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로 길게 들어오는 햇빛이 정말 좋다. 봄이라 그런가. 곧 노란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필 것이다. 이렇게 또 봄을 본다는 게 기쁘다. 이상하게 자꾸 말랑말랑한 감정에 빠져든다.  읽고 있는 소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감성은 메마른데 그렇다. 봄이 주는 숙제일까. 같은 자리에서 변화 없이 서 있다는 게 무섭도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감사하다. 같은 일상,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나이가 튼 탓이다.

 

 책을 고르는 기준도 조금씩 달라진다. 소설도 많이 읽지만 에세이에 눈이 간다. 김탁환의 『엄마의 골목은 어떤 내용인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꼭 곁에 두고 싶었다. 엄마의 골목이라니, 벚꽃의 도시 진해와 골목은 어떤 추억을 보여줄까. 벚꽃을 한 아름 안은 듯 마음이 밝아진다.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를 읽으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이승우의 소설은 이상하게 잘 안 읽게 된다. 소설집 한 권만 읽고 몇 권은 정리한 기억이 있다. 과연 이 소설은 읽을 수 있을까. 어쩌면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는 화분의 나무도 잘 키우지 못하지만 나무에 관한 책은 언제나 기대가 크다. 나무, 숲, 그것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랩 걸』은 이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나를 제일 설레게 하는 책은 존 버거의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눈이 내리는 3월이다. 꽃이 피는 3월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혼자 피어나는 꽃을 생각하며 그것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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