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부채 문제가 여성에게 적용될 때는 성윤리의 문제로번역되면서 사회문제로 등장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이 같은지적에는 여성들의 채무자로서의 역할에 의존해 조직화되고 있는경제의 금융화라는 구조적 차원의 분석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현재 개인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경제적 합리성, 도덕의 원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역시 간과하고 있다. - P269

이들은 부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기획 속에서 기간을 한정하고 업소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먼저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서는 다양한 회사, 브로커들을 만나게 되고 또 다른 부채 전쟁이 시작된다. 또한 이들이 학자부채를 모두 상환하고 얼마간의 돈을 모아 성공적으로 성매매산업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대출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길수도 있고, 대출이 문제를 일으켜 다시 업소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P281

신용평점 모델 등 다양한 기법이 ‘신용 사회‘를 만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알려졌지만사실상 신용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었고, 그 결과 현대 사회는 신용 사회인지 탈신용 사회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탈)신용 사회는 결국 신용평점이 낮은 사람들에게 리스크를 부과한다는 명목으로 이자와 수수료를 과당 책정하고 이들의 삶 전체를 이윤의 원천으로 수탈하는, 합법적 약탈을 일삼는 곳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P291

포주와의 대면적 부채 관계에서 여성들은 성실하게 일하는 책임감 있는 모습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지만, 금융화된 성매매 산업 안에서 여성들은 책무성에 의거해 자신의 만기일을 계산하고 부채의 지불 약속을 유념하며 제한된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구체적인 액수의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책무성은 금융적 제도와 실천이 사회화되는 과정 속에서 채무 상환의 도덕률과 같은 도덕 담론과 결합한다. - P294

현재 한국 노동시장이 직면한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일단청년층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 여러연구와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2014년 대학졸업자 취업률이 IMF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보다 더 낮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대학졸업자는 쏟아지지만 취업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정혜진, 2015). 이런 배경에서 졸업을 유예하는 것이 대학졸업예정자들에게 하나의 상식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취업 이후 미래의 시간을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비용을 들여 현재 대학생으로서의 시간과 신분이 만료되는 시점을 유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 P298

여성들이 매춘 경제 속에서 매춘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 이는 아가씨가 되기 위한 비용으로 이 책에서는 이를 여성들의 "재여성화 전략이라고 정의한다(Hossfeld, 1991; Mohanty, 2012[2002]: 278에서 재인용). 대표적으로 출근을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을 받고, 옷(홀복)을 구입하거나 빌려 입는 비용이 이와 관련 있다. 나아가 여성들은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을 함으로써 자신의 몸 가치를 상승시키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외모 관리에 ‘투자’하는 비용을 여성들의 ‘원료 구입비’라고 본다. - P304

성매매 산업에서의 재여성화 전략은 업소 주변의 미용 · 의류상품 업체의 상품 판매 전략과 일치한다. 룸살롱 밀집 지역에 위치한 미용실, 의류 렌탈 업체에서는 이 업계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일단 다37른 이들과 외적으로 유사하여 "통과passing 하되, 거기에 더해 다른매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옷과 헤어, 메이크업에는 유행이란 것이 있고, 유행의 코드가 예쁘다‘라는 평가의 감각을 지배한다. 의류 렌탈 업체, 혹은 의류 제작 공장에서 제공하는 ‘유행‘의 범위 안에서 룸살롱 여성들의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 P308

여성들이 비용을 들여 연출해야 하는 여성성은 그들의 본래적여성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연적으로 배치되었다고 여겨지는 업소의 등급, 이 업소를 찾는 남성 손님의 취향과 요구에 따라 결정된다. 여성들의 소비는 특정한 경제적 장 안에 머물기 위해 요구되는 일종의 진입 비용이다. 이러한 진입 비용은 여성들이 각각의 장에서 남성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표지를 적절하게 선택해 체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업소와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초이스 가능한 여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연출 비용, 원료구입비를 투자하고 있다. - P315

최근 성형외과에서 ‘대외사업부‘ 혹은 ‘마케팅팀‘ 등 전담부서까지 두고 성형 브로커들과 거래를 한다는 사실이 이미 널리 보도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병원관계자들은 경찰에서 강남 지역에만 679곳의 성형외과가 난립하는 현실에서 그렇게라도 해서 환자를 유치해야 할 만큼 사정이 어려웠다고 진술한다(조동주, 2013). 기사에 따르면 경찰에 붙잡힌 브로커들은 지난 5개월간 유흥업소 종업원과 대학생 등 260명에게 성형수술을 알선해주고 수수료 7억 7000여만 원을 챙겼다고 한다. 이때 성형외과에 상담을 받으러 온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형수술부위를 추가하도록 권유한 뒤 대출업체를 소개해주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 P323

여성들의 다양한 대출 채권이 증권화되어 수익을 내는 상품으로 거래 가능한 상황에서 성형외과로부터 높은 수수료도 기대할수 있고, 여성들로부터 고리대 이자도 수취할 수 있는 성형 대출상품은 삼중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 된다. 신용의 확장을 통해 여성들은 모두 성형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는 과포화 상태에 이른 성형외과 시장을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한 명의 여성이 성형수술을 받으면 수많은 사람에게 각종 수수료를 통한이익이 발생하는 환경에서 여성들을 성형 시장으로 보내려는 힘은 점점 강해질 것이고, 성형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그만큼 증가할 것이며, 손님들의 시선에서 통과되어 초이스되기 원하는 여성들의 열망은 점점 더 실현되기 어려워질 것이다. - P327

여성들에 따른 차별적 가치가 전체 성매매 업소를 작동하는 원리가 되는 상황에서 많은 수수료와 이자를 지불하면서 부채를 차입해 자기 투자를 하는 일은 계속 일어나게 된다. 자기 투자는 자기 삶의 안전장치를 스스로 마련하라는 개별화된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것 같지만, 이는 채무자 전체의 삶에 대한 수탈을 통해 이 사회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구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매매 산업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자기 투자의 회로 속에서 실제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오직 매춘 여성뿐이다. - P328

후기 자본주의 성거래의 특징을 연구한 번스타인(2007)에 따르면 이 시기 성매매의 경제적 계약 관계는 감정적 진정성, "경계 지어진 진정성bounded authenticity"을 포함하는 특성이 있다고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도시 홍등가가 아니라 조용한 거주 지역의 이목을 끌지 않는 실내 사업으로 성거래의 새로운 시장이 재위치된 데서 찾는다. 그 결과 소비자로서의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점차 상업적으로 매개된 상호 인격적 관계가 주는 특별함, 쾌락, 감정적 얽매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 P333

결국 여성들은 이들의 섹슈얼리티가 매매되는 것이 전제인 의미망‘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그 의미망 안에서 남성들이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돈을 쓰게 하는 것이 여성들의역할이다. 남성 노동자의 임금은 성매매 산업을 돌고 있는 현금의유일한 원천이며, 이것이 성매매 산업의 확장된 신용을 재생산하도록 하는 유일한 경제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 P338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한국 사회 접대비의 규모는 9조 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룸살롱은 접대가 선물로 제공되는 장으로 남성들은 상대 남성에게 여성을 선물하며, 혹은 여성들에 의한 접대를 선물하며 유대를 공고히 한다. 여성들을 매개로 남성들의 공적 친교를 가능하도록 하는 ‘접대비는 남성들의 임금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남성들이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지위를 만들어내는 돈이다. - P342

금융화 국면에서 거대한 규모로 팽창한 성매매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유일한 현금은 ‘남자의 지갑에서 나와 여성의 몸 가치와 교환되고 있다. 이러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유통시키는 역할이 바로 성판매 여성들의 임무이며, 이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채권은 증권화되어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즉 성매매 산업은 여성의 몸 노동을 통해 이익을 거두는 동시에 ‘매춘 여성의 몸 노동을 강제하는 수단을 통해 또 다시 이익을 거둠으로써, 이전 시대와 비교해 여성들을 더욱 교묘하고 다층적으로 결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 P345

실제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정기적으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 이것은 성매매 종사자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신과 진료실이 성매매 산업에서 발생하는 어떤 문제들을 치료하는 하나의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신과 상담과 처방 약은 이들의 심신의 안정과 정서적 복지를 담당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들은 의료산업에서 제공하는 치유 상품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한다. - P355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수익을 계산해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시작한 이들에게 자유는 오직 성매매 산업을 중심으로 한 화폐 흐름의 연결망 안에 있어야 달성될 수 있는 자유다.
이들이 이처럼 ‘자유‘를 추구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성매매 산업 안에서 구속적 인물과 장치들이 보이지 않게 변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 P361

성매매 산업에서 발생하는 신용이 금융화된 사회적 관계와 질서를 보충하는 현실에서 성매매를 정의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들이 성노동자인가 성노예인가, 혹은 이들은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와 같은 정체성 정의를 넘어서 누가 이 시대 금융화의 수단으로 증권화되고 있는가라는 자본의 문제로 옮겨와야 한다.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며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자본은 자신의 몸을 담보로 사용하는 대가로 여성들에게 현재의 자유를 허락하지만, 동시에 여성들의 기대수익을 통해 그들의 미래를 포박하고 있다. - P368

여성들은 성경제sex economy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신용점수를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인격적 대면 관계를 활용하기도 한다. 금융이 제공한 신용을 관리하기 위해 오히려 높은 이자를 지불하더도 사채를 쓰는 것이다.이 시대 금융화된 성경제를 무리 없이 작동시키기 위해 여성들은 마치 과거처럼 친밀성의 경제intimate economy 영역에서의 자원을 도구로 동원하고 활용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동시에 노동이 없는 이들에게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신용의 확장이 이루어진 결과 몸이 재산인 채무자들은 자신의 몸값이 가장 높은 가격으로 빠르게 지급될 수 있는 시장을 찾아 떠돌게 된다. 신용의 민주화를 통해 확장된 신용은 신용불량자가 될 수는 없다는 공포를 통해 폐기될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되고, 그 몫은 담보물의 가격에 의존하게 된다. - P379

성매매 산업이 금융화되면서 산업 구성원에게 신용이 확장된 현실에서 파산은 여성에게 이 모든 현금 흐름을 멈추고 그 바깥에서 자유와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신이 획득한 기회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파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개인이 실제 파산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들이 놓인 구조적인 환경을 살펴보았을 때 이들은 파산불가능한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신용 사회를 재생산하기 위해, 또한 자신의 신용과 자유를 재생산하기 위해 지금의 현금 흐름을 계속 회전시켜야 한다. 이들에게 파산은 스스로의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추방되는 것이다. - P384

이들이 성매매에 참여하는 것을 노예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간주한다면 곤란하다. 이들은 모두 성매매를 하는 것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 P386

이런 배경 속에서 성매매 문제는 여성 개인을 ‘탈성매매 여성’으로 만들어냄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의 여성이 나간 자리는 현금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다른 여성의 성실한 몸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 금융화된 경제를 작동시키는 부채 관계를 통해 여성 일반을 끊임없이 부채의 회로 속으로 포섭하는 자본의 전략을 고려할 때, 구매자와 업주, 알선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만으로 성매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하고 협소한 생각이다. 누가 업주이고 알선자인지 구분하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노동 없는 여성들에게 신용이 부여되고 있는 현실 체제를 직면하지 않고 이들을 자발적 성노동 참여자라고 인식하며 성매매 문제에 대해 단순히 탈규제의 해법만을 내놓는 것도 여성들의 몸을 담보화해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부채 경제라는 동인을 간과하는 일이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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