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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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재밌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기를 들을 때 반짝인다. 똑같은 이야기도 상관없다. 깊은 밤 잠자기 전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오직 아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클래라와 수지가 기다리는 아빠는 바로 마크 트웨인이다.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이란 유난스러운 동화는 마크 트웨인의 아이들에게 들려준 16쪽의 미완성 원고가 그 시작이다. 긴 시간 잠들어 있던 기록이 칼데콧상 수상 작가 필립 스테드와 삽화가 에린 스테드에 의해 완성되었다. 어쩌면 이 책에 대한 기​대는 바로 마크 트웨인이 아닐까 싶다.

​동화 속 주인공 ‘조니’는 외로운 소년이다. 할아버지가 계시지만 가난하고 괴팍하다. 그런 조니에게 친구는 ‘전염병과 기근’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닭 한 마리뿐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닭을 팔아서 먹을거리를 사 오라고 시킨다. 유일한 친구를 팔아야 하는 운명이라니. 시장에서 조니는 한 노파를 만나 그녀에게 ‘전염병과 기근’을 부탁하고 씨앗을 받는다.

 

 

“이 씨앗은 엄청 힘든 상황이 왔을 때에만 심어야 해요. 심고 나서는 확신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요. 봄에 씨앗을 심고, 동이 틀 때와 밤 12시 정각에 물을 줘요. 항상 씨앗을 돌봐주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요. 불평하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꽃이 피면, 그 꽃을 먹어요. 그 꽃이 당신을 배부르게 해 줄 거고, 당신은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을 거예요.” (59쪽) 

 

짐작했겠지만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고 조니가 ​받아온 씨앗을 먹고 그만 죽음을 맞는다. 조니는 노파의 말대로 열심히 씨앗을 키우고 그 꽃을 먹고 신비한 능력을 갖는다.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조니의 유일한 친구가 닭이었던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은 아닐까.

 

인류를 세상 온갖 부질없는 다툼으로부터 구원해 낼 절호의 한마디를, 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니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와서 기뻐.”(88쪽)

 

 

조니는 동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도난당한 왕자를 찾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각자의 능력을 발휘한 동물들과 왕자를 찾는다. 행복한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 흥미로운 건 필자인 필립 스테드와 마크 트웨인이 동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나누는 대화다. 그리고 이곳(현실)과 그곳(동화 속 세상)에 대한 구분이다. 그건 마치 어른과 아이의 세상에 대한 것과 같게 느껴진다. 상상력도 사라지고 친구의 소중함도 잃어버린 어른. 조니로 대표되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아이의 모습.왕자를 구하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조니. 그들은 왕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다르다는 건 인정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이곳에서는 조니 나이의 소년이 돈을 다발로 모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뭐든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곳, 조니가 살고 있는 땅에서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딱 한 가지만은 살 수가 없는데, 그것은 바로 진정한 친구이다. (…) 끊임없이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리는 인간을 구원해 낼 절호의 말을. 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니는 말했다. “여러분을 알게 돼서 정말 기뻐요.” (152쪽) 

 

짧은 동화에서 두 딸을 위해 매일 이야기를 만들었을 아빠 마크 트웨인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 사랑에 필립 스테드의 상상력과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진 동화는 세상의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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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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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내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읽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약간의 정보를 갖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모두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장르물이나 추리소설 경우에는 정보가 독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전의 경우는 다를까?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에 대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내 경우 이 소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시작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울프의 소설이 그러하긴 하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올랜도는 올랜도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놀랍게도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우리의 주인공 올랜도는 16세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영국의 귀족 신분으로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척이다. 모두가 그를 흠모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모두 남자라고 알고 있던 그가 여성이 된 것이다. 이후로 그는 여성으로 불멸의 연인처럼 거의 300년 가까이 살아간다. 울프가 1928년에 쓴 소설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아름다운 소년 올랜도에게 당연히 사랑이 찾아온다. 이전과는 다른 사랑이었다. 러시아 공주 사샤와 사랑은 올랜도에게 전부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배신하고 만다. 올랜도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하인과 가정부는 그를 걱정한다.

 

인생이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소량씩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로 뚫고 들어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바꿔버리는 이 이상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62~63)

 

이별과 배신의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그는 이제 달라졌다.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왔다. 귀족이라는 신분을 적극 활용하여 연회를 열어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올랜도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었다. 올랜도는 자신만의 글()을 원했고 한 시인과 만났다. 그에게 시와 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세속적인 욕망에 좌절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올랜도는 여인들의 추종의 대상이지만 사랑의 실패는 그에게 환멸을 안겨줄 뿐이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가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특사로 가기를 청한다.

 

새로운 곳에서 대사로의 삶을 시작하는 올랜도. 터키에서 대사의 역할도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른 대사를 만나고 국가의 주요 인사와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외교관의 의무로 당연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은 그의 신분을 공작으로 올려놓았고 수여식이 끝나고 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녀가 여자가 되었고 대사가 아닌 집시의 삶을 선택한다. 집시들과 자연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행복했지만 그곳에 정착할 수는 없었고 떠나야만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삶에서 올랜도의 남은 삶은 쭉 여성이었지만 그에게는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존재했다고 봐도 좋다. 어떤 상황에서는 남성성이, 어떤 상황에서는 여성성이 나타났다. 환경에 적응하듯 말이다. 우리 안에 내재된 성, 그것은 하나로 국한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올랜도는 여자가 되었다-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점에서는 올랜도가 남자였던 이전과 꼭 같았다. 성의 변화가 비록 그들의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123)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저 올랜도가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그 뒤로는 쭉 여자였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124)

 

누군가 궁금할 것이다. 우리의 올랜도는 어쩌다가 여자가 되었을까. 대단한 사고가 발생했던 건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여자였던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건 그(그녀)가 올랜도란 사실이다. 어떤 성을 가졌냐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 말이다. 어쩌면 울프는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글쓰기다. 올랜도가 끊임없이 쓰는 원고 말이다. 16세 소년이었던 올랜도가 쓰기 시작한 참나무는 항상 그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움직이게 한다. 올랜도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원고는 벌써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시 참나무의 원고였다. 올랜도는 이 원고를 벌써 여러 해 동안 위험한 여건에서도 지니고 다녀, 여러 쪽에 얼룩이 졌고, 어떤 것들은 찢어져 있었고, 집시들과 함께 살 때는 종이가 없어서, 여백에 빼곡히 써넣고, 쓴 것에 줄을 긋고 해서, 원고는 마치 꼼꼼하게 짜깁기를 해 놓은 천 조각 같았다. 책의 첫 장을 열어보니, 그녀 자신의 소년다운 필체로 적은 1586년이라는 날짜가 보였다. 거의 300년간 이 작업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208)

 

올랜도는 협정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지극히 행복한 상황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한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 (234)

 

소설에서 올랜도의 삶은 192836세까지 다룬다. 300년 가까이 산 인물이기에 소설을 통해 영국의 시대적 변화도 만날 수 있다. 화려했던 엘리자베스 1, 빅토리아의 최전성기, 산업혁명 그 후 습한 영국의 일상까지 세세하게 그려냈다. 울프는 장난삼아 쓴 소설이라 말하지만 올랜도의 성격,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작정한 듯) 보여준다. 옷차림, 올랜도의 집,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한 묘사,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등장하는 것들(기차, 백화점, 서점)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올랜도는 정말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어렵고 난해한 울프의 세계, 그럼에도 그 깊이를 알고 싶다.

 

*소설에서 올랜도는 변화한다. 그 변화(성장)을 위한 장치로 잠이 등장한다. 사샤와의 이별 후 올랜도는 깊은 잠(일주일 동안)에 빠졌고, 터키에서도 여성으로 변화하기 전 술에 취해 잠에 빠졌다. 집시의 생활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도 올랜도는 잠에 취한다. 아들을 낳기 전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잠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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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5-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정보도 없이 읽었다가 낭패를 너무 많이 봤네요.... 약간이라도 알면 좋은거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당하고도 정보없이 읽네요. 습관이 참 안고쳐져요ㅎㅎ

자목련 2019-05-21 17: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떤 책은 너무 많은 정보에 실망하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리뷰도 책의 정보에 속하는 거라. ㅎㅎ

coolcat329 2019-05-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프의 책은 단 한권도 안읽고 또 모르지만 이런 환타지 소설을 썼다니 몰랐네요. 性이 바뀌다니 재밌고 무엇보다 300년간 살면서 시대를 다 경험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시대별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어 유익할듯도 싶습니다. 언젠가! 꼭 읽도록 기억해두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19-05-21 17:58   좋아요 1 | URL
네, 말씀처럼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 싶어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소설이었습니다. coolcat329 님,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로링 2019-06-3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먼저 본 케이스라 책을 봐야할지 또다른 고민이네요..영화는 진짜 꼭 보세요~틸다 아닌 올랜도는 상상하기 힘들정도예요..영상도 너무 멋지고..
 

 

봄의 끝에 다다랐다. 아파트 옆 작은 숲에는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여름이 왔다는 말이다. 하긴 나도 반소매 옷을 입기 시작했고 그 위에 얇은 카디건 같은 건 더 이상 입지 않는다. 조팝나무는 눈처럼 꽃을 피웠고 아담한 찔레꽃도 한창이다. 하나의 계절이 지배했던 날들이 사라지는 중이다.

 

봄을 앓지는 않았는데 우울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기운의 근본에 자리한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그것을 변형시킬 수는 없다는 게 더욱 안타깝다.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 우울의 근원은 모두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의 이름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말이다. 누군가의 발병,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사고. 반갑지 않은 소식을 매일 접하는 세상이라는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하루를 맞이하면서 오늘을 어떻게 보낼까. 계획하고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일까. 저마다 간직한 어떤 것들을 곁에 두고 살면서 바라보는 시간이 적을뿐이다. 어떤 것에 시선을 두고 오래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울한 마음만 바라본다면 하루 종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상을 짓게 된다. 자꾸만 신경을 끄는 그것을 잠시 서랍에 넣어두었다고 생각해야겠다.

달려오는 여름과 즐겁게 지낼 생각으로도 바쁜 날들이 시작될 터. 여름과 잘 어울리는 제목처럼 상큼한 맛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레몬』은 권여선의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 궁금하다. 하재연의 시집은 처음에는 좋은 줄 모르다가 나중에 그녀만의 세계가 얼마나 근사한지 알게 된다. 그러니 『우주적인 안녕』은 안녕, 걱정이나 탈이 없는 안녕(安寧),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엊그제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을 생각했다. 나만의 선생님이면 좋을 그런 분. 올봄에는 젊은 할머니가 되셨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선물에도 행복해하시는 그런 모습을 오래 보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생님인 나의 친구. 새벽까지 과외를 하는 친구를 떠올린다. 내가 보낸 문자에 친구는 “안 그래도 아카시카 향기 맡으며 니 생각했는데” 라며 답을 보냈다. 아주 짧은 순간, 우리는 서로를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완벽한 충만함을 느낀다. 우울은 접어두고 친구, 선생님, 그리고 나의 당신들에게 안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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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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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의사는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간주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화자인 는 그저 상한 음식을 먹었을 뿐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오랫동안 방치된 냉장고 속 음식을 살기 위해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안의 독이 나를 이렇게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회복되는 과정에 같은 병실의 기묘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바로 조몽구란 남자의 인생을 지배하고 함께 살아온 독에 대한 이야기다.

 

‘독’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마비, 살인, 공포, 죽음이란 말이 따라온다. 우리는 위협하는 존재(독거미, 독버섯, 독사)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독을 몸에 지닌 남자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조몽구는 자신을 그렇게 설명한다. 작가인 아버지 조영로에게서 이어진 독과 그걸 해독하는 유일한 약인 어머니 고운선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이어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가진 어머니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에 더욱 자신에게 죄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어려서부터 두통으로 힘겨워했던 조몽구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달래주는 존재도 어머니였으니까.

 

조몽구는 두통 때문에 항상 이마에 대고 있어야 했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딱히 방법을 없었고 이로 인해 어린 시절 학교에서 친구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얼핏 주인공 조몽구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일 뿐 독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삼촌 수호의 등장으로 소설은 독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반대의 개념인 약이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사실 이 소설은 무척 어렵고 복잡하다. 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떠나서 그것을 몸으로 직접 연구하고 실험을 하는 수호와 그런 수호를 통해 자신 안의 독에 대해 확신하는 몽구의 욕망과 심리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수호가 몽구에게 인생을 설명하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공감하면서도 말이다.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100)

 

소설엔 독을 연구하고 그것에 빠져들거나 스스로 독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것에서 약을 발견하는 삶을 사는 인물로 수호뿐 아니라 몽구와 운명적으로 연결된 부모와 유약하게 태어나 갖은 질병으로 삶 자체가 힘든 자경과 그의 오빠 정우, 술이라는 독을 품고 살아온 아버지를 독주로 인해 죽음으로 몰고 간 군대 동기 광수,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보편적인 삶이 아닌 특수한 환경에서 자랐다. 자신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독을 품거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약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 해. 하지만 에 대항해서 우리를 지키게 하는 도 얼마든지 있어.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거야. 너는 늘 두통에 시달리느라 거기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지.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순간도 멍하니 보내는 일이 없이 항상 깨어 있는 거야. 네 두통은 너를 마비시키지 않고 각성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는 독이자 약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198~199)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소설은 더욱 복잡하게 독을 보여준다. 독으로 인한 삶의 파면과 그럼에도 독에 매몰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라고 할까. 소설을 읽을수록 화자인 독자는 가 조몽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의 몸에 가득한 독이 빠져나가는 동안 경험한 환각이 만들어낸 인물 혹은 괴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으로 두렵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독과 약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수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다만 독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타이밍이 다를 뿐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520)

   

보편적이지 않은 독이라는 주제를 독특하고도 폭넓게 파헤친 소설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산재한 독을 생각한다. 모르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독,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치명적인 독.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까다로운 소설로 남을 듯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미묘한 여운이 남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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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방문한 블로그의 글을 읽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글에서 나를 발견한 것이다. 거기 내가 있었다. 내가 처한 환경과 심경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 글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말이다. 나는 글이 주는 힘을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다. 어떤 목적을 향한 글이 아니더라고 그저 하나의 습관에 불과한 글이라도 쓰기를 소망한다. 그러니 시인의 산문과 시를 함께 마주할 수 있는 조각의 유통기한을 만난 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이지혜 시인의 시를 만난 적은 없다. 산문집 그곳과 사귀다를 읽었을 뿐. 하나의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산문이라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각의 유통기한40편의 시를 위한 40편의 산문이 있다. 하나의 시와 하나의 산문이 짝꿍이 된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거나 어떤 감정을 추스르고 달래고 어루만져 기록하거나 그대로 두는 글. 친구와 연인과의 관계, 혹은 그들과의 다툼과 이별, 그리고 여행처럼 지나간 일상들을 마주한다. 마치 내가 이별한 것처럼, 마치 내가 떠나온 것처럼 마음을 당기는 글이 있었고 지나온 내 모습의 조각을 발견하는 것 같은 글도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멍하니 앉아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 그때 내가 다르게 했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지 않았을까 하며 후회하는 어느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분명 저자의 감정이며 일상일 텐데 말이다.

 

누구나 완성되지 않은 마지막 조각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끼워 맞출 수는 있지만 맞추지 않는, 그 한 조각을 맞추게 되면 마지막 기대마저 현실이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조금 늦게 알게 됐다. 억지로 퍼즐을 맞추려던 나의 노력이, 억지로 기억 하나를 잃게 하는 일이었음을. 그냥 내버려 두었을 때 어쩌면 약간의 착각과 환상이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는지도 모르는데. (산문빈자리의 거리중에서)

 

그때는 그때여야 한다고

그때는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었다 (서로가 그때에서 사라질 때일부)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 일기처럼 써 내려간 산문이 하나의 시로 이어졌다. 시를 쓰기 위한 워밍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일기 같았고 편지 같기도 했다.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 떠오르며 수많은 감정을 정리하는 순간의 고요가 느껴진다고 할까. 소설가의 창작 노트를 수록한 단편집이 즐거운 것처럼 시를 쓸 때의 배경을 상상할 수 있는 경험을 안겨준다. 40편이 시와 산문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더욱 와닿는 시와 산문은 문장에 대한 것이었다. 뒤죽박죽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가라앉은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할까.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었다.

 

문장의 힘, 모든 문장이 같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 안에 있어서였다. 추억이 되려고 쓴 문장에 자신이 더 아프다는 소설가처럼. 매일 글을 쓰지만 가끔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쓰는 건지 어떻게든 써야 해서 쓰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도 쓰지 않는 것보다 나은 이유는, 분명 감정을 묶어둔 문장으로 살아갈 날들이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문장 속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흐르고 있다. 더 많이 쓰고 싶다. 어차피 잊히지 않는 시간 속을 사는 우리니까. (산문 문장의 힘중에서)

 

움직이는 감정을

묶어두는 것이

문장이라던데

 

문장의 세계란,

흐르는 것들 사이에서 흩어지는

우리에게는 달콤한 곳

 

‘4월에는 함께 하자

우리가 들어간 세계의 이름

고정된 세계에서는

흐르는 시간도 다시 고정되었다

 

이 세계에서 잘 살고 있는 걸까요

흐르지 않는 것이

가장 잘 흐르는 거겠죠

 

흩어진 것들이 다시 만날 때쯤

7월이 되었다

거짓말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입구만 있을 뿐 출구가 없었고

그런 세계에서는

계절이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움직이는 감정은

굳어지지 않으려던 계절

 

문장의 세계를 사는 법 (문장의 세계전문)

 

시를 사모하는 이에게 시를 쓰고 싶은 이에게 반가운 책이 아닐까 싶다. 시가 되는 순간과 마주하는 책, 하나의 생각 조각을 어떻게 발전하는지 한눈에 그 과정을 볼 수 있으니까. 나만의 시를 쓸 수 있는 무모한 용기로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40편의 시가 유독 만남과 이별, 사랑, 관계, 시간이라는 주제로 압축된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독자에게는 신선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그런 시를 찾고 있었던 이에게는 더욱 끌리는 책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급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는 만남이 있단 것을. 생각보다 아주 작은 것이 인연의 속도를 정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연마다 제각각의 속도로 색깔로 이어진다는 것, 그래서 인연인 거다. (산문우리의 암호중에서)

 

불꽃이 틘다고 안심할 것도, 나뭇잎이 멈췄다고 불안해 할 것

도 없으니. 차차, 두고 봅시다. 우리 사이에 어떤 계절이 들어올

. 어떤 노래가 스밀지, 어떤 술잔이 오고 갈지 모르니까요.

, 기다립시다. 생각보다 아주 작은 것들이 우리 둘을 흔들지

도 모르니까요. 오늘 아침 보잘 것 없다고 내던진 것이 어쩌면

우리를 바꿔놓을지도 모르니까요. 차차, 혼자인 듯 그러나 혼자

가 아닌 듯 그렇게 알아갑시다. 허허, 차차는 참 외로운 말이지

만요. 흐흠, 차차는 참 조건 없는 말이지만요. 후후, 차차는 참

맹맹한 호흡이지만요. 혹시나 설마 혹시나 차차, 춤을 추다가도

못 만나면 다른 리듬으로 만나겠죠. 어쨌든, 오늘부터 차차! (차차전문)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정하고 시집을 읽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어쩌다 보니 시집을 집어 든 경우가 훨씬 많다. 어딘가에서 본 한 구절을 찾느라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 구절을 찾느라고 읽었던 시절이 더 많다. 그 시를 찾느라고 읽게 되는 시집,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좋아서 자꾸만 읽게 되는 시집. 내가 먼저 읽지 못했던 시를 누군가 먼저 읽고 들려주어서 찾게 되는 시집이 더 많다. 시집 전체가 다 좋았던 적도 있지만 몇 편의 시가 좋아서 시집을 소장하게 된 경우도 있다. 시란 참으로 놀라운 힘을 지녔기에 그 힘의 능력을 믿기에 여전히 시집을 찾고 시를 읽는다. 최근에 가장 나를 흔드는 시집은 박소란의 한 사람의 닫힌 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시인의 시집이다. 단지 제목에 이끌려 곁에 둔 시집이다. 그리고 이런 시에 꽂혀 계속 반복해서 읽는다. 어쩌면 나는 이 시를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것을 잃은 후

이제 나는 그 어떤 것도 잃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잃을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어느 일요일과 같이

늦잠에서 깬 뒤 머리핀을 찾아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 알게 되었지

살면서 머리핀 하나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가

기다렸다는 듯 머리칼은 흩어지고 조금의 아픈 기색도 없이

아 따분해 다시금 잠들고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잃어버렸다, 는 말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을 잃고 난 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라진 그것을 아주 갖지 않는다는 것

갖지 않고도 산다는 것 그러므로

이제 나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게 되었다

머리핀 아니라 해도

 

내게는 잃은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이 아니라 해도, 내가

아니라 해도

 

세상에는 내가 너무 많고

 

어느 일요일 아침

늑장을 부리며 눈을 뜬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라질 것이다 수없는 내가 그래왔듯

 

나는 또 살게 될 것이다 (잃어버렸다전문)

 

어느 시절에는 소설의 한 문장에서 매우 큰 위로를 받았다. 그 문장을 읽고 외우며 그것에 기대어 살기도 했다. 어느 시절엔 이처럼 우연으로 다가온 한 권의 시집에서 이런 시를 발견하고 울컥한다. 잃어버린 물건을 떠올리다가 내가 잃어버린 사람의 흔적을 뒤적이다가 멍한 시간을 보낸다. 뒤늦게 그 물건을 발견하게 되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러나 그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반갑지 않거나 외면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지나칠 수도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 또한 살게 될 것이다. 시를 읽으며 그런 보통의 일상을 견디며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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