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획득한 평등은 대부분 흑인민권 운동과 지금도 진행 중인 흑인의 평등 투쟁의 덕을 본것이다. 1965년에 미국이 문을 열고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이민자를 받게 된 것도 바로 흑인 민권 운동 덕이었다. 아시아계미국인들이 자체적인 운동을 개시해 공평한 처우와 존중을요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1960년대 말에 블랙파워 운동에힘입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오늘날미국 한인 사회와 한국에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 P13

우리는 서비스 분야의 일개미이며 기업계의기관원이다. 우리는 리더가 되기에 적절한 "얼굴"을 지니지못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숫자를 처리하며 기업의 바퀴가 잘굴러가도록 기름이나 치는 중간 관리자가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콘텐츠를 문제 삼는다. 저들은 우리가 내적 자원이 없다고여긴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역부족이라는 기분에함몰된 내 상태를 감추기 위해 물밑에서 미친 듯이 발을 저으며언제나 과잉 보상을 한다. - P26

자기를 혐오하는 아시아인은 내 세대를 끝으로 사라질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가르친 세라 로런스 칼리지의 학생들은 맹렬하여--
자율적이고 정치적 참여도 열심히 하고 똑똑했다- 참 다행이다,
이 학생들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시아인 2.0이다,
고함을 내지를 준비가 된 아시아 여성들이다, 라고 생각했다.
또 그러다가도 다른 대학교 강의실에 가보면 머리만 예쁘게매만지고 아무 말 없이 생쥐처럼 얌전히 앉은 아시아 여학생들을만나는데, 그럴 때는 닦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너 입 좀열어라! 안 그러면 저들에게 완전히 짓밟힌다고! - P27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한다.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수다로 끝날 수가 없다. 그것은 존재론적이다. 그것은 남에게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아픔을 느끼는지, 나의 현실이그들의 현실과 왜 별개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아니, 실상은그보다도 훨씬 더 까다롭다. 왜냐하면 서구의 역사, 정치, 문학, 대중문화가 죄다 저들의 것이고, 그것들이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7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19세기 미국 팽창기에유행한 용어로 미국이 북미 전역을 지배할 운명이라고 주장하여영토 팽창을 합리화했다-옮긴이)을 실현하기 위한 철로가2마일씩 늘어날 때마다 평균 세 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목숨을잃었지만, 골든 스파이크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던 날(1869년5월 10일 유타주 골든 스파이크에서 유니언 퍼시픽 철로와 센트럴퍼시픽 철로가 연결되었다-옮긴이) 중국인 가운데 단 한 사람도다른 - 백인 - 철도 노동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도록 허락되지않았다. - P39

이 나라에 온 최초의 중국인 여성들이 맞닥뜨린 운명은더 끔찍했다. 중국에서 납치당해 이 거칠고 야만스러운 나라로 밀반입된 15세의 소녀가 여관에 감금된 채 하루에 열 차례씩강간당하다가 결국 매독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전개가 나는 상상조차 버겁다. 그러고 나면 소녀는 길거리에 버려져 홀로죽어갔다.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벌거벗은 생명‘은 사회의 보호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대조되는 순전한 생물학적삶이며, "누구든 그를 죽여도 살인죄를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그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오로지 영원한 도주를 통해서만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식물이나 돼지처럼 인간의 몸이 단순한생물학적 현상으로 축소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매춘부가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이 홀로 죽으면, 그가 존재했다고할 수 있을까? - P40

이민자 수천 명이 자신들이 살던 동네에서 쫓겨났다. 1885년 워싱턴주 터코마에서는 백인들이 임신한 중국 여성의 집에들이닥쳐 그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집 밖으로 끌어내 같은동네에 사는 중국인 이민자 300명과 함께 차가운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벌판에서 강제로 행군하게 했고, 그러는동안 그들이 살던 집은-그들이 거기에서 살았다는 모든 증거와 함께 - 불타올랐다. 그들은 오갈 데도 없이 영원히 도주하는삶을 살았다. 또한 1871년에는 중국인 몇 명이 백인 경찰관을살해했다는 유언비어에 500명에 달하는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이떼 지어 LA 차이나타운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중국인 성인남자와 소년 18명을 고문하고 목매달아 죽였다. 이는 미국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린치 사건이었다. 그들이 린치당한 거리는 당시 ‘검둥이들의 골목‘으로 불렸다. - P41

1965년에 미국이 "하급 인종"을 다시 받아들이게된 것은 소련과 이념 경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홍보에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난한 비서구권 국가에서 일렁이는공산주의의 물결을 막아내려면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법의이미지를 지우고 재부팅해 미국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해야했다. 해결책은 비백인의 미국 유입을 허락해 직접 실상을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모범 소수자 신화가대중화되어 공산주의자들-그리고 흑인을 견제하는 작업에이용되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 신화를 퍼뜨려 자본주의를선전하고 흑인 민권 운동을 깎아내렸다. 우리 아시아인은 뭘요구하지도 않고, 근면하고, 절대로 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 차별은없다며, 저들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 P42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당선된 직후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급증했는데, 대개는 그리고특별히 무슬림이나 무슬림 같아 보이는 아시아인이 표적이되었다. 2017년 어느 백인 우월주의자가 인도인 힌두교도 기술자두 명을 이란 테러리스트로 착각해서 사살했다. 그다음 달에는어느 인도인 시크교도가 시애틀 교외의 자택 차고 진입로 밖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와 함께 총격을 당했다. - P43

이 사례에서는 여성 혐오가인종적 연대를 압도하고 있다. 이 남성과 샤마는 백인이 다수인외딴 주, 백인이 다수인 교과과정에서 일하는 유일한 두 명의아시아인이었다. 아시아인이 단 두 명인 경우에도 단합은커녕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려고 할 수 있다. 소수자에게 배분된미미한 권력을 나눠 갖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 다른하나와 닮았다는 착각을 당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 P44

이민자가 동화됨으로써 얻는 특권은 남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동화(assimilation)를 권력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일단 힘이 생기면 존재가 노출되어서 과거에 도움이 되었던 모범소수자 자격이 이제는 그 사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어서 그렇다. 늘 "좋은 성과를 거두어 백인들에게 보답받기를 열망했던" 그의아버지를 사람들은 "욕심 많은 갈색인", "사기꾼 인도인", "돌팔이장사꾼"으로 불렀다고 샤마는 적고 있다. - P46

때로는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 경험을 상대방에게 애써 설명할 필요가 있다. - P49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았을지, 무슨 말을하면 좋았을지 내 생각을 샅샅이 점검한다. 내가 보는 것, 내가듣는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아는 자유 낙하하는데 초자아는무한대로 커져서, 나라는 존재는 부족하다고, 결코 충분치못하다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더 잘하고, 더 잘되려고 강박적으로노력하며, 자기 이익이라는 이 나라의 복음성가를 맹목적으로따라 부르고, 내 순가치를 늘려 내 개인적 가치를 입증해 보이는짓을 이 세상에서 사라질때까지 계속한다. - P58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관계』에서 농담을 경향성 없는 농담과 경향성 있는 농담의 두 범주로 분류한다. 경향성이 없는 농담은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들려주듯 무해하고 무독하다. 경향성을 갖는 농담은 공격적이거나 저속하거나 아니면 둘 다여서 우리의 의식 속에서 억눌린 부분을 캐낸다. - P62

나는 백인의 환심을 사도록 양육되고 교육받았으며, 환심을 사려는 이욕망이 내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더라도, 그것은 백인의 환심을 사고싶어 하는 나 자신의 일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피할 방법을 알 수 없었다. - P66

나는 어떤 상을 수상한 유색인종시인이 질의응답 시간에 한 말을 잊지 못한다. "인종에 관해쓰고 싶으면 예절 바르게 써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니까요." - P73

출판업계는 작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를 기대한다. 즉 등장인물이 특이한 가족 관계나 역사적 비극에 의해 시험에 들었다가 결국 자기 긍정이라는 계시에 도달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작가가 트라우마의 배경을 머나먼 고국 땅이나 고립된 아시아계 가족 내부로 설정하여, 그들의 아픔이 미국의 제국주의 지정학이나 미국 내 인종주의에 대한 새삼스러운증거가 아님을 확실히 해두는 작품이 많다. 그들에게 고통을주는 외부적 요인은-가부장적인 아시아인 아버지, 과거 시대의 백인들-독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충분히 멀찌감치 설정한다. - P77

프라이어는 내가 소수적 감정(minorfeelings)으로 칭하는 것을 채널링하는 사람이었다. 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클로디아랭킨의 시집 『시민』은 소수적 감정을 탐구하는 책으로는 이제 고전으로 꼽힌다. 화자는 인종차별적 언사를 듣고서 자문한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지? 본 것, 들은 것이 다 확실한데도, 내현실을 남에게 폄하당하는 경험을 너무 여러 차례 겪다 보니 화자 스스로 자기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감각훼손이 피해망상, 수치심, 짜증, 우울이라는 소수적 감정을 초래한다. - P84

내가 쓰는 "소수적 감정"이라는 표현은 문화이론가 시앤 나이에게 깊이 빚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 후기자본주의 ‘긱 경제‘ (gig economy: 전통적인 고용 관계 대신에 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고용형태 -옮긴이)의 증상인 못난 감정(ugly feelings) - 부러움, 짜증, 지루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정서적 속성에 관해 폭넓게 저술했다. 못난 감정과 마찬가지로 소수적 감정 역시 "놀라운 지속력을 지닌 "카타르시스가 없는 감정 상태"이다. - P85

라타샤 할린스가 살해된 사건은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찰관들이 무죄로 풀려나기 몇 달 전에 일어났지만, 흑인들의분노에 기름을 부어 폭동 발생에 기여했다.
나는 두순자가 사회봉사 명령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난 것이 부끄럽다. 가게 직원들이 흑인이 물건을 훔칠것으로 생각해서 그들 뒤를 따라다니고, 개업한 동네에서 주민들과 더 열심히 교류하려고 애쓰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
한인 사회에 존재하는 흑인에 대한 반감이 부끄럽다. 바로 그래서 아시아인은 인종차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계속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피해와 가해라는 표현도 실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 P90

하지만 당시의 폭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진실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인종 간 주거분리의 역사, 제조업 일자리의 외주화, 연방 공적부조 제도의 폐지 등도 LA 폭동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도화선이 됐다. 그래서 언론이 흑인 분노의 원인으로 한국 상인들을 지목해 편리하게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보고 나는 화가 났다. 한국 상인들도 간신히 가난을 모면하는 수준으로 살았다. 흑인과 한국인사이에도 우정과 문화 교류가 존재했다. 한국 가게 직원들이 동네 사람들을 불러 불고기 파티도 했고, 흑인 단골들이 약탈범들이 오니 당장 피하라고 경고해 한국인들을 돕기도 했다. - P91

나는 마조히스트인 만큼이나 사디스트이고, 바로 그런 기질 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끌렸던 것이다. 이왕 무안해질 거라면 청중도 나 때문에 무안해하길 바랐고, 너무 무안한 나머지 피부를 찢고 튀어 나가고 싶을 정도였으면 했다. 인종에 관해 솔직하게 쓰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으나 그보다 더 원한 것은 안주하는 자들에게괴로움을 주는 것이었다. 부끄러워 움츠러들게 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내 정체가 안주하는 무리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형식 실험에서 실패만 거듭하고 인종에 관해 솔직하게 글 쓸 방법을 찾아내는 작업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 P92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 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겪은 민족에 속한다.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 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 (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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