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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이동 -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레이첼 보츠먼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3월
평점 :
1, 2차 산업 혁명은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감흥이 있을 리 없다. 3차 산업 혁명 역시 감흥을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4차 산업 혁명은 다르다. 좀 컸고, 그만큼 좀 안다. 알면 알수록 빠지게 되고, 궁금해서 미치겠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읽으려고 애쓴다. 4차 산업 혁명 때문에 '내 일'을 걱정하는 인간이 아니라, 4차 산업 혁명 덕분에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공부한다. 그래서 리뷰랄 건 없고, 복습 삼아서 갈무리한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한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결과는 역사상 가장 큰 '신뢰 이동' 현상이 나타났다는 첫 번째 증거이다. 이제 신뢰와 영향력은 엘리트 집단과 전문가, 정부 당국보다는 가족과 친구, 동료, 심지어 낯선 사람 같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개인이 기관보다 중요하고, 개별 고객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브랜드를 정의하는 시대다. - 18쪽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열 번 지원했지만, 매번 고배를 마셨다.(같은 대학에 열 번이나 지원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중략)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마윈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KFC가 중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지원했습니다. 24명이 지원했는데 23명이 붙었어요. 저 하나만 떨어졌지요." - 39쪽
신뢰는 건축물이 아니고, 악수나 계약서 이외에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신뢰를 설명할 때 쌓는다거나 무너진다는 표현을 쓴다. - 43쪽
트러스트패스는 신뢰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수익 면에서도 알리바바에 돌파구가 되었다. 트러스트패스 인증을 받은 판매자는 인증을 받지 않은 판매자보다 주문 문의를 평균 6배 더 많이 받았다. 이는 알리바바에 소규모 업체에도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완벽한 근거가 되었다. - 52쪽
입소스의 여론조사가 처음 실시된 1983년에는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성직자가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다. 당시 성직자는 가장 신뢰받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2016년 1월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는 18퍼센트나 떨어져서 가장 신뢰받는 직업 8위로 하락했다. 쉽게 말해, 오늘날 평범한 영국인은 버스나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이 고해실의 성직자보다 더 진실을 말할 거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 80쪽
"페이스북에 브렉시트 승리를 기뻐하는 분을 찾는다고 올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 알고리짐이 그가 관심 없을 거라고 가정한 정보를 필터링했기 때문이다. "필터 버블이 강력해지고 페이스북 커스텀 서치가 확장된 탓에 이 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기뻐하고 있을 텐데 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어도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 87쪽
블라블라카는 돌아보면 황당할 정도로 단순한 해결책을 실행에 옮겼다. 2011년 온라인에서 선불로 결제해야 하는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승객이 예약하면 곧바로 비용 청구서가 나왔다. 선불로 예약이 이뤄진 덕분에 차에서 현금을 주고받는 어색한 상황이 사라졌다. 그리고 취소율이 35퍼센트에서 3퍼센트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이를 계기로 블라블라카는 본격적으로 도약했다. 온라인 결제로 신뢰 방해물이 제거된 것이다. - 107쪽
"캘리포니아롤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원하지 않는다. 친숙한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을 원한다." (중략) 애플의 유명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말하길, 자신은 "이상하게 친숙한 것을 구축하는" 데 목표를 둔다고 했다. - 110쪽
런던에 사는 사람이 뉴욕에서 머물 곳을 위해 에어비앤비를 처음 방문했더라도 바로 뉴욕을 검색하지 않고 우선 런던부터 검색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집에서 더 가까운 곳, 가량 캄덴 같은 동네를 검색한다. 앤틴은 말했다. "그리고 검색한 결과 뜨는 지도를 보고는 '아, 아, 알겠다. 여기는 우리 집 근처네. 저기 강가에 있는 집이구나. 원하면 이런 데서 묵을 수 있겠군. 이제 감 잡았어. 아하'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이런 순서죠." (중략) 사람들은 이미 아는 것을 신뢰하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실제로는 완전히 새로운 대상이지만 이상하게 친숙해 보이는 대상도 신뢰한다. 에어비앤비는 이를 영리하게 활용해 성공했다. - 116쪽
대개는 경이로워한다. 그러다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몇 킬로미터쯤 달리면 그 경험이 이내 평범해지고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컴퓨터가 대신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경험은 그렇게 신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래스롭은 오히려 사람들이 졸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자율주행차를 타고 잠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래스롭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 122쪽
자율주행차의 궁극적인 성공, 곧 자율주행차를 타는 것이 일상이 되는 상태는 공학 기술의 성공의 좌우되지 않는다. 자율주행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사람들이 이해하는지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중략) 우리는 그 기술을 통해 실제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 124쪽
특히 오늘날 책임 문제는 매우 복잡해졌다. 플랫폼이 직접 자산을 보유하거나 제공업체를 고용하지 않고도 유명 브랜드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버는 세계 최대의 택시 회사이지만 차량은 한 대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알리바바는 기업가치를 최고로 평가받은 소매업체이지만 창고가 없다. 에어비앤비는 세계 최대의 숙박업체이지만 부동산이 없다.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칼라마주 총격 사건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 146쪽
페이스북의 데이터 과학자 댄 퍼렐은 "어느 한순간에 어느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페이스북에서 실시하는 열 가지 실험의 피험자가 된다."라고 말했다. - 167쪽
"제가 주목한 부분은 지난 40년간 세계적인 마약과의 전쟁으로 짓밟히고 타락한 불법 마약 거래 시장의 체질이 기술에 의해 개선된 측면입니다. 사실 마약 사용자와 마약상처럼 '믿을 수 없는' 부류,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지 못하는 부류는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폭력 없이 신뢰를 기반으로 자율적으로 규제되는 시장을 구축할 수 있었을까요?" 마틴은 법 집행기관과 경찰이 다크넷 때문에 크게 놀란 것 같다고 말했다. "범죄자들이 어떻게 위험한 물건을 파는 평화로운 공동체, 대체로 순조롭게 굴러가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지 목격한 겁니다." - 220쪽
"마약 거래에서 중요했던 개인적인 신뢰가 평점이나 평가로 대체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 223쪽
암호화 시장의 판매자들은 이왕이면 깨끗한 이미지로 비춰지려고 노력한다. 개중에는 로고와 슬로건을 내걸고 브랜드 메시지를 요란하고 선명하게 전달하는 판매자도 있다. "저희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저희는 고객 만족을 중시합니다." 사실 다크넷의 마케팅 전략은 일반적인 상품의 마케팅 전략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대량 할인도 있고, 로열티 프로그램도 있고, 하나 사면 하나를 덤으로 주는 행사도 있고, '한정 상품'이나 '금요일 마감' 같은 마케팅 기법으로 매출을 올리는 예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 225쪽
나는 호텔에 투숙할 때는 욕실 바닥에 수건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에어비앤비로 구한 집에 게스트로 머물 때는 수건을 떨어뜨릴가봐 조심해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왜일까? 호스트가 나를 평가하고 그 평점이 앞으로 내 예약 요청이 다른 호스트들에게 수용될지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신뢰 장치가 어떻게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 228쪽
하지만 이런 식의 조작이 판치는 것도 여기까지다. 이미 허위 평가를 발견해서 삭제하는 기계 학습 시스템이 개발됐다. 코넬 대학교 연구팀에서 평가 스팸을 찾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트립어드바이저에 올라온 시카고 호텔들에 대한 평가 800개를 대상으로 진행된 테스트에서 허위 평가를 90퍼센트에 가까운 정확도로 찾아냈다. 반면에 코넬 대학교의 인간 피험자들은 허위 평가를 50퍼센트 정도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 236쪽
전자 상거래는 물론이고 다크넷에서도 평판이 전부다. - 238쪽
이런 시스템에서는 개인의 쇼핑 습관 같은 무해한 요소가 그 사람의 특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알리바바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제품의 유형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한다고 인정했다. - 245쪽
결국 그 제도에서 한 개인의 점수는 그 사람이 온라인 친구들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좌우된다. 온라인에서 연결된 누군가가 중국 체제에 막대한 부담을 준 상하이 증시 폭락에 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개시하면 그 사람과 연결된 사람들의 신용점수는 함께 떨어질 것이다. 일종의 연좌제다. - 248쪽
우버 평점은 2016년 3월에 출시된 앱이자 인간을 위한 옐프에 해당하는 피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관계 평가 앱인 피플에서는 이웃이든 상사든 교사든 배우자든 심지어 예전에 만난 이성친구든,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평점과 평가를 매길 수 있다. - 260쪽
중국의 이른바 '신뢰 계획'은 조지 오웰의 <1984>와 파블로프의 개가 결합된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264쪽
우리는 중국의 사회신용제도, 곧 신용점수를 인생 점수로 확장하는 제도에 다가가고 있으면서도 그러는 줄 모른다. 이제는 사진, 책, 음악, 영화, 우정, 돈까지 다 디지털화됐다. 그리고 현재 신분과 평판을 디지털화하는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 275쪽
모리는 이 논문에서 우리가 무생물을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정도가 인간과 비슷한 대상일수록 높아지는 기제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선이 있다. 인간과 거의 흡사하면 우리에게 불안을 넘어 혐오감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는 인간과의 유사성이 이처럼 섬뜩한 수준을 뛰어넘어 극단적으로 인간성에 다가가면 다시 긍정적인 감정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 301쪽
흥미롭게도 실용적인 과제를 보조하는 봇과 로봇은 주로 여성이다. 로봇은 외모 면에서 유독 사랑스럽고 어린애같은 모습이 많다. - 304쪽
바다 속 수 킬로미터 아래 닿을 수 없는 밑바닥에 떨어졌지만 돌 화폐의 가치에 대한 섬사람들의 믿음이 이렇게 크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신뢰다. - 321쪽
실제 '돈'은 페이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페이를 소유하는지에 관한 집단의 합의였다. -322쪽
국토의 약 78퍼센트가 미등록 상태인 가나에서는 집 주인이 집 앞에 내건 "이 집은 매물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이는 주인 있는 집이라고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 3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