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사회를 폭력조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넘어, 조직폭력배, 성매매 업소, 은행과 여성들 간에 형성된 부채 관계를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경제행위로 인정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매춘 여성들의 선불금 차용증이 시중 은행에서 대출의 근거, 위험 회피의 수단이 되는 현실은 이 시대 자본축적 방식이 여성들의 매춘화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 P154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공격을 통해 금융화는 다시금 가속화된다. 이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개인으로 비난받으며, 동시에 확대된 금융 서비스의 소비자로 거듭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향상할 것을 요구받는다. 여러 학자는 이러한 금융의 민주화, ‘자본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신용카드회사와 은행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 P157

새로운 자본축적의 회로 속에서 노동자, 빈민, 자영업자들은 모두 자산소유자로서, 때로는 "시민 투기자(Allon, 2010)이면서 동시에 채무자로서 금융화에 깊이 연루되고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사회의 가계부채 문제는 정부가 주도하는다양한 금융 대책, 채무자 구제 방침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된다. - P159

최근 성매매 산업을 중심으로 한 대출에서 여성들의 몸이 담보와 같은 것으로 계산되고 다양한 금융적 실천에 의해고착되는 역동의 전 과정을 여성 몸의 증권화 securitization 과정이고 정의한다. - P163

전체 생산활동 인구의 4% 수준인 100만여 명의 성매매 직간접 관련자 수입이 25%만 하락해도 GDP가 1% 하락한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성매매 경제 규모가 팽창한 한국 사회에서(임종석, 2004) 이러한 대출은 강남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실행 가능하다. 이러한 대출 사례로 미루어볼 때 유흥업소 특화대출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조건은 바로 여종업원, 혹은여종업원의 수라고 추측할 수 있다. - P170

현재 부채 경제의 국면에서 성매매를 통한 여성들의 미래 수익을 예측하고 여성들의 몸을 담보로 계산하는 과정은 시중은행에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대출의 근거로 간주된다. 매춘 여성의 몸이 만들어낼 미래 수익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여기 결합된 여성 몸 담보화는 합리적인 경제행위로 분류될 뿐만 아니라 사법적비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금융화된 경제에서의 여성 몸 담보화에는 이 같은 법적 장치 외에도 그것을 정당하고 합리적인 실천으로 만드는 다양한 장치와 테크놀로지가 연루되어 있다. - P173

채권자들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채권추심을 하는 이유는 차용증이 오직 부채를 상환받을 채권자의 권리만을 명시하는 증서이기때문이다. 채권채무 관계는 채권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 P177

성매매 집결지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면식 관계를맺고 있는 사채업자는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유흥업소 특화대출상품을 알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채권을 현금화하기 위해서 직접 채권을 저축은행이나 캐피탈회사에 팔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등록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로부터의 대출과 같은 비공식 경제 부문 역시 현재의 금융화된 공식 경제 영역에 일정 부분 연계·포섭되어 작동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P184

사채 문제 전문 활동가인 송태경)은 채무자의 삶을 보호하기위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는과도한 채권추심, 불법적’ 채권추심을 결정하는 경계 자체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채권채무 관계의 근본적 속성이 권력관계이기 때문이다. - P189

신용의 민주화를 가능하도록 만든 조건 중 하나인 채권추심이 성별에 따른 차이를 보인다면 신용의 민주화‘ 역시 젠더화되었음을 예상해볼 수 있다.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이 등장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다. - P191

금융 산업은 엄밀하고 과학적인 수식에 의해 움직이는 선진적인 산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금융화의 말단에서 이 구조를 지탱하는 것은 협박, 폭력, 뽑아 먹기기술 등 채무자의 삶 자체를 이윤의 원천으로 만들어내는 수탈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등장한 ‘기업형 조폭도 사실상 현재금융 경제 질서유지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부실채권도 합법적으로 현금화가 가능한 정상 채권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의 금융 경제 질서 아래서 채무 상환에 동원되는 폭력 역시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합법적인 원리로 자리매김하게된다. - P198

여성운동은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하고 실행하는 데 온 힘을 집결하면서 ‘포주, 성구매자, 성매매피해자‘ 등의 정체성에 근거한 운동에 천착했고, 그사이 법정에서 포주는 자신의 재산권을 보호받을권리가 있는 소유자 - 시민, 사업가로 정의되었다. 결국 새로운 법의야심찬 집행에도 성매매 업소는 세금 문제만 정직하게 해결하면합법적으로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전도유망한 사업이 되었다. - P205

차용증 ‘채권의 묶음’, 룸살롱에서의 ‘여성의 집결pooling’은 개별 여성들의 상품성 이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기법이 된다. 금융권은 이후 이러한 여성 채권의 묶음을 담보로 새로운 투자 상품을 창출해내고 업소는 미래 수익을 담보로 대출금을 얻어 대형업소를 창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매매 업소의 대형화는 여성 풀링 기법을 통해 여성의 몸을 증권화하는 테크놀로지의 조건이자 효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 P210

이제 더 이상 강남의 룸살롱은 단골 마담의 ‘놀러 오세요‘라는 전화 한 통으로 언제 한번 들러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다. 공장식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성매매 업소에서는 남성 구매자도 이곳의 규칙을 익히고 그것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고자 노력한다. 대형 업소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성매매 업소는 다양한 구성원의 분업을 통해 업소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에 몰두한다. - P214

다양한 종류의 성매매 업소 종사 경험이 있는 여성 중에 ‘텐프로 빼고 다 가봤다‘는 여성들을 만나는일은 어렵지 않다. ‘텐프로‘는 마치 결코 닿을 수 없는, 범접할 수없는 어떤 곳을 나타내는 대명사다. 그러므로 텐프로는 언제나 그보다 낮은 등급의 외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흥업소는 텐프로에서 노래방까지 각 분류의 업소들이 유기적인 관계를통해 서열화되고 군집을 형성한 채 표상된다. 또한 텐프로를 중심으로 한 업소의 서열화는 여성의 가치가 외모를 기준으로 서열화될 수 있다는 관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언제나 텐프로와 비교해서 부족분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유흥업소 종사 여성들의 외모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언제나 (실제 존재도 확인된 적 없는) 텐프로 여성이다. - P228

등급화야말로 성구매를 합리적인 소비 실천으로 만들어내는 원리이며, 나아가 성매매 산업의 신용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물신적믿음이다. - P233

성매매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지불 규모, 업소 위치, 접대 방식에 근거하여 적당한 등급의 업소를 선택하고 초이스‘, ‘뺀찌‘같이 선택의 합리성을 보충하는 장치들을 통해 성매매를 규칙에 의거한 게임과 같은 과정, 합리적 구매의 과정으로 집단적으로 내면화한다. - P237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특정 남초 사이트에서 룸살롱 후기 게시판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들은 유흥업소 포털 사이트에도 특정 업소, 특정 여성들의 가격과 서비스 만족도를 평가하는 글을 올리면서 성구매와 관련된 정보를 계속 생산하고 있다. 그렇게 정보망에 집적된 후기는 정보 검색자의 임금 수준, 소비 수준에 입각해 검토되고 선택되는데, 이를 통해 남성들은 합리적으로 성구매를 실천하는 소비자의지위를 점한다.
이러한 구매자 네트워크는 남성들의 새로운 성적 욕망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구매력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다시금 특화된 성매매 업종을 만들어낸다. - P245

현재 성매매 산업을 둘러싼 인터넷 환경은 성매매 업소 종사자 혹은 직접 후기를 생산해내는 구매자뿐 아니라 소설이나 에세이를 연재하고 친목을 다지는 광범위한 카페 회원을 넓게 포괄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또 성매매 산업은 이 광의의 구매자 네트워크를 활용하며 남성들의 새로운 성적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신종 상품 개발로 연결하기도 하면서 신용을 통해 확장한 규모를 확대재생산하고자 노력한다. - P248

그러나 현재 성매매 산업의 재구조화 속에서 ‘진상 손님‘, ‘변태 손님은 오히려 남성 손님의 보편적 형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남성들의 새로운 욕망이 개발되고 이것에 구매 합리성을 부여는 방식으로 업소가 분화한 결과, 구매자는 각 여성이 중급 업소 혹은 하급 업소에 속한 것이 이들의 외모에 따른 합리적 배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구매자에게 중·하급 업소의 여성들은그의 급에 맞는 합당한 서비스를 응당 제공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결국 최상급 업소를 기준으로 한 성매매 산업의 계층화 속에서 남성들은 ‘더욱 화끈하게 놀기 위해’ 혹은 ‘색다른 방식으로 놀기 위해’라는 ‘합리적’ 이유를 갖고 중·하급 업소를 찾게 된다. 동시에 여성 종사자들 역시 합리적 배치의 결과 이곳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응당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남성들의 구매 합리성을 내면화한다. - P250

중·하급 업소에서는 손쉽게 수용되기 힘든 남성 손님의 성적 판타지가 실천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서열화된 성매매 산업 구조 내에서 중·하급 업소의 역할은 공고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이가 아주 많은 여성이나 아주 체격이 큰여성, 혹은 아주 마른 여성, 때로는 트랜스젠더 여성, 장애 여성과같이 성매매 산업에서 흔하게 만나기 어려운 여성들의 시장이 존재하게 된다. - P253

성매매는 단순히 개별 남성과 개별 여성의 성적 실천, 성적 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자로 동질화된 남성이 차별적이고 위계화된 가치를 가진 여성 개인과 이들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공정 가격으로구매하는 관념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 산업이 그 규모와신용을 유지·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성구매의 합리성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 P255

성산업 종사 여성들은 몇 차례의 이동을 통해 자신들의 몸 가치와 자신에게 ‘적합한 업소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어떤 업소가적합하다는 판단은 전적으로 여성들이 업소에서 안정적으로 거두어들이는 수입에 의거한다. 안정적인 수입은 과거의 수입과 비교해특별히 감소하지 않은 수입을 의미하며, 자신의 생활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하기도 하고, 자신이 목표로 한 수입을 의미하기도 한다. - P257

여성들은 자신의 몸 가치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수입 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등급화된 성매매 산업의 스펙트럼안에서 자신에게 최대의 수입을 보장해줄 수 있는 최적의 업소를찾아낸다. 업소 이동에는 업소의 등급을 넘나드는 이동도 포함된다. 각 업소에서의 수입은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업소의등급에 따른 수입 차이는 자신의 외모 조건의 부족분을 내면화하는 선에서 더욱 허용적이고 추가적인 서비스를 통해 메우기 때문에 여성들의 수입은 대체로 일정해진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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