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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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고 수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지금 여기가 얼토당토않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사회는 좋아진다. (218쪽) 


 어떤 일이든 그 일의 주체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대체로 나쁜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타인의 경우 동요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거나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뉴스에 나온 대로 믿거나 내게 일어나지 않은 것에 조용히 안도할 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벌어지면 격하게 감정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층간 소음에 대해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밤늦게 쿵쿵거리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래층에서 층간 소음 때문에 벨을 눌렀을 때 너무도 화가 났다. 우선 죄송하다고 조심하겠다고 인사를 하고 소음 발생 시간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이랬다. 항상 그렇다는 것이다. 뛰는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답을 할 수 있을까.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답은 더욱 놀라웠다. 아래층에서 관리실에 전화를 했고 괸리실은 그것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아래층 사람이 올라온 것이다. 항상 층간 소음으로 힘들다는 아래층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관리사무소에 더욱 화가 났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 불쑥 그때 일이 떠올라 글이 길어졌다. 층간 소음에 대해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들의 인식에 놀라웠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약자에게는 강하게 강자에게는 약하게, 대한민국의 인식이 아닐까 싶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의 점거 현장을 다룬 뉴스를 보면서 씁쓸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 국회의원의 특혜 응원 논란도 그러했다. 지켜야 하는 규칙을 무시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꼼수를 부리는 기업.

 

 오찬호의 글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우리 사회의 병폐, 그러니까  권력과 힘을 내세워 여전히 이어지는 차별, 곳곳에 만연한 혐오,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예외적이라는 말로 무시하는 기준.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현상이니 그 대책을 이야기하라고 제안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단 한 번에 좋아질 수는 없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다 경험했다. 틀렸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바로 그것을 표현해야 하며 경청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좋은 책이며 알찬 책이다. 많은 이들이 읽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읽고 공부하는 방법, 어렵지 않다. 쉽고 친근하게 말하는 사회학자 오찬호의 책으로도 충분하다.

 

 공감의 시작은 타인의 상황에서 쉽사리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감의 실천은 “나도 네 마음 안다”는 기만적인 사람이 되길 거부하고, 아픈 것도 서러운 사람에게 “어쩌다가 그랬어?”라고 묻는 황당한 사람이 되지 않는 거다. “내가 감히 너의 슬픔을 알 순 없겠지만, 노력할게”라고 말하면서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성찰적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입으로만 ‘공감’을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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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1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이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치려고 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어떤지를 더 잘 알면 좋겠네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아야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의 잘못만 보려 하지 않아야겠네요

밑에 층에서 늘 소리가 들렸다고 하다니, 소리가 난다고 해서 꼭 바로 위층에서 나는 건 아닐지도 모를 텐데... 저도 잘 모르지만 그럴 것도 같아요 그 뒤로는 어땠는지...


희선

자목련 2019-02-15 17:15   좋아요 1 | URL
우선은 나부터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소음에 대한 민원으로 밤에는 세탁기를 돌리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아요. 이사를 간 것 같기도 하고요. ㅎ
 
콜센터 -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광화문글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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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의 감정을 읽은 일은 어렵다. 표정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를 제외하고는 웃는 얼굴로도 화를 내는 이가 있으니까. 그럼 얼굴을 전화기 뒤에 숨기고 목소리로만 전달되는 감정은 읽기가 수월할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막말을 하고 화를 내는 이들은 너무나 많다. 목소리를 상대하는 일을 하는 이, 우리는 그들을 감정노동자라 부른다. 김의경의 『콜센터』는 제목 그대로 콜센터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프랜차이즈 피자 콜센터에서 주문을 받는 일, 명료하고도 단순한 일처럼 보이지만, 콜센터의 세계는 최악의 고객, 진상을 상대하는 일이다. 소설은 스물다섯 동갑내기 다섯 명(용희, 주리, 시현, 형조, 동민) 각자의 시선으로 그곳의 민낯을 보여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기다리고 유학 자금과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곳을 선택했다. 업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원하는 일을 준비하는 동안 말 그대로 잠깐의 아르바이트로 콜센터는 나쁘지 않았다. 콜센터의 상담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업무는 피자에 관한 모든 억지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쉴 틈 없이 걸려오는 전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고 실장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잠깐 쉬는 시간에 옥상에 올라와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에게 농담 한 마디를 건네는 게 위로라면 위로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털어놓지 않는다. 자꾸만 면접에서 떨어지는 용희는 취직한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속상하고 대출까지 받아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시현은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나 불안하다.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가 부담스러운 형조는 공부를 하면서 자꾸만 주리에게 신경이 쓰인다. 콜센터를 그만두고 배달 일을 하는 동민은 시현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고 주리는 콜센터에서도 서로를 경쟁하며 비교하는 게 너무나 화가 난다. 모두 잠깐만 하고 그만두리라 마음먹었지만 콜센터에서 발을 빼기란 쉽지 않았다. 그곳을 벗어나야만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다만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청춘 파산』을 통해 만난 작가는 이번에도 적나라하게 콜센터의 실상을 그려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고민을 들려준다.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된 소설, 독자는 깊게 빠져든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저마다의 꿈을 위해 애쓰는 모든 청춘들의 마음, 때때로 무너지고 때때로 좌절하면서도 뭔가 해내고 싶은 그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디 콜센터뿐일까? 그곳이 어디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에게 모두 정착역이 아닌 정류장이라는 걸 알고 있다. 어떤 이는 이곳의 정류장에서 다른 곳의 정류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정류장을 거쳐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안타깝다.

 

 형조에게 콜센터는 정류장이었다. 다른 곳에 닿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 다른 곳이란 ‘더 좋은 곳’이었다. 더 좋은 곳에 가려면 정류장에서 머무적거려서는 안 된다. (152쪽)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자존감이 무너졌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아마도 나는 그들을 통해 어느 시절의 나를 발견했던 것 같다. 콜센터와는 반대로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신문 구독에 대한 안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화를 내는 이들이 많았고 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생활 침해였다. 방학 동안만 하는 일이었지만 정말 하기 싫었다. 소설 속 다섯 명의 청춘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묻는다.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야 하는지, 꿈을 향해 나가야 하는지 말이다.

 

 현실과 이상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을 놓아버리면 고단함이 사라질까. 아니다. 언제 그곳에 닿을지 알 수 없어도 목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나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청춘의 힘은 아닐까. 그 시절의 지나 온 나는 청춘의 나날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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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09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로는 얼굴을 안 봐서 이런저런 말을 쉽게 할까요 전화 받는 사람을 생각하고 안 좋은 말은 안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일 하는 사람 힘들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힘들더라도 살아가야 하겠지요 살다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다고 하지만,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이 없다 해도 그저 자기대로 사는 것만 해도 괜찮지요


희선

자목련 2019-02-12 14:22   좋아요 1 | URL
눈 앞에 상대가 없으니 그런가 싶다가도 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할까 싶었어요.
희선 님,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가까운 곳이 봄의 기운이 있는 듯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20
이제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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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의 첫 시집에서 느꼈던 놀람과 감탄. 그리고 이제는, 돌보는 말과 돌아보는 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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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당연한 말이다. 작가의 자리가 일상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기에 그가 발을 담은 그곳은 소설이 탄생하는 곳이자 그의 일상이 이어지는 곳이다. 뜬금없는 생각을 전하는 건 고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집『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70년대의 문화, 사회의 흐름, 작가의 공간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족, 이웃, 그리고 그가 바라본 세상을 말이다. 그 시대의 실상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부모와 친척이 살아왔을 그 시간을 조금은 들을 수 있었기에 48편의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이 내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가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으로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로 쓴 소설을 통해 나는 그 세상을 본다. 쉽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문장 안에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너도 나도 아파트를 선호하고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겼다.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작가의 대단한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졌다. 추운 겨울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거실 창에서 퍼지는 환한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48편의 짧은 소설은 마치 거울 같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 한 권으로 1970년대의 연애와 결혼, 고부갈등, 여성의 사회 진출, 아파트 열풍으로 인한 단절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건 「아파트 부부」, 「열쇠 소년」, 「열쇠 가장」, 「열쇠 부부」, 「아파트 열쇠」로 이어지는 아파트에 대한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풍자였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생활공간이 바뀌면서 열쇠만 있으면 집을 비워도 걱정 없었고 가족 구성원 없이 혼자서도 편안하게 살아가는 그 시대의 모습은 어쩐지 웃음이 나면서도 쓸쓸했다. 아파트 창으로 비친 옆 동에 사는 이들의 모습도 똑같이 닮았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열쇠 대신 도어록과 번호키라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시작되면서 늦어지는 결혼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 여전히 남아 있는 남아선호사상, 집안일은 모두 여성의 몫으로 정한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결혼 적령기가 사라지고 비혼이 늘어가고 있지만 자녀가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간절하고 직장에서의 남녀 불평등과 육아와 가사노동의 분담도 그렇다. 더 좋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때로 건조한 모래바람이 가득한 사막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성공을 위해 살아온 이들, 성공하면 행복할 거라 맹신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현실은 너무도 메마르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쑥버무리 받아먹은 이웃이 틀림이 없는데도, 슈퍼마켓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모른 척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잘 닫히지 않아 늘 입을 벌리고 있는 공동 쓰레기통에 곰팡이 난 쑥버무리가 한 무더기 버려진 걸 봉례는 보고 말았다. 그날 봉례는 퇴근한 남편에게 왈칵 안겨 가슴을 쾅쾅 치면서 울부짖었다.

“여보, 고작 이게 성공이란 말에요? 난 싫여, 성공 물려줘! 물려줘!” (「성공 물려줘」중에서)

 

 이웃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보건복지부의 우편물을 받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 다정한 인사는커녕 짧은 눈 맞춤을 거부하는 일상, 마우스 클릭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가족 간의 대화도 줄어드니 사소한 고부 갈등이나 말다툼을 통해 애정을 나누기도 어렵고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일도 어렵게 돼버렸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기에 이사를 오면서 마주한 이웃에 대한 인상과 아픈 이웃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화자의 간절함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사 오는 날이었다. 옆집에 산다는 여자가 인사를 왔다. 나는 반갑고 한편 놀라웠다. 아파트에도 이웃이란 관념이 남아 있다는 게 반가웠고, 그 여자의 미모가 놀라웠다. 중학교 다이는 자녀가 있는 그 여자의 미모는 싱싱 하달 수 없었지만 유달리 착하고 밝은 표정 때문에 눈부시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여자가 내 이웃이라는 게 예기치 않은 행운처럼 즐거웠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중에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나누기도 어려운 각박한 세상,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박완서 작가가 짧은 소설을 쓰면서 내다본 미래의 풍경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다가오는 명절에 우리는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누군가의 결혼, 누군가의 취업, 누군가의 입시를 걱정할지도 모른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토로하고 잔소리로 투닥거리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스마트폰의 세상에 빠져 외딴섬이 되는 것보다 살맛 나는 풍경이 될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잃어버린 풍경, 우리가 놓친 소중한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이런 소설이 더욱 귀하고 아름답다. 이토록 보석 같은 글을 故 박완서 작가님 8주기를 맞아 29명의 작가가 쓴 『멜랑콜리 해피엔딩』과 함께 읽으면 더 완벽한 독서가 될 것이다. 물론 박완서 작가의 다른 글과 읽어도 좋다. 겨울의 끝자락이 지나고 봄이 오는 시기, 질곡의 삶을 반죽하여 빚은 튼튼하고 빛나는 그릇에 담긴 따뜻한 글밥을 먹는다면 얼마나 배부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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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2-0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의 책 모두 표지도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언니도, 명절 즐겁게 보내시구요. 설 전날이 입춘이라는데, 우린 따뜻한 봄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요.^^

자목련 2019-02-03 16:15   좋아요 0 | URL
출판사에서 특별판으로 신경을 꽤 쓴 것 같아.
그러게, 내일이 입춘이니.
봄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아^^

서니데이 2019-02-0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 전에 박완서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살 지 망설이다 금요일이 되었어요.
이 소설의 배경이 1970년대인가요. 그 시기가 벌써 50여년 전이 되었다니, 지금과는 조금 다른, 그 때의 느낌이 남겠네요.
자목련님, 오늘부터 설연휴가 시작인 것 같아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자목련 2019-02-03 16:17   좋아요 1 | URL
박완서 작가가 보낸 시절과 지금 우리의 시절이 다르면서도 같은 게 많아요.
서니데이 님, 편안하고 건강한 연휴 보내세요.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

카알벨루치 2019-02-0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명절연휴 잘 보내시고 늘 건강하게 일상에 감사가 넘치시길 소망합니다^^

자목련 2019-02-03 16:17   좋아요 1 | URL
감사가 넘치는 일상, 참 좋은 말이네요. 카알벨루치 님도 평온한 명절 보내세요^^

희선 2019-02-02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0년대 모습이라니... 오래전 같기도 하고 그렇게 오래전이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그때부터 사람과 사람이 더 멀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더하군요 다들 스마트폰 보기 바쁠지도 모르니... 저는 그게 아니어도 다른 사람과 말을 잘 못하지만...

명절에는 식구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조금이라도 이야기 나누면 좋겠네요

자목련 님 명절 편안하게 보내시고 다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자목련 2019-02-03 16:23   좋아요 1 | URL
숫자로 떠올리면 무척 먼 시간인데 막상 소설 속에서 보면 아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해요.
가까이 있어도 명절이 아니면 만나기 쉽지 않은 일상으 사는 것 같아요.
희선 님도 즐겁고 기쁜 시간 보내세요. 떡국도 드시고 새해 복도 드시구요^^

프레이야 2019-02-0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봄이 성큼 온 거 같아요. 입춘도 지나고 매화는 벌써 벙글었구요.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꽤 포근하게 느껴져요. 건강은 많이 회복된 거죠. 페이퍼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듯한 글밥 한 그릇 다 먹고 배부른 느낌이에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9-02-08 10:34   좋아요 0 | URL
어제 오늘 쌀쌀하지만 봄의 기운이 아닐까 싶어요.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박완서 님의 좋은 글을 다시 읽으니 참 좋았어요. 프레이야 님,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이어가세요^^
 
소설 보다 : 가을 2018 소설 보다
박상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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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마다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봄에는 불쑥 윤대녕의 단편 「보리」와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생각난다. 소설의 내용보다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이 계절에는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를 다시 펼치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장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로맨틱한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 소설처럼 펼쳐지는 건 아닐지라도 말이다.

 

 박상영, 정영수, 최은영의 단편을 만날 수 있는 『소설 보다 : 가을 2018 』은 합쳐진 계절을 불러온다. 함께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며 즐겼던 이들을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죽이 맞아 잘 어울리던 동기, 단순한 만남에서 맺어진 다정한 사람, 안부 문자를 보내지만 답을 보내지 않는 친구. 그들과 보낸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떤 공통점을 지닌 건 아닌데도 마치 소설 그들이 하나의 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박상영의 「재희」는 재기 발랄하며 지나치게 명랑한 소설이었다. 바로 내 앞에서 소설의 제목이자 화자의 친구인 재희에 대해 들려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게이인 화자와 여자 동기 재희가 동성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이야기. 막역함은 동거를 할 정도다. 둘 사이에는 어떤 비밀로 존재하지 않고 아무런 사건(?)도 발생할 수 없는 진한 우정이 존재한다. 수많은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하는 재희를 바라보는 화자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며 눈물을 흐리는 장면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이상한 건 내가 그들을 잘 모르는데고 그 감정을 알 것 같다는 거다. 이것이 소설의 힘은 아닐는지.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으니까. ( 정영수, 「우리들」중에서)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들’이 되어 보낸 시간들을 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혹은 관계의 깊이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정영수의 「우리들」은 여운을 남겼다. 화자인 나는 연인인 현수와 정은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믿음과 사랑에 반하게 된다. 그들이 얼마나 멋진 이들인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단단하지 그들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둘 사이가 불륜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작업은 중단되고 나는 혼란에 빠진다. 정은과 현수를 통해 나는 헤어진 연인 연경을 떠올린다. 현수와 정은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과 둘 사이의 진실을 알았을 때 감정은 분명 같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과 만난 나눈 이야기는 사라질 수 없고 변할 수 없다. 우리가 되었던 시간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될 수 없기에 서글프고 아프다. 너와 나의 관계가 무너질 때 우리로 속했던 누군가와의 관계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쩌면 최은영의 「몫」의 정윤과 희영, 해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90년대 대학의 편집부에서 만난 정윤 선배와 희영과 해진의 관계 말이다.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쓰고 고치고 취재를 하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시대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은 달랐다. 그러니 같은 길을 갈 수 없었고 우리들로 남을 수도 없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향을 보았던 시간만이 남았을 뿐이다. 대단해 보였던 정윤은 결혼을 해서 유학을 떠나고 희영은 활동가 되었고 해진만이 글을 쓰는 삶을 산다.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럽고 때때로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시기를 쓰는 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알기 전으로 당신은 돌아갈 수 없었다.  (최은영, 「몫」 중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을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최은영, 「몫」중에서) - 희영의 말

 

 쓰는 삶은 기록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쓴다(기록한다)는 건 쉽고도 어렵다. 「몫」이란 한 글자에 담긴 의미처럼 말이다. 이 소설에 대해 조금 더 쓰고 욕심을 느낀다. 욕심만큼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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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1-3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다면 제가 <환상의 빛>을 읽어야겠는걸요.^^

자목련 2019-02-01 10:17   좋아요 0 | URL
대구에 눈 많이 왔지?
겨울의 끝자락에 읽어도 줗을 것 같아.
설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