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걸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로서 오쿠다 히데오 책을 다 읽게 되었다. 야하다던 <라라피포>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면장선거>까지 다 챙겼었는데, 이 책 <걸>을 빼먹고 있었다. <라라피포>의 막장인생까지도 냉소하지 않는 그의 따뜻한 시선을 좋아한다. 그는 당황스럽고, 억지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생각할 거리 숨겨놓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의 뻔하고 뻔뻔한 엔딩을 나는 좋아한다.
<걸>은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모두 서른을 넘긴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첫 단편인 <띠동갑>은 서른네 살의 요코가 신타로라는 띠동갑 신입사원을 지도사원으로 맞으면서 겪는 이야기 이다. 신타로에게 접근하는 여자 후배들을 질투하는 주 내용인데, 더 이상 젊은 여성은 아니라는 자책과 함께 쏟아내는 요코의 독백이 솔직하다 못해 눈물겹다. 그리고 친구의 권유로 나가게 되는 사교모임에서 그녀가 들게 되는 말은 이거다. "자기는 분명히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구실과 지금 이 상태로는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마음이 우리를 미팅 자리로 내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p.62) 책에서는 모라토리엄(지불불능 상태, 사회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결국 요코는 모라토리엄을 해지한다. 사교모임에서 만난 남자의 데이트 신청이 온 것이다. 그에 대해, 요코는 가주기로 했다(p.73)고 쓴다. 마지막 문장의 기막힘이란! 히데오는 여자를 알고 있다.
처음 <히로>라는 제목을 봤을 때, 히어로 Hero를 제목으로 쓴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공 세이코의 남편, 히로키를 지칭하는 말임을 곧 깨달았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인 세이코는 회사에서 관리자로 진급하게 된다. 그녀는 민주적 리더십으로 팀을 끌어가려 하는데 나이많은 부하직원 때문에 골탕을 먹게 된다. 전형적인 가부장에 인맥주의자이기에, 세이코와는 애초에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세이코에게는 일 욕심은 덜한 오디오 마니아 히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그 부하직원을 굴복시키는데 그 방법이 꽤 통쾌하다.) 세이코는 남편에게 양가감점을 느끼면서도 결국 인정하게 되는데, 난 그 남편이 제일 큰 승리자란 생각이 든다. 무심한 듯, 부드러운 조언으로 세이코를 다시 직장으로 뛰어들 힘을 주기 때문이다. 진정한 Hero는 그 부하 직원처럼 가부장적이고 꽉 닫힌 자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즐기며 주변인을 부드럽게 바라 볼 수 있는 자인 것 같다. 덤으로 그는 아내의 높은 수입 덕에 자기가 좋아하는 오디오에 더욱 집중 할 수도 있게 되지 않겠는가.
<걸>은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걸’스러워도 되는 시기가 있고, 자제해야 하는 시기가 있지만 마음엔 늘 ‘걸’이 살고 있다는 내용이 주다. 주인공 유키코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원색 옷도 과감히 입는 선배, 같이 소심해져가는 친구, 그와는 대조적인 백화점 담당자가 나온다. 마지막 상황에서 히데오의 뻔한 무대가 등장하는데, 백화점 직원이 그 무대를 걷는다. 뻔한 결론도 좋다. 히데오식 결론은 나를 편안케 한다.
이 외에도 순차적으로 <아파트>, <워킹맘> 단편들이 나오는데 결론은 밝지만, 과정은 편안하지 않다. 가볍게 썼지만 가볍게 다가오질 않는다. 노처녀 여성이 직장에 대해 가지는 의미와 싱글 맘의 직장생활 분투기가 나오는데 왜 이리 가슴이 먹먹해 질까. 특히 <아파트>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