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팝니다, T마켓 - 5분의 자유를 단돈 $1.99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앵글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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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소설을 만났다. 그런데 정말 재밌다고 할 수 있을까? 재밌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씁쓸한 기운이 몰려오는 건 왜일까? 길고 복잡한 이름의 저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의 『시간을 팝니다, T마켓』 은 그런 소설이다. 시간을 파는 마켓이라고, 정말 가능한 일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오는 제목이다. 때마침 시간을 견딜수록 엄청난 상금을 받는다는 설정의 드라마를 보고 난 후였다. 놀라운 건 이 소설이 11개국에서 출간되어 20년 가까이 베스트셀러란다.


서두가 길다. 소설로 들어가 보자. 소설은 아주 평범한 보통 남자(TC)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세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주변의 샐러리맨으로 보면 되겠다. 그의 꿈은 곤충의 몸과 영혼을 연구하는 과학자였지만 현실은 그냥 회사원이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고 아들 둘이 있다. 그리고 매달 갚아야 하는 주택 융자 상환금이 있다. 뭔가 기시감이 오는가? 어쩌면 당신과 똑같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며 사는 삶. 어느 날 라디오에서 말기 암 환자 전문의가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모든 이들은 생의 마지막에 인생을 결산해 본다고. 우리의 주인공 TC도 자신의 빚을 떠올렸고 그 빚을 갚으려면 3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월급쟁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바로 시간을 파는 것이다. 물론 아내는 남편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어떤가, 어디서 들어 본 스토리 같지 않은가.


이제 TC가 팔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자. 바로 시간이다. 병원에서 소변 검사를 할 때나 사용할 법한 플라스크 용기에 시간을 담아 팔겠다는 것이다. 엉뚱한 의뢰에 귀찮은 공무원들은 TC가 필요한 것들을 다 통과시켰다. 설마 진짜 그런 물건을 팔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TC는 굴하지 않았고 직진했다. 차마 이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은 못하는 대신 친구의 가게에 물건을 진열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단돈 1.99$에 살 5분의 T(시간)를 살 수 있다. 사실, 빈 용기에 불과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이 상품을 어떻게 쓰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설명을 드리지요. 이 한 통을 제 가게에서 삽니다. 용기를 열면 5분의 T를 갖게 되는 겁니다. 물론 원하실 때 5분을 소비하실 수 있지요. 이 5분은 바로 구매자의 것이며 다른 누군의 T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T는 원래 구매자에게 없던 시간이지만, 이 제품을 사시면 그 5분은 다시 구매자에게 귀속되는 셈이죠. 어디에 있든, 뭘 하고 있었든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86쪽)


중요한 건 구매자에게 5분은 귀속되며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상관없다는 것. 그러니까 5분의 구매자는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눈을 감거나, 화장실에 갈 수 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5분의 시간. 그 5분이 얼마나 간절한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5분의 단잠, 5분의 여유, 업무를 미룰 수 있는 5분. 그렇다. 이제 TC는 5분의 용기가 아닌 더 큰 용량의 용기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시간을 점차 늘어난다.


5분의 여유와 휴식은 점점 커지고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당장 업무를 봐야 하는데 담당자가 자신의 시간을 구매했으니 일을 할 수 없다고, 뒤로 미루겠다고 하는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된 시간 구매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 사회적 문제였다. 급기야 구매한 T를 소비해야 할 소비 기간까지 정해졌다. 물론 전 세계적인 열풍으로 이어졌고 35년짜리 시간도 판매가 되었다. 너도나도 35년짜리 T를 사기에 급급했다. 나만 유행에 뒤처질 수 없다는 일종의 동조심리가 같은 거라고 할까.


어떤 나라에서 T가 든 컨테이너는 며칠 안에 사회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대안 가치가 되었다. 다른 모든 것은 가치가 없었고 원하는 이도 없었다. 부동산이 곧 가치가 급락할 자산이 되리라는 점을 직감하기란 쉬웠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처분하고 싶어 했다. (144쪽)


T를 사기 위해 아파트는 담보가 되었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인가? 마냥 웃기고 재미난 웹툰과 소설이 될 수 없다는 걸 직감했을 것이다. 보통 남자((TC)가 사는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 이 소설은 경제 소설이다. 소설 속 ‘대차대조표’나 ‘자유 주식회사’, 주식, 광고는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경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의 주인은 누구인지 묻는다. 현재 누릴 수 있는 기쁨, 여유가 아닌 미래에 저당잡힌 삶을 위해 살 거냐고 말이다. 진정한 삶의 가치를 위해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현 체제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있지만 때로 우리를 과도하게 노예화하며 체제를 지탱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에게 고통을 야기한다. 부富를 기준으로 한 국가 간 순위는 우울증을 겪는 국가들의 순위이기도 하다. 현대를 살고 있는 세계 시민들은 우리가 자신에게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절실한 필요를 느끼고 있다. (177쪽, 저자의 말 중에서)


오직 나만이 계획하고 쓸 수 있는 시간과 현재를 사는 삶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한 적이 언제였던가. 남들과 비교하며 떠밀리듯 살아온 삶이 도착할 미래는 행복할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은 자신의 몫이니 시간의 노예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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