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슬프다, 아프다, 그립다, 이런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 말이다. 저마다 고유한 감정은 결과 폭이 다르다.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같은 질량으로 판단하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딱히 고민하지 않았다. 사느라 바빠서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생각나지 않아서, 이유는 많다. 그런 복잡하고 엉킨 감정을 하나씩 풀어 이름을 붙인 이가 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 존 케닉이다. 감정이라는 거대한 가지에 붙은 잔 줄기에 이름을 붙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것을 정리한 내용이 바로 이 책이다. 쉽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신조어 사전이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란 제목처럼 슬픔에 국한된 내용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숱한 감정들, 고독한 순간들, 내밀한 심연과 마주하는 순간을 새로운 단어로 설명한다고 할까. 여섯 장에 걸려 외부 세계, 내적 자아, 당신이 아는 사람, 당신이 모르는 사람, 시가의 흐름, 의미의 추구까지 주제별로 모은 300여 개의 단어를 만날 수 있다. 신조어 사전답게 그가 만든 단어는 어원에 대한 설명이 더해진다. 가령 이런 것이다. 슬립 패스트(slipfast)는 형용사로 어원은 slip + fast다. 뜻은 세상에 참여하지 않고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전혀 발자국을 남지 않고도 사람들의 대화 속을 자유로이 헤맬 수 있게.


존 케닉의 설명을 읽고 나면 아마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어떤 일에 개입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게 되는 그런 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처럼 어떤 단어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 똑같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연인은 “사랑해”란 말 대신 둘만의 신호로 특정 숫자를 언급하기도 하고 “고요해”란 말로 대신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이 책은 자유로이 해석될 수 있다.







영어로 만든 단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다. 맞다. 그러나 가만히 이 책의 신조어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깊은 밤 누구에게 들킬까 혼자만 돌아보았던 순간의 감정이나 막연하게 이해받고 싶었던 감정이 스쳐지나는 걸 느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의 순간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알아온 누군가에게도 개인적이고 신비한 내적 삶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이란 그노시엔느(Gnossienne)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그랬다. 짐작했듯이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제목에서 차용한 단어다.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서 다 알 수 없다. 전부를 알고 싶지만 전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이에는 늘 어떤 거리감이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견유학파의 말이 맞는지도, 사랑은 그저 환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성스러운 종류의 환상일지도, 아이들을 인도하기 위해 나타나는 파랗게 빛나는 신들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기만 한다면, 그것은 힘을 지닌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 (137쪽)


그럼에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고 조금 더 상대의 슬픔이나 아픔을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에 말이다. 그런 마음 조각들이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모여 이런 사전이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라는 점에도 그렇지만 직접 읽었을 때 와닿는 기분이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기에. 문득 떠오른 건 전시 같은 형태로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책엔 단어를 표현한 콜라주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끌렸던 단어 Gnossienne엔 이런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날씨 따라 마구 달라지는 감정, 계절마다 뒤바뀌는 감정, 그때의 감정을 획일적인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건 삭막한 일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말이 다르고 같은 말인데 세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그뿐인가, 어떤 말은 사멸한다. 그런 점에서 존 케닉의 이런 프로젝트는 의미 있다.

아마도 특정 단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에 반하게 되거나 반가움을 표할지도 모른다. 한국어로 번역해 사용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하여 이름을 붙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나의 감정에 대해 고유하고도 차별적으로 펼쳐놓는다고 할까. 결코 같을 수 없는 무게의 슬픔 혹은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떨까. 존 케닉의 이 책처럼 나만의 시를 쓰고 사전을 만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남다르고 각별하게 기억될 책이다.


단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곡되고 변화하면서 시대에 뒤처지거나 새로운 의미를 띠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단어는 겉으로는 제자리에 고정된 듯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달래주는 존재로,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로 남는다. (292~293쪽)


독특하고 특별한 『슬픔에 이름 붙이기』을 읽다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을 추천한 김소연의 『마음사전』이다. 김소연의 『마음사전』은 제목 그대로 마음사전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알고 싶지만 단단한 문으로 가로막힌 당신의 마음을 향한 두드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람결에 달라지기도 하는 감정의 상태, 숨어버린 마음, 속이 상해 울컥한 기분을 달래주는 글의 집합체! 전부를 다 소개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단어로 충분하다.


은은한 것들은 향기가 있고, 은근한 것들은 힘이 있다. 은은함에는 아련함이 있고, 은근함에는 아둔함이 있다. 은은한 것들이 지닌 아련함은 그 과정을 음미하게 하며, 은근한 것들이 지닌 아둔함은 그 결론을 신뢰하게 한다. 은은한 사람은 과정을 아름답게 엮어가며, 은근한 사람은 아름답게 맺는다. (「은은하다: 은근하다」, 전문)


「은은하다: 은근하다」를 읽는다. 마음과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것들은 진정 선명한 형태를 지닌다. 명확하게 내게로 온다고 할까. 은은하고 은근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향기를 지닌 사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서는 빛이 난다. 그 빛은 멀리서 알아볼 수 있도록 환하고 아름답다. 어렵겠지만 은은하고 은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성찰하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 단련하는 사람.


다른 책으로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이다. 모두에게 같은 감정을 강요할 수 없고 타인의 감정을 섣불리 예단해서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감정 비평이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감정 상태에 이름 붙이기가 심해지면 어찌 될까. 당신의 하루. 본인의 감정을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자신을 잠시 내버려두고 싶은 날. 그러나 누군가는 당신의 심적 상태마저도 어떤 감정이라며 이름 붙이려 한다. 감정에 관해 스스로 무無의 상황에 놓이고 싶은 싶은 시공간을 확보하기란 점점 어렵다. 감정에 관한 무의 상황도 특정한 감정임을 확인하려 드는 시도 때문에. (『다소 곤란한 감정』, 212쪽)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론이나 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감정에 휩쓸리곤 한다. 그들과 다른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다른 감정을 소유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나의 슬픔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타인의 슬픔과 감정에도 내가 모르는 이름이 있을 수 있다.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불러주는 일, 위로와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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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쩐 얘긴데 마음사전을 쓴 김소연 작가가 시인겸 건축가인 함성호 씨와
부부지간이더군요. ㅎ
 
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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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고요해진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와 당신, 둘 사이에만 고유한 침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요란해진다. 나와 당신의 관계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고요하고 은밀하면서도 끝나지 않을 소란으로 가득하다. 처음 만난 왕딩궈의 장편소설 『가까이, 그녀』는 은밀하고도 고요한 사랑으로 다가왔다. 십 대 때 대만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작가가 절필 후 20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내게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가까이, 그녀』란 제목과 꽃으로 입을 가린 표지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가까이, 그녀’란 누구일까. 짐작대로 아내일까, 아니면 가까이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그녀일까. 아니면 사랑과는 무관한 그녀일까. 입을 가린 꽃은 무엇 의미하는 것일까.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걸까.


소설은 작년에 57세의 생일을 맞은 남자, 그러니까 올해 58세인 화자인 ‘량허우’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의 근황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량허우는 감옥에 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신혼부부인 아들의 집에 잠깐 있다가 따로 나왔다. 아들 ‘뤠이슈’와 사이는 좋지 않다. 량허우가 감옥에 간 이유,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그렇다. 아내가 죽었다. 나는 아내가 무척 그립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량허우’는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에 대해 들려준다. 현재 자신의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은 며느리와 간병과 살림을 봐주는 아윈이 있다. 물리적으로 가까울 뿐 소원한 사이다. 기억 속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시계점에서 일할 때 가게에 들어온 아내,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짝사랑한 종잉. 그녀들 가운데 가장 궁금한 건 스물한 살에 만난 아내 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쉽사리 그녀의 부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공들여 아주 천천히 들려주기로 작정한 것 같다.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일찍 시계점에 일을 한 사정과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이 아닌 시계점으로 돌아온 사연. 놀랍게도 감옥에 찾아온 종잉과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까지 상세하게 전하지만 쑤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그 편지를 통해 차별받은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애틋함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전한다. 그가 살아온 시대, 아니 그 가까이의 그녀들의 삶은 억눌림이 있었다. 가족과 사회는 그녀들을 억압했다. 아내 쑤도 그랬다. 아버지와 오빠들의 폭언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했다. 종잉도 다르지 않았다. 학생운동을 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헌신했고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했다. 그녀들의 삶은 없었다.


어쩌면 쑤는 돈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마음으로 량허우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쑤가 사랑한 사람은 브라질로 이민을 간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량허우는 달랐다. 쑤를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 그 방식을 몰랐다. 쑤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간극이 컸던 것일까. 그것은 아들 ‘뤠이슈’로 이어졌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험한 바에 의하면 돈을 지불하고 시계를 산다고 해서 시간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시계를 착용하지 않아도 모두와 똑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시계를 착용함으로써 갖게 되는 일종의 완전성에 있다. 그건 마치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광채를 더해주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 게 아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202쪽)


소설에서 시계점과 시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량허우에게 삶의 공간은 집보다는 시계점이었고 그곳에서 아내 쑤를 만났기 때문이다. 쑤가 아버지에게 가출 후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의미로 선택한 롤렉스 시계와 스위스 장인의 마지막 작품으로 량허우가 아내에게 선물한 스위스 시계는 특별하다. 아내는 떠났지만 그 시계를 통해 그녀와의 시간을 간직할 수 있기에.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런 이유로 시계를 선물하는 게 아닐까.


엉킨 실타래 같은 삶을 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엉킨 부분을 싹둑 잘라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엉킨 부분을 푸는 동안 실로 무엇을 짤까 계획할 수도 있다. 잘라냈으면 존재 불가능한 계획. 량허우가 종잉에게 편지를 씀 자신의 삶을 돌아본 시간이 그렇다. 아들에게 변명이나 변호를 하지 않았던 것도 아들이 엉킨 부분을 찾아 풀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닐까.


상대로 인해 고통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건 진정으로 사랑이 없었다는 의미다. 아는 것도 없지만, 또 무엇이든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251쪽)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쑤의 삶이 곧 나의 삶이기에 죽음 역시 나의 죽음이라는 것. (281쪽)


량허우의 삶과 사랑처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소설이다. 쑤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끝까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잘 짜인 소설이다. 쑤를 향한 량허우의 사랑은 애절하고 애처롭다. 사랑의 소리와 몸짓을 조금만 키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량허우가 되어 가까이에 있는 그녀들과 마주한다. 가만히 그녀들을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삶을 선택하고 살아온 그들이다. 도움을 받을 이가 없어 안타까운 시절을 살아낸 그녀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본다. 입을 가린 꽃을 치우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량허우가 사랑한 쑤의 목소리, 지금 곁에 있는 종잉의 목소리를 상상해 본다. 종잉과 량허우가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고요하고 은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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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팝니다, T마켓 - 5분의 자유를 단돈 $1.99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앵글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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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소설을 만났다. 그런데 정말 재밌다고 할 수 있을까? 재밌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씁쓸한 기운이 몰려오는 건 왜일까? 길고 복잡한 이름의 저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의 『시간을 팝니다, T마켓』 은 그런 소설이다. 시간을 파는 마켓이라고, 정말 가능한 일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오는 제목이다. 때마침 시간을 견딜수록 엄청난 상금을 받는다는 설정의 드라마를 보고 난 후였다. 놀라운 건 이 소설이 11개국에서 출간되어 20년 가까이 베스트셀러란다.


서두가 길다. 소설로 들어가 보자. 소설은 아주 평범한 보통 남자(TC)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세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주변의 샐러리맨으로 보면 되겠다. 그의 꿈은 곤충의 몸과 영혼을 연구하는 과학자였지만 현실은 그냥 회사원이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고 아들 둘이 있다. 그리고 매달 갚아야 하는 주택 융자 상환금이 있다. 뭔가 기시감이 오는가? 어쩌면 당신과 똑같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며 사는 삶. 어느 날 라디오에서 말기 암 환자 전문의가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모든 이들은 생의 마지막에 인생을 결산해 본다고. 우리의 주인공 TC도 자신의 빚을 떠올렸고 그 빚을 갚으려면 3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월급쟁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시간을 파는 것이다. 물론 아내는 남편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어떤가, 어디서 들어 본 스토리 같지 않은가.


이제 TC가 팔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자. 바로 시간이다. 병원에서 소변 검사를 할 때나 사용할 법한 플라스크 용기에 시간을 담아 팔겠다는 것이다. 엉뚱한 의뢰에 귀찮은 공무원들은 TC가 필요한 것들을 다 통과시켰다. 설마 진짜 그런 물건을 팔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TC는 굴하지 않았고 직진했다. 차마 이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은 못하는 대신 친구의 가게에 물건을 진열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단돈 1.99$에 살 5분의 T(시간)를 살 수 있다. 사실, 빈 용기에 불과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이 상품을 어떻게 쓰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설명을 드리지요. 이 한 통을 제 가게에서 삽니다. 용기를 열면 5분의 T를 갖게 되는 겁니다. 물론 원하실 때 5분을 소비하실 수 있지요. 이 5분은 바로 구매자의 것이며 다른 누군의 T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T는 원래 구매자에게 없던 시간이지만, 이 제품을 사시면 그 5분은 다시 구매자에게 귀속되는 셈이죠. 어디에 있든, 뭘 하고 있었든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86쪽)


중요한 건 구매자에게 5분은 귀속되며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상관없다는 것. 그러니까 5분의 구매자는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눈을 감거나, 화장실에 갈 수 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5분의 시간. 그 5분이 얼마나 간절한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5분의 단잠, 5분의 여유, 업무를 미룰 수 있는 5분. 그렇다. 이제 TC는 5분의 용기가 아닌 더 큰 용량의 용기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시간을 점차 늘어난다.


5분의 여유와 휴식은 점점 커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당장 업무를 봐야 하는데 담당자가 자신의 시간을 구매했으니 일을 할 수 없다고, 뒤로 미루겠다고 하는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된 시간 구매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사회적 문제였다. 급기야 구매한 T를 소비해야 할 소비 기간까지 정해졌다. 물론 전 세계적인 열풍으로 이어졌고 35년짜리 시간도 판매가 되었다. 너도나도 35년짜리 T를 사기에 급급했다. 나만 유행에 뒤처질 수 없다는 일종의 동조심리가 같은 거라고 할까.


어떤 나라에서 T가 든 컨테이너는 며칠 안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대안 가치가 되었다. 다른 모든 것은 가치가 없었고 원하는 이도 없었다. 부동산이 곧 가치가 급락할 자산이 되리라는 점을 직감하기란 쉬웠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처분하고 싶어 했다. (144쪽)


T를 사기 위해 아파트는 담보가 되었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인가? 마냥 웃기고 재미난 웹툰과 소설이 될 수 없다는 걸 직감했을 것이다. 보통 남자((TC)가 사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 이 소설은 경제 소설이다. 소설 속 ‘대차대조표’나 ‘자유 주식회사’, 주식, 광고는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경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의 주인은 누구인지 묻는다. 현재 누릴 수 있는 기쁨, 여유가 아닌 미래에 저당잡힌 삶을 위해 살 거냐고 말이다. 진정한 삶의 가치를 위해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현 체제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있지만 때로 우리를 과도하게 노예화하며 체제를 지탱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에게 고통을 야기한다. 부富를 기준으로 한 국가 간 순위는 우울증을 겪는 국가들의 순위이기도 하다. 현대를 살고 있는 세계 시민들은 우리가 자신에게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절실한 필요를 느끼고 있다. (177쪽, 저자의 말 중에서)


오직 나만이 계획하고 쓸 수 있는 시간과 현재를 사는 삶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한 적이 언제였던가. 남들과 비교하며 떠밀리듯 살아온 삶이 도착할 미래는 행복할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은 자신의 몫이니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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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시메노 나기 지음, 박정임 옮김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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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다. 일본 소설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는 고양이 때문에 궁금했다. 뭔가 따뜻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다. ‘마음 배달 고양이’라니. 마음을 어떻게 배달한다는 것일까. 당연 소설의 화자는 고양이다. 인상적인 건 19년의 묘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고양이 ‘후타’는 저승의 삶에 적응 중이다. 저승의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생활비와 간식비가 필요하다. 장난감이나 간식은 스스로 벌어서 사야 한다는 말이다. 후타는 임무를 완수하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공고에 보고 카페 ‘퐁’을 찾아간다.


주인 ‘니지코’는 카페의 우편함을 만들고 손님들의 사연을 받는다. 손님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그 일은 모두 후타의 몫이다. 니지코와 후타는 이승을 초록 세계로, 저승을 파란 세계로 부르기로 한다. 후타는 의뢰한 사람이 만나고 싶은 인물을 찾아가 그들의 마음 중 일부를 전한다. 중요한 건 만나고 싶은 상대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 상대의 특별한 말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임을 의뢰인 스스로가 눈치채야 한다. 간절하게 그리워하고 원한다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를 찾은 손님들의 사연은 저마다 간절하다. 돌아가신 아빠에게 첫 개인전을 보여 드리고 싶다는 딸, 태어나지 못한 딸을 해마다 그리워하는 부부, 사랑이 아닌 현실적인 미래를 선택했지만 옛 연인과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여자, 과거 상처를 준 선생님께 보란 듯이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청년,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소식을 끊었지만 엄마를 만나고 싶은 중년의 딸.


후타는 우선 의뢰인이 찾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그들의 말이나 마음을 꼬리 끝에 슬쩍 묻혀 온 후 의뢰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니.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지하철도 타고 택시도 타고 의뢰인의 일상도 관찰하고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살핀다. 그러면서 고양이가 아닌 인간의 삶과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된다. 각각의 에피소드 모두 흥미롭지만 태어나지 못한 딸을 그리워하는 부부 사연과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지만 이혼으로 이어져 엄마와 연락을 하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딸의 사연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이지만, 어느 순간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마음과 다르게 나가는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고 괜한 자존심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니까. 그런가 하면 태어나지 못한 딸의 사연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승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딸은 저승에서 잘 지내고 있고 내년이면 학교에도 들어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한다. 그 마음을 전해 들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 “추억도 소중하게 키우면 성장하는 걸까.” (124쪽)를 마음에 새기고 간직하고 싶다.


삶이란 계획대로 흐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내 맘과 다르게 어긋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이라는 걸 잊고 산다. 고양이 후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모습을 통해 각자의 상처와 과거, 그리운 이를 떠올린다. 한순간 소원해진 관계, 연락이 끊긴 친구, 용서를 구하지 못한 사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이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반대로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으니 나도 잘 살아야 한다는 어떤 다짐으로 이어진다.


좌절이 없었던 인간과 실패나 후회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인간. 티끌 없는 하나 없는 아름다움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만, 상처를 극복한 인간에게는 그 이상의 강인함이 있다. (192쪽)


소설처럼 세상을 떠난 사람을 만나는 일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카페 퐁에 방문해서 우편함에 사연을 쓰고 싶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리워하면 그리워하는 대로, 기억하면 기억하는 대로 잊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삶을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는 일은 의미가 없다. 현명한 후타의 말처럼 말이다. 내가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면 영원히 내 안에 있을 테니까.


이쪽에 와서 알 된 사실은, 현세니 사후세계니 하면서 마치 초록 세계가 중심인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사실 이쪽에서 저쪽을 보면 초록 세계야말로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말이다. (80쪽)


고양이와 말을 할 수 있는 니지코, 무지개다리를 떠올리는 카페 퐁,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고양이, 꼬리 끝에 닿는 순간 혼이 옮겨간다는 판타지 요소는 소설 적 재미를 풍부하게 만든다. 드라마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곧 드라마로 만날 수 있을지도. 그나저나 나도 고양이 꼬리를 슬쩍 만져볼까. 어떤 고양이가 후타 같은 고양이인지 알 수 없으니 모든 고양이를 만져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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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부터는 오디를 먹는다. 줄지 않는다. 매년 오디를 맛볼 수 있는 건 권사님 덕분이다. 작년에 앵두를 주신 권사님이다. 크기가 오디였다. 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디 물이 들었기 때문이다. 젓가락으로 집어먹다가 비닐장갑을 끼고 먹었다. 아, 나는 이런 어른이 돼버렸다. 오디나무의 열매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으로 마구 따먹었는데 말이다.





어렸을 때 먹었던 오디의 크기는 아주 작았다. 그리고 이렇게 검붉은 쪽에 가까운 색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개량종 오디나무가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도 어릴 적 먹었던 오디의 맛이 그리워진다. 형언할 수 없는 단맛의 기억은 이렇게 크고 탐스러운 오디의 맛과 비교할 수 없다. 뇌가 기억하는 맛이라고 할까.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맛일지도 모른다. 잡히지 않는 맛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오디의 맛을 지울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작았던 열매는 조금씩 커지고 어제보다 힘이 센 더위가 몰려온다. 작년에도 이렇게 더웠던가. 6월에 정말 더웠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더웠다는 것 정도다. 아직 선풍기는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곧 꺼낼 것 같다. 올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비가 올까 걱정이다.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습기를 하나 장만할까 싶다고 말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제습기는 정말 좋은 기능이 많다고. 정작 제습기 상품 목록을 보내온 건 친구였다. 사용하고 있는 제습기가 있지만 하나 더 있다면 편리할 것이다.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나의 읽기 효율은 낮아지고 있다. 나이 탓을 해야 할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니까. 그러나 읽고 싶은 마음은 아직 충분하다. 김연수, 김기태, 비비언 고닉의 책을 샀다.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 『끝나지 않은 일』는 이 책에 대한 좋다는 평가가 가장 많은 듯하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천천히, 나중에 읽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 열기가 조금 식은 후에 말이다. 게으름을 대비한 생각이다.






정작 『디 에센셜 김연수』야말로 아주 천천히, 아주 나중에 읽지 않을까 싶다. 우선은 사 두는 마음. 소장했다는 어떤 뿌듯함으로 말이다. 이렇게 김연수의 책이 한 권 더 늘어난다. 김기태의 첫 단편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기다렸던 책이다. 두 개의 단편으로 만난 그의 소설이 좋았다. 이 한 권에 담긴 다른 단편들도 분명 그러할 거라는 기대를 감출 수 없다.


주말인 내일은 비가 올 거라고 한다. 주말마다 내리는 비는 그 간격을 줄이고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 장마를 검색한다. 코킹 공사를 한 덕분에 장마에 대한 걱정의 일부는 줄었다. 얼마나 많은 비를 품었을까. 얼마나 무섭게 쏟아질까.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 해도 걱정이 달아나지 않는다. 오디처럼 검붉은 여름의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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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6-0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부터는 주말 마다 비가 오는 것 같아요. 날씨가 한여름처럼 기온이 올라가고요.
과일가게에서 오디를 본 적이 있긴 한데 물이 드는 과일인 건 몰랐어요.
자목련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자목련 2024-06-10 11:23   좋아요 1 | URL
하루하루 더위랑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아요 ㅎ
서니데이 님도 시원하고 좋은 한 주 시작하세요^^

얄라알라 2024-06-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 산에 갔다 계곡 마른 걸 봤기 때문에 비 소식은 반갑네요^^ 그런데 저도 오디가 저리 검은 색인줄 처음알았어요. 보라빛인줄..^^

자목련 2024-06-10 11:22   좋아요 0 | URL
살짝 내린 비가 아쉬웠어요. ㅎ
오디는,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