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그럴 나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나윤아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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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시대를 가장 잘 읽고 잘 해석하는 이들은 십 대일지도 모른다. 유행에 민감하고 솔직하고 자기주장도 강한 십 대. 사춘기, 혹은 중2병으로 대신하는 열다섯의 나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겪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내 안의 어떤 상처와 슬픔은 그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 시절에 만난 누군가, 그 시절에 경험한 어떤 일들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열다섯, 그럴 나이』를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는걸.

『열다섯, 그럴 나이』는 지금 십 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있는 그대로, 심할 정도로 날카롭게 직시한다. 다섯 명의 작가가 ‘히어로, 톡방, 이·생·망, 몸캠피싱, 인싸’ 다섯 가지 키워드 중 하나를 선택해 십 대의 일상을 그렸다. 키워드만 봐도 십대가 주목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줄임말,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일상, 그들만의 세계에 진입한 것 같았다.

히어로를 주제로 한 탁경은의 「캡틴 아메리카도 외로워」에서는 가장 보통의 중학생이 등장한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다니고 부모님에게 살짝 반항도 하는 그런 아이들. 그리고 자발적 백수를 선택한 삼촌. 어른들의 눈에 삼촌은 루저나 실패한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정한 히어로다.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즐겁게 사는 삼촌이 차도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했다. 공부와 성적만 강요하는 부모님, 그리고 삼촌. 우리는 어떤 어른일까. 재밌게 소설을 읽고 부끄러움만 남았다.

가장 놀랍고 가슴 아팠던 건 톡방과 몸캠피싱을 주제로 한 이야기였다. 이선주의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는 제목 그대로 카톡을 소재로 다뤘다. 예전과 다르게 조별 과제가 많다. 방과 후 학원으로 가야 하는 아이들, 함께 모여 주제를 선정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단톡을 이용한다. 편하고 간편하니까. 하지만 같은 조의 한 명이 카톡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앱을 깔고 참여하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니 나머지 아이들은 그 아이를 자연스럽게 왕따시킨다. 이용자가 많다고 해서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소설을 또래인 십 대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카톡은 어쩌면 예시였을지도 모른다는 자각, 우리는 늘 희생양을 찾고 있었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희생양들이 하나둘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다음 차례는 누굴까? 자신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어, 윤은 두려웠다. (「앱을 설치하겠습니까」, 78쪽)

몸캠피싱에 대한 나윤아의 소설 「악의와 악의」는 읽는 내내 무서웠다.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 어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십대에게도 벌어지고 있다니.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화가 났다.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이 무너지고 삶이 흔들린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김태강의 동영상, 아이들에게 가십거리다. 동영상의 인물이라고 추정된 아이의 선한 얼굴을 떠올리는 ‘나’는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친구들의 수다에 동조한다.

누구도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악의와 악의」, 125쪽)

김태강에 대해 하나의 막이 생긴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거든다. 소문은 진실을 뛰어넘고 새로운 가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스마트폰으로 도착한 동영상 속 아이는 ‘나’같았다. 합성이라는 걸 알았지만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모아둔 용돈을 보낸다. 끝난 일이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협박.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 학교에 퍼져 아이들이 수군대는 것 같은 공포. 그런데 놀라운 건 유학을 갔다는 김태강이 학원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나의 태도에 김태강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그런 동영상을 찍게 된 건지,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친구와 부모님. 나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김태강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네 편이 되어줄 거라고 손을 잡아준다.

이 지독한 악의에 매몰되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선한 것을 바라보고, 내 편에 선 사람들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심이 선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 혹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을지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악의와 악의」, 154쪽)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선의와 악의 어느 쪽에 서는가. 무엇이 선의고 악의인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처음에 선택하는 건 대부분 악의 쪽이다. 자세한 사정이나 진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한 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 단편은 사회를 향한 강력한 외침이었다. 우리 사회의 추하고 더러운 민낯인 N번방 사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아이가 실종되면서 그 애에 대해 진짜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쓸쓸함을 그린 우다영의 「그 애」, 한 번쯤 속상함을 토로하는 말로 썼을 이·생·망을 주제로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야기 범유진의 「악마를 주웠는데 말이야 」를 통해서도 십 대 아이들의 고민과 관심에 대해 알 수 있다. 열다섯은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시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는 시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나이다.

처음엔 십대를 이해하는 생각,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한 소설이지만 결국엔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만 들킨 것 같았다. ‘열다섯, 그럴 나이’에 내 나이를 대입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섯 가지 키워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투덜대며 ‘이·생·망’을 말하는 우리, 직장과 사회에서 행해지는 은따와 왕따까지 전부 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삶을 향한 태도는 열정적인지, 자꾸만 질문이 많아지고 다짐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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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1-19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도서관인데, 랩탑 켜놓고 신간 둘러보다가 자목련님 리뷰에 눈 번쩍. 이 책 소장중인지 바로 확인각입니다. 소재들이 2021년, 정말 시의적절한 내용들이네요. 저도 십대 잘 몰라서 꼭 읽어야겠어요. 감사드려요

자목련 2021-01-19 16:48   좋아요 0 | URL
보통의 청소년 소설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았아요. 덕분에 더 좋았고요. 얄라 님께도 좋은 책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2021-01-19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9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19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톡방과 몸캠피싱을 주제로 한 . 이선주의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이야기는 진짜 현실 이야기네요 단톡에서 이런식 왕따는 대학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비대면 사회적 거리에 익숙해진 청소년들 감정없는 얼굴없는 앱으로만 소통하는 성인으로 클것 같네요.

자목련 2021-01-20 09:54   좋아요 2 | URL
네, 소설을 읽으면서 진짜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무서울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도 있을 텐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말씀처럼 십 대에겐 얼굴을 마주한고 눈을 보고 깔깔대는 시간이 필요한데.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커집니다.
 


눈이 내린다. 겨울이니 눈이 오는 게 맞다. 어느 해 4월에 눈이 내렸을 때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문자를 확인하고 날씨를 검색하고 지인의 sns를 살핀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차들이 적다. 많은 차들이 지하 주차장으로 피신을 했기 때문이다. 눈이 온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대피를 하고 대비를 한다. 어, 하는 사이에 높게 쌓인다. ‘대한’을 맞이하려는 눈일까. 쓸데없는 소리다.


겨울에는 겨울의 맛이 있다. 늦은 밤 먹는 홍시의 맛, 출출한 허기를 채우는 라면의 맛, 그리고 조금 뜨거운 유자차의 맛. 겨울의 맛을 즐기는 방법으로 영화를 보는 일도 좋겠다. 사실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던 어제 오후부터 자꾸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서다. <부부의 세계>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김희애가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마음의 이야기를 꺼내는 영화, 《윤희에게》.


내가 아는 윤희는 두 명이다. 한 명은 블로그를 통해 인연이 닿은 동생. 한 명은 대학 동기다. 한 명과는 안부를 나누고 한 명과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제목 때문인지 그들이 생각났다. 흔한 이름인 것 같은데도 나와 연결된 윤희는 하나뿐이었다. 그런 그렇고 이 영화는 완전 겨울 영화다. 그러니까 눈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아름답다. 그 안에서 눈싸움을 하는 윤희의 딸 새봄의 모습은 생동감 그 자체다. 어쩌면 ‘새봄’이라는 이름은 어떤 복선은 아닐까. 윤희가 마주할 새로운 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윤희에게 온 편지를 먼저 본 건 새봄이다. 윤희는 남편과 헤어지고 새봄과 산다. 고3 새봄은 엄마에게 여행을 제안한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쥰이 엄마의 첫사랑이 짐작했으니까. 느닷없는 여행의 결정. 윤희는 직장을 며칠 쉬겠다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자신의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는다.


처음으로 떠난 둘만의 여행. 새봄은 조력자 경수와 함께 엄마와 쥰의 만남을 계획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쥰의 모습. 윤희의 고교시절 친구, 그리고 사랑한 사람. 윤희 역시 쥰을 생각한다. 가까운 곳에 쥰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는 윤희의 모습은 가장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쥰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단절시킨 부모님, 딸이라는 이유로 오빠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했던 윤희.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오지 못한 지난 시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결정하는 윤희.





쥰과 윤희의 만남은 영화에서 가장 궁금했던 장면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니다. 많은 시간을 돌아왔고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만남은 어색한 반가움. 하지만 둘만의 내밀한 눈빛은 말로 할 수 없는 감정들을 전달한다. 그들만이 간직하고 나눈ㄹ 수 있는 빛나는 파편을 말이다.


폭설로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눈은 그저 아무런 의미도 아닐 것이다. 눈이 내리면 쓸고 치우고 살아간다. 언제 눈이 그칠까, 기다리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것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정작 타인들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의 기준에 맞춰, 그들의 생각을 강요한다. 윤희는 그런 생을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삶을 살지 않기로 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새봄과 함께 떠나기로 결정하고 오빠에게 통보하는 윤희,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는 윤희, 쥰에게 편지를 쓰는 윤희. 그런 엄마를 응원하고 사진기로 담아보는 새봄. 윤희와 새봄에게 환한 봄이 다가오고 있다.


“나도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이 없으니까.” 이 대사를 가만히 말해본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가 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다정함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이미지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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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8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언급하신 겨울의 맛 홍시의 맛, 라면의 맛, 유자차의 맛 더하기 제가 좋아하는 겨울의 맛은
군밤맛-모과차 맛-모찌맛-코코아맛-율무차 맛 그리고 귤맛 ㅋㅋㅋ
윤희에게 라는 영화 상영 당시 언제가 볼꺼야 라며 다른 영화보다가 어느날 내렸져서 못봤는데
자목련님 말씀처럼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봐야겠어요.

전 겨울이면 러시아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원작 시베리아의 이발사)‘를 보는데 ^.^

자목련 2021-01-19 09:31   좋아요 1 | URL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겨울의 맛은 무궁무진하네요.
<윤희에게>, 이번 주 목요일에 mbc에서 방영하다고 합니다.
스콧 님이 말씀하신 영화도 찾아봐야겠네요.
어제보다는 많이 따뜻한 것 같아요. 포근한 화요일 보내세요^^

stella.K 2021-01-19 18:29   좋아요 1 | URL
동치미 맛, 냉면 맛, 호박죽, 팥죽 맛, 군고구 맛도 있는데...ㅋㅋ

<윤희에게>를 mbc에서 하는군요.
보면 좋겠지만 아마 거의 못 볼 것 같군요.
꼭 보다가 자는 바람에...
그래도 기억하겠슴다.^^

자목련 2021-01-20 09:52   좋아요 1 | URL
스텔라 님, 군고구마랑 동치미 침이 고이네요.
붕어빵도 생각나는데 요즘은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규모 있는 독서를 원한다. 욕심을 내지 않고 꾸준히 읽고 쓰는 삶을 원한다. 그런데 막상 온라인 서점의 앱을 클릭하면 달라진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바로 책을 사야 할 것 같은 마음. 과거에 읽은 책인데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기어이 다시 구매하는 책. 그런 책들은 나를 자책한다. 다시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혹은 그런 충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최근에는 인생의 책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 프로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잘 알려진 이가 선택한 책, 평소 그의 활동을 좋아했거나 눈여겨봤더라면 더욱 그렇다. 방송 시간을 놓치지 않고 시청하는 프로가 되었다. 조여정이 언급한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송은이가 추천한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가장 최근에 정소민이 소개한 정현종 시인의 『섬』의 등장은 정말 반가웠다. 읽었던 책이라서, 좋았던 책이라서, 진짜 애정 하는 책이라서. 이유는 다양하다.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발 빠르게 방송에 등장한 책을 광고한다. 그리고 내게도 좋은 자극이 된다. 이번 주말에는 어떤 책을 만날까. 기대하는 시청자가 되었다. 익숙했지만 그냥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펼치지 않았던 책을 꺼내게 만든다. 이를테면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같은 책이다. 정리하지 않는 책들 중 하나다. 그런데 막상 재독은 쉽지 않다. 이 기회에 다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고전의 경우는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그와는 별개로 나의 1월의 책은 이렇다. 이주혜의 장편소설 『자두』, 서유미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 7인 작가의 연작 에세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갑자기 생각난 프레드 울만의『동급생』,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읽고 리뷰를 쓴 책도 있고 읽었지만 정리하지 못한 책도 있고, 읽기 시작한 책도 있다. 이주혜가 번역가라는 사실을 소설을 읽으면서 알았다. 그리고 최근에 번역한 작품을 내가 읽었다는 것. 자두를 너무 좋아하고 이웃 님의 추천으로 읽어야지 했던 소설이었는데, 이 소설과 만날 인연이었을까. 서유미는 초기와는 다른 결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문학을 더 많이 읽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1월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 내렸던 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존재는 여전히 강하다. 아파트 출입구는 미끄럽고 인도 부분은 다니기가 불편해서 엉금엉금 거북이가 된다. 대한이 지나면 바람도 달라질까. 겨울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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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1-1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추워지고 눈이 또 온다고 합니다 낮에는 덜 추웠는데 저녁에는 좀 춥더군요 벌써 추워지는 듯합니다 읽고 싶은 책이 보이는 건 좋은 거지요 2021년에도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시고 주말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1-16 17:05   좋아요 1 | URL
네, 말씀처럼 점점 바람소리가 강해요. 눈 소식이 있어 걱정입니다. 희선 님도 건강하고 포근한 주말 보내세요^^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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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글을 쓰는 즐거움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글짓기 특별수업을 받았을 때였다. 일상 산문에 대한 수업으로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선생님이 주제를 정해주시면 글을 쓰고 평을 들었다. 김민섭, 정지우, 오은, 남궁민, 김혼비, 이은정, 문보영, 일곱 작가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연작 에세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으면서 작가들도 재미있게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마감 때문에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주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로 고양이, 결혼, 방, 작가, 커피, 비, 친구로 다양하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주제, 궁금한 주제를 먼저 읽고 작가를 그렇게 선택해도 무방하다. 


시작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이들이 늘어나고 길냥이를 돌보는 이들도 많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도 있으니까. 직접 고양이를 키우지 않더라도 고양이와 관련된 사연 하나쯤은 간직하기 마련이다. 운전하면서 발견한 고양이를 구하지 못한 후회, 친구에게 전부인 고양이를 잃어버려 찾지 못할까 조바심을 냈던 마음을 만나면서 오빠네 고양이 ‘비실이’가 생각났다. 다음에 만나면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야겠다는 다짐까지. 


한 꼭지를 읽고 나니 작가의 분위기가 보인다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실이 더 정확하겠다. 모두 작가이니 작가에 대해 특별한 말을 들려줄 거라 기대했지만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건 김민섭의 이런 글이다. 쓰는 사람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일은 대단한 게 아닐 것이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일, 나를 쓰는 일의 가치에 대해 언급해 줘서 괜히 고맙다.


나는 모두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당신의 일상은 이미 몸에 깊게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누가 읽어주겠냐고 그것을 옮겨 적지 않지만, 그건 이 세계에서 당신만이 길어올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무엇이다.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당신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작가 - 50쪽, 김민섭)


아, 쓰다 보니 또 김민섭의 글이다. 친구에 대한 글에서 나는 언제나 나를 응원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친구, 10년 후가 기대된다는 친구,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친구. 저자는 작가로 자신이 책을 낼 때마다 이야기하기가 꺼려진다고 한다. 누구나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논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한 친구는 논문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읽어줬고 오타를 발견해 줬다고. 정성을 다해 읽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도 김민섭이 말한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그의 어색한 다가옴을 우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한다. 축하한다,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니, 어디로 가면 그걸 볼 수 있니,라는 말에 더해, 나는 너를 읽었어, 너를 보았어, 나는 이 부분이 좋았어, 다음에도 꼭 너를 나에게 보여 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많이 두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되고 싶다. (언젠가, 친구 - 88~89쪽, 김민섭)


학창 시절에 단짝처럼 붙어 다녔지만 졸업과 동시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이은정 작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에게 잘 살라고 안부를 전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나 역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다. 


비와 커피를 좋아하기에 이 주제는 더 가깝게 다가온다. 공평하게 내리는 비지만 그 비를 맞고 힘들어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 언급하며 나중에라도 비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는 김민섭 작가, 비 오는 날 두 번의 교통사고로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은 작가, 커피를 좋아하는 언니를 언니가 떠난 후에야 커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은정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던 큰언니가 생각나 먹먹해졌다.


어쩌면 아침마다 식사 대신 커피를 마시며 출근하는 사람들은 하루의 무게를 들이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이겨내려고, 오늘까지는 버텨 보려고, 최대한 제정신으로 일터에 나가기 위해 쓰디쓴 각성제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커피 한 잔의 무게는 살아 내야 하는 하루치의 무게인 걸까. 언니가 떠난 뒤에야 이따위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면, 언니가 살아있을 때 느꼈더라면 언니에게 모닝커피를 한 번쯤 건넸을지도 모르는데 늘 그렇듯 깨달음은 늦고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커피 - 314쪽, 이은정)


기억 속 삶의 한 장면이 달려든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던 비 오는 날의 풍경,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스무 살 동생에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던 큰언니.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오늘 아침의 커피 한 잔. 잊었던 기억, 잊었던 사람, 지나친 일상을 끄집어 낸 책이다. 일상의 순간, 보통의 날들을 더 많이 기록해야 한다. 책에서 발견한 따뜻하고 다정한 문장을 기록하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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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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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가족 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잘 볼 수 없는 것들, 너무 멀리 있어서 정확하게 볼 수 없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쌓이면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실재한다고 느낄 수 있다. 강화길의 「음복(飮福)」에서 우리가 놓친 건 무엇일까. 적절한 거리는 아니었을까. 그건 배려, 존중, 예의로 표현할 수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제사를 지내는 풍경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대화. 그 풍경은 익숙한 어느 시절의 모습이었다. 평범하다고 여겼던 가족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암묵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시간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오빠나 남동생의 삶이 먼저였다. 강화길은 직접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소설에 흐르는 그 무겁고도 서늘한 분위기.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그런 마음이 점차 선명하게 보인다. 그게 내가 여자라서, 나에게도 그런 고모가 있었기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 오빠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보살핌과 정성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나를 마주하는 건 장류진의 연수의 이런 문장에서다. 운전 연수를 받는 과정을 상세히 들려주는 소설이다. 화자 ‘주연’은 일상의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한 맘카페를 통해 도로연수를 해줄 강사를 만났다.


엄마의 삼십 평생, 사십 평생에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 내가 반에서 일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마다,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차례로 갱신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217쪽)


소설에서 ‘주연’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주체적인 삶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존재한다. 화자가 맘카페의 올라온 게시글과 댓글에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그곳에서 도움을 받는 것처럼. 신상에 대해 묻고 조언을 하는 강사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점점 그녀가 연수 방식이 정말 유용하며 강사가 전해준 자신감이 엄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류진 식의 연대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할까.


처음에 말했던 가족 간의 거리를 인정하는 일은 장희원의 소설 「우리[畜舍]의 환대」 속 재현과 아내에게도 필요하다. 호주에 있는 아들 영재를 삼 년 만에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건 당혹스러움이었다. 영재가 함께 살고 있는 공간과 사람들. 문신을 한 여자애, 흑은 노인과 한 가족처럼 지내는 일상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아들이 지향하는 삶과 재현의 그것은 너무도 달랐다. 소설 속 구절처럼 영재의 삶이 이쪽이라면 재현의 삶은 건너편이었다. 이곳과 그곳의 경계는 분명했다.


마당엔 가로등도 하나 없었다. 건너편에서 집집마다 노란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저런 곳 중 한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너무나도 저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절히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 난 분명히 용기를 냈어. 그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畜舍]의 환대」, 259쪽)


소설을 읽은 일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나와 똑같은 마음을 만나 반갑고 전혀 알 수 없는 마음을 만나면 주춤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현실의 누군가의 삶이 그 안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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