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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평점 :
내가 요즘 많이 바쁘다. 리뷰 써주고 싶은 책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어서 쓰지를 못하고 있다. <자정의 픽션>도 몇 주 전에 다 읽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지금 리뷰를 쓴다. 병원평가 과제 때문에 바쁘긴 하지만, 그를 위하여 특별히 모니터를 켰다.
<자정의 픽션>은 여덟 개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이다. 여덟 작품 모두 만만치 않은 구라 모음들이다. <논쟁의 기술>은 말솜씨를 가지고 싶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냉탕에 있는 느낌이었다. 발끝부터 빗장뼈까지 냉탕에 담구고 칼날 같은 시원함과 사디즘적 쾌락을 동시에 느낀다고 할까. 살해를 저지르는 결말에서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일면 이해도 갔다. 최근에 다시, 말의 퍼포먼스에 대해 생각할 일이 생긴 탓이리.
<날개>는 170년 뒤에 일어나는 미래의 이야기다. 그 미래의 등장인물들은 사실 화자의 주변사람들이다. 그들을 비틀고, 축하해주는 내용이 어찌나 웃긴지.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도 기가 막히고, <두유전쟁>도 이런 걸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지 배꼽을 잃게 했다. <노란육교>, <물속의 아이>, <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진실의 방으로>도 섬뜩하면서 재밌는 글들이다.
책을 다 읽고, 김형중의 평론을 읽는데 그 역시도 박형서였다. 가금류의 뇌를 가졌거나 흑사병 수준의 문장력을 가진 다른 평론가들과는 달리 김형중은 <자정의 픽션>을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자정의 픽션>을 덮자 전에 썼던 리뷰하나가 떠올랐다. 제목은 서평 일러두기이며, ‘난 서평 못 쓰는 사람이다.’를 시작으로 한 서평고해가 그 것이다. 난잡, 경박, 자기애와 자기연민이 가득 찬 낙서다. 한마디로 괴짜들이나 쓸 수 있는 서평을 빙자한 낯짝 상실, 어이 상실, 안면 찾기 퍼즐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괴짜 글을 쓰게 되었을까. 문장을 경배하며, 시어를 존경하는 문학소녀인 내가 말이다. 평소엔 조심스럽고, 낯가림도 심하면서 글에선 왜 이다지도 껄렁해지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들 밖에 없다. 현욱, 기호, 종광, 명관, 언수, 민규 등 한국 신예작가 놈들. 어려운 시기에 소설가로 살아보겠다던 그들을 어여삐 여겼다. 신간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사보고, 칭찬해주고, 귀여워해주다 그만 물려 버린 것이다. 난 광견 바이러스에 전염된 광견병 환자가 되어있었다. 독자도 감염시키는 배은망덕한 놈들 같으니라고.
이런 후레자식 명단에 박형서도 끼워 넣으련다. 형서야. 밥 먹을 시간이다.
ps. 전에도 말했지만, 내 서평에는 책 내용보다 사설이 더 많소. 혹 이글을 읽는 그대, 책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거든 다른 사람 것을 읽으시오. 하지만 땡스투는 내 걸로 눌러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