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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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는 모호해요. 각자 나름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믿는 걸 나름대로 정의해가는 수밖에 없어요” (167쪽)

 

기이한 경험을 했을 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선뜻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상대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않고 상상이나 착각이라고 타박을 놓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현상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야마시로 아사코의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써 슬픔을 감춘듯한 표지처럼 뭔가 비밀스러운 공포를 전해준다고 할까. 놀랍게도 그 공포는 피하고 싶은 두려움보다는 가만히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순간 서서히 옅어진다.

8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다. 부부에게 동시에 나타난 혼령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이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부모를 잃고 이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소녀와 소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머리 없는 닭에 대한 애처로운 이야기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 여자 친구가 술을 마시면 잠깐 동안 미래를 볼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도박에 이용해 결국엔 파국에 이르는 「곤드레만드레 SF」,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중고 이불 덕분에 재기에 성공한 소설가의 사연 「이불 속 우주」,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날리는 섬뜩한 이야기 「아이의 얼굴」, 2011년 대지진으로 아들과 아내를 잃은 남자가 무전기를 통해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무전기」, 이혼한 남편에게 딸을 보여주러 나갔다가 남편이 딸을 데리고 도로로 뛰어들어 동반자실을 한 모습을 목격한 후 정신이 이상해진 아내의 일상을 담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침몰하는 배에서 죽음을 맞이한 화자가 천사를 만나면서 경험하는 생과 사의 경계를 다룬 「잘 자요, 아이들아」까지 색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마다 놀랍고 잔혹스러운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슬픔과 상처에 다가가게 만든다. 꾸며낸 소설 속 상상의 한 장면이라 여기면서도 어느 세상에서는 현실의 한 장면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진한 여운을 남긴 몇 편을 소개하면 이렇다. 아동 폭력을 소재로 한「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에 등장하는 ‘후코”에게 머리 없는 닭 ‘교타로’는 유일한 친구였다. 자신을 미워하는 이모를 피해 몰래 교타로를 키우는 후코와 전학을 온 ‘나’와 친해지면서 닭을 함께 돌본다. 이모에게 후코가 무자비하게 살해를 당하고 ‘나’가 밤마다 교타로와 밤을 헤매는 모습을 상상하면 하나도 무섭지 않고 애처롭다.

나와 머리 없는 닭은 마치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 아래를 가고 싶은 대로 나아간다. 아득히 넓고 쓸쓸한 세상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나는 머리 없는 닭과 함께 언제까지나 밤의 어둠 속을 헤맨다. (72쪽)

 

아들과 아내를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으로 술에 빠져 사는 ‘나’ 아들의 부서진 무전기를 통해 아들과 대화를 하는 「무전기」는 더욱 애틋하다. 술에 취해서 들리는 환청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무전기를 버리지 못하고 위로를 받는 그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아키와 사귀면서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고 둘은 결혼을 한다. 아키는 결혼 후에도 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며 공감한다. 어쩌면 ‘나’에게 그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잘 자요, 아이들아」는 침몰하는 배에서 사고를 당하는 과정이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사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기에 그랬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나’는 영화관에서 자신의 지난 삶이 담긴 필름을 본다. 그러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모습이다. 천사가 자신의 필름을 잘못 가져온 것이다. 진짜 삶의 필름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배에서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주님이 있는 곳이 아닌 천사를 선택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한 이별을 한 이들을 맞이하고 천상의 세계로 이끄는 일이다. 두렵고 무섭기만 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언젠가 우리도 소설 속 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때 보게 될 나의 필름은 어떤 장면을 담고 있을까.

각양각색의 인생이지만 하나같이 축복과 비애로 가득하다. 모든 필름이 별처럼 반짝여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영상이 끝날 때마다 나는 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죽은 자의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이들아, 잘 자요.

사람들아, 잘 자요.

잘 자요, 편안하게. (256쪽)

고유한 슬픔과 고통을 견디며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가만한 위로를 안겨준다. 있는 그대로 슬픔을 바라보는 일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위안일 수도 있다. 애써 위로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말이다. 이 단편집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그런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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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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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좋았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 좋아서 그 설렘을 나눠주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전달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여선이라는 작가의 소설에 대해 나는 조금 과한 애정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과장된 애정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에 비하면 그의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쓰는 일은 몹시 힘들다. 이처럼 말이 길어지는 것도 그런 과정이 일부다.

 

19회 이효석 문학상 대상 선정작인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은 과연 탁월했다. 조심스럽지만 이전의 작품과는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고, 나는 그 변화가 반갑고 기뻤다. 언제나 그렇듯 권여선의 문장은 날카롭고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뭔가 세월의 흔적 같은 게 담겼다고 할까. 그러니까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게 보였다고 할까. 아무튼 내게는 그랬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란 문장이 주는 기발한 울림. 역시 권여선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 그 멀고도 가까운 사이를 관찰자처럼 그려나간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그 안에는 가족, 혈육, 세대가 있었고 서로 다름이 있었다. 이혼한 전처의 죽음과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와 딸.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보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 그러니까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모르는 영역’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노력과 동시에 그냥 그대로 바라보는 일, 두 가지의 균형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낮달’이나 저수지의 ‘새’가 부여하는 의미를 자신의 삶에서 찾아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수상작과 함께 작가 자선작 「전갱이의 맛」은 역시 권여선의 단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혼한 전 남편과 우연하게 만난 ‘나’는 그가 성대낭종 수술을 받고 한동안 회복을 위해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시간 동안에 그가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그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 그리고 말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고 나의 말이 생겨난 배경을 듣는다. 이 소설은 말과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말이 필요한 시간, 말이 사라진 시간, 말이 생성되는 시간, 그런 것들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게는 무척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나의 말은, 그가 힘주어 말했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억되거나발견되는 거야. 내가 어떤 언어를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기억하거나, 그 간절함이 생겨나는 그 순간을 발견해서 내 말로 삼는 거지. 그러니까 내 말들은 어원을 잃는 법이 없어. 최초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말 속에 삶이 깃드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저 표현으로 먼저 생겨난 말도 있고, 가끔 아주 외설적인 말도 뛰어나와.” (66쪽, 「전갱이의 맛」)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70쪽, 「전갱이의 맛」)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김미월의 단편 「연말 특집」은 김금희의 「세실리아」가 겹쳐지지도 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지난 시절 부끄럽고 무지한 행동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불러온다. 하지만 무겁지 않게 경쾌한 리듬으로 그려냈기에 김미월도 달라진 것일까. 나만 이 변화를 늦게 알아차린 것일까. 역시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김봉곤의 「컬리지 포크」는 자전적 글쓰기의 이어짐 같았고 김희선의 「공의 기원」은 제목 그대로 축구공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탄탄한 짜임새로 그려냈으며 최은영의 「이치다에서」는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글로 타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말하고 있었다. 김연수의 「그 밤과 마음」은 한겨울에 읽으면 더 좋은 것 같다. 시인 백석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력이 독자를 눈 내리는 깊은 겨울밤으로 이끈다.

 

권여선의 소설과 함께 나를 가장 흔든 최옥정의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는 죽음과 대한 사유이자 삶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에 돋보이는 소설이다. 조각가인 화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종이를 이어 만든 의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정작 그 의자는 앉을 수가 없다. 기능을 상실한 의자, 어쩜 그건 화자 자신의 분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암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에서도 소설을 굳건하게 쓴 작가의 집중력에 경이를 표한다.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며 써 내려갔을 소설.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좋은 소설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소설의 안과 밖으로 다양한 삶 속으로 나를 이끄는 작가의 손을 오래도록 잡고 싶다.

 

생각보다 죽음은 조용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죽음이 굉장히 빨리 잊힌다는 사실이다. 저 사람이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부짖던 극도로 의존적이던 가족도 죽음과 함께 후다다가 자기 자리를 찾았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을 금방 자유롭게 했다. 죽음은 기다리는 일이 어렵지 막상 일어나면 그냥 일상일 뿐이었다. (252쪽,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누구나 죽지만 죽을 때까지는 죽는 게 아니다. 비록 짧더라도 사는 동안은 살아야 한다. (253쪽,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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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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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장난처럼 말한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라고” 드라마 속 대사를 인용해서 말이다. 지난 사랑에 대한 아쉬움, 사랑의 고백도 하지 못한 채 헤어진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런데 정말 타이밍을 놓쳐서 서로 어긋났던 이들이 다시 만난다면 그들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운명의 상대라 믿었던 남자가 절친의 남자친구로 내 앞에서 서는 조지 실버의 『12월의 어느 날』속 운명의 장난 같은 경우라면 어찌해야 할까. 이미 친구에게 운명의 남자에 대해 다 말해버렸는데, 그 남자가 바로 네 연인이라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소설 속 로리와 세라는 서로의 전부를 다 아는 그런 친구다. 잡지사에서 경력을 쌓고 싶은 로리, 방송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 세라는 모든 걸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솔메이트다. 로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버스 정류장에 잠깐 눈이 마주친 남자를 세라와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1년이 지난 시간 세라가 소개한 남자로 등장한다. 세라는 잭을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잠깐 둘 사이에 벌어질 일을, 막장 드라마급으로 상상한다. 로리가 세라를 배신하고 잭을 만나는 걸까, 아니면 로리를 알아본 잭이 양다리를 걸치기로 한 걸까.

 

소설은 로리와 잭이 교차로 자신의 마음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사소하고도 긴밀한 감정에 대해 묘사한다. 20대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곡선들,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면서도 실수로 여기고 친구의 사랑을 응원하는 로리가 대견하면서도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로리, 세라, 잭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우정을 쌓는다. 거기다 로리가 태국 여행에서 만난 오스카까지. 더블데이트를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는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인생은 이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 법. 잭의 교통사고로 인해 세라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이별의 징조라고 해야 할까. 시련이 있을 때 사랑은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라고 누군가 말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잭과 세라는 서로를 인정하고 헤어진다. 그럼 이제 로리와 잭은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로리는 적극적인 오스카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로리의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잭에 대한 마음이 가득하다.

 

운명은 언제나 불시에 도착한다. 세라가 로리의 그 남자가 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혼식에서 불참한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잭은 세라 대신 축사를 맞는다. 아, 이 소설 어쩌자는 걸까. 오스카와 로리의 행복한 결혼생활로 끝을 내는 걸까. 현실은 이상과 달라서 둘의 결혼생활도 만만치 않다. 오스카는 로리의 일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희생하기를 바란다.

 

사랑은 정말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간절히 상대를 원하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로리가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 투고한 고민 글에 대한 답은 선견지명이라 하면 맞을까. 누군가 로리처럼 지난 사랑에 미련이 남는다면 용기를 내 보는 건 어떨까. 그 사랑과 다시 마주한다면 말이다.

 

“인생에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개 돼 있다. 너무 오래 슬픔에 잠겨 있으면 진이 빠진다. 살다 보면 언젠가, 지난날을 돌아볼 때, 내가 그때 그 사람의 정확히 무엇을 사랑한 건지 기억나지 않을 날이 올 거라고 했어.”

 

“하지만 이런 말도 했어. 드물지만 가끔은 떠났던 사람이 다시 내 인생에 돌아오기도 한다고.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영원히 그 사람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228~229쪽)

 

소설은 모두가 바라는 결말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묻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바라는 해피엔딩의 로맨스 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로리와 세라의 우정과 일을 통해 20대에서 30대로 성장하는 여성을 보여주는 점에서는 성장소설이라 해도 무방하다. 2008년에서 2017년까지 10년의 시간 동안 로리의 새해의 각오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고 소망을 기록하는 일, 누구라도 로리의 다짐을 응원할 것이다. 달콤한 로맨스와 함께 어른으로 성장하는 로리의 모습은 정겹고 따뜻하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소설이다. 이 겨울 차갑고 쓸쓸한 밤을 밝혀줄 로맨스를 찾는다면 완벽한 소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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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04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월이 되고 보니, 연말 느낌이 많이 들어요.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고요.
자목련님,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자목련 2019-12-05 09:50   좋아요 1 | URL
네, 눈도 내리고 올해의 마지막을 달리는구나 싶어요. 서니데이 님도 마무리 잘 하세요^^*
 
같이 읽고 함께 살다 - 한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서
장은수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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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들이 줄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든 것은 영상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줄의 글을 읽는 것보다 1~2분짜리 동영상에서 더 많은 정보와 즐거움을 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독서에 대한 중요성은 시들지 않는다. 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과 삶의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을 계기로 삶이 변화한 이야기인 『같이 읽고 함께 산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알 수 없었던 독서의 기쁨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같이 읽기는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면서, 동시에 여러 번 인생 상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책이 열어 준 입술에는 각자 살아온 삶의 무늬와 무게가 담겨 있어 마음의 두께를 더해 준다. 황무지처럼 드러난 마음은 삶에서 불어닥치는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상처 입고 피 흘리지만, 초곡이 굳게 덮인 마음은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먼지조차 날리지 않는다.’ (73쪽)

책에는 저자가 전국 곳곳의 독서 공동체 24곳을 직접 찾아가 만난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서울을 비롯하여 제주, 청주, 홍성, 강원도까지 3년 이상 함께 책을 읽은 공동체에서 만난 이들이 어떻게 모여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일상이 변화했는지 들려준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모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동체의 모임도 다양하다. 제주 이민자의 모임을 시작으로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으로 성장한 ‘제주 남원 북클럽’, 불혹에 만나 칠순까지 훌쩍 넘은 ‘홍동 할머니독서모임’,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에서 업무에 지쳐서 ‘아무거나 함께 읽기’로 기쁨을 찾은 도서관 사서의 ‘청주 강강술래’, ‘나를 위한 ’ 책 읽기로 다시 삶의 변화를 찾은 ‘서울 상경다락방’, 1학년 학생들이 41개의 독서 동아리를 결성한 ‘강원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과학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서울 과학독서아카데미’, 강남의 불금, 책으로 자신을 되찾는 일들이 모인 ‘서울 심야독서모임’, 등 각양각색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24개의 독서 공동체가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나의 고민이 되고 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고민과 상처가 고스란히 거기 있어서다. 책을 혼자서 읽었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이나 생각을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 마주하며 생각에 생각이 더해져 다른 곳으로 확장되는 경험은 삶에도 적용된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을 방법을 배울까 싶어서 나간 강좌에서 아이와 남편이 아닌 나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아이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랐던 생각은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쪽으로 변화한 것이다.

독서 모임이라 해서 무조건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건 아니다. 친목을 시작으로 공통분모가 책일 뿐이다. 공통의 책을 읽지 않는 모임도 있다.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공연을 보기도 한다. 혼자서는 계획만 세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한다. 함께 책을 읽어 좋은 점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부천 언니북’의 인터뷰는 비슷한 상황의 이들에게 용기와 함께 울림을 안겨준다. 주저하고 있던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나이 들면 자부심이 떨어집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없어지죠. 사람들이 자시만을 무시하는 것만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부터는 감쪽같이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자꾸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고 머리와 행동의 간격이 조금 좁혀졌습니다. 게다가 함께 읽으면 더 많이 읽습니다. 좋은 일만 있지요.” (48쪽)

그런가 하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 내용 그 이상의 대화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책 속에서 결국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인식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일상은 우리네 현실과 닮아서 더 깊게 공감한다. 잘 몰랐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중요성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모임을 하지 않는 보통의 독자인 나에게도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게 만든다. 독서 공동체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이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저마다 다른 시작점으로 모였지만 결국 24개의 독거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는 더 좋은 삶을 향해 나가는 것이며 제대로 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런 문장으로 연결된다. 나의 세계가 다른 누군가의 세계가 합쳐져서 더 넓은 세계를 만드는 일, 그 위대한 일이 책을 읽는 작은 행위로 시작한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어떤 책을 읽을지 결정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선택된 책을 같이 읽고 자신이 느낀 생각을 나누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민주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틀은 아닐까. 모임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은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나아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책으로 맺은 작은 인연이 가져다주는 변화와 성장은 관계를 결속시키는 힘이다. 혼자서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에 불과한 책 읽기가 함께 읽기라는 통로를 만나면 공감과 연대의 힘을 갖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공감과 연대가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무엇이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면 힘이 난다. 즐거운 일은 배가 되는 건 당연하고 어려운 일도 머리를 맞대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24개의 독서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모임을 이어가면서 터득한 삶의 이치도 그렇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같이 읽고, 함께 사는 일은 적확하고도 당연한 사실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독서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들은 삶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혼자’를 벗어나 ‘같이’를 갈망하는 마음도 이로부터 생겨난다. 또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은 ‘좋은 삶’에 대한 갈망으로 흔히 이어진다. 같이 읽기는 인생에 우애를 불러오고, 공동의 추구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책을 같이 읽는 것은 결국 삶을 함께하는 일이다. 책으로 자신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아름다운 혁명을 일으킨다. 좋은 삶이란, 혼자서는 도무지 이룰 수가 없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타자의 인정과 수용을 통해서만 간신히 획득되기 때문이다. 독서 공동체는 ‘좋은 삶’의 연습장이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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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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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를 떠올리면 그의 소설 속 인물 ‘영이’가 겹쳐진다. 작가와 인물은 창작자와 피조물에 불과한데도 그렇다. 그만큼 강렬했고 김사과를 각인시키기 충분한 캐릭터였다. 그는 소설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의 추악한 본질을 담고자 노력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제목도 특이한 『0 영 ZERO 零』에서 나는 영이를 떠올렸다. 영이가 성장한 인물이 소설 속 화자인 ‘나’일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소설은 화자인 ‘나’와 남자친구 ‘성연우’가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애 소설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연애 소설이 아니다. 인간 본연의 지독한 욕망(어쩌면 악이라 부를 수 있는)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나’가 들려주는 자신과 관계된 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나’가 교묘하게 접근하여 이용한 후에 목적을 달성했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리는 모습은 마치 인간계 먹이사슬을 보는 듯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밀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46쪽)

‘나’는 명문대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했고 번역가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립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다. 누가 봐도 부럽고 대단한 위치에 놓였다. ‘나’는 그것을 잘 일고 있었다. 자신이 자신 것들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잘 아는 영리한 인물이다. 그래서 한눈에 제물이 될 상대를 알아봤다. 수업을 받는 박세영은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제법 글을 잘 썼고 욕망이 있었다. 재능에 대한 칭찬과 몇 번의 만남, 편집위원이라는 사실만 언급하면 그만이었다. 그것만 살짝 건드려주면 모든 게 뜻대로 될 수 있었다. 대학시절 동기였던 이민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120쪽)

 

‘나’​에게 그들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유산을 용의주도하게 아픈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이 받았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방치한 건 아니다. 주도권을 잡았을 뿐이다. 이처럼 ‘나’는 주변 인물과 환경을 살짝만 이용하면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상대가 나를 먼저 이용하기 전에 재빠르게 내가 덮쳐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상대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게 치밀하게 그물을 던졌다. 그것은 때로 호위와 친절이었고 때로 지위와 권력이었다. 사실 ‘나’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며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 그럴 자격이 있는 자 누구일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나 남자친구 성연우는 달랐다. 세상을 항한 ‘나’의 태도가 진심이 아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차렸기에 비난하고 분노했다. 어쩌면 가족인 엄마를 제외하고 자신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학벌과 부와 아름다운 허울에 감춰진 진짜 ‘나’를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소설에서 성연우와 전화로 싸우는 부분에서 ‘나’는 가장 인간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나’가 이제껏 자신이 구축해온 세계를 부수거나 빠져나갈 인물은 아니었다. 해왔던 대로 그대로 살아갈 거란 걸 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전진할 뿐이다. 설령 도착할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그것이 김사과만이 만들 수 있는 소설의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지독한 소설의 늪에 빠져도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 있다. (187쪽)

 

*책의 말미에 평론가 황예인과 김사과의 대화를 통해 소설『0 영 ZERO 零』에 대해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김사과가 추구하는 인간과 소설에 대해서도 만날 수 있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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