가까웠다. 장자학은 전통적 사상과 제도에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했는데 유묵을 공박했으나, 노담은 우러러 공경한 것이 그것이다.
맹자와 장자는 동시대인이었다. 장자의 학문은 양주의 학문이 진일보한 것으로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장자도 양주의 추종자였고 장자 역시 맹자를 공자의 추종자로 보았다.
2. 도(道)·덕(德)·천(天)
- 도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며, 천지만물은 모두 그에 따라 생을 그치지 않는다.
- 만물은 스스로 골라잡은 것으로 스스로 변화한다.
- 천지만물 생성의 총원리가 도, 사물의 생성의 원리가 덕, 자연(무위의 원칙으로 행하는 것)이 천이다.
3. 변화의 철학
천지만물은 항상 변화 가운데 있다.
4. 무엇이 행복인가?
자연의 본성을 따르는 것
-> 다스림으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것에 반대하고, 다스리지 않음으로써 다스리는 것이 최선이다.
5. 자유와 평등
- 옳고 그름은 상대적인 것이며, 저것과 이것이 더이상 대립물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본질이다.
- 도의 관점에서 보면 사물은 모두 동등하며 도와 합일할 수 있으면 하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6. 죽음과 불사
탄생은 때를 만난 것이고 죽음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함이니 자연의 질서에 의하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
우리가 가진 존재방식에 대한 고민
장자의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의 생각이 놀라웠다. 아내는 애초에 생이 없었고 형체도 없고 기도 없었는데 기가 생기고 형체가 생기고 생명이 생겼다 다시 죽음으로 돌아간 것이니 이는 자연의 운행의 원리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죽음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 고통은 별개로;;;
7. 순수경험의 세계
- 순수경험은 지식이 없는 경험으로 액면 그대로의 가치인 개념에 의한 구별이 섞이지 않은 것이다. 장자는 순수경험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 “심재”, “좌망”은 마음을 비우고 대통에 합일하여 순수경험에 이르는 것이다.
8. 절대적 소요
우주와 합일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소요이고 그것에 이른 사람이 지인이다. -> 신비주의(유심론적 우주가 필요하지 않다)

도는 천지만물 생성의 총원리(所以生之總原理)이니, 사물이 있으면 도가 있다. 따라서 도는 "없는 곳이 없다.
도의 작용은 또한 자연적이다. 따라서 말한다. "기술(技)은 사무(事)에 통섭되며, 사무는 의(義)에 통섭되며, 의는 덕(德)에 통섭되며, 덕은 도(道)에 통섭되며, 도는 자연(天)에 통섭된다." - P359
태초에 "무(無)"가 있었다. 무는 존재(有)도 없고 이름(名)도 없다. 그것으로부터 ‘하나(一)‘가 생겼고, 그 하나는 있었지만 아직 형체는 없었다. 만물이 그것을 얻어서 생겨나는 것이 덕(德)이다. 덕 역시 아직 형체는 없었지만 이미 도에서 나누어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도와 덕은 분별이 없다. 이것을 명(命)이라고 한다. [‘하나‘ 즉 精氣가/신편』] 유동하면 구체적인 사물이 생성된다. 구체적인 사물이 생성되어 일정한 속성(理)이 생긴 것을 형체(形)라고 한다. 형체가 정신을 보유할 때, 저마다 나름의 의칙(則;구조와 법칙)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런 유의 사물의 본성(性: 본질)이다. - P361
만물의 생성은 마치 말이 질주하는 것과 같다. 움직여 변하지 않는 것은없고, 잠시도 변천하지 않는 것은 없다. - P363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장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다만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에 충분한 것일 뿐이다. 사물의 본성은 지극히 상이하여 사물마다의 취향(所認爲之好)이 존재하기 때문에, 꼭 같을 필요도 없고 강제로 같게 해서도 안 된다. 사물이 한결같지 않으니, 한결같지 않은 대로 맡겨두어야 한다. 이른바 한결같게 하지 않음으로써 한결같게 한다(以不齊齊之)는 말이다. 정치적, 사회적 각종 제도는 모두 하나의 취향(一好)을 정하여 행위의 기준으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게 한 것이므로, 한결같지 않은 것을 강제로 한결같게 만든 것으로서 사랑이 오히려 해가 된 경우이다. - P366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는 것인데, 만약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이에 저것이 이것보다 더 좋거나 혹은 이것이 저것보다 더 좋은 어떤 경우가 존재하는 것을 승인한다면, 좋은 것은 마땅히 좋지 않은 것을 개조하여 좋게 해야 하므로, 모든 사물이 저마다 절대적 자유가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 장자학은 인간과 사물은 모두 절대적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천하의 온갖 사물 중에 좋지 않은 것은 없고 천하의 온갖 의견 중에 옳지 않은 것은 없다고 여긴다. 이 점이 장자학과 불학(佛學)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불학은 천하의 모든 사물은 다 나쁘고 천하의 모든 의견은 다 그르다고 여긴다. - P369
공손룡의 「명실론(名實論)」에 따르면 저것은 오직 저것이고, 이것은 오직 이것일 뿐이다. 장자학에 따르면 저것과 이것은 상대적이다. 따라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역시 저것에서 비롯되니, 저것과 이것이 나란히 생긴다는 주장이다"고 했다. - P373
탄생(得)은 때를 만난 것(時)이요("정해진 때에 해당된 것을 세상은 득[得]이라고 한다" /곽상), 죽음(失)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함(順)이니("시간이 잠시도 머물지 않고 자연의 순서에 따라 지나간 것을 세상은 실〔失]이라고 한다" /곽상), 만난 때에 조용히 머물다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돌아가면 애락(樂)은 개입하지 못한다. 옛 사람은 이것을 일컬어 현해(懸解: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풀림)라고 했다. - P379
경험에서 경험대상인 사물은 구체적이고, 이름이 지시하는 바는 추상적이다. 그래서 개념으로써 지시하는 바는 사실상 경험의 일부일뿐이다. 비유하건대 "사람"이라는 이름이 지시하는 바는 단지 인류의 공통적 특질일 뿐이다. 각 개인의 구체적인 특질이나 개성은 모두 포괄될 수 없다. 따라서 한 개념이 있게 되면 성취한 바가 있는듯하나 실제로는 훼손된 바가 있다. - P384
온 마음을 다 기울여,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기(氣)로 들어라. 귀는 듣는 일에 그치고 마음은 개념포착에 그치지만, 기라는것은 비어 있어서 모든 사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도는 허심(虛:사려와 욕망의 배제)에 머문다. 이 허심이 곧 심재이다. - P386
"저는 좌망(坐忘)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낯빛을 바꾸며 안회에게 물었다. "좌망이란 무엇인가?" "사지의 존재를 잊고 정신의 총명성을 배척하여 육체를 벗어나고 지식을 폐기하여, 대통(大通 : 무한자)에 합일하는 것, 그것이 좌망입니다." - P387
"지인(至人:완전한 사람)은 자아가 없고(無己), 신인(神人:영적인 사람)은 공적이 없고(無功), 성인(聖人:참된 성인)은 명성이 없다(無名)." - P390
맹자의 철학 속에 존재하는 신비주의의 경우, 신비주의적 경지에 도달하는 맹자의 방법은 "자강불식 서를 실천하여(強恕)" "인을 구함(求仁)"으로써, "만물이 다 내게 구비되어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 참될(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학이 사용한 방법은 인식의 측면에서 모든 분별을 없애고, "천지는 나와 더불어 생겼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이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두 방법은 중국철학사상 분파하여 나란히 대치하여 상당한 이채를 띠었다. 그러나 장자학의 방법은 위진(魏晉) 이래로 다시 거론한 사람이 없게 된 반면, 맹자의 방법은 송명(宋明)의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서 발전되고 제창되었으니, 두 파의 운명은 이렇게 달랐다. - P391
"나는 너무 쓸모(재주) 있지도 너무 쓸모 없지도 않겠다. 도와 비슷하기는하지만 도가 아니기 때문에 화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도·덕(道德)을 타고 소요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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