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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고요해진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와 당신, 둘 사이에만 고유한 침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요란해진다. 나와 당신의 관계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고요하고 은밀하면서도 끝나지 않을 소란으로 가득하다. 처음 만난 왕딩궈의 장편소설 『가까이, 그녀』는 은밀하고도 고요한 사랑으로 다가왔다. 십 대 때 대만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작가가 절필 후 20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내게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가까이, 그녀』란 제목과 꽃으로 입을 가린 표지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가까이, 그녀’란 누구일까. 짐작대로 아내일까, 아니면 가까이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그녀일까. 아니면 사랑과는 무관한 그녀일까. 입을 가린 꽃은 무엇 의미하는 것일까.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걸까.
소설은 작년에 57세의 생일을 맞은 남자, 그러니까 올해 58세인 화자인 ‘량허우’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신의 근황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량허우는 감옥에 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신혼부부인 아들의 집에 잠깐 있다가 따로 나왔다. 아들 ‘뤠이슈’와 사이는 좋지 않다. 량허우가 감옥에 간 이유,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다. 그렇다. 아내가 죽었다. 나는 아내가 무척 그립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량허우’는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에 대해 들려준다. 현재 자신의 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은 며느리와 간병과 살림을 봐주는 아윈이 있다. 물리적으로 가까울 뿐 소원한 사이다. 기억 속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시계점에서 일할 때 가게에 들어온 아내,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짝사랑한 종잉. 그녀들 가운데 가장 궁금한 건 스물한 살에 만난 아내 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쉽사리 그녀의 부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공들여 아주 천천히 들려주기로 작정한 것 같다.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일찍 시계점에 일을 한 사정과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이 아닌 시계점으로 돌아온 사연. 놀랍게도 감옥에 찾아온 종잉과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까지 상세하게 전하지만 쑤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그 편지를 통해 차별받은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애틋함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전한다. 그가 살아온 시대, 아니 그 가까이의 그녀들의 삶은 억눌림이 있었다. 가족과 사회는 그녀들을 억압했다. 아내 쑤도 그랬다. 아버지와 오빠들의 폭언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했다. 종잉도 다르지 않았다. 학생운동을 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헌신했고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했다. 그녀들의 삶은 없었다.
어쩌면 쑤는 돈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마음으로 량허우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쑤가 사랑한 사람은 브라질로 이민을 간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량허우는 달랐다. 쑤를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 그 방식을 몰랐다. 쑤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간극이 컸던 것일까. 그것은 아들 ‘뤠이슈’로 이어졌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험한 바에 의하면 돈을 지불하고 시계를 산다고 해서 시간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시계를 착용하지 않아도 모두와 똑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시계를 착용함으로써 갖게 되는 일종의 완전성에 있다. 그건 마치 부드러운 미소가 얼굴에 광채를 더해주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 게 아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202쪽)
소설에서 시계점과 시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량허우에게 삶의 공간은 집보다는 시계점이었고 그곳에서 아내 쑤를 만났기 때문이다. 쑤가 아버지에게 가출 후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의미로 선택한 롤렉스 시계와 스위스 장인의 마지막 작품으로 량허우가 아내에게 선물한 스위스 시계는 특별하다. 아내는 떠났지만 그 시계를 통해 그녀와의 시간을 간직할 수 있기에.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런 이유로 시계를 선물하는 게 아닐까.
엉킨 실타래 같은 삶을 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엉킨 부분을 싹둑 잘라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엉킨 부분을 푸는 동안 실로 무엇을 짤까 계획할 수도 있다. 잘라냈으면 존재 불가능한 계획. 량허우가 종잉에게 편지를 씀 자신의 삶을 돌아본 시간이 그렇다. 아들에게 변명이나 변호를 하지 않았던 것도 아들이 엉킨 부분을 찾아 풀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닐까.
상대로 인해 고통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건 진정으로 사랑이 없었다는 의미다. 아는 것도 없지만, 또 무엇이든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251쪽)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쑤의 삶이 곧 나의 삶이기에 죽음 역시 나의 죽음이라는 것. (281쪽)
량허우의 삶과 사랑처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소설이다. 쑤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끝까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잘 짜인 소설이다. 쑤를 향한 량허우의 사랑은 애절하고 애처롭다. 사랑의 소리와 몸짓을 조금만 키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량허우가 되어 가까이에 있는 그녀들과 마주한다. 가만히 그녀들을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삶을 선택하고 살아온 그들이다. 도움을 받을 이가 없어 안타까운 시절을 살아낸 그녀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어 본다. 입을 가린 꽃을 치우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량허우가 사랑한 쑤의 목소리, 지금 곁에 있는 종잉의 목소리를 상상해 본다. 종잉과 량허우가 사랑을 말할 때 세상은 고요하고 은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