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프린스 바통 1
안보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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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물건이나 공간을 소재로 한 테마 소설은 이상 신선하지 않다. 그럼에도 테마 소설집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새로운 작가의 소설과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왠지 특별하고 화려한 삶이 숨어 있을 것 같은 호텔이라는 공간의 이야기 『호텔 프린스』엔 삶이 있었다. 누군가는 집처럼 호텔을 드나들지만 누군가는 일생에 단 한 번도 호텔에 가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호텔은 여행이나 휴가 혹은 일탈의 이미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김미월의 단편 「프라자 호텔」,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이 떠오른 이유도 그러하다. 아쉬운 점은 호텔리어의 삶은 그린 소설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대했던 방향이나 에피소드와의 조우가 당연한 게 아닌데도 그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호텔에 들어온 모녀를 다룬 황현진의 「우산도 빌려주나요」, 아내를 찾아 하와이에 온 남자의 이야기 「해피 아워」,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호텔에 투숙하며 병원을 오가는 부부의 복잡한 심리를 잘 보여주는 「때아닌 꽃가 인상에 남는다.  황현진의 소설은 처음이었고 서진과 전석순의 단편도 처음이었다. 장편소설로 만났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고 단편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황현진의 소설에서 엄마와 딸은 서로의 방식대로 상대를 대한다. 그러니까 소통이 아닌 일방통행인 것이다. 소설은 갑자기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엄마와의 통화로 시작한다. 딸은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고 엄마와 통화하느라 매장 밖으로 옷을 들고 나온 줄도 몰랐다. 직원은 절도라며 20배의 배상금을 주장한다. 있는 돈으로 일부를 결재하고 엄마를 만난 딸은 집이 아닌 호텔로 데리고 온다. 군대에 있는 애인의 방문이 예정되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안 되는 애인과 자꾸만 연락을 하는 매장 직원 때문에 불안한 딸과는 다르데 엄마는 이유도 모른 채 호텔에 온 게 마냥 좋다. 황현진의 소설에서 호텔은 지옥 같은 현실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겨진다.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은 그 내용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한다. 성구는 아내 미라를 찾아 하와이에 도착한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서 온 것이다. 여유롭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성구는 불안하다. 아내와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우연히 발견한 훌라 교습 학원 영수증을 찾지 못했더라면 아내가 훌라를 배우고 학원 원장과 친구처럼 지낸 것도 몰랐을 것이다. 원장은 미라가 하와이로 떠났을 거라는 말을 듣고 성구는 이곳에 왔다. 하지만 어디서 미라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미라가 원했다고 믿는 하와이의 호텔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이처럼 호텔은 떠나온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혜나의 「민달팽이」에 등장하는 호텔은 화가의 작업실이자 집이다. 청결하고 안락한 호텔방이 아니라 전산실, 기계실이 있는 어둡고 습한 지하. 사방에 유화물감이 가득한 그곳에서 스물둘의 ‘나’는 마흔이 넘은 화가와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그런 상대는 아니다. 아빠의 외도 현장을 엄마와 함께 목격한 후 나에게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후로 이혼한 엄마는 지루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호텔이 등장하지만 호텔의 기능은 상실한 공간이다. 김혜나는 호텔을 부모의 이혼으로 기능을 잃은 ‘나’의 집과 마음을 대변하는 장치로 사용한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 우리의 삶에, 아무런 흔적도 의미도 남기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 알아봤자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만한 관계도 아니었다. 마치 이 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처럼 그저 잠시 잠만 자고 나가면 그뿐, 이곳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금도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민달팽이」, 155~156쪽)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모르는 사이 서로의 삶을 스치고 지나가는 공간,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업무를 보는 사무실이 될 수 있는 공간, 이전의 나를 버리고 다른 나로 변화할 수 있는 공간, 작가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실이 되는 공간, 그런 호텔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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