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당연한 말이다. 작가의 자리가 일상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기에 그가 발을 담은 그곳은 소설이 탄생하는 곳이자 그의 일상이 이어지는 곳이다. 뜬금없는 생각을 전하는 건 고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집『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70년대의 문화, 사회의 흐름, 작가의 공간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족, 이웃, 그리고 그가 바라본 세상을 말이다. 그 시대의 실상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부모와 친척이 살아왔을 그 시간을 조금은 들을 수 있었기에 48편의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들이 내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가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으로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로 쓴 소설을 통해 나는 그 세상을 본다. 쉽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문장 안에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너도 나도 아파트를 선호하고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겼다.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작가의 대단한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너만 힘든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졌다. 추운 겨울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거실 창에서 퍼지는 환한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48편의 짧은 소설은 마치 거울 같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 한 권으로 1970년대의 연애와 결혼, 고부갈등, 여성의 사회 진출, 아파트 열풍으로 인한 단절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건 「아파트 부부」, 「열쇠 소년」, 「열쇠 가장」, 「열쇠 부부」, 「아파트 열쇠」로 이어지는 아파트에 대한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풍자였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생활공간이 바뀌면서 열쇠만 있으면 집을 비워도 걱정 없었고 가족 구성원 없이 혼자서도 편안하게 살아가는 그 시대의 모습은 어쩐지 웃음이 나면서도 쓸쓸했다. 아파트 창으로 비친 옆 동에 사는 이들의 모습도 똑같이 닮았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열쇠 대신 도어록과 번호키라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시작되면서 늦어지는 결혼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 여전히 남아 있는 남아선호사상, 집안일은 모두 여성의 몫으로 정한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결혼 적령기가 사라지고 비혼이 늘어가고 있지만 자녀가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간절하고 직장에서의 남녀 불평등과 육아와 가사노동의 분담도 그렇다. 더 좋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때로 건조한 모래바람이 가득한 사막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성공을 위해 살아온 이들, 성공하면 행복할 거라 맹신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현실은 너무도 메마르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쑥버무리 받아먹은 이웃이 틀림이 없는데도, 슈퍼마켓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모른 척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잘 닫히지 않아 늘 입을 벌리고 있는 공동 쓰레기통에 곰팡이 난 쑥버무리가 한 무더기 버려진 걸 봉례는 보고 말았다. 그날 봉례는 퇴근한 남편에게 왈칵 안겨 가슴을 쾅쾅 치면서 울부짖었다.
“여보, 고작 이게 성공이란 말에요? 난 싫여, 성공 물려줘! 물려줘!” (「성공 물려줘」중에서)
이웃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보건복지부의 우편물을 받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 다정한 인사는커녕 짧은 눈 맞춤을 거부하는 일상, 마우스 클릭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가족 간의 대화도 줄어드니 사소한 고부 갈등이나 말다툼을 통해 애정을 나누기도 어렵고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일도 어렵게 돼버렸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기에 이사를 오면서 마주한 이웃에 대한 인상과 아픈 이웃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화자의 간절함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사 오는 날이었다. 옆집에 산다는 여자가 인사를 왔다. 나는 반갑고 한편 놀라웠다. 아파트에도 이웃이란 관념이 남아 있다는 게 반가웠고, 그 여자의 미모가 놀라웠다. 중학교 다이는 자녀가 있는 그 여자의 미모는 싱싱 하달 수 없었지만 유달리 착하고 밝은 표정 때문에 눈부시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여자가 내 이웃이라는 게 예기치 않은 행운처럼 즐거웠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중에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나누기도 어려운 각박한 세상,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박완서 작가가 짧은 소설을 쓰면서 내다본 미래의 풍경은 이런 게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다가오는 명절에 우리는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누군가의 결혼, 누군가의 취업, 누군가의 입시를 걱정할지도 모른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토로하고 잔소리로 투닥거리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스마트폰의 세상에 빠져 외딴섬이 되는 것보다 살맛 나는 풍경이 될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잃어버린 풍경, 우리가 놓친 소중한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이런 소설이 더욱 귀하고 아름답다. 이토록 보석 같은 글을 故 박완서 작가님 8주기를 맞아 29명의 작가가 쓴 『멜랑콜리 해피엔딩』과 함께 읽으면 더 완벽한 독서가 될 것이다. 물론 박완서 작가의 다른 글과 읽어도 좋다. 겨울의 끝자락이 지나고 봄이 오는 시기, 질곡의 삶을 반죽하여 빚은 튼튼하고 빛나는 그릇에 담긴 따뜻한 글밥을 먹는다면 얼마나 배부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