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9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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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건 심각한 착각이다. 자신에게 특별했던 부분만 선명하게 기억할 뿐이다. 하나의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의 기억이 같지 않은 것도 그렇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직업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우선은 외형적인 모습과 정보로 판단하고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인다. 내밀한 관계라고 믿는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하나의 진실에 닿는 것과 한 사람을 안다는 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처음 만나는 작가 다니엘 켈만 소설 『에프』속 인물들이 그랬다. 

 

 이야기는 가족을 떠나 다른 가족을 만든 아버지가 큰 아들 마틴과 쌍둥이 이복동생 이반과 에릭을 데리고 최면술 쇼에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낯설고 당황스럽게 서로의 존재를 처음 확인시킨 후 아버지는 최면술사 린데만 말대로 자신의 삶을 찾아 사라진다. 마틴은 성직자로 화가를 꿈꿨던 이반은 큐레이터가 되고 에릭은 잘 나가는 투자 전문가가 된다. 아버지 아르투어는 소설가가 되어 가끔씩 만남을 갖는다.

 

 소설은 마틴, 아르투어, 에릭, 이반의 인생을 교차로 들려준다. 그러니까 하나로 연결된 네 명의 인생을 만난다. 성직자 마틴의 삶은 전혀 성직자 답지 않다. 고도비만으로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초콜릿을 먹고 신에 대한 간절한 믿음도 없다. 마틴에게 소중한 건 큐브뿐 교리와 믿음에 대한 어려운 질문엔 신비로운 것이란 답으로 무마한다.

 

 ‘부서지는 초콜릿, 알싸한 코코아 맛. 하지만 이제 깨닫는다. 너무 기름지고 지나치게 달다는 걸. 거의 모든 게 이러한데, 예수는 이를 간파했고 부처는 보다 신중했다. 정말 충분한 것이란 없다. 모든 건 불충분하며, 그래도 사람들은 떨쳐 내지 못한다.’ (94쪽)

 

 에릭은 누가 봐도 성공한 사업가다. 아름다운 전직 여배우 아내와 거대한 저택에서 사랑하는 딸과 살고 비밀리에 애인도 만난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잘못된 투자로 고객에게 손해를 입히고 장부 조작으로 숨기고 부도 위기에 처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가족에게 큰소리를 친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이반에겐 재능이 없었다.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이반은 우연한 기회에 거장의 작품을 모작한다. 사람들은 진품으로 알았고 이반은 이를 이용해 한 화가의 그림을 모작한다. 가짜가 진짜가 된 것이다. 언론과 매체의 힘으로 말이다. 진실을 아는 사람과 그것을 확인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이반이다.

 

 ‘예술은 신만큼이나 드물다. 시간의 종말, 영원, 천사의 무리 만큼이나. 작품만 있을 따름이다. 스타일, 형태, 존재 면에서 다양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의견들의 끝없는 속살거림도 있다. 동일한 대성도 시간 분위기에 따라 붙는 이름이 다르다.’ (258쪽)

 

 가장과 아버지의 책임과 역할을 모두 아내에게 미루고 독특한 소설을 쓰는 아르투어의 이야기는 그의 소설 『가족』이 대신한다. 자신과 다르지 않은 아버지가 등장하는 소설은 의미심장하다. 다양한 직업과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전의 아버지. 아버지로 존재하면서도 아버지가 아닌 사람, 아버지는 수많은 개인이자 우리였다. 결국엔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갈 뿐이다.

 

 다니엘 켈만은 소설에서 거짓과 진실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소설 속 인물은 두 개의 모습을 갖고 살아간다. 욕망을 성직자라는 옷으로 가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위장하고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며 소설 속 인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다니엘 켈만이 전하고 싶었던 건 아르투어의 주인공이 에프인『내 이름은 아무도 아니다』란 소설과 최면술사 린데만의 말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이 있냐고. 자신에 관해 뚜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냐고. 사람은 너무 많은 걸 원하며, 원하는 게 매 순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246쪽)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손녀인 마리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 아르투어의 말로도 이어진다. 가짜였다가 진짜가 되기도 하고 거짓에서 진실을 보고 우연처럼 찾아오는 운명을 믿고 사는 우리네 삶처럼 말이다.

 

 “우연은 막강하고, 누구에게도 정해지지 않은 운명이 느닷없이 찾아오지. 우연의 운명이라고나 할까. 그런 건 금방 일어나.”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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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9 0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9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9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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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숨 고유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소설. 느리게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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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3일 책의 날이다. 책의 생일지만 매년 이 날을 알려주는 건 서점이다. 4월에 책의 날이 있다는 건만 알뿐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 책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수많은 책들. 도서관, 창고, 서점, 화장실, 침대, 기차 안, 지하철, 스마트 폰까지 펼쳐지거나 접히거나 사라지는 책들. 여전히 내게는 정리해야 할 책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다.

 

 책의 날을 맞아 몇 권의 책을 생각한다. 그냥 떠오른 책이다. 가장 최근에 가장 나를 휘어잡은 책은 평범하면서 특별한 한 남자의 이야기 『스토너』, 많은 소설이 나와도 은희경과 하나로 인식되는 『타인에게 말걸기』, 같은 제목의 시집을 출판사, 디자인에 다르게 소장하게 된 정현종 시집 『견딜 수 없네』, 엄태웅의 서툰 연기와 나만의 곰스크를 생각나게 만드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인생이라는 길고 긴 길을 걷는 우리네 삶 『이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쩌면 끝내 완독하지 못할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 『젠틀 매드니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에프』.

 

 

 

 

 

 

 

 

 

 

 

 

 

 

 

 

 

 

 

 『에프』의 이런 문장을 지나가고 있다. 의도하지(어쩌면 일부러 이 포스팅을 위해 이 부분에서 멈췄을지도) 않았는데 마침 책에 대한 내용이다.

 

 이반과 에릭과 나는 갈색 포장지의 봉투에 든 이 책을 각각 우편으로 받았는데, 발신이나 헌정의 말도 없었다. 책은 어느 곳에도 소개된 적이 없었고, 서점에서도 보지 못했다. 일 년이 지난 뒤에야 처음 이 책을 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나는 잠시 착각한 줄 알았다. 하지만 벤치에 앉은 나이 든 남성이 손에 이 책이 진짜 들려 있었고, 남자는 책을 읽는 동안 재미있는지 혼자 미소를 지었는데 자신의 실존을 두고 의심에 사로잡힌 게 분명했다. 나는 몸을 숙여 파란 단색 겉표지를 쳐다보았고, 남자가 불안하게 고개를 드는 바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86쪽)

 

 

 어떤 하루는 아주 더디게 지나고 어떤 하루는 정신없이 흐른다. 그런 하루가 모인 사월은 아프게 지나갈 것이다. 하루를 산다는 건 삶을 사는 것이고 하루를 산다는 건 죽음을 견디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산다는 건 위대한 일이다. 정현종 님의 시로 당신과 나의 하루의 안부를 대신한다.

 

 

 오늘 일들은 다 잘 됐는지.

 또 하루가 지났지.

 하루가 지나가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어떤 문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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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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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맛으로 표현하자면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은 달콤한 맛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전쟁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면 쓴맛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이 있고 사랑에도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소설을 하나의 맛으로 표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함정임의 소설집 『저녁 식사가 끝난 뒤』을 아린 맛이라 말하고 싶다. 그건 단편집 전반에 드리운 상실과 부재,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그를 언급하지 않은 채 추모하는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뿐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들려주는 아련한 「기억의 고고학―내 멕시코 삼촌」, 양부모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주인공이 연인과 이별 후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엔 직간접적으로 죽음이 언급된다. 나머지 단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예정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어디 소설뿐이랴. 따지고 보면 우리 앞에 펼쳐질 생은 이별의 반복일 뿐이다.

 

 결혼식 사흘 전에 사라진 약혼자가 십 년 뒤 남긴 유품의 수첩에 적힌 프랑스 호텔을 여행하며 그와 온전히 이별하는 나미의 여정「어떤 여름」, 결혼과 동시에 멕시코로 떠난 U와의 만남을 통해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꽃 핀 언덕」,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만나 가슴에 새긴 한 소녀의 죽음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는 남자의 이야기 「오후의 기별」엔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기질을 만날 수 있다. 함정임은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말한다. 그러니 계획된 일상을 뒤로하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거나 히말라야로 향하는 소설 속 인물의 선택이 불편하기는커녕 그들을 따뜻하게 배웅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불안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끌린다. 「어떤 여름」에서 나미와 충동적으로 동행하는 장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모험보다는 모험 이후의 어떤 흐름, 인생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의 모든 것.’ (「어떤 여름」, 98쪽)

 

 그러나 여전히 이별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구두의 기원」속 이명을 앓고 삶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힘겨운 소설가의 삶과 다르지 않다. 일요일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는 소설가의 독백처럼 말이다.

 

 늙은 엄마에게 손자처럼 자란 너는 늙어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라는 순리를 비교적 일찍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치를 비교적 늦게까지 깨닫지 못했다.’ (「구두의 기원」, 134쪽)

 

 그러니 예전 편집자 J를 찾아 어린아이처럼 기대고 의지하는 심정을 함부로 탓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구두 한 짝은 상실을 채우는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구두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반대로 매일 마주했던 구두가 사라지면서 자신도 사라질 수 있다는 엄정한 사실에서 살아 있다는 경이로운 삶의 단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이 구두가 아니었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그것이 정말 구두였는지, 그렇다면 누구의 것이었는지, 또한 그것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너는 아는 것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 너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물감의 흔적을 또렷이 새겨놓았고, 이물감이란 소용돌이치며 타오르는 생명력이었다.’ (「구두의 기원」, 139쪽)
 

 반복되는 유산으로 삶과 죽음을 경험하고 견뎌야 하는 「밤의 관조」속 화자와 「구두의 기원」의 소설가는 가슴 깊숙하게 안기는 인물이다. 사라진 존재가 삶의 이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만 한다.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가장 완벽한 애도다.

 

‘나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세계에 걸쳐 서 있었다. 경쾌한 소리, 투박한 소리, 엉기는 소리, 육중한 소리. 그들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소음은 걷는 것, 오르는 것,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밤의 관조」,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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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5-05-1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 2015-05-12 06:53   좋아요 0 | URL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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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잘 지내냐며 갑자기 생각났다는 간단한 안부의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내 번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그럼에도 끝 번호 네 개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니 같은 끝자리의 다른 번호가 나왔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보낸 문자일지도 모른다. 답장은 보내지 않았고 더 이상의 문자도 오지 않았다. 기억한다는 건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것과 다른 것이다. 어떤 관계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차단하기 위해 기억한다.

 

 소설 속 마르가레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남자를 기억해야만 했다. 보스망스는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워 오랜 시간 마르가레트를 기억했다. 기억과 기억이 마주하는 순간 진짜 기억과 조우할 수 있을까? 소설가 보스망스는 진짜 기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기억 속으로 돌진한다. 청춘의 민낯을 마주하는 이십 대의 시절로 말이다.

 

 자신과 닮은 존재를 한눈에 알아보듯 보스망스의 눈에 비친 마르가레트의 불안은 익숙했다. 자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는 과거의 남자를 떠나 다른 삶을 찾는 마르가레트와 존재 자체가 고통이었던 어머니와 신부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고자 원했던 보스망스는 새로운 미래라는 같은 목표를 지녔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둘은 서로에게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온통 낯선 사람들 속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청춘의 몸짓은 보스망스의 기억 속에 흐릿하면서도 선명하게 남았다. 얼마나 간절하게 새로운 삶을 원했는지 말이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91쪽)

 

 관계를 맺고 확장하는 일이 두려웠 마르가레트에게 보스망스는 유일하고 지속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끝내 온전한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사십여 년 전의 마르가레트를 찾는 보스망스의 여정은 사랑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때 잃어버린 미래이자 지평인지도 모른다. 곁에 있어도 사라질 것 같았던 존재를 이제는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열망 같은 것. 파리의 거리에서 그녀를 닮은 여자를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 게 전부라 할지라도.

 

 ‘보스망스는 걸음을 멈추고 여자가 센 강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저 여자를 쫓아간들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같은 시간의 통로를 지날 것이다. 그러면 이 신시가지에서 우리 둘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137쪽)

 

 현재를 사는 우리는 삶이 과거가 되었을 때 정확히 그것을 볼 수 있다. 그제야 대면할 용기를 지닌다. 그 시절을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가지 못한다. 기억이라는 상처를 견디고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평을 향해 발을 디딜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이 기억이라는 안개를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만나게 될 그곳에서의 당신을 향해.

 

 ‘미래…… 지금의 보스망스에게는 날카롭고도 신비로운 울림을 주는 말.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한 번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영원한 현재 속에 있었다.’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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