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가 됐을 때 나는 행동반경이 주변으로한정되는 것에 분개했다. 이제 혼자 여행할 수 없었다. 떠나고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없었다. 지상에 발이 묶였으니 레드훅지역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으로 최대한 자주 도피해 혼자 몇바퀴씩 돌았다. 물에 들어가는 것이 곧 자유였기 때문이다. - P243

영화 및 소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도입 장면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를차별하면 우리는 너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우리를 못들어오게 했던 너의 최고급 호텔을 사버리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종주의를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백인의 세상이 우리를 포섭하는 방식이 아니던가? 우리가 응징을하든 은혜를 입든 해서 우리를 파괴한 체제 속에서 저들보다우월해지면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 P245

나는 내 인종 정체성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일은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는 편견을 한참 고수했는데, 그런변명의 저변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그것을비집어 열어야 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마치 해부용테이블에 뇌를 올려놓고 반으로 갈라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신경을 핀셋으로 골라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이 우리라는것과 씨름해야 했다. 저들에게 맞서는 수천 개의 나팔과도 같은우리를 청중에게 강력하게 내세울 만한 자신감이 내게 있다면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 불특정해서 공유하는언어가 있는지조차 의문인 아시아인이라는 인종 집단을 내체험의 무게로-동아시아인, 전문가 계급, 시스젠더 여성, 무신론자, 반골로서-규정해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누가 건드린 달팽이 촉수처럼 오그렸다. - P245

폭탄이 터져 파인 땅에 사탕을 심으면 그 사탕 껍질에서 자본주의와 기독교가 자라난다. 시인 에밀리 정민 윤은 조국에대해 이렇게 쓴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들은 묘지처럼 십자가불빛으로 가득하다." - P246

부채 의식이 있으면 생각이 미래에 고착된다. 나는 어쩌다행운을 얻으면 쉽게 흥분하는 조그만 강아지처럼 긴장한다.
이 행운은 누구 것이지? 물론 내 것일리없어! 나는 행운을거저 받는 선물이 아니라 앞으로 매주 악운을 당함으로써 할부상환해야 하는 융자처럼 취급한다. 내가 이 모양인 것은 잘못키워져서 - 억지로 고마워하도록 욱지름을 당해서 - 그런 것이틀림없다. 저를 위해 인생을 희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대가로부모님을 위해 제 인생을 희생하겠습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반항했다. 그 결과 나는 배은망덕이라는최악의 인간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도 배은망덕한 책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부채의식을 지닌 작가는 환심을 사려는이야기를 쓸 확률이 높다. 나도 이 나라에 그야말로 빚을 졌지만나는 오히려 항상 배은망덕할 것이다. - P248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치카노, 아시아계 미국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 투쟁을 소모적으로 찢어진 운동으로평가절하하면서 이런 투쟁 때문에 좌파가 계급이라는 핵심쟁점으로부터 멀어져 분열된다고 여겼다. 그런가 하면주류 중도파는 반인종주의 운동이 지나치게 전투적이라고 비난했으며, 백인 뿐 아니라 소수자들마저 같은 의견을 공유했다. - P254

고치야마의 국제적 인종 관계 정치는 결코 하찮지않건만 수많은 "전문가"가 정체성 정치의 하찮음에 대해거만하게 떠드는 소리만 듣고 운동가 선배들의 노고를 냉큼묵살했던 일이 나를 괴롭힌다. 미래가 걱정스럽고, 이 나라의타고난 망각 능력이 걱정스럽고, 항상 승리해 서사를장악한 자가 권력을 쥔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깨어 있다는것은 일회성 자각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평가를 통해 에너지를얻는 장기적인 서약일진대 "woke" (깨어 있음을 뜻하는 형용사awake의 흑인 방언 - 옮긴이)라는 구호는 이제 조롱받는 일개해시태그로 전락했다. 나는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의 시대가끝났음을 경고하는 흔해 빠진 전문가들에게 내가 어떤 진단을제시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고치야마같은 운동가들이 상부상조와 연대라는 대안 모델을 제시했던잃어버린 역사의 한순간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 P255

그요양원은 기괴한 탁아소처럼 벽을 온통 분홍색으로 칠하고아이들이 합창하는 섬뜩한 찬송가 녹음을 온종일 틀어놓았다.
10인 1실로 꽉 찬 방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은 방문한 자녀들에게자주 좀 오라고 투정했다. 중증 치매인 우리 할머니를 돌보기에나머지 친척들은 너무 노령이었기 때문에 내 동생이 1년 동안서울에서 할머니를 돌봤다. "늙어서 가족이 나를 버리기 전에죽고 싶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 P256

나는 서울에서 못 산다. 그곳은 여자들이 살기 좋은 곳이 못된다. - P256

자본주의를 통해 테레사 학경 차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척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연속적인 굴절을 초래하는 장치를저지하라"고 적는다. 서구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누가 우리의적인지 규정하는 권력이며, 이 권력에 의해 우리는 남북한이그랬듯 동족을 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나의 적으로삼는다. - P257

한국전쟁과 관련해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 P259

나는 보편성을파괴하고 싶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우리야말로 지구상에서다수이므로, 보편적인 것은 백인성이 아니라 우리의 차단된상태다. 여기서 우리란 비백인을 말한다. 즉 과거에 식민 지배를받았던 자, 조상이 이미 멸망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생존자, 서구 제국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악화된 가뭄과홍수와 집단 폭력으로부터 피신한, 현재 멸망을 겪고 있는이주자와 난민을 가리킨다. - P261

한국전쟁에서 겨우 회복한 젊은한국 군인들은 미국에 신세를 갚기 위해 베트남에 도착했다. 그들은 지상군으로서 "시골 지역을 평정하는" 임무를 맡았고, 민간인을 무차별 강간하고 살해했다. 복수에 대한 그들의집념은 편집광적이어서 한국 병사 하나가 어느 마을에서정체불명의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숨지면, 가서 그 마을전체를 불살라버렸다. 한국군은 하미 마을에서 유아와 노인을포함해 민간인 135명을 학살했다. 빈호아에서 학살된 양민의 수는 430명이다. 빈안에서 학살된 양민은 1000명 이상이다. 한국군의 손에 학살된 양민의 수가 8,000명이라고 하지만, 전쟁 중에 민간인 희생자를 집계하는 일이 어디나 그렇듯 이 수치는 정확하지 않다. - P265

아시아계 미국인은 무슬림이나 트랜스젠더처럼 보이지만않으면 다행히 심한 감시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일종의 연성 파놉티콘 속에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이것을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조건부 실존을 특징짓는다. 우리가 여기서 4세대째 살았어도우리의 지위는 여전히 조건부이다. 만족을 모르고 사들이는물질적 소유물이든 주류 사회에 편입했다는 마음의 평화로서의소속감이든 빌롱잉(belonging: 이 문장에서 소유물과 소속감이라는이중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옮긴이)은 언제나 약속되며,
아슬아슬하게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가 유순하게처신하도록 유도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의식이 해방되려면우리는 이 조건부 실존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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