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겹의 자정 문학동네 시인선 19
김경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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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짧은 시가 소설보다 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구절이 가슴에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어떤 끌림에 잡은 한 권의 시집에서 투명한 밤, 홀로 잠들지 못하는 한 사람을 본다. 아니, 시라는 형식의 소설을 읽는다.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싶은 정도로 간절하지만 잠들지 못한다. 해서 그 시각, 밤이 들려주는 소리를, 밤이 기억하는 누군가를 담아낸 것이다.  그 밤을 알 것 같아서 누군가는 안타까울 것이고, 어디선가 그 밤을 견디고 을 누군가는 아플 것이다.

 

<북 치는 여자>

 

 너를 볼 수 없는 밤을 새고

 너를 볼 수 없는 밤이 온다

 오늘은 어둠도 돌아올 수 없는 밤

 너의 길고 푸른 속눈썹으로 만든 붓,

 그 붓으로 나는 쓴다

 

 북, 치, 는, 여, 자,

 나의 기관차, 너의 검게 탄 팔뚝 대신

 이제 빈 병 같은 봄이 온다

 벼락을 가르고 용의 피냄새 풍기는 북소리

 그 대신 낮잠만 온다

 북 치는 여자

 

 한밤의 옥상

 타들어가는 담뱃불로 너는 북가죽을 뚫었다

 우산을 쓸지 노랠 부를지 망설이는 나에게

 해 질 때마다 북을 쳐달라는 나에게

 북을 건넸다

 

 오늘은 어둠조차 돌아올 수 없는 밤

 네가 마지막으로 두드렸을 북한강 물 위에

 백지 같은

 달의 유골함 같은 너의 북 위에

 

 나는 쓴다

 너를 두드린다  (p. 14~15)

 

<그믐>

 

 나를 꽝! 닫고 나가는 너의 소리에

 잠을 깬다

 깨어날수록 난 어두워진다

 기우뚱댄다

 

 거미줄 흔들리는 소리

 눈을 감고 삼킨다

 

 오래 머물렀던 너의 이름에서

 개펄 냄새가 난다

 그것은 온통 버둥거린 자국을

 부러져 박힌 비늘과 지느러미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소리에

 내게 묻혀 던 악몽의 알들이 깨어난다

 깨어날수록 난 잠든다

 컴컴해진다

 

 닫힌 내 안에

 꽉 막힌 목구멍에

 이제 그곳에 빛나는 건

 부서진 나를 짚고 다니던 부서진 너의 하얀 지팡이

 내 안에 악몽의 깃털들만 날리는 열두 개의 자정뿐  (p. 46~47)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고 떠난 이는 말하겠지만 남은 이는 여전히 사랑이 남았으니 그 밤은 얼마나 외로울까. 아니, 사랑이 아니라도 그렇다. 모든 관계가 끊어진 자리는 늘 시리다. 한 때 친밀했던 사이, 한 때 슬픔을 나눴던 사이가 깨어지는 건 사소한 오해로 시작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너를 쓰고 너를 두드리는 내 곁에 존재하는 건 달빛도 사라진 열두 개, 열세 개, 열네 개로 이어지는 자정뿐인 것이다.

 

 <붕대>

 

 발이 푹푹 빠지는 밤,

 더이상 서로를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만난다

 가슴에서 오래된 붕대 냄새가 나

 네가 머물렀던 상처엔 내가 없었지

 서로 보지 못하는 흔적들

 창문을 닫아도

 바람의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발이 푹푹 빠지는 밤,

 서로 대답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만난다

 대합 껍질 속에 넣어둔

 내 혀의 무늬는 어떻게 변했을까

 너덜너덜해진 침묵을 기워대는 것도

 이제 그만

 침묵조차 불을 끄고

 방을 나간다

 텅 빈 어항을 껴안고 홀로 서 는 밤

 

 바닥의 붕대 위로 절뚝거린 발자국

 서로를 끝없이 기다리며 우리는 헤어진다

 다시는 밤이 오지 않는다

 이제 그만  (p. 34~35)

 

 닮은 듯 다른 상처를 서로가 껴 앉는 밤은 없다.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가는,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한 여자와 한 남자를 그려본다. 갈기 갈기 찢긴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이토록 잔인한 고통으로 쓰여진 시를 남긴 그 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밤의 깊이를 잴 수 을까. 아니 어떤 기기로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고통으로 채워진 밤의 상처를 싸맬 붕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김경후의 시에는 수많은 밤이 등장한다. 그 밤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간절함을 이런 시에서 본다.

 

<잘 듣는 약>

 

 이번 약은 잘 들을 겁니다

 의사 말을 듣고

 믿고 싶은 그 말을 믿고 나는 묻는다

 얼마나 잘 듣지 않았나

 이불 속에 드러누운 나의 마음은

 컴컴한 창밖 얼어붙은 얼굴을 들이미는 나의 고함조차

 

 내가 어도 나는 빈 방

 없어도 나는 나의 빈 방

 

 누구를 기다리는가

 골목 구석에 쑤셔박은 내 밤들

 털 빠진 등허리를 말고 자던 내가 버린 고양이들

 듣지 않았지 나는

 

 내가 지내온 빈 밤의 소리들

 내가 지워버린 빈 밤의 소리들

 

 듣지 않고 딛고 가야 할 소리만을 믿었던 나는

 나는 텅텅 빈 소리

 그것들을 잘 다지고 잘 부수지만 잘 듣지는 않은 병

 

 앞으로도 나는 듣지 않을

 빈 방의 나의 소리들

 이 약은 잘 듣고 겠지 (p. 62~63)

 

 <안개 악몽>

 

 저 너머 뱀 비늘 냄새 (안개, 안개인가) 지금까지 내게 그

런 게 너였니, 나를 물어뜯은 까마귀 (아니, 아니야) 그래.

내가 물어뜯은 까마귀 (그건 더 아니야) 그래, 그 기억의 어

금니 자국도, 안개나 되어버려 (그러지 마) 아니, 너는, 갈

기갈기 찢긴, 비명들의 은유일 뿐 (왜 나한테) 아니, 너는,

 무쇠 장화에 외올 베옷 입은 안개, 네겐 그래도 돼 (안 돼

안 돼) 썩은 계단을 뛰어올라가, 나의 안개, 올라가라니까

(그러지마, 아니야) 네게만 그럴 거야, 올가미와 창살이

는, 나의 안개 (안 돼) 네겐, 그래도 돼, 핏물 젖은 나의 안

개 (안개, 안개) (p. 97)

 

 약으로 치유할 수 는 밤이길 바라지만 밤은 낮처럼 환하고 고요하다. 밤을 방해하는 소리들로 잠들지 못한다. 밤조차 잠들지 못하도록 울부짖는 소리들로 잠들었던 밤은 악몽으로 채워진다. 겹겹이 쌓인 밤들이 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노래한다. 밤마다 누군가의 흔적들을 새기고 지운다. 시는 밤처럼 어둡고 검다. 김경후의 시집을 읽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내 의지다.

 

  <환절기>

 

 1

 첫 빗방울을 맞기 직전의 땡볕돌 냄새가 나는 시, 불타는

역청탄 같은 노래,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올해

내가 유일하게 칭찬받은 사람은 술집 여주인, 손님, 많이 마

셨는데 안 취한 거 같네,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지만 이것

도 아닌, 뜨겁지 못한 그게 시가 되는, 취하지도 못하는 시

 

 2

 머리에 대못이 박힌 채 껍질이 벗겨지는 뱀장어 눈알, 그

빛과 감촉처럼 사랑하기를, 발광하며 감전되기를, 질주하

는 죽음의 타이어 자국이 영혼에 새겨져도, 이빨로 타이어

를 물어뜯어서라도, 저주할 만큼 사랑하기를, 그게 아니더

라도 그러기 바라기를

 

 오래된 건지 버려진 건지 모를 옷과 가방들, 사실은 그게

아니라, 세탁기에 해어진 너의 명함과 동전지갑, 그건 더욱

더 아닌, 너의 밤색 머리카락과 새치까지, 그러지 않아도 되

는데 그게 아니어도 이미 그런, 나는, 비어 는 수족관의

오래된 물때만 손가락으로 비비고

 

 3

 빗물에 검어지는 돌들, 나는 돌보다 검어질 수 을까, 아

니 그게 아니라, 오늘의 암흑이 내일의 암흑보다 깊기를, 지

금은 그게 아니라 얼른 뛰어서 집에 가야지, 그게 아니어도,

밤새도록 내가 토해낸 밤들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밝다, 시

인의 종이, 검은 글자들을 지우면 함께 지워지는 검은 달빛,

아니 검은 구름들 (p. 52~53)

 

 이런 시도 다. 벼락 속 내리치는 빗발 /그렇게 /오랫동안 /우산이 필요한 영혼은 이제 내게 없다  (p. 23 <장마> 전문) 다음 생애 /어도 /없어도 /지금 다 지워져도 //나는 /너의 문자 /너의 모국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p. 77 <문자> 전문)

 

 시인은 너의 부재는 나의 부재이며 너는 나라고 말한다. 빈 밤, 투명한 밤을 홀로 깨어 만든 모든 노래는 너를 위한 노래였던 것이다. 처절하게 울부짖는 목소리 대신 밤을 꿰매어 만든 시라서 읽는 동안 당신은 어떤 애절한 노래를 들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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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0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정도 읽다가 도저히 못 참고 주문을 클릭합니다. 자목련님, 어쩜 이렇게 멋진 시와 그리고 어쩜 이렇게 시에 걸맞는 해석을 해놓으셨는지요.
김경후..예전에 읽은 허수경의 빨간표지 시집 만큼 강렬한 시네요. 이분, 반하겠는데요.

자목련 2012-06-06 09:46   좋아요 0 | URL
어떤 밤을 떠올리게 하는 시가 많아서, 아프기도 했던 시집이었어요.
시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어떤 강렬함과 그 어떤 떨림이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해요.
달사르님은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합니다.^^
 

 

 6월이 되었다. 이제 초여름이 아닌 여름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더위는 짙어지고 깊어진다. 냉명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시원한 냉커피를 찾을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6월은 내게 수국의 계절이다. 작년에 작약을 보았던 곳에 6월에는 수국이 핀다. 어제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더니, 아직 수국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10일 후로 알람을 설정했다. 그러니까 10일 후에 나는 다시 그곳에 전화를 걸 것이고, 수국이 피었냐고 물어볼 것이다. 당분간 내 머리속에는 온통 수국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수국을 만나기 전에,  읽으려고 계획한 책은 이렇다.

 

 

 

접힌 부분 펼치기 ▼

 

 

 

(5월에 사들인 책은 사진 밖에도 있다)

펼친 부분 접기 ▲

 

 

 

 읽으려는 다짐을 위한 기록이기도 하다. 올해 내가 세운 계획은 읽기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다른 무엇을 잊지 않고 있다. 6월이 지나면, 올해는 절반이 남은 것이고, 계획을 실천할 시간도 그만큼 남은 것이다. 책은 그저 주문하다. 따져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른 물건을 살 때는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꼭 필요한지 생각하는데 책은 예외다.

 

 

 

 

 

 

 

 

 

 

 

 

 

 

 책을 주문할 때의 그 마음으로 열심히 읽기를 바랄 뿐이다. 주문할 때는 몰랐는데 여전히 문학뿐이다. 소설, 시, 에세이. 헤밍웨이의 단편집 『킬리만자로의 눈』과 권여선의 『레가토』는 마주하니 시원한 표지가 더 좋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식혈줄 것만 같다. 지금 읽고 있는 건 김경후의 시집 『열두 겹의 자정』이다. 수국을 만나기 전에, 모두 읽을 수 있을까. 다른 통로로 도착하는 책도 있고, 읽다만 책도 있고, 밀린 리뷰를 써야 할 책도 있으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여름이니 나는 예전보다 더 나른함을 즐길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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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기, 수국이 있었다
    from 識案 2012-07-10 10:22 
    수국을 보고 왔다. 가뭄으로 인해 수국은 한 달 가량 늦게 피었다. 그 사이 나는 문의 전화를 세 번이나 해야 했다. 전화할 때마다 수국이 피었나요? 라고 물었다. 레스토랑과 펜션을 겸한 그곳에 오로지 나는 수국을 보러 간 것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마음은 온통 수국을 향해 있었다. 수국은 토양의 성질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흰 수국, 보라 수국, 자주 수국, 파란 수국까지 다양하다. 어린 시절 마당에는 흰 수국만 떠올렸는데 막상 마주한 수국은
 
 
이진 2012-06-02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헤, 책이 많아요.
김경후는 시인 이름도 인상적이고 시집 제목도 멋진걸요?
요새는 시집에 관심이 많네요 +_+

자목련 2012-06-03 12:21   좋아요 0 | URL
낯선 제목과 이름 때문에 더 끌리는 것 같기도 해요.
시집을 많이 읽으면 좋은데, 그게 쉽지 않아요.
소이진님은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이진 2012-06-03 23:05   좋아요 0 | URL
책, 안 읽고 있네요.
책 정리한다고 책장에서 책 다 끄집어 내서 펼쳐놓고,
학교 수행이 넘쳐나다보니까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어요.
흑흑... 뭐 읽지요?
 

 

 꼬박 1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책이 있다. 그건 수상작품집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수상작을 낸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 나왔다. 파랑색 표지가 청량하다. 올해의 수상작은 김태용의 「머리 없이 허리없이」다. 달마다 선정된 소설을 만나는 일은 흥미롭다. 몇 몇 소설은 인터넷을 통해 읽었다. 김미월, 김이설, 손보미, 황정은, 이 네 명의 작가는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에도 선정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그네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집을 기다린 것이다.

 

 그 외에도 김사과, 윤고은, 안보윤, 조현은 다른 소설을 통해 만났다. 박솔뫼, 윤해서의 소설만 나는 처음 만나게 될 것이다. 두  소설의 경우엔 인터넷을 통해 읽기는 했지만 온전하게 열중하지 못했다. 작년에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정용준와 김선재를 만나 그 둘의 첫 소설집을 읽었다. 아마도 곧 손보미의 첫 소설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5월에 계획에 없던 많은 책을 들였다. 이유는 늘 같은 소리지만 이렇다. 울적한 기분을 달래야 했으므로, 눈 먼 적립금이 남아서, 좋아하는 작가니까, 알사탕을 많이 주니까, 다양하다. 책을 주문하고, 택배를 받고, 쌓고, 읽다 멈추고, 다른 책을 둘러보고, 신간알림 문자를 보고, 다시 또 주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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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3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어, 나도 등단하고 단편을 내고 여러 문학상에 이름을 올리는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인지 그 싫어하던 단편도 많이 읽고, 덩달아 수상작품집도 애독하게 되었어요. 이상문학상이 참 좋아보여서 무턱대고 이상문학상만 읽었는데 너무 수준이 높은 것 같아서, 이번에는 젊은 작가상도 읽으려고 준비 중이지요. 황정은은 이미, 유명하다고는 못 해도, 책도 몇 권 내고 이름을 좀 날렸지 않나 싶네요. 손보미와 김이설 등은 이름이 많이 보이는 걸로 봐서 자목련님 말처럼 '주목받는다'는게 확 보여요.

그런데 왠지 웹진하면 좀 문학성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왜 그런 느낌이 드는거지...

2012-06-01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12-06-01 07:15   좋아요 0 | URL
문동에서는 곧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인거지요. 소이진님도 관심을 갖고 계실 듯해서요. 개인적으로 김이설, 김미월, 손보미, 황정은을 특히 좋아해요. 지금쯤 학교에 계실까 싶어요. 6월, 즐겁고 행복하게 시작하세요!!
 
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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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란 말은 언제나 애달프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그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린다. 영원히 내 편이라 믿었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해야 했던 게 엄마의 죽음이다. 영원한 건 없지만 단 하나를 선택하라면 서슴없이 엄마를 선택할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러할 것이다. 『잘 가요 엄마』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며, 사모곡이다.

 

 소설은 주인공 ‘나’ 에게 새벽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한다. 병은 노모의 죽음은 예견되었던 것이다. 소식을 전하는 이부 동생도 애통함 보다는 그저 담담하다. 두 명의 남편을 두었지만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여자, 마음 속 가득찬 응어리를 누구에게도 풀어 놓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여자,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여 자식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다.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어머니를 담아낸다. 일제강점기, 남편에게 버림 받고 홀로 자신을 키우는 가난한 어머니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을지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싫어하고 미워했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날품팔이를 하고 일만 하는데도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월사금을 내지도 못했다. 그러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방학 때마다 찾아가는 외삼촌댁에서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곳엔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애숙이 누나가 있었다. 그러나 외삼촌의 중매로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동생이 태어나고 나는 더 겉돌았다.

 

 새아버지가 있었지만 여전히 일을 하는 건 어머니 몫이었다. 심지어 외삼촌 가족의 생계까지 어머니가 책임지고 있었다. 아무리 동생이라 해도 왜 어머니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앞둔 애숙이 누나를 야반도주 시키는 어머니가 이상했다.  어머니는 내가 잘못을 해도 호되게 꾸짖지 않고 언제나 죄인처럼 굴었다. 그런 어머니가 보기 싫어 집을 나온 후 연락을 끊고 지냈던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는 동생이 있었기에 경제적인 도움만으로 자식의 도리가 충분하다고 자위했던 것이다. 동생이 기억하여 들려주는 어머니의 인생은 오직 큰 아들만 향해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삶 어디에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온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던 것이다. 한 평생 큰 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립다, 보고 싶다, 말 한 마디를 내뱉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숱한 회한의 시간과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를 살면서 어머니를 안쓰럽게 여기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던 적이 없었다. 때문에 소설은 애절하고 눈물겹다. 내 어머니, 내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져서, 서러운 세월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한 여자의 기구한 운명이 서러워서 아프고 아프다.

 

 ‘무언가 그 깊이나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 주검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어머니의 표정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서 죽음이 비참한 종말이 아니라는 듯 편안해 보였다. 그 표정은 지금까지의 삶이 오직 생존만 하는 하찮은 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으로 보였다. 우리가 보통 삶이라고 부르는 것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도 없다는 것을 증거해 보이려는 듯했다.’ p. 58

 

 문득, 내가 기억하는 주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야윈 육체가 떠오른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온통 가시밭길로 이어졌던 삶을 벗어난 죽음은 평온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삶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사람들로부터 유린당하고 희생당하면서도 그런 질곡과는 무관심한 채로 일생을 보냈다. 오히려 그 참혹한 공포심을 끌어안고 흡사 아무런 구애도 없었던 것처럼 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혹은 남의 것이든 진솔하게 끌어안고 살았다. 드디어 어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죽음조차도 아무런 불평이나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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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친밀하다란 말이 떠올랐다. 지내는 사이가 아주 친하고 가깝다란 뜻으로 같은 의미로 쓰이는 밀접하다, 허물없다란 말이 있다고 한다. 허물없는 사이, 밀접한 사이보다 친밀한 사이가 더 단단한 관계처럼 느껴진다. 해서 자꾸 친밀하다, 친밀하다, 라고 중얼거린다.

 

 내게 친밀한 당신들을 생각한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당신이 있다.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듣지 못한 당신이 있다. 문자를 주고 받고, 안부를 나누고, 때때로 일상이 궁금한 당신이 있다. 무언가를 공유하면서도 무언가는 공유할 수 없는 사이이기도 하다.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받고 예상하지 못한 감동을 받는다. 그러니까 때때로 서툴고 때때로 친밀한 사이인 것이다. 서툰 친밀감 말이다.

 

 한 단어를 생각할 때, 한 도시를 생각할 때, 한 권의 책을 생각할 때 저절로 내게로 다가오는 나의 당신들, 혹은 나만 아는 당신,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들!! 누군가는 낯설어서 더 설레기도 하고, 누군가는 낯익어서 더 반갑다. 그냥 이런 글을 쓰고 싶은 날이다. 그냥 이런 감정을 말하고 싶은 날이다.

 

 책도 그렇다. 익숙한 이름이라 반갑고, 낯선 이름이라 더 궁금하다. 남자 작가에 이어 여자들의 은밀한 수다가 시작되었다. 김이설, 한유주, 구경미의 이름이 반가운 테마 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은 정말 표지부터 아찔하다. 킬 힐이라니, 부실한 체격으로 2cm 이상의 굽을 가질 수 없은 내게는 더욱 매혹적이다. 당연하게 남자 시인이라고 생각했던 김경후 시인은 여자였다. 그래서 더 좋다. 나는 여자를 더 좋아하니까. 열두 겹의 자정이란 제목은 더 좋다. 안도현의 시집 『북항도 나왔지만 나는 김경후에게 더 끌린다. 시는 어떨까, 분명 좋을 것이다. 계간지를 통해 보았지만 제대로 읽지 않은(나는 왜 계간지 장편을 읽지 못하는 것일까) 은희경의 장편소설 『태연한 인생은 과연 은희경다운 소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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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6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7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5-26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또 만나서 친밀..이제 운명인가 봐요..(막 이런다)

2012-05-27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0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0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