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소설책을 한 권 읽었다. 아....! 내 입에서 절로 나오는 이 탄성을 뭐라고 표현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답답했다. 아팠다. 울컥했다. 짠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웠다. 더군다나 이 놀라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니...!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Room]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5살 잭이다. 이야기의 앞 부분을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집"도 아니고 오로지 "방"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어 진행되는, 등장인물이라고는 잭과 그 아이의 엄마가 전부인, 때때로 올드닉이라는 얼굴 없는 사나이가 밤에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이지만 평범해 보이지 않는 잭과 그 아이의 엄마. 잭의 엄마는 19살의 대학생이던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에게 납치당해 "방"에 감금을 당했고, 무수한 폭행을 겪었다. "방"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홀로 키웠으며, 잭이 5살이 될 때까지 7년을 그 방에 갇혀있었다.  잭에게는 "방"이 세상의 전부다. 태어나서 한번도 방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해 온 아이가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엄마"가 전부다. 엄마와 함께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고, 씻고, 운동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자고 ....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났다. 어느 날 갑자기 방에 감금된 남자. 15년을 그 방에 갇혀있었던가... [룸Room]에서 잭의 엄마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같은 처지다. 그나마 오대수보다 나은 처지라면... 만두 뿐만 아니라 "그 남자"가 귀찮아하거나 번거로워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요구할 수 있고, 때때로 "일요일 선물"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등 그나마 오대수보다는 조금 더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에게는 "잭"이 함께 있었다는 것.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잭"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 오랜 감금생활을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글쎄. 그녀가 잭을 처음부터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끔찍한 감금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였다. 저주스럽지 않았을까... 방에 갇혀서 원하지 않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녀의 사고에 따라 어쩌면 이야기는 훨씬 더 비참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잭을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모정과 긍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었을테다.  

 

   잭의 엄마가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비슷한 처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비해, "잭"은 전혀 새로운 존재다. 그 아이는 "방" 밖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는 방과 방안에 있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이고 "진짜"일 뿐이다. 텔레비전 속에 등장하는 것은 그림이고 "가짜"다. 방 밖의 넓은 세상에 대해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잭은 오히려 엄마가 느끼는 구속감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세상을 향한 "대탈주" 부분에서는 혹시나 일이 뒤틀릴까 싶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그 탈주가 성공했을 때는 너무나 기뻐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방" 밖의 세상에서 잭이 경험해야 할 수많은 것들이 염려스러우면서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내 주변의 것들을 자주 둘러봤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음이 이렇게 고마운 일일 줄은 몰랐었다.

 

 "왜 어쩔 수가 없어?"

  "더 잘 설명하고 싶은데. 엄마는 그리워."

  "해먹이 그리워?"

  "전부 다. 바깥세상에서 사는 게."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내가 자기 말을 믿기를 원하니까 그러고 싶었지만 머리가 아팠다.

  "예전에 텔레비전 안에서 산 적이 있었어?"

  "말했잖아. 텔레비전이 아니야. 진짜 세상. 얼마나 넓은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엄마는 팔을 뻗어서 사방의 벽을 가리켰다.

  "방은 그중에서 아주 작고 구린 한 조각에 불과해."(p145)

 

 엄마의 사랑. 방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 많은 사람들을 "진짜"로 만날 수 있는 기회. 

내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어 소중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새삼 생각하고, 고마워하게 된 건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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