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 행복한 죽음을 위하여
박예슬 외 지음 / 엔자임헬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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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두려움으로부터 분리해야 하고, 죽음이 삶의 정상적인 과정임을 인식해야 한다.’ (59쪽)

 

 노후를 준비하듯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겨우 오늘을 살아내기도 바빠서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염려할 시간이 없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적확한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장례식장이나 추도 예배를 드릴 때에나 죽음과 만나고 죽음을 확인할 뿐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죽음을 볼 수 있다면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1년 2개월 동안 쿠키뉴스 기자들이 만난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록인 『해피엔딩』이 죽음에 대한 변화를 안겨주지 않을까 싶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방법은 다양한다.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힘겨운 마지막을 보내는 이도 있고 남은 삶을 정리하며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이도 있다. 어떤 죽음과 만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해도 그 선택의 몫은 오로지 스스로의 몫이다. 책은 다양한 죽음의 과정을 보여준다. 천천히 삶과 이별하는 사람, 준비 없이 갑자기 마주하는 죽음, 치료를 거부하고 세상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고독사로 발견되는 사람.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섭고 두렵기만 하지만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삶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죽음은 결국 삶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건 삶을 산다는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걸 항상 생각하고 산다는 건 끔찍하다. 그렇다면 죽음을 만지는 일이 직업인 장례기사는 불행한 사람일까. 아니다.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자원봉사, 의사,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법의학자들, 그리고 장례기사에게 죽음은 숭고하고 삶도 그러하다. 책에서 다루는 죽음은 단순히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통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장기기증,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논의, 시신기증, 의료 사고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죽음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영정사진을 찍고, 유서를 쓰고 직접 관에 들어가 누웠다가 다시 나오는 과정의 죽음 체험은 읽는 것만으로도 경건하고 엄숙해졌다.

 

 부모님과 큰언니를 떠나보내고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그 시간은 줄어든다. 매일 죽음을 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의 마지막에 무엇을 해야 할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 베티 조 심슨 할머니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했던 큰언니가 생각난다. 말기암 가정 호스피스가 시범사업을 큰언니가 받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제도가 온전하게 시행되기를 바란다.

 

 ‘생명은 마지막까지 고귀한 것이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기억돼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따라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우리 모두의 삶은 의미가 있고,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삶은 소중하다.’ (162쪽)

 

 행복하고 아름다운 죽음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 마지막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 죽음이 편안하게 다가올 것이다. 마지막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순간의 소중함을 놓쳤을 때 이 책은 잊고 있던 감사를 불러올 것이다. 애도의 시간에 이 책을 펼쳐도 괜찮다. 어쩌면 눈물은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소중한 삶의 일부며 그것은 현재를 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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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9-1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슬프게 우는 것은 아마도 거기서 부모의, 사랑하는 이의, 그리고 나의 죽음을 미리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자목련 2016-09-20 16:03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가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으니까요. 나와같다면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녘에 반가운 소리에 눈을 떴다. 비가 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기다렸던 비다.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침대 구석에 내팽개졌던 이불을 끌어당겼다. 여름과의 온전한 이별이 남았지만 가을이 오는 것만 같았다. 말복도 지나고 처서도 지났으니 조금씩 생활이 달라진다.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와 함께 부드러운 단호박을 먹었다. 선명한 단호박이 나를 보고 웃는 듯했다. 빗소리는 잦아들었다. 곧 비가 그칠 것이다. 길어진 가뭄의 갈증을 풀어줄 비를 또 기다리겠지.

 

 하나의 계절이 가고 하나의 계절이 오는 날들의 감정은 선명할 수가 없다. 계절의 변화는 어떤 시간을 소모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떠난 큰언니의 추도예배를 드리며 나눈 대화가 그러했다. 큰언니의 냉장고 속 유통기간이 지난 양념을 정리하면서도 1년이라는 시간에 담긴 일상의 조각을 떠올렸다. 큰언니가 아꼈던 나무는 더위를 견디지 못했고 나는 그것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야자수라 부르는 나무만 건재했다. 잘린 줄기에서 자란 잎이 너무 예뻤다. 다음에 만날 때는 또 얼마나 자라있을까. 고마운 나무였다. 청소를 하고 필요한 물건을 메모하고 우편물을 챙겨 돌아왔다. 큰언니의 집에 다녀오면 더욱 빈자리는 커진다. 

 

 냉장실에는 여름 과일인 복숭아가 사라지고 사과와 포도가 들어왔다. 순환하는 중이다. 책장도 순환한다. 알림 문자가 반가웠던 김혜진의 첫 단편집 『어비』와 백수린의 두 번째 단편집 『참담한 빛』,삶과 죽음을 말하는 두 권의 책『해피엔딩』『숨결이 바람 될 때』, 남겨진 여름을 위한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난했던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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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8-2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아이스 라떼를 마시니 이제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겠구나, 했어요. 아웅, 가을결이 느껴지니 또 마음이 좀 그래요.

자목련 2016-08-29 10:41   좋아요 0 | URL
기척도 없이 가을이 다가오니 저도 마음이 살짝 이상해요. 가을이 온다는 건 겨울도 멀지 않았다는 일이니... 그래도 더위가 물러가니 한결 좋아요^^
 

 

 혹자는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을 갖는다고 거창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를 위해서다. 먹고살기 위해 지긋지긋한 직장에 나가고 적게나마 저축을 한다. 꿈꾸는 미래는커녕 당장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게 요즘 현실이다. 그러니 사직서를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상대가 누구든 말이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직장에 대한 고민과 불만은 복 겨운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고 부당하다는 건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게 된 것일까. 쓰무라 기쿠코의 라임포토스의 배를 읽다 보니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나쁜 말을 하게 된다. 반면 마음이 맞는 동료가 있었기에 힘들었지만 즐겁게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지루할 만큼 반복된 일상에서 휴가나 여행은 보상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공장일이 끝나면 친구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컴퓨터 강의를 하고 밤에는 데이터 입력을 하며 돈을 모으는 스물아홉의 나가세는 그저 살아간다. 그저 물만 주면 잘 자라는 라임포토스를 키우는 게 유일한 나가세의 취미라 할 수 있다. 일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 대신 도구처럼 사용되는 자신의 모습에 우울하기만 하다.

 

 ‘‘시간을 돈에 파는 듯한 기분’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몸이 굳었다. 일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회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음식물과 전기, 가스와 같은 에너지를 고만고만하게 사들여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신의 불안한 삶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이.’ 「라임포토스의 배」, 14~15쪽

 

 그러다 휴게실에서 세계일주 광고 포스터를 통해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일 년 치 월급과 맞먹는 163만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50년 된 낡은 집도 수리해야 한다. 우선은 실현 가능한 지 모르지만 목표를 세운다. 나가세는 점점 더 돈을 아낀다.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친구가 함께 놀러 가자는 제안에 어쩔 수 없이 나가지만 머릿속으로 돈 계산에 바쁘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친구가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아이와 나가세의 집으로 들어오고 생활은 더 쪼들리게 된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어머니와 친구 모녀가 가깝게 지내는 모습에 서운한 마음도 든다.

 

 ‘돈 때문에, 돈을 쓰지 않으려고, 무익한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열심을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 집에 갈 여유조차 없다. 세계일주 비용은 순조롭게 쌓여갔지만 나가세는 왠지 모르게 허무함을 느꼈다.’ 「라임포토스의 배」, 81~82쪽

 

 「라임포토스의 배」는 나가세와 친구를 통해 스물아홉의 삶을 보여준다. 여행이라는 목표를 세운 나가세,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차린 친구,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친구, 남편과 이혼을 결정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친구. ​저마다의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네 그것과 닮아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힘든 시간이지만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그 안에서 소소한 일상의 감사를 누리는 삶.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직장생활을 다룬 「라임포토스의 배」에 비해 「12월의 창가」는 직장 내의 따돌림의 이야기다. 출판 인쇄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주인공은 폭언을 일삼는 직장 상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결국 사표를 낸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소설이라 그런지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여성 따돌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직장인의 비애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황당한 실수를 저질러도 일은 계속해야만 하니까요. 머나먼 하늘 밑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회사원은 일을 해야죠.”’ 「12월의 창가」, 130쪽

 

 두 편의 소설을 통해 일과 일하는 여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일, 연애, 결혼, 육아로 확장된다. 직장 여성이라면, 위킹맘이라면 더욱 크게 와 닿을 것이다.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잔잔하게 그렸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와 닮은 듯 다른 감성,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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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바람이 있었고 오늘은 약간의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관성 있게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변함없이 매미소리는 우렁차다. 내일이 없다는 걸 다 안다는 소리인가. 오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데. 변화, 변신, 변장이란 단어를 생각한다. 순간마다 변화하는 모든 것들. 바람의 크기, 햇볕의 세기, 숨소리, 그리고 내 마음. 마음의 변화는 얼마나 충동적인가, 얼마나 간사한가. 냉장고 속 복숭아와 자두는 어제는 그것이 아니다. 복숭아는 미세하게 숙성된 맛을 보여준다. 뜨거웠던 김치찌개는 냉장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다. 폭염이 이어지는 날들, 밤마다 뒤척인다. 올림픽에 열중하지 못하면서도 경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잠들지 못하기에. 바로 잠드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8월 11일이라는 날짜에 화들짝 놀라고 만다. 오늘은 누군가의 생일이고 작은 언니가 말라위에서 돌아오기로 예정된 날이다. 계획대로라면 밤늦게, 혹은 내일 새벽에 도착할 것이다. 하루를 지배하는 건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지배하고 때로 나를 농락할까.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예전의 그것과 다르게 변화한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고유한 무언가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여러 권의 책을 늘어놓고 읽는 흉내를 낸다. 무언가 몰입할 수 있다면 더위도 잠시 잊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생각뿐이다.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선뜻 답할 수 없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다의 뚜껑』은 충동구매였다. 처음부터 읽는 것도 아니다. 아무 곳이나 펼쳤다. 그랬더니 이런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세상에나, 내 머릿속에 들어온 거 아니야? 이 소설에 대한 사랑은 오래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누가 없애 버리려 하거나, 일부러 획일화하려 해도, 아무리 억압해도 절대 없어지지 않는, 그런 힘을.’

 

 ‘거푸 돌아오는 계절을 영원히 볼 수는 없다. 적어도 버드나무보다는 먼저,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리라.’

 

 장석주의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그의 산문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시로 만난 장석주가 아닌 산문을 읽고 싶었다. 많은 책 가운데 이 책을 선택한 건 제목이 주는 울림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오정희의 『새』를 다시 읽고 싶었다. 천진하다고 할 수 없는 우미의 눈빛과 마주하고 싶었다. 내일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없이 살아가는 삶에도 변화는 존재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감이 아닌 두려움으로 마주하는 시간들은 무겁고 어둡다. 작고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세포를 키우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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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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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닷없이 찾아온 통증으로 잠을 설치는 밤들이 있다.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통증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외마디 외침을 쏟아냈다. 무작정 그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잠들려고 몸을 둥글게 말아 뒤척이다 결국엔 불을 켜고 앉았다. 눈이 부셨다. 다스릴 수 없는 몸의 시간을 어찌할 수 없어 잠깐 울었다. 그런 밤에 마주한 게 침묵이었다. 읽다 만 한강의 소설을 잡았을 때 확인할 수 없는 내 얼굴에도 새 같은 무엇인가가 있었을까, 잠깐 생각했다.

 

 ‘기척 없이 그녀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147쪽)

 

 두 번째 읽는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은 아주 천천히 내게로 왔다. 처음 읽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침묵의 결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팠다. 들릴 듯 말듯한 가냘픈 음성이 있었다. 그래서 더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여자는 이혼을 했고 아이를 빼앗겼고 엄마가 죽었다. 모든 것을 잃은 여자는 어느 시절 말을 잃었던 것처럼 다시 말을 잃었다. 여자는 언어를 되찾기 위해 어떤 구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원하지 않았던 침묵이었기에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한 듯한 삶이지만 침묵의 세계는 고요하지 않았다. 크고 굵은 소리들이 그녀를 둘러싼다. 오직 아이의 음성만이 그녀에게 웃음을 주고 평화를 안겨준다.

 

 남자는 시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곧 그의 삶에는 빛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열다섯 살 독일로 떠났다가 십칠 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처럼 시력을 잃다가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남자의 삶에서 선명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학원에서 희랍어를 가르치기 위해 문장을 쓰고 외운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자를 만났다. 여자와 남자, 보편적인 삶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삶이 놓여지만 그들에게는 지극히 보편의 삶이다.

 

 깨지지 않는 침묵이 흐르는 확장되지 않는 빛의 공간에서 여자와 남자는 대화를 나눈다. 여자의 기척을 느끼며 그저 자신의 지난 삶을 이야기하는 남자. 그것은 결코 고통의 사랑이 아니었다. 잔인한 기억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사랑, 위대한 사랑, 고귀한 사랑이었다. 손끝으로 울리지 않는 소리를 적어 답하는 여자. 몸으로 익힌 자신의 공간에서 여자의 숨소리를 온몸으로 채집하려 한다. 마치 소리가 처음으로 잉태되던 태고의 순간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결핍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나가 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는 입맞춘다. 축축한 귀밑머리에, 눈썹에. 먼 곳에서 들리는 희미한 대답처럼, 그녀의 차가운 손끝이 그의 눈썹을 스쳤다 사라진다. 그의 차디찬 귓바퀴에, 눈가에서 입가로 이어지는 흉터에 닿았다 사라진다. 소리없이, 먼 곳에서 흑점들이 폭발한다.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난다.’ (184쪽)

 

  단순하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라 말할 수 없다. 사랑, 혹은 구원을 말하는 소설이라 말할 수도 없다. 여자가 말을 잃었고 남자가 빛을 잃어서가 아니다. 거기, 당신이 있기에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침묵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소멸과 상실로 이어지는 삶 속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의 떨림이라고 해야 할까. 스치듯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 당신의 기척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고통과 통증의 크기를 잴 수 없고 그 끝에 무엇이 올지 모른 채 살고 있는 나에게도.

 

 ‘끈질기게,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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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8-1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 마세요...

2016-08-1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6-08-11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마음 아파요.

자목련 2016-08-11 18:03   좋아요 0 | URL
한강의 소설은 대체로 많이 아픈데 <희랍어 시간>은 더욱 애잔했어요.
더위가 사그라들지 않네요. 그래도 곧 가을이 온다고 생각하니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