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대부분의 이론은 ‘유럽 중심적’이었지만 최소한 메인, 뒤르켐, 베버의 이론에는 비유럽 지역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원칙적으로 비유럽 문명세계의 후발민족은 피부색과 신앙에 관계없이 사회진보의 보편적 모형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 P1991
초기의 상황이 지역마다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등급에서 계급으로’의 모형은 유럽사회의 변화를 불완전하게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19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등급’은 모든 유럽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주요 구분원칙은 아니었다. 1800년 무렵 ‘등급사회’는 세계 기타 지역에서는 흔치 않았다. - P1993
족내혼, 기생계층, 정결금기를 기반으로 한 힌두교 카스트제도는 전 현대사회의 인도에서의 등급 구분에서 유럽의 전통적 계층사회와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 규칙을 식민주의가 자기목적에 맞게 강화했다. - P1994
19세기의 세계사회사는 대부분 이민사와 중복되며 디아스포라와 그 결과로서 형성된 새로운 프런티어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1995
가톨릭 고위 성직자나 유대인 거물 금융가를 제외한다면 19세기의 귀족은 유럽사회에서 가장 국제화된 집단이었다. 그들은 서로 알고 있었고, 서로의 등급을 평가할 수 있었다. 행동규범과 문화적 이상을 공유하고 있었고, 필요할 때는 프랑스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또한, 국제 혼인시장에 참여했다. 등급이 높을수록 재산이 많았고 국제적인 교제 네트워크에 접촉하는 면도 넓었다. - P1999
빅토리아시대에 궁정귀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몇몇 사회영역에서 지도자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반대급부로서 사람들의 감사와 복종을 누렸다. - P2003
벵골과 인도의 기타 지역에서 20세기 초에 농촌의 주도 계층이 된 집단은 자민다르가 아니라 토지를 소유한 중간 규모의 농민이었다. - P2007
1869년 이후 일본은 단계적으로 사무라이 신분을 폐지했다. 가장 치명적인 경제적 타격은 연봉제도의 폐지였고 가장 심각한 신분적 굴욕은 1876년에 시행된 칼을 찰 수 있는 특권의 폐지였다. 이제 사무라이는 개별적으로 활로를 찾아나서야 했다. - P2009
신사는 통치자와의 접근성, 국가를 유지하는 역할, 고전에 통달한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귀족과 유사했다. 이 밖에도 두 가지 공통요소는 토지에 대한 통제권과 육체노동으로부터의 이탈이었다. 여러 면에서 신사의 기능은 유럽 귀족과 대응했다. - P2014
‘부르주아계층’이란 개념의 기만성은 부르주아계층의 생활방식에서 나왔다. 부르주아는 (계층)’상승’을 추구하면서 그 반대의 경우를 가장 두려워한다. 귀족은 몰락해도 귀족이지만 몰락한 부르주아는 사회적 지위를 완전히 상실한 낙오자일 뿐이다. - P2018
프티 부르주아는 19세기에 예외적으로 지역화된 존재였다. 그들의 경제활동 반경은 상시 접촉하는 이웃의 범위를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 P2022
진정한 부르주아는 프티 부르주아보다 사고의 지평이 넓고 자본을 소유하고 있으며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 P2024
농업과 전원생활과 정통문화보다는 상업이나 비정통적 지식과 관련된, 나아가 시야가 ‘교회의 첨탑’을 넘어서는 직업과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지난 어떤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중요해졌다. 이런 직업, 생활방식, 사고방식의 주체는 흔히 전통을 버린 새로운 형태의 사회세력, 준 부르주아였다. - P2029
유럽과의 상업적 접촉이 시작되면서부터 비유럽 준 부르주아는 중간에서 거래를 알선해주는 ‘매판’의 기능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현지 교역 네트워크와 접촉하는 경험을 넓히고 이 네트워크를 세계경제와 연결시켰다. - P2032
세계 어디에서나 ‘중산계급’은 현대적이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19세기 말에 드러난 현대성은 아시아의 준 부르주아 계급 엘리트에게는 양날의 칼과 같은 선물이었다. 현대성은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문화 중립적이고 초국가적이어야 했다. - P2036
캐나다와 뉴질랜드 같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유럽사회는 식민지에서 파편화되고 균열된 상태로 복제되었다. - P2041
19세기의 새로운 사건은 새로운 코스모폴리탄 부르주아계급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방의 부유한 국가에서 원거리 자본이익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집단이 형성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부르주아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실패한 유토피아가 등장했다. - P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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