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봄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걸식하는 법사(法師)다. 휘늘어진 버드나무 둥치에 털썩 주저앉은 법사는 달을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비파를 타고 있다. (「달에 울다」9쪽)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달에 울다」의 시작이다. 달과 갈대, 법사의 모습을 묘사한 병풍. 그리고 그 병풍을 바라보는 화자는 열 살 소년이다. 강렬한 아름다운으로 잘 알려진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한 편의 서정시 같았고 독자를 소설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지녔다. 소년이 사는 산골마을, 사과나무가 가득한 골짜기, 소년과 한 몸처럼 지내는 늙은 백구, 그리고 소년을 미혹하는 소녀 야에코.

야에코의 아버지는 촌장의 곳간을 털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었다. 어떤 이유인지, 왜 그들은 야에코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가장 앞장선 이가 소년의 아버지. 하나의 사건으로 앞으로 소년과 야에코의 관계는 결정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가 병풍의 풍경이 바뀌고 화자는 성장한다. 그러니까 계절이 달라지면 열 살 소년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이 된다. 자연이 사과를 재배하는 마을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누군가는 마을을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운 문물에 빠져든다. 오직 소년만이 부모님과 함께 그 자리, 그곳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다. 소년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감정, 사랑, 욕망은 때로 솔직하게 때로 거칠게 드러난다. 소녀 야에코를 향한 마음, 아버지에 대한 분노.


여름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산기슭에 걸린 초승달, 천지에 무성한 초록 풀, 그리고 거지 법사다. 높다란 바위 머리에 앉은 법사는 흠집 많은 비파를 여인처럼 끌어안고 격렬하게 술대를 치며 은은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달에 울다」, 34쪽)

여름은 병풍의 모습처럼 생동감 넘친다. 스무 살의 청년도 그러하다. 야에코와의 관계는 깊어가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생긴다. 아버지를 잃은 야에코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사과농사를 짓는다. 야에코네 사과는 달고 맛있다. 야에코와 화자는 사랑을 나누지만 결혼을 하지도 함께 마을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가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그림자 하나 없는 명월, 가을바람에 굽이치는 초원, 그리고 거지 법사다. 흠집 투성이 비파를 등에 멘 장님 법사는 회오리바람에 휘청이며 삭막한 황야를 헤매고 있다. 어디에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달에 울다」, 67쪽)

세상은 변했고 작은 산골 마을은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마을의 최고 권력자였던 촌장도 약해졌다. 화자의 진정한 벗 백구도 죽었고 야에코의 어머니도 죽었다. 야에코와의 사랑도 끝났고 그녀는 비누 공장에 나간다. 나만 오롯이 산골 마을에 남아 사과농사를 짓는다. 야에코에게는 아이가 있고 그녀는 마을을 떠난다. 그녀를 배웅하는 건 나의 몫이다.

겨울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잘 닦인 겨울 달, 얼음과 가루눈에 갇힌 산정호수, 그리고 거지 법사다. 자신이 파낸 볼품없는 눈 동굴 속에 앉아 있는 법사는 얇은 누더기를 걸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낮에도 여전히 팽창을 계속하는 얼음의 비명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달에 울다」, 92쪽)

마흔 살이 된 나에게 남은 건 사과나무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차례로 돌아가셨다. 혼자 남은 화자 그의 쓸쓸함이 전해진다. 마을을 떠났던 야에코는 돌아왔지만 눈 속에서 죽은 그녀를 발견한다. 상징과 은유로 채워진 소설, 인간의 심연과 고독을 병풍 속 법사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니까 법사는 곧 화자인 것이다. 삶은 이처럼 허무한 것일까.

「조롱(鳥籠)을 높이 매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검둥이를 데리고 고향인 M 마을로 돌아온 화자는 직장을 잃었고 가족과 헤어졌다. 심지어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이가 있는 건 아니다. 쇠락한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화자는 모든 걸 버리려 그곳을 찾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욕망과 마주한다. 홀리듯 들리는 피리새의 소리. 어린 시절 집집마다 조롱을 매달았던 기억.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마을을 헤매다 노인을 발견한다. 너무도 잘 차려진 밥상과 피리새. 화자는 피리새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노인에게서 강제로 빼앗는다. 그 노인에게 딸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빨간 하이힐을 신은 딸이 노인을 돌보고 화자에게서 다시 피리새를 가져간다. 노인에게도 피리새는 중요했다. 피리새는 「달에 울다」속 사과나무 같은 존재다. 삶의 이유가 되는 존재.

생각해 보면 겁에 질려 살아온 40여 년이었다. 잃는 게 두려워 분투했음에도 나는 차례차례 잃어만 갔다. 그러나 나는 많은 것을 잃었기에 나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내 주위에는 나밖에 없다. 나는 그런 나에게 눌리어 숨이 막혔다. (「조롱(鳥籠)을 높이 매달고」, 151쪽)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묘한 전개. 환상을 통해 화자의 현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빨간 하이힐의 여자를 미행하고 마을의 온천에서 노인과 마주하고 혼잣말을 하는 화자. 그가 정말로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아니,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채우려 해도 결국엔 공허만 남는 게 삶이라는 사실은 아니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21-02-01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이 너무 좋네요! 마치 한폭의 동양화가 머리속에 그려 집니다!ㅎ 즐거운 한주되십시요!

자목련 2021-02-02 16:05   좋아요 2 | URL
계절따라 묘사한 동양화를 생각나게 해요. 그 부분이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어요. 막시무스 님 포근한 오후 보내세요^^
 
겨울장면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엄지의 소설을 기다렸다. 규칙적인 모호함을 즐기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모호함은 안개처럼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김엄지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문자나 기호로 존재하는 누군가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 그러니까 김엄지의 인물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일상의 한 부분을 포착해 그는 세밀하게 분석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미세하게 변화하는 장면들, 그리고 복잡한 내면의 세계.


작가정신 <소설, 향> 시리즈로 만나는 김엄지의 『겨울장면』은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R로 지칭되는 남자와 아내, 회상 동료와 상사. 누군가의 죽음과 독백과 방백을 오가는 듯한 말들. 그것들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그건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의 몸부림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아내와의 불통.


그는 알지 못했다. 얼음호수의 끝을. 겨울의 시작과 끝을. 제인해변에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다음 날 아침 제인호수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마음을. 그 누구의 것, 자기의 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마음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고. 기억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모든 것이다. 모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R은 생각했다. (75쪽)


친절하다고 볼 수 없는 김엄지의 문장은 몰입도를 높인다. 겨울장면이라는 제목처럼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복한다. R에게 동화된다. 그와 아내는 제인해변에 갔고 식당에 갔고 그들에게는 폭죽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인물 묘사는 거의 없다. R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연령도 직업도 알 수 없고 성격도 모른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 혼잣말을 하거나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사람일 것 같은.


사람들이 호수 둘레에서 서서 하는 마지막 결심. 그건 결심이 아니다. 어떤 마음도 아니다. 다 지나간 후, 이미 끝난 것이다. 끝난 것을 끝내려는 것이다. 소리가 남고, 가라앉는 것은 물뿐이다. (131쪽)


어쩌면 죽음을 의미하는 것 같은 문장들. 마지막을 위한 여행을 떠난 부부의 모습, 혹은 다시 시작하기 위해 떠난 이들의 흔적들. 하여 독자는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모든 것이 R의 착각이거나 꿈이었다는, 남겨진 R의 쓸쓸한 후회. 날카롭고 차가운 겨울의 얼음호수에 혼자 선 남자. 삶에 대한 환멸, 살아 있음을 통증으로 확인하는 R. 그가 모르는 마음을 우리는 알까. 안다면 제대로 아는 걸까.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삶이다.


왜. R은 지쳤던가? R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R은 R에게 지졌다. 매순간 R은 R을 버리지 못한다. (136쪽)


독특한 고유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김엄지다.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삶에 대한 무한대의 물음. 삶이라는 매섭고 날카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홀로 서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R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소설 쓰고 있네” 란 말을 한다. 하지만 그건 적절하지 않다. 허무맹랑하거나 기가 찬 일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고 있으니까. 소설은 때로 누군가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고 소설은 누군가가 꿈꾸는 삶이니까. 기욤 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은 그런 생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다소 복잡한 구성의 이 소설은 뭐랄까. 소설가의 고충을 들려주는 자기 고백서 같기도 하고 수많은 거장들을 위한 오마주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국엔 소설로 귀결된다. 픽션의 세계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존재와 고독 같은 것들은 현실로 고스란히 이어지니까.


소설에는 두 명의 소설가가 등장한다. 한 명은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는 신비주의 작가 ‘플로라 콘웨이’,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로맹 오조르스키’. 소설은 플로가 콘웨이가 딸 캐리와 집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캐리가 실종된 사건으로 시작한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는 딸, 플로라 콘웨이는 절망한다. 캐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캐리를 데려간 범인은 누구일까.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대하게 만든 작가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로맹 오조르스키의 등장이다. 그는 이 소설의 진짜 화자다. 그의 현재는 고통 그 자체다. 전 부인 알민은 이혼 후 아들 테오의 양육권까지 빼앗았다. 테오만이 그에게 전부다. 소설은 답보상태다. 그렇다. 플로라는 로맹의 소설 속 주인공인 것이다. 소설 속에 소설이 등장하는 액자 소설. 하지만 보통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로맹이 소설 속 세계에 진입하고 인물들과 대화를 한다. 브루클린과 파리,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전개된다. 로맹은 알민이 테오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는 사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도 정작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설정으로 주인공을 만들었지만 소설 속 캐리를 향한 플로라의 고통은 모른 척한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 실종된 캐리에 대한 행방까지 미스터리와 판타지의 결합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때문에 어떤 독자는 혼란스럽기 충분하다. 어떤 독자는 바로 나다. 소설 곳곳에서 고백하는 소설 쓰기의 괴로움은 작가 기욤 뮈소의 진심으로 다가온다. 소설가로의 삶과 고뇌, 한 권의 책을 발표할 때마다 견뎌야 하는 어떤 시간들, 출판사와 출판계, 비평, 언론을 언급한 부분이 그러하다. 창작의 고통과 새로운 것을 쓰고자 하는 욕망. 아마 대부분 작가들의 숙명일 것이다.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로 활동하고 ‘페르난두 페소아’가 수많은 필명으로 존재한 이유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직시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소설 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55쪽)


글쓰기가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심심풀이로 하는 여가 활동이었던 적이 없었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했고, 열정과 노력을 쏟았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를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98쪽)


우리는 종종 소설을 읽다 소설 속 인물에 동화된다. 그의 입장에서 소설이 전개되기를 원하고 그에게 닥친 불행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캐리를 빨리 찾기 바랐던 간절한 마음이 점차 플로라가 삶을 견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로맹과 테오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동한다. 예측하지 못했던 전개와 결말, 독자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욤 뮈소의 팬이라면 즐겁게 빠져들 것이다. 팬이 아니더라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스스로에게 묻을 것이다. 왜 소설을 읽는가, 소설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그동안 읽은 소설에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받은 위로, 때로는 함께 분노하고 절규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 때로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피난처가 된다. 그러니 『인생은 소설이다』란 제목은 적절하다. 어쩌면 소설 같은 인생, 인생 같은 소설로 둘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별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토록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고 생각해왔다. 픽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인간이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30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an22598 2021-01-27 0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뫼뵈우스 순환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독서광들의 즐거운 변명 ㅎㅎ

자목련 2021-01-27 16: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한데 이 소설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설정이라 더 힘들었어요. ㅎㅎ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할머니에게』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조카에게 할머니였던 엄마. 오빠네 큰 조카는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지만 막내 조카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니의 아들은 할머니를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태어났으니까. 엄마는 다정한 할머니가 되려고 했을 텐데. 하지만 조카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였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와 조카들이 보내 시간을 나는 알 수 없으니까. 그 시간, 그 공간에 나는 없었으니까.


엄마 연배의 어르신을 보면서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려지지 않는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오빠로 인해 젊은 할머니가 된 엄마. 할머니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할머니를 테마로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여섯 명의 여성 작가가 쓴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는 저마다의 할머니를 추억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할머니는 모든 걸 다 내주는 그런 존재였고 누군가에게는 무섭고 거대한 존재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후자였다. 매서운 눈으로 혼을 내는 할머니. 며느리를 흉보던 할머니. 그 며느리가 우리 엄마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작가들이 불러온 할머니의 이미지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누구나 할머니가 될 수 없고 누구에게나 할머니가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빌었어. 손주가 태어나면 구연동화도 해주겠다고.” (「어제 꾼 꿈」, 33쪽)


윤성희의 「어제 꾼 꿈」속의 ‘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여동생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나에겐 손주가 없다. 딸과 아들이 있지만 친자식이 아니다. 수영과 구연동화를 배우는 화자는 당당한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지나온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계모라는 이유로 자식들과 불화하고 친척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다. 굴곡진 삶을 감당해온 그녀의 바람이 꼭 이뤄지면 좋겠다.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에선 손주의 부탁이라면 거절하지 못할 것 같은 할머니를 만난다. 죽은 며느리를 대신해서 아들과 손주들을 보살피는 할머니.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 파리까지 동행한 할머니. ‘나’는 할머니가 프랑스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할머니에게 다가온 피아노 소리. 사전을 참고하면서 1층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가는 할머니. 밝은 표정을 짓던 할머니에게 그 시간은 달콤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때로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 떠난 자식의 핏줄, 손녀를 향한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애틋하다. 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던 할머니는 요양원에 있다. 자신이 키우고 지킨 손녀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강화길의 「선베드」속 할머니가 그렇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나’와 친구 명주에 대한 이야기. 손녀보다 친구 명주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던 할머니. 자신이 떠나고 혼자 남을 손녀를 향한 기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손보미의 「위대한 유산」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깐깐하고 괴팍한 할머니였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혼자된 며느리와 손녀를 지원한다. 할머니와 지냈던 거대한 저택의 기억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곳에서 지내다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난 엄마. 할머니의 유산을 처분하기 위해 돌아온 곳에서 할머니의 살림을 맡아주던 아주머니를 만나 벌어지는 기괴한 일들.


손원평의 「아리아드네의 정원」는 미래 사회에서 만나는 할머니를 보여준다. 소설 속 ‘민아’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결혼과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살아왔지만 인공지능의 돌봄을 받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노인 복지, 심각해지는 세대 갈등, 난민과 이민자.


최은미의 「11월행」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모녀 삼대가 1박 2일의 일정으로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야기다. 수덕사를 향해 출발해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오는 과정을 들려주는데 그 안에서 엄마와의 딸의 사소한 대화와 갈등이 참 정겹다. 엄마와는 다르다고 여겼는데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


“엄마 둘에 딸 둘이시네요.” (「11월행」, 171쪽)


나의 엄마와 나의 딸, 나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 나의 딸과 딸이 낳은 딸. 내리사랑이 느껴진다고 할까. 언젠가 모녀 사대가 모여 정신없다는 나의 선생님의 문자가 생각난다. 내가 닮은 사람과 나를 닮는 사람을 볼 때 전해지는 묘한 감정.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외할머니가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참여한 작가는 모두 여성이다. 기획의도가 그랬을까. 남성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할머니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01-20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중1때 엄마는 할머니가 되셨어요. 땡땡이할머니라고 주변사람들이 우리엄마를 부르는게 너무 싫었는데ㅠㅠ 제겐 좋은 할머니셨지만 엄마에겐 무서운 시어머니셨죠. *^^*

자목련 2021-01-21 08:59   좋아요 2 | URL
그럼 미니 님도 중1때 고모나 이모가 되셨겠네요?
무서운 시어머니, 여기도 계셨네요.
날씨가 흐리네요. 그래도 맑은 하루 보내세요^^
 
열다섯, 그럴 나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나윤아 외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시대를 가장 잘 읽고 잘 해석하는 이들은 십 대일지도 모른다. 유행에 민감하고 솔직하고 자기주장도 강한 십 대. 사춘기, 혹은 중2병으로 대신하는 열다섯의 나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겪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내 안의 어떤 상처와 슬픔은 그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 시절에 만난 누군가, 그 시절에 경험한 어떤 일들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열다섯, 그럴 나이』를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는걸.

『열다섯, 그럴 나이』는 지금 십 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있는 그대로, 심할 정도로 날카롭게 직시한다. 다섯 명의 작가가 ‘히어로, 톡방, 이·생·망, 몸캠피싱, 인싸’ 다섯 가지 키워드 중 하나를 선택해 십 대의 일상을 그렸다. 키워드만 봐도 십대가 주목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줄임말,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일상, 그들만의 세계에 진입한 것 같았다.

히어로를 주제로 한 탁경은의 「캡틴 아메리카도 외로워」에서는 가장 보통의 중학생이 등장한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다니고 부모님에게 살짝 반항도 하는 그런 아이들. 그리고 자발적 백수를 선택한 삼촌. 어른들의 눈에 삼촌은 루저나 실패한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진정한 히어로다.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즐겁게 사는 삼촌이 차도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했다. 공부와 성적만 강요하는 부모님, 그리고 삼촌. 우리는 어떤 어른일까. 재밌게 소설을 읽고 부끄러움만 남았다.

가장 놀랍고 가슴 아팠던 건 톡방과 몸캠피싱을 주제로 한 이야기였다. 이선주의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는 제목 그대로 카톡을 소재로 다뤘다. 예전과 다르게 조별 과제가 많다. 방과 후 학원으로 가야 하는 아이들, 함께 모여 주제를 선정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단톡을 이용한다. 편하고 간편하니까. 하지만 같은 조의 한 명이 카톡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앱을 깔고 참여하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니 나머지 아이들은 그 아이를 자연스럽게 왕따시킨다. 이용자가 많다고 해서 모두 사용해야 한다고 강요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소설을 또래인 십 대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카톡은 어쩌면 예시였을지도 모른다는 자각, 우리는 늘 희생양을 찾고 있었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희생양들이 하나둘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다음 차례는 누굴까? 자신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어, 윤은 두려웠다. (「앱을 설치하겠습니까」, 78쪽)

몸캠피싱에 대한 나윤아의 소설 「악의와 악의」는 읽는 내내 무서웠다. 뉴스에 나올 법한 이야기, 어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십대에게도 벌어지고 있다니.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화가 났다.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이 무너지고 삶이 흔들린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김태강의 동영상, 아이들에게 가십거리다. 동영상의 인물이라고 추정된 아이의 선한 얼굴을 떠올리는 ‘나’는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친구들의 수다에 동조한다.

누구도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악의와 악의」, 125쪽)

김태강에 대해 하나의 막이 생긴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거든다. 소문은 진실을 뛰어넘고 새로운 가설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스마트폰으로 도착한 동영상 속 아이는 ‘나’같았다. 합성이라는 걸 알았지만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모아둔 용돈을 보낸다. 끝난 일이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협박.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두려움, 학교에 퍼져 아이들이 수군대는 것 같은 공포. 그런데 놀라운 건 유학을 갔다는 김태강이 학원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나의 태도에 김태강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그런 동영상을 찍게 된 건지,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친구와 부모님. 나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김태강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네 편이 되어줄 거라고 손을 잡아준다.

이 지독한 악의에 매몰되는 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선한 것을 바라보고, 내 편에 선 사람들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심이 선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 혹시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을지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악의와 악의」, 154쪽)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선의와 악의 어느 쪽에 서는가. 무엇이 선의고 악의인 줄 모르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처음에 선택하는 건 대부분 악의 쪽이다. 자세한 사정이나 진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한 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 단편은 사회를 향한 강력한 외침이었다. 우리 사회의 추하고 더러운 민낯인 N번방 사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아이가 실종되면서 그 애에 대해 진짜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쓸쓸함을 그린 우다영의 「그 애」, 한 번쯤 속상함을 토로하는 말로 썼을 이·생·망을 주제로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야기 범유진의 「악마를 주웠는데 말이야 」를 통해서도 십 대 아이들의 고민과 관심에 대해 알 수 있다. 열다섯은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시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나는 시기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나이다.

처음엔 십대를 이해하는 생각,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한 소설이지만 결국엔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만 들킨 것 같았다. ‘열다섯, 그럴 나이’에 내 나이를 대입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섯 가지 키워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투덜대며 ‘이·생·망’을 말하는 우리, 직장과 사회에서 행해지는 은따와 왕따까지 전부 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삶을 향한 태도는 열정적인지, 자꾸만 질문이 많아지고 다짐을 하게 만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1-01-19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도서관인데, 랩탑 켜놓고 신간 둘러보다가 자목련님 리뷰에 눈 번쩍. 이 책 소장중인지 바로 확인각입니다. 소재들이 2021년, 정말 시의적절한 내용들이네요. 저도 십대 잘 몰라서 꼭 읽어야겠어요. 감사드려요

자목련 2021-01-19 16:48   좋아요 0 | URL
보통의 청소년 소설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았아요. 덕분에 더 좋았고요. 얄라 님께도 좋은 책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2021-01-19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9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19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톡방과 몸캠피싱을 주제로 한 . 이선주의 「앱을 설치하시겠습니까」이야기는 진짜 현실 이야기네요 단톡에서 이런식 왕따는 대학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비대면 사회적 거리에 익숙해진 청소년들 감정없는 얼굴없는 앱으로만 소통하는 성인으로 클것 같네요.

자목련 2021-01-20 09:54   좋아요 2 | URL
네, 소설을 읽으면서 진짜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무서울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도 있을 텐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말씀처럼 십 대에겐 얼굴을 마주한고 눈을 보고 깔깔대는 시간이 필요한데.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