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읽고 함께 살다 - 한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서
장은수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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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들이 줄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든 것은 영상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줄의 글을 읽는 것보다 1~2분짜리 동영상에서 더 많은 정보와 즐거움을 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독서에 대한 중요성은 시들지 않는다. 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과 삶의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을 계기로 삶이 변화한 이야기인 『같이 읽고 함께 산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알 수 없었던 독서의 기쁨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같이 읽기는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면서, 동시에 여러 번 인생 상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책이 열어 준 입술에는 각자 살아온 삶의 무늬와 무게가 담겨 있어 마음의 두께를 더해 준다. 황무지처럼 드러난 마음은 삶에서 불어닥치는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상처 입고 피 흘리지만, 초곡이 굳게 덮인 마음은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먼지조차 날리지 않는다.’ (73쪽)

책에는 저자가 전국 곳곳의 독서 공동체 24곳을 직접 찾아가 만난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서울을 비롯하여 제주, 청주, 홍성, 강원도까지 3년 이상 함께 책을 읽은 공동체에서 만난 이들이 어떻게 모여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일상이 변화했는지 들려준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모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동체의 모임도 다양하다. 제주 이민자의 모임을 시작으로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으로 성장한 ‘제주 남원 북클럽’, 불혹에 만나 칠순까지 훌쩍 넘은 ‘홍동 할머니독서모임’,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에서 업무에 지쳐서 ‘아무거나 함께 읽기’로 기쁨을 찾은 도서관 사서의 ‘청주 강강술래’, ‘나를 위한 ’ 책 읽기로 다시 삶의 변화를 찾은 ‘서울 상경다락방’, 1학년 학생들이 41개의 독서 동아리를 결성한 ‘강원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과학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서울 과학독서아카데미’, 강남의 불금, 책으로 자신을 되찾는 일들이 모인 ‘서울 심야독서모임’, 등 각양각색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24개의 독서 공동체가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나의 고민이 되고 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고민과 상처가 고스란히 거기 있어서다. 책을 혼자서 읽었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이나 생각을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 마주하며 생각에 생각이 더해져 다른 곳으로 확장되는 경험은 삶에도 적용된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을 방법을 배울까 싶어서 나간 강좌에서 아이와 남편이 아닌 나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아이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랐던 생각은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쪽으로 변화한 것이다.

독서 모임이라 해서 무조건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건 아니다. 친목을 시작으로 공통분모가 책일 뿐이다. 공통의 책을 읽지 않는 모임도 있다.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공연을 보기도 한다. 혼자서는 계획만 세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한다. 함께 책을 읽어 좋은 점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부천 언니북’의 인터뷰는 비슷한 상황의 이들에게 용기와 함께 울림을 안겨준다. 주저하고 있던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나이 들면 자부심이 떨어집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없어지죠. 사람들이 자시만을 무시하는 것만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부터는 감쪽같이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자꾸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고 머리와 행동의 간격이 조금 좁혀졌습니다. 게다가 함께 읽으면 더 많이 읽습니다. 좋은 일만 있지요.” (48쪽)

그런가 하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 내용 그 이상의 대화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책 속에서 결국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인식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일상은 우리네 현실과 닮아서 더 깊게 공감한다. 잘 몰랐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중요성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모임을 하지 않는 보통의 독자인 나에게도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게 만든다. 독서 공동체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이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저마다 다른 시작점으로 모였지만 결국 24개의 독거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는 더 좋은 삶을 향해 나가는 것이며 제대로 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런 문장으로 연결된다. 나의 세계가 다른 누군가의 세계가 합쳐져서 더 넓은 세계를 만드는 일, 그 위대한 일이 책을 읽는 작은 행위로 시작한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어떤 책을 읽을지 결정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선택된 책을 같이 읽고 자신이 느낀 생각을 나누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민주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틀은 아닐까. 모임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은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나아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책으로 맺은 작은 인연이 가져다주는 변화와 성장은 관계를 결속시키는 힘이다. 혼자서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에 불과한 책 읽기가 함께 읽기라는 통로를 만나면 공감과 연대의 힘을 갖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공감과 연대가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무엇이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면 힘이 난다. 즐거운 일은 배가 되는 건 당연하고 어려운 일도 머리를 맞대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24개의 독서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모임을 이어가면서 터득한 삶의 이치도 그렇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같이 읽고, 함께 사는 일은 적확하고도 당연한 사실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독서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들은 삶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혼자’를 벗어나 ‘같이’를 갈망하는 마음도 이로부터 생겨난다. 또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은 ‘좋은 삶’에 대한 갈망으로 흔히 이어진다. 같이 읽기는 인생에 우애를 불러오고, 공동의 추구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책을 같이 읽는 것은 결국 삶을 함께하는 일이다. 책으로 자신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아름다운 혁명을 일으킨다. 좋은 삶이란, 혼자서는 도무지 이룰 수가 없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타자의 인정과 수용을 통해서만 간신히 획득되기 때문이다. 독서 공동체는 ‘좋은 삶’의 연습장이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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