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한눈에 꿰뚫는 대단한 지리
팀 마샬 지음, 그레이스 이스턴 외 그림, 서남희 옮김 / 비룡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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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내 책상 한 켠엔 늘 지구본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지칠 때면 늘 지구본을 만지작거리며 상상의 날개를 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세계 일주를 한다거나, 뉴욕에서 근사한 모습으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거나 하면서. (지금의 나는 세계 일주는 개뿔, 뉴욕도 못 가봤다. ‘새로운 욕망(뉴욕?!)’만 늘었달까.) 그러다 슬그머니 중학생 형의 지리 부도책을 가지고 와서 통독하는 게 취미였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주요 강의 길이 순위는 기본이고 주요 자원의 매장량 순위까지도 외우는 특이한 어린이였다. 지구본을 보다 보니 지구상의 모든 게 궁금해졌고, 궁금해서 계속 읽다 보니 자연스레 외워졌던 것 같다. 지금의 나보다 초등학생 나가 더 똑똑하고 지적으로 활달했던 것 같다. 궁금하면 따지고 재지 않고 돌진.

 

몇 해 전에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푸코의 진자 실험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 실험이 진행된 프랑스 파리가 당연히북반구라는 것을 전제하고 전달을 했는데, 몇몇 학생이 수업 후에 찾아온 것이었다. “선생님, 왜 파리가 북반구인가요?” 마음 속으로는 그럼 너는 왜 너인 거니? 왜 나는 한국인인 거니? 왜 개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거니?’ 따위의 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지만, 그럴 수 있나. 당황한 기색을 감춘 채 잘 설명해서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어떻게 파리가 북반구에 있다는 걸 모를 수 있지?’라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 요즘은 초등 학생들이 지구본을 보지 않는 것인가? 아니, 지구본을 안 본다고 해도 스마트폰에 깔린 구글맵을 더 열심히 보는 거 아닌가? 아니, 다 떠나서 프랑스가 대충 어디에 있는지는 모를 수가 없지 않나? 지구본 선물하기 캠페인이라도 해야 되나? 세계 지리를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으로 정하는 정책이 필요한가?

 

이 책이면 충분한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한 책인데, 성인인 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앞서 쓴 것처럼 나는 나름 어린 시절 세계 지리 매니아였다. 그런 나도 이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 내용들도 좀 있다. 무엇보다 대충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세계 주요 도시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되니, 조금 더 그곳과 (물론, 철저히 일방적이겠지만)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다. 지도와 그림이 많아서 술술 읽을 수 있고, 지정학에 근거한 세계사와 현재의 갈등 구도도 간략하게 다뤄준다.(어린이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만,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내 책상에는 지구본이 없다. 대신 가끔씩 그냥 구글맵을 켜서 여기저기 구경해 본다. 다음에는 어디를 가볼까 하고. 보다 보면 가고 싶은 데가 생기는 법이니까. 견물생심? 견지생심? 연애와 여행이 평소의 나와는 다른 나로 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그래서 여행지에서 많은 연애가 시작되기도 하고, 연애를 하면 같이 여행을 가는 것 아닐까?) 믿는 나는 더 많은 여행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지도를 봐야겠다. 아차, 글을 쓰다 보니까 생각이 났다. 작년에 펀딩 사이트에서 여행자를 위한 세계 지도를 사놓고 집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있었다. 오늘 오후에는 지도를 붙이고 코로나19가 종식을 기원하면서 여행지를 골라봐야겠다. 지구본을 만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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