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너나 할 수 있다 - 하버드로 간 미스코리아 금나나
금나나 지음 / 김영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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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나의 인터뷰를 본 것은  TV 채널을 돌리던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녀의 당당한 자신감(솔직히 꽃미녀라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과 비범한 말솜씨, 그리고 사투리가 적당히 나오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던 부분에서 좋은 인상이 남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내가 그 인터뷰를 봤을 때는 그녀의 책은 초판 인쇄를 마치고, 그녀는 하버드 행 비행기표를 구해서 곧 떠날 채비를 할 때 였을 것이다. 난 이런 자전류의 책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생각에 감탄하기도 하고,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저자를 좋아하게 된다. 금나나와 내가 같은 점이 있다면 여자라는 것 뿐........ 

 그 외는 정 반대다. 건강한 체력, 휜칠한 키, 명석한 두뇌, 꿈에 대한 도전과 노력 

예전 같았았으면 바로 세상 비관할만도 한데 이젠 같은 또래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같이 웃어줄만큼 내공이 쌓였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중이다. 그리고 참 멋있다는생각도 같이 해 보게 된다. 수학적인 내용이나 외국유학을 준비하는 부분, 공부법은 중간에 읽지 않아서 '다 읽은 목록(책의 중요 본문을 읽지 않으면 다 읽었다고 하지 않는다. 읽다가 만 책으로 분류되어 버린다.) '에 들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특히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하버드 졸업식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보다 "나나 너나 할 수 있다"가 더 와닿는 것 같다. 같은 또래여서 그런가? 아니면 나도 치열하게 봐야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인가?

최근에 중간고사 친다고 치열하게도 살아 봤다. 그런데 끝 맺음을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정확하게는 못한 것이 아니라 않했다는 것에 더 부아가 치민다. 오늘와서 보니까 별것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버렸을 까? (마지막 날 친 것 은 그럭저럭 만족하나, 다른 과목에서 안좋은 추억을 또 만들게 생겼다.) 나나를 통해 다시 한번 치열하고 하는 나의 의지를 불태운다. 쓰러지더라도 끝까지 한번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실제로 나나가 열심히 살았을 시절 나는 나나와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없다. 좋은 성적을 받고는 싶었지만, 확 와닿지는 않아서 상위권의 겉만 맴돌던 아이었다. 그때 나도 나나처럼 생각하고 공부했다면 좀더 인정받고 풍요롭게 살지 않았을까? 지금도 만족하고는 있지만 나나의 어린 시절처럼 치열하게 자기관리를 해본 적이 없어 씁쓸하다. 그것이 1등에 대한 강박증이라고 해도 준비도, 생각도 없이 살았던 나보다는 나은 것 같다. 어릴때 부터 그녀의 꿈은 외과의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더 준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나가 학업 과부담 우울증이 었다면 나는 그냥 아무의욕과 목표도 없는 허무적 우울증이었다. 내가 나나와 같은 나이때 쯤, 표면적으로 내세운 꿈은 교사었다.그냥 교사.  

(중학생 때 법대, 의대야 원래 최상위급 아이들만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고자 했던 교육학과나, 교대는 그냥 어느 정도의 수준만 유지하면 누구나 들어보내주는 대학인 줄 알았다. 순진하게 그렇게 믿고 중학교를 마쳤다. 고등학교때 알았던 사실인데, 정말로 교사가 되고 싶었던 친구들은 이미 중학교때 부터 교사가 되기 위한 계획과 생각, 그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었던 친구들이었다.) 훌륭하고 존경받는 교사도 아니다. 그냥 교사 ....왜냐면 내가 정한 꿈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교사를 부르짓는 부모님조차 존경하는 스승님이 한 분도 없었다. 오히려 수업시간이 힘들었다. 수업시간에 잤다. 시간만 떼우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공부가 힘이 들었다는 고백에 어쳐구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공부는 힘들기도 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보여주신 태도는 교사에 대한 존경보다는 적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 중 특히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던 비관적인 것을 먼저 본다. 노심초사의 걱정이 아니라, 비관적인 시선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는 것같다. '그런 것도 못하고 꼭 문제터지만 남 원망이나 하고 말이야' 아빠가 자주 하는 말이다.) 사명을 갖고 일하기 보다는 안전한 월급을 믿고 딸에게 세뇌시킨 그 계획은 내가 2002 수능을 치면서 완전히 수포로 되었다.  나나가 어린 유학생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는 '사실 지금의 모습이 자신이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울었던 내용이 나온다. 그녀는 그 것을 계기로 유학을 결심한다.

 나도 지금 다른 동료 친구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나나처럼 결의의 찬 울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참함에 울컥 쏟아져 나오는 vomiting(구토)이다. 게워낸 것들에서 나오는  위산 냄새가 내 눈을 시끔하게 자극할 뿐이다. 나도 나나처럼 그런 눈물을 쏟아보고 싶다. 이제야 스물스물 하고 싶은 것이 정해졌다. 중 고등학교때 처럼 혼자서 늦게 꿈을 설계하고, 어짜피 먼저 출발한 사람의 것인 기회에 허겁지겁 숨만 닳도록 뛰어가는 헛수고를 하는 것은 아닌지....

 사실 고등학교때 먼저 출발한 사람의 것이라고 난 뛰지도 않았다. 정확한 표현으로 그때는 계획을 설계했던 기억조차 없다. 여전히 남의 설계를 어슬프게 따라 흉내내어 보았을 뿐이다. 그때는 이렇게 날 흥분시키게 하는 인생의 계획이 없었으니까 용서한다. 지금은 계획이 생겼으니 힘껏 뛰어볼 것이다. 골인지점에 늦더라도, 달리다 넘어지더라도. 책 내용중에 한 소절-------아마 나나가 지칠 때 생각하곤하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나도 지칠때 이문장을 인용하고 싶어지거든.

 100미터 달리기를 날마다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칼 루이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진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속 노력하다보면, 어느 덧 칼 루이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를 거의 따라잡을 듯한 속도로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노력의 묘미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지금보다는 나이진다. 사실, 이보다 확실하게 용기를 주는 결과가 어디 있을까

   나나의 유학길에 큰 지침을 준 선생님의 에필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게 된다. 할 수 있으니까 하게 된다.  3시간만 자고 시험기간에 공부에 전력을 쏟는, 나는 그런 것이 두렵던데 그녀는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든지 또할 각오가 되어 있는 듯하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민사고 꼴지에서 아이비리그 합격통지를 무더기로 받은 그 소녀도 그랬다. 시험기간에 시험점수를 위해 3시간만 자면서도(그 소녀는 나나보다 훨씬 체력이 떨어졌다. 운동도 내신을 위해 억지로 연습했다고 한다.), 체력이 바닥남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하는, 그리고 다음 시험기간에도 또 똑같이 그 일을 하는.........의지와 목표를 향한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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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2-30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보다 리뷰가 몇배 더 훌륭하옵니다. 그래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