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에 반가운 소리에 눈을 떴다. 비가 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기다렸던 비다.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침대 구석에 내팽개졌던 이불을 끌어당겼다. 여름과의 온전한 이별이 남았지만 가을이 오는 것만 같았다. 말복도 지나고 처서도 지났으니 조금씩 생활이 달라진다.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와 함께 부드러운 단호박을 먹었다. 선명한 단호박이 나를 보고 웃는 듯했다. 빗소리는 잦아들었다. 곧 비가 그칠 것이다. 길어진 가뭄의 갈증을 풀어줄 비를 또 기다리겠지.

 

 하나의 계절이 가고 하나의 계절이 오는 날들의 감정은 선명할 수가 없다. 계절의 변화는 어떤 시간을 소모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떠난 큰언니의 추도예배를 드리며 나눈 대화가 그러했다. 큰언니의 냉장고 속 유통기간이 지난 양념을 정리하면서도 1년이라는 시간에 담긴 일상의 조각을 떠올렸다. 큰언니가 아꼈던 나무는 더위를 견디지 못했고 나는 그것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야자수라 부르는 나무만 건재했다. 잘린 줄기에서 자란 잎이 너무 예뻤다. 다음에 만날 때는 또 얼마나 자라있을까. 고마운 나무였다. 청소를 하고 필요한 물건을 메모하고 우편물을 챙겨 돌아왔다. 큰언니의 집에 다녀오면 더욱 빈자리는 커진다. 

 

 냉장실에는 여름 과일인 복숭아가 사라지고 사과와 포도가 들어왔다. 순환하는 중이다. 책장도 순환한다. 알림 문자가 반가웠던 김혜진의 첫 단편집 『어비』와 백수린의 두 번째 단편집 『참담한 빛』,삶과 죽음을 말하는 두 권의 책『해피엔딩』『숨결이 바람 될 때』, 남겨진 여름을 위한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난했던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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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8-2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아이스 라떼를 마시니 이제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겠구나, 했어요. 아웅, 가을결이 느껴지니 또 마음이 좀 그래요.

자목련 2016-08-29 10:41   좋아요 0 | URL
기척도 없이 가을이 다가오니 저도 마음이 살짝 이상해요. 가을이 온다는 건 겨울도 멀지 않았다는 일이니... 그래도 더위가 물러가니 한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