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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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가족 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잘 볼 수 없는 것들, 너무 멀리 있어서 정확하게 볼 수 없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쌓이면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실재한다고 느낄 수 있다. 강화길의 「음복(飮福)」에서 우리가 놓친 건 무엇일까. 적절한 거리는 아니었을까. 그건 배려, 존중, 예의로 표현할 수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제사를 지내는 풍경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대화. 그 풍경은 익숙한 어느 시절의 모습이었다. 평범하다고 여겼던 가족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암묵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시간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오빠나 남동생의 삶이 먼저였다. 강화길은 직접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소설에 흐르는 그 무겁고도 서늘한 분위기.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그런 마음이 점차 선명하게 보인다. 그게 내가 여자라서, 나에게도 그런 고모가 있었기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 오빠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보살핌과 정성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나를 마주하는 건 장류진의 연수의 이런 문장에서다. 운전 연수를 받는 과정을 상세히 들려주는 소설이다. 화자 ‘주연’은 일상의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한 맘카페를 통해 도로연수를 해줄 강사를 만났다.


엄마의 삼십 평생, 사십 평생에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 내가 반에서 일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마다,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차례로 갱신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217쪽)


소설에서 ‘주연’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주체적인 삶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존재한다. 화자가 맘카페의 올라온 게시글과 댓글에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그곳에서 도움을 받는 것처럼. 신상에 대해 묻고 조언을 하는 강사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점점 그녀가 연수 방식이 정말 유용하며 강사가 전해준 자신감이 엄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류진 식의 연대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할까.


처음에 말했던 가족 간의 거리를 인정하는 일은 장희원의 소설 「우리[畜舍]의 환대」 속 재현과 아내에게도 필요하다. 호주에 있는 아들 영재를 삼 년 만에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건 당혹스러움이었다. 영재가 함께 살고 있는 공간과 사람들. 문신을 한 여자애, 흑은 노인과 한 가족처럼 지내는 일상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아들이 지향하는 삶과 재현의 그것은 너무도 달랐다. 소설 속 구절처럼 영재의 삶이 이쪽이라면 재현의 삶은 건너편이었다. 이곳과 그곳의 경계는 분명했다.


마당엔 가로등도 하나 없었다. 건너편에서 집집마다 노란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저런 곳 중 한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너무나도 저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절히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 난 분명히 용기를 냈어. 그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畜舍]의 환대」, 259쪽)


소설을 읽은 일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나와 똑같은 마음을 만나 반갑고 전혀 알 수 없는 마음을 만나면 주춤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현실의 누군가의 삶이 그 안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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