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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심리백서
사라카와 도코. 야마다 마사히로 지음, 나일등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 순례를 하다가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를 보게 되었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를 썼던 남인숙씨의 책인데,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같은 여자가 읽어도 놀라고, 조심스러운 내용이었다. 남성 독자들에겐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지만, 여성독자로썬 감사하다. 자신의 욕구와 속물스러움을 마주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 결혼에 관심이 생겨 그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 최근 <결혼심리백서>를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신선하고 재미있다. 이런 책 오랜만인 것 같다. 연인들의 환상이라던가, 로맨스에 관한 부분은 뒤로 빼놓고 ‘결혼활동’에 대해서만 써놓았는데, 읽어 볼만하다. 결혼을 앞둔 사람이나, 적령기 남녀에게는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더불어 나와 함께 늙어가는 내 주변 지인들에게도 추천해주겠다.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든, 선택이라고 생각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만 왜 자유가 됐는지 인지할 기회는 필요하다.
첫째는 자유연애시장은 80년대 이후 갑자기 서양문화가 급속하게 퍼지고 문호가 전면 개방되면서 시작되었다. 실제로는 연애가 대단히 서투름에도 불구하고 연애시장은 덜컥 개방되어 버렸고, 아무런 준비 없이 변화를 맞아 현재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현대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자들은 여성의 자아실현을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며 자란 세대다.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받았고 회사에서도 차별 없이 일 한 첫 세대이다. 하지만 실제 사회생활을 해보니 생각만큼 멋지지도 않고 힘겹다. 경기 침체와 불황에 시달려야 했고 ‘사회적 자리매김’이라는 소박한 자아실현욕구를 채우려던 사이에 좋은 남자들은 다 떠났다. ‘결혼을 통해 생계를 해결 하겠다.’며 목숨을 걸로 결혼에 임하는 여성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
둘째, 사회는 빠르게 변하지만 가정에 대한 가치관은 느리게 변한다. 많은 수의 여성들이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가정경제는 남자 쪽에서 해결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결혼 초기에는 아내도 일을 하기 때문에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만 막상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시작하게 되면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다. 결국 끊긴 자신의 수입만큼 남편이 더 벌어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가끔 신문에 등장하는 고소득 남편감, ‘연봉 2배의 법칙’이 생기는 것이다. 여자들은 자기보다 더 나은 수준의 남자, 즉 상승형 결혼을 꿈꾼다. 그런데 잘 나가는 남성일수록 기본적으로 자신을 뒷바라지해 줄 수 있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원한다. 이런 남자들은 자신의 수입이 높기 때문에 결혼할 때 여성의 능력이나 수입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때문에 마음에 맞는 의존형 여성을 만나면 곧 결혼하고 미련 없이 결혼시장을 떠난다.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 남자들이 여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정서적 측면은 달라진 게 없다. 남성들은 아직도 집에 돌아왔을 때 저녁 밥상이 차려져 있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육아를 돕기는 하겠지만 역시 아이에게는 엄마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살림과 육아를 여성의 일로 넘기는 것이다. 경제적 책임은 같이 지자고 하면서!
셋째, 언제부턴가 남성들의 마음이 유리잔처럼 섬세하고 연약한 상태가 됐다. 연애 공포증에 걸린 듯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상처 받을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동영상이나 인터넷 사진과 같은 ‘2차원 속 여성’으로 만족해버리는 경향이 생겼다. 여기엔 여자 형제가 없고 학교와 직장에서도 또래여성을 접할 기회가 없는 남성들이 대다수 포함된다. 여성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여성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남성을 접하지 못하더라도 선천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다양한 모임을 통해 남자를 만날 기회가 많다. 하지만 남자는 아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여성과 차단되면 별 문제없는 능력남도 여자 만나기를 어려워한다. 여기엔 연애만 오래하는 남성들의 ‘책임지고 싶지 않은’심리도 포함된다.
예전엔 남자 직장이 좋다고 결혼을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평생고용도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여자도 직장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개인 능력에 따른 연봉제로 인해 남성들 간의 경제적 매력도는 격차가 점점 커진다. 한마디로 있는 놈한테만 몰리는 수급 불균형이 생기는 것이다. 또 남녀 모두 각자의 개성이나 취향을 우선하기 때문에 많은 협의가 필요하다. 남편이 수집한 장난감을 진열해 놓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면 그 옆에는 아내가 모으는 접시 놓을 공간도 필요한 것이다. 또, 결혼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역할 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결혼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라고 살뜰히 조언한다. 결혼 정보업체를 이용도 해보고, 이성이 많은 곳으로 가라고 말한다. 없으면 이성모임을 조직해서라도 만들라고 한다. 결혼에 정답은 없지만, 여성은 진심으로 스스로를 위한 직업을 가지고 소득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남성은 가사와 육아를 ‘돕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하라고 한다. 그리고 고급와인에 박식한 남자보다 매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도 있는데 글로벌 결혼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다. 프랑스인과 결혼한 경우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서로의 생활비는 각자가 벌어서 쓰자”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놀란다고 한다. 영국인 변호사와 결혼해 전업주부를 하고 있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가, 영국으로 건너 간 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당신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란다.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변호사 남편을 둘 아내가 전업주부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영국의 인텔리 층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국제결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알려주는 책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결혼을 한 작가들도 많으니 한 번 찾아봐야겠다.
프로이드가 말했다. 사람이 인생에서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일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라고. 취업을 위해서는 밤새서 공부하고 타국에 어학연수도 불사르지만 결혼에 대해선 어떤가.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말이다. 때가 되면 한다는 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고, 정혼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너무 많은 자유와 선택의 기회가 오히려 결혼을 힘들게 하고 있다. 결혼하고 싶다면 여자의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남자의 머릿속으로 연수를 다녀오자.
책의 말미에 ‘신랑학교’의 강연자가 이런 말을 한다.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이입니다. 40을 넘겨버리면 더 이상 희망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서 결정하십시오. 이대로 독거노인이 될 것입니까!” (p.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