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새 7kg가 불었다. 군대 가는 게 억울해서 한풀이 하듯 먹고 갑자기 살이 찐 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갑자기 찐 살들은 훈련소에서 바로 빠져서 내 선택이 합리적이었음을 몸소 증명해 주었다.) 예비군 훈련을 가느라 바지를 입는데 단추가 다 잠기지 않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단추를 잠그지 못한 상태에서 벨트로 대충 숨기고 하루를 버티긴 했는데, 살이 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확인하니 느낌이 확 오는 거였다. 체중계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보다 몇 배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내 인생 모토 중 하나가 '아저씨가 되지 말자!'였는데(인간적으로 원빈은 빼고. 얼마 전에 우연히 본 카페 이름이 one bean이었는데ㅎㅎ) 진짜 영락없는 아저씨의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운동을 시작해야지 마음만 먹고 차일피일 미루다 굳은 결심을 하고 오늘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미리 알아 본 헬스장 바로 옆에 권투장이 있는 게 아닌가. 딱히 권투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순간 '그래, 남자는 스트레이트지!'라는 생각으로 권투장으로 올라갔다. 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설도 좀 둘러본 후, 조금만 더 생각하고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권투장을 나왔다.(스트레이트는 개뿔) 사실, 마음이 거의 권투장으로 기울긴 했지만 그래도 헬스장도 한 번 둘러나보고 결정을 해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서 바로 옆의 헬스장으로 이동을 했다. 헬스장에 들어가자마자 트레이너 한 분이 상담을 해주신다. 6개월 등록하면 이렇게 가격이 많이 내려간다는 하나마나 한 말부터 시작해서, 고객님은 운동했을 때 딱 효과가 나기 좋다는 사탕발림을 거쳐,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 pt를 받아야 한다는 상투적인 결론까지. 뻔한 상술인 걸 알면서도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상담해주는 여자 트레이너 분이 너무 내 스타일이어서. 웃는 모습에 순간 마음을 빼앗긴 거다. 영업용 미소든 뭐든, 좋은 건 좋은 거니까. 그래도 내 머리를 지배하던 '남자는 스트레이트'문구를 떠올리며 권투장으로 마음을 정하고, 조금만 더 생각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헬스장을 나왔다.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달려가서 운동화와 운동복을 챙기고 권투장으로 갔다. 멋지게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상상을 하면서 관장님의 지도하에 운동을 시작했다. 스트레이트는 개뿔. 러닝, 줄넘기, 스텝 연습만 1시간을 했다. 주먹 날리는 동작도 잠깐 하긴 했지만, 스트레이트는 개뿔. 쨉이라고도 말하기 민망한 '팔 뻗기'에 불과했다. 줄넘기랑 스텝 연습은 왜 이렇게 힘든지 일주일치 흘릴 땀을 다 쏟아낸 기분이었다. 관장님은 젊은 분이 저질 체력이라고 놀리시고. 옆에 운동하는 다른 분들은 줄넘기도 막 멋지게 하고 스텝 밟으면서 펀치까지 쭉쭉 뻗으면서도 땀을 거의 안 흘리는데, 혼자서 기본 줄넘기하면서 땀을 쏟으면서 헥헥 거리는 꼴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우스웠지만, 머지 않아 날릴 스트레이트 펀치를 생각하며 악착같이 버텼다. 그렇게 버티고 있는데 관장님께서 오늘은 그만 하란다. 운동 오늘만 할 거 아니지 않냐고. 그래고 뭔가 패배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워 구석에 있는 벤치 프레스 기구에 가서 마무리 운동까지 하고 첫날 훈련 종료.

 

 오랜만에 열심히 뛰었더니 발가락 사이 피부가 살짝 벗겨져서 밴드를 사러 약국엘 갔다. 샤워를 하고 갔음에도 몸에 열이 남아서 땀이 나고 얼굴도 붉었나 보다. 약사님께서 "운동하셨어요?"라고 묻는 거다. "네, 길 건너 권투장에서 열심해 운동했습니다."라고 시원하게 대답했더니, "어머, 보기 좋네요. 운동 열심히 하세요" 하시는 게 아닌가. "감사합니다. 약사님도 건강하세요"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참 좋더라. 별말 아니지만 환한 얼굴로 그런 말씀을 해 주시니, 삭막한 도시생활에 물 방울 하나 떨어지는 기분이었달까. 역시 권투를 시작하니, 좋은 에너지가 생기는군.

 

 제목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넣으려고 포털에 '권투 스트레이트'를 검색해 봤다. 마치 내 제목을 비웃는 것처럼 멋진 사진이 떡하니 있더라.

 

 

 

 

 

 

 

 

 

 

 

 

 

 

 

 

 

 

 

 

 

 

 

 

 

 

 

 원래 좋아하던 연예인이지만, 오늘부터는 왕팬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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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0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남자는 스트레이트! 짱멋져요, 얼음장수님!
그런데 이왕에 스트레이트 사진을 쓰실거라면 바다 하리를 좀 써주시지 ㅋㅋㅋㅋㅋ 전 바다 하리 왕 팬입니다! 꺅 >.< (죄송해요, 좀 흥분했네요. 바다 하리를 생각하면 이렇게 되어버려요..)

얼음장수님 스타일의 트레이너 대신 남자는 스트레이트를 선택하신 것 자체가 어쩐지 성공으로 가기 위한 첫단계 같아요. 응원할게요, 얼음장수님. 제 응원은 삭막한 도시생활에 떨어지는 두번째 물방울입니다. 흣.

안녕히 주무세요!


얼음장수 2012-07-10 15:15   좋아요 0 | URL
제가 격투기 쪽은 잘 몰라서 바디 하리 검색해 봤는데
바디 하리 아주 섹시하네요. 바디 하리의 스트레이트를 목표로 정진해 보겠습니다. ㅎㅎ

다락방님의 응원은 두 번째 물방울 대신 첫 번째 물줄기인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