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 사진과 카메라 개화기 조선에 몰아닥친 신문물 이야기 1
서지원 지음, 조현숙 그림 / 꿈꾸는사람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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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전화의 보급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요즘은 사진과 카메라가 "일상생활"이다. 특별한 일을 기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진을 찍던 때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닌데 말이다. 온갖 걸 다 찍어댈 뿐만 아니라 쉽게 찍고 쉽게 없앨 수 있는 사진. 지금은 그렇다. 사진 찍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할 것 없는, 오히려 함부로 찍어대는 사진 때문에 초상권 침해나 사생활 유출이 염려스러운 때다.

 

   "사진 찍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뭐 이런 시대착오적인 제목의 책이 다 있나(!) 싶었다. 이 책은 "개화기 조선에 몰아닥친 신문물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꿈꾸는 사람들"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책의 첫번째 책이다. 독특한 제목도 흥미를 끌었지만 개화기의 조선에 새로운 서양의 문물이 처음 들어왔을 때 그것들을 낯설어했을 혹은 신기해했을, 때로는 거부감을 가지기도 했을 당시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아 무척 기다려지기도 한 책이다. 책 뒷날개에 실린 이 시리즈의 제목들 대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배어난다. 근대의학과 병원을 다룬 2권의 제목은 "우두를 맞으면 소처럼 변한다고?"이고 전기와 전구를 다룬 3권의 제목은 "마귀가 건청궁에 불을 밝혔구먼!"이다. 재미있는 제목 때문에라도 펼쳐보고 싶은 책일 것 같다.

 

  이 책 [사진 찍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는 1883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촬영국"을 세웠던 황철을 중심으로, 개화기의 사진과 관련한 사건들을 동화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황철"이라는 이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봤다. 황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 사진을 처음으로 들여왔다고 할 수 있는 이들 김규진, 김용원, 지운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황철이지만, 이 책의 화자는 가상의 인물인 길삼식이라는 소년이다. 삼식이는 할아버지의 놀음과 지주의 횡포로 집안이 기울어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한양을 떠도는 거지가 된 녀석이다. 그러니까 그 즈음의 하층민을 대표할만한 소년이랄까.. 글쓴이는 "나는 이 책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머리글 中)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진기가 들어왔을 때 "보통 사람들"의 반응과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마법상자"라고 불린 사진기. "마법상자에 그림자만 잡혀도 그 사람은 일 년 안에 죽고, 집을 비추면 그 집안은 일년 안에 망하고, 나무를 비추면 일년 안에 시들어 바짝 말라 죽는다는"(p31) 그 무시무시한 물건은 아이들을 삶아서 가루로 만들어 넣어서 만든단다. 당시 사진기에 대한 공포(?!)의 정도를 짐작케한다. 그러나 그 사진기가 사람을 죽게 하는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사람을 죽여서 만든 가루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들.. 초기 개화파에 대한 반발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사진에 대한 공포감이 점차 묽어져가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말미에는 "황철의 사진학교"라는 장을 마련해 "사진의 역사", "최초의 사진사들", "황실의 사진 촬영", "우리 조상들의 얼굴"이라는 주제로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겐 전혀 공포스럽지도 신기하지도 않은 일상이 되어버린 사진이지만,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사진이 들어왔던 때의 재미있는 사연들이 소개된 책이다. 개화기의 신문물을 통해 당시 민중들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 있는 교육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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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 되돌아보고 나를 찾다
김용택.박완서.이순원 외 지음 / 더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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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는 사람들의 반성문을 읽다..

어느새 12월이라는 말만큼 식상한 표현이 또 있겠냐만은, 것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기에 쓴다. 어느 새 12월이다. 벌써... 이왕 식상하게 쓰는 것 좀더 식상하게 써 보자면.. 그렇다. 뭐 이렇다 할만하게 해 놓은 일은 하나도 없는데, 하릴없이 나이만 또 한살 느는 게 부담스러운 12월이다. 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해마다 그렇건만 올해는 더 그렇다. 한번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차분히 계획할 수 있는", 그런 다소 뻔한 일이 필요한 시점 12월.

 

  다소 뻔한 제목의 책을 한 권 읽었다. [반성]. 2010년 12월 1일이라는 다소 뻔한 시점에, 다소 뻔한 제목으로 1판 1쇄를 발행한 책 [반성]. 다른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어떤 "반성"을 할까 궁금해서 펴든 책이다. 이렇게 "뻔하다"는 말을 자주 써서 책을 만든 사람들을 식상한 사람들로 평가절하하고픈 결심 따위는 하지 않았음은 밝혀두어야 오해를 사지 않을 것 같다. 책을 펴든 시점의 내 기분이 그랬다는 것일 뿐. [반성]이라는 시의적절한 제목에 끌렸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을 펴든 결정적인 이유는, "김용택, 박완서, 안도현, 이순원 외 지음"이라는 글쓴이들의 이름값 때문이다. 이렇게 유명하신 분들의 글을 한 권의 책에서 한꺼번에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그간 나의 얄팍한 독서이력에서나마 감동을 준 글들을 쓰신 분들의 이름이었으므로....

 

   헝클어진 머리, 아마도 예닐곱살 정도로 짐작되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의 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배가 지나온 자리에 일고 있는 파문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표지의 흑백사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은.. 20명의 글쓴이들이 쓴 반성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반성문이래서 이 분들이 뭘 잘못해서 쓴 것이라기보다는 마음 속에 "짐"으로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반성"과 지난 삶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야할까나... 한 권의 책으로 묶여있을 뿐, 살아온 내력도 다르고 반성의 주제도 다르지만, 책 표지 속의 물결마냥 잔잔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라는 생각, 책을 덮으면서 했다.

 

   남의 반성문을 읽으면서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글을 읽으면서 자주, "아, 맞아. 나도 이랬어."하며 나를 뒤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족이기 때문일까. 이 책에 실린 글 중 상당부분은 가족에게 상처준 것에 대한 반성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준 상처. 나 역시 부모님께 잘못한 일이 많았지만, 그 잘못을 잘못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 많다는 것, 새삼스레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해 놓은 것 없이 맞이하는 12월에 대한, 그러니까 내 생활에 대한 반성도 해 보게 된다.  

 

   어쩜 반성문조차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감가는 글들이 많았고, 이름난 문인들의 글이라 그런지 짧은 글에서 삶의 깊이가 배어나는 듯했다. 마음 한켠에 돌멩이를 던진 듯  내 마음 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어떻게 살아야 나중에 덜 후회하게 될 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 일기를 쓰며 잘한 일 못한 일을 매일 돌아보던 때처럼, 그렇게 짧은 간격으로 내 삶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작은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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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을까? - 아르키다모스 vs 페리클레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6
육혜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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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남들 읽는, 평균 정도치의 책은 읽는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게 늘 후회스럽다. 내가 세상을 보고 사고하는 폭이 좁은 이유가 순전히, 어려서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땐 그 후회스러움이 배가 된다. 이런 책들을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때늦은 아쉬움 때문일까...
 

  이번에 읽은 책은 자음과 모음에서 시리즈물로 출간하고 있는 역사공화국 법정 시리즈 중에서, 세계사법정의 여섯번째 책 [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을까? / 아르키다모스 VS 페리클레스]이다. 예전에 tv에서  역사상의 라이벌을  가상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소개하는 역사프로그램을 즐겨본 기억이 있다. 가끔 공개된 역사수업에서 모의재판이나 가상극화형식의 토론을 본 기억도 있고.. 역사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당시 인물의 입장이 되어 역사적인 상황을 이해해보는 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한 권밖에는 못 읽어봤지만 이 시리즈물이 청소년들에게는 꽤나 재미있게 역사를 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해주는 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졌을까"라는 제목으로 스파르타의 국왕이었던 아르키다모스가 아테네의 정치인이었던 페리클레스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졌다는 사실보다 이 책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우리가 스파르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개선이다. 그러니까 아르키다모스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조국 스파르타의 진정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p14), "스파르타식 완벽학습"등의 "혹독한 군대식 교육으로 악명을 떨친 나라로만 기억하고 있"(p15)는 것이다. 스파르타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반면 아테네에 대해서는 현대민주정치의 표본으로 이상화해서 생각하고 있으나 아르키다모스에 의하면 그것은 두 폴리스에 대한 왜곡된 이해일 뿐이라는 것. 3차례에 걸친 재판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까지가 실감나게 소개되고 있다. "재판 첫째날"에는 두 폴리스가 속했던 당시의 그리스에 대한 소개와 아네테와 스파르타라는 폴리스에 대한 설명, 그리고 두 폴리스의 정치체제였던 민주정과 과두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재판 둘째날"에서는 페르시아전쟁 후 그리스의 패권을 장악했던 아테네가 델로스동맹의 맹주로 떠오른 이야기,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에 대한 양측의 공방이 이어진다. "재판 세째날"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하게 된 과정과 이유, 그리고 이후의 그리스 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가 소개되고 있다. 재판의 과정에서는 크세노폰, 솔론, 플루타르코스, 니키아스, 알키비아데스, 리쿠르고스, 리산드로스 등의 증인이 등장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한다.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어 좋았다. 각주를 통해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설명은 역사적 상황을 수월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요소였다. "교과서에는"이란 코너를 통해 교과서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역사이해의 관점과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상황을 비교해보게 함으로써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실제인물의 입장이 되어 역사를 이해해보는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어렸을 때 이런 책을 많이 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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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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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소설책을 한 권 읽었다. 아....! 내 입에서 절로 나오는 이 탄성을 뭐라고 표현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답답했다. 아팠다. 울컥했다. 짠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더군다나 이 놀라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니...!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Room]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5살 잭이다. 이야기의 앞 부분을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집"도 아니고 오로지 "방"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진행되는, 등장인물이라고는 잭과 그 아이의 엄마가 전부인, 때때로 올드닉이라는 얼굴 없는 사나이가 밤에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이지만 평범해 보이지 않는 잭과 그 아이의 엄마. 잭의 엄마는 19살의 대학생이던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에게 납치당해 "방"에 감금을 당했고, 무수한 폭행을 겪었다. "방"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홀로 키웠으며, 잭이 5살이 될 때까지 7년을 그 방에 갇혀있었다.  잭에게는 "방"이 세상의 전부다. 태어나서 한번도 방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해 온 아이가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엄마"가 전부다. 엄마와 함께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씻고, 운동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자고 ....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났다. 어느 날 갑자기 방에 감금된 남자. 15년을 그 방에 갇혀있었던가... [룸Room]에서 잭의 엄마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같은 처지다. 그나마 오대수보다 나은 처지라면... 만두 뿐만 아니라 "그 남자"가 귀찮아하거나 번거로워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요구할 수 있고, 때때로 "일요일 선물"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등 그나마 오대수보다는 조금 더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에게는 "잭"이 함께 있었다는 것.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잭"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 오랜 감금생활을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글쎄. 그녀가 잭을 처음부터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끔찍한 감금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였다. 저주스럽지 않았을까... 방에 갇혀서 원하지 않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녀의 사고에 따라 어쩌면 이야기는 훨씬 더 비참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잭을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모정과 긍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었을테다.  

 

   잭의 엄마가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비슷한 처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비해, "잭"은 전혀 새로운 존재다. 그 아이는 "방" 밖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는 방과 방안에 있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이고 "진짜"일 뿐이다. 텔레비전 속에 등장하는 것은 그림이고 "가짜"다. 방 밖의 넓은 세상에 대해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잭은 오히려 엄마가 느끼는 구속감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세상을 향한 "대탈주" 부분에서는 혹시나 일이 뒤틀릴까 싶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그 탈주가 성공했을 때는 너무나 기뻐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방" 밖의 세상에서 잭이 경험해야 할 수많은 것들이 염려스러우면서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내 주변의 것들을 자주 둘러봤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음이 이렇게 고마운 일일 줄은 몰랐었다.

 

 "왜 어쩔 수가 없어?"

  "더 잘 설명하고 싶은데. 엄마는 그리워."

  "해먹이 그리워?"

  "전부 다. 바깥세상에서 사는 게."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내가 자기 말을 믿기를 원하니까 그러고 싶었지만 머리가 아팠다.

  "예전에 텔레비전 안에서 산 적이 있었어?"

  "말했잖아. 텔레비전이 아니야. 진짜 세상. 얼마나 넓은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엄마는 팔을 뻗어서 사방의 벽을 가리켰다.

  "방은 그중에서 아주 작고 구린 한 조각에 불과해."(p145)

 

 엄마의 사랑. 방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 많은 사람들을 "진짜"로 만날 수 있는 기회. 

내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어 소중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새삼 생각하고, 고마워하게 된 건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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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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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고 윤동주는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하지만 윤동주 같은 "영향력 있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아닐 뿐더러 앞으로도 그렇게 될 일 없는 그저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글이라고 끄적대봐야 일기 정도가 전부인 나 같은 사람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일도 없을 터이고,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쓸 일이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내가 쓰는 것들, 글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뭣한 그 것들을 끄적대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글이 쉽게 씌어지더라도 부끄러움을 느껴본 일은 별로 없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를 읽었다. 중국사에 있었던 "문자옥文字獄"에 관해 쓴 책이다. 글쓴이는  "역사소설, 산문,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저술"(책 앞날개)해 온 전직 교사이기도 한 왕예린王業霖. 책에서는 중국사의 25개 왕조에서 있었던 문자와 관련한 30개 정도의 사건들을 간략하게 나열하고 있다. 문자옥이라.. 글쓴이는 문자옥을 "문자로 말미암은 '감옥'"(p6)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들은 중국사의 필화사건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다소 산만한 구석이 있다. 글쓴이는 출판사로부터 문자옥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도 글을 시작하지 몇 번이나 망설였다고 한다. "문자옥"이라고 정의할 만한 사건들의 범주나 사료의 출처와 진위여부, 인물에 대한 평가 등을 놓고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문자와 관련한 사건들은 글쓴이가 인용하고 있는 몽테스키외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지식은 위험을 부르고, 경쟁은 화를 부른다."(p150). 올곧은 성품으로 직언을 하다 최고통치자인 황제의 비위를 거슬러 자신 뿐만 아니라 친인척들마저 화를 당하도록 만들었던 인물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소식이다. 뜻하지 않게 화를 당한 인물들도 있다. 명 태조 주원장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을 문자의 옥으로 달랬던 것 같다. 글쓴이는 "선문당이 사람 잡은" 예로 주원장을 들고 있다. "보좌에 재위했던 30년 동안, 매일 수많은 상소문을 꼼꼼히 읽으며 그 속에서 꼬투리를 잡아내는 주원장의 노고야마로 노동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도 경탄할만큼 대단한 것이다."(p163)라고 표현할 만큼 수많은 문자의 옥을 불러왔던 주원장의 열등감과 그 때문에 희생된 수많은 문인들의 이름이 이 책에 새겨져 있다.

 

  나의 중국사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지식의 부족탓이겠지만 글이 다소 어렵기도 하고 산만한데다 재미도 덜 했다. 그러나 글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아야했던 많은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윤동주의 시가 떠올랐다. 글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남의 글을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 책은 내 기대와는 다소 다른 책이긴 했지만, 독자의 함량 부족 탓이리라. 다음에 중국사에 관한 배경지식을 더 많이 쌓고 난 다음에 다시 한 번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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