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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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의미에서 서재는 책장을 갖는 순간부터 타락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책장이 있으면 책을 꽂아주고 싶다는 소유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60쪽)

 

 책장을 들였을 때 책을 꽂으면서 정말 즐거웠다. 가지런히 놓인 책들, 알록달록 책등은 어떤 소품보다 훌륭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책등은 사라지고 앞 뒤로 책이 쌓인다. 찾으려는 책을 찾지 못해 다시 구매하기에 이른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경험한 일상이다. 모든 공간의 주인이 책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정리보다는 책 구매가 먼저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제목과 표지를 통해 책이 지배한 삶을 짐작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책에 미친 사람들의 책 정리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수 만권의 책을 소장한 장서가다. 저자는 자신처럼 책을 많이 소장한 이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양한 직업과 세 대의 애서가들이 어떻게 책을 모으고 어떤 방법으로 책을 관리하는지, 어떻게 장서의 괴로움에서 벗어났는지 말이다. 책을 주제로 한 책이지만 책 때문에 괴로운 이야기를 듣는 건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동시에 살짝 두렵기도 하다. 책을 위한 집을 짓고, 책이 많아 집이 무너지고, 책 때문에 세 든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하고, 화재로 책이 타버리는 안타까운 이야기 때문이다. 물론 책 속의 사례는 모두 일본 주택의 경우지만 말이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말하는 건 보관과 정리의 기술이자 책을 대하는 태도다. 무조건 책을 모으기만 한다면 애서가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주변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장의 책들이 정말 소장의 가치가 있는 책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저자가 언급한 문학연구가 시노다 하지메의 말처럼 자신의 독서 습관을 돌아봐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루에 세 권쯤 책을 읽으면 독서가라고 말하는 듯하나, 실은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진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독서가다.’ (150쪽)

 

 이제 집 곳곳에 쌓인 책과 책장의 순환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했다면 실천해야 한다. 책은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 아니, 과감하게 책을 처분하고 정리할 수 있을까? 천 권 이상의 책을 소장했다면 책에서 말한 적당한 장서량의 기준인 5백 권을 맞춰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일본 각지의 다양한 헌책방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책으로 맺은 인연, 한 권의 책에 담긴 사연은 언제 들어도 지겹지 않다. 

 

 책으로 둘러싸인 삶을 사는 이들에겐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책이다. 책을 수집하지 않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책장을 정리하는 대신 이 책을 통해 소개된 다른 책을 구매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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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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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라면 그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말이 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은 목소리가 아니라 몸짓이나 눈으로도 가능하니까. 때로 개나 고양이에게 고민이나 비밀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전부다. 동물들에게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우화소설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소설 <밤의 나라 쿠파>도 고양이가 등장하는 우화소설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은 ‘톰’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낚싯배의 표류로 낯선 곳에 도착한 주인공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면서 시작한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쥐도 등장하지만 이름이 제리는 아니다.) 고양이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나는 톰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톰은 말에 실려 마을 밖으로 왔다. 톰이 사는 나라는 독이 있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곳이다. 거대한 나라 철국과 8년 간 전쟁 끝에 패하고 지배를 받는 상황에 놓인다. 옛날부터 철국의 속국으로 살았지만 병사들이 나라 안으로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항상 철국과 관계가 좋다고 말하던 국왕 칸토는 이런 상황에도 평화를 자신한다. 철국의 말만 잘 들으면 괜찮다고 말이다.

 

 “국왕이라는 건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자기 삶을 위한 지지대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아.” (142쪽)

 

 국왕이었던 칸토가 철국 병사가 지닌 총이라는 낯선 무기에 의해 죽자 인간들은 모두 두려움에 떤다. 톰을 비롯한 다른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다. 칸토의 아들 산토는 자신의 안위만 챙기자 인간들은 철국 병사를 마을에서 내쫓기 위해 대책을 세운다. 그러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아준 쿠파의 투명한 병사를 기다린다.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살아 움직이는 삼나무 쿠파와 싸우기 위해 마음의 복안 대장에게 뽑힌 쿠파의 병사. 이야기는 쿠파의 병사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떠나 쿠파의 병사가 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거대한 삼나무 쿠파에게 목숨을 잃을 각도를 해야 한다. 쿠파의 병사는 건강한 사람이 아닌 투명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다. 고양이와 말을 하고 있는 현실도 놀랍지만 움직이는 삼나무, 독을 품은 벌레, 투명한 병사까지 정말 기이한 나라다. 톰은 나에게 자신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 철국 병사와 싸워주기를 부탁한다. 철국 병사들이 인간들을 해친 후 나중에는 고양이들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다. 톰과 함께 벽에 둘러싼 마을 근처에 도착한 나는 몸을 숨이고 신호를 기다린다. 여전히 벽 밖에는 철벽 병사가 주둔하고 있다.

 

 마을로 돌아온 톰은 놀라운 장면과 마주한다. 칸토를 죽이고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모은 철국의 애꾸눈 병장은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복안 대장이었다. 복안 대장은 사람들에게 쿠파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진실은 모두 거짓이었다. 쿠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쿠파의 병사는 어디로 사라졌나? 복안 대장은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인 칸토 국왕의 실체를 밝힌다. 철국에게 복종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그곳으로 보냈고 쉬운 통치를 위해 위협적인 대상인 쿠파를 만들어낸 것이다. 왜 복안 대장은 이제야 그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는 걸까.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441쪽)

 

나는 시킨 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하기로 했다. 단지 그뿐이야. (461쪽)

 

 복안 대장의 말처럼 우리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고정관념은 소설 곳곳에서 발견한다. 고양이에게 자신들을 잡지 말라고 당부하는 쥐,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쿠파의 존재, 아주 작은 나라의 사람들이 소인국이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걸리버 여행기 속 걸리버처럼 그들에게 거인이다. 작가는 말하는 고양이라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설정을 시작으로 결국엔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힘이 필요한 시대에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함께 만드는 사회를 위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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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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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장의 빼곡한 책등을 훑는다. 끌리는 제목의 시집을 꺼낸다. 어느 곳을 펼치든 은밀한 감정들이 쏟아진다. 시를 읽는 순간, 시와 하나가 된다. 숨을 들이마시는 찰나는 영원보다 길다. 그러나 예전처럼 시를 외우지 못한다. 아니 노력하지 않는다. 소녀, 청춘의 시절을 지났기 때문일까.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의 샘물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럼에도 바람이 불면 이은규의 시집 『다정한 호칭』이 생각난다. 비가 오는 날엔 유희경의 『오늘 아침 단어』를 뒤적여 우산에 관련된 시를 찾아 읽는다. 의도하지 않아도 시는 우리의 곁에 머문다.

 

 시란 무엇일까. 눈물이 흐른 자리를 가만히 닦아내는 고운 이의 손수건인지도 모른다. 세계사의 『순간을 읊조리다』를 휘리릭 넘긴다. 넘길 때마다 다른 문장과 마주한다. 슬픔을 삼킨듯한 건조한 시인의 문장에 나는 울컥한다. 내게 속한 시인의 시집을 찾는다. 김혜순, 그리고 최승자를 함께 읽는다. ‘서른 살’ 대신 내 나이를 넣고 읽는다. 시는 이렇게 시를 부른다.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김혜순의 열쇠, 48~49쪽)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의 삼 십 세, 78쪽)

 

 『순간을 읊조리다』엔 칠십 명 시인의 시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의 문장들이다. 시의 조각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까. 어떤 문장은 일기 같고 어떤 문장은 편지 같고 어떤 문장은 절규이며 어떤 문장은 눈물이다. 누군가의 시가 아니라 모두의 시처럼 익숙한 시어들도 있고 낯선 시인의 문장도 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운 시인,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검색창에 어떤 시인의 이름을 써 넣는다. 

 

 기존의 다양한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시인이나 소설가가 선택한 시를 수록한 책과 달리  『순간을 읊조리다』는 시인의 노래를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그림으로 담았다.  한 편, 한 편 정성으로 그려낸 시화전 같은 책이다. 누군가는 학창시절에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을 전하고 받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상대가 시에 담긴 은밀한 감정을 발견하는 예리한 이라면 얼마나 달콤한 고백일까.

 

 가을이 손을 내미는 시기 박준의 문장을 가슴에 새긴다.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박준의 환절기, 199쪽) 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시란 이렇게 위대하다. 그리고 차오르는 달을 기다리는 깊은 밤엔 이런 문장이면 충만하다. 밤은 네가 잠들기를 바란다 밤은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황인숙의 밤, 170~171쪽) 이제 밤과 둘만의 시간, 밤의 진심을 듣는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시집이 아니더라도, 시로 빚어진 영롱한 보석을 발견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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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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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 :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977. 12. 8)

 

 애도 : 꼼짝할 수 없는 상태,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 (1977. 12. 9)

 

 어쩌면 강력한 애도의 말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슬픔의 나열을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는지도 모른다. 롤랑 바르트의 슬픔은 나의 슬픔과 같을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다. 아니, 결코 같을 수 없다. 어머니를 잃고 쓴 2년의 일기. 계절이 변화를 견디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일은 경험을 통해서도 쉽게 설명될 수 없다. 아주 짧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기록 속에서 발견한 부재는 아주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서, 말을 잃는다.

 

 모두가 그렇듯 젊고 눈부셨던 20대, 철없던 그 시절, 나는 어머니의 죽음과 마주했다. 장례를 치르고 당시 살아계신 할머니를 도와 마늘을 엮는 일까지 끝냈다. 그러나 직장이 있던 도시로 돌아온 나는 밤마다 술을 마셔야 했다. 술이 아니면 잠들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해 겨울 직장을 그만두고 도시를 떠났다.

 

 젊지 않은 나이,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나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 5월 아버지는 이별할 겨를도 주지 않고 떠나셨다. 중환자실에서 잠깐 맑은 의식을 찾으셨을 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간은 사라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어머니의 그것과 달랐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꾸 생각난다. 그렇다고 젊었던 시절처럼 술을 마시거나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부르고 싶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구부정하게 앉아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다. 롤랑 바르트의 감정을 빌려 먹먹해진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눈이 내렸다. 파리에 폭설이 내렸다. 참 드문 일이다.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그 혼잣말이 나를 아프게 한다:그녀는 결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으리라, 이 눈을 보기 위해, 이 눈 소식을 나로부터 듣기 위해서. (1978. 2. 12)

 

 일상 속에 들어 있는 말없는 가치들과 함께 지내는 일(부엌, 거실, 옷들을 청결히 하고 늘 바르게 정리하기, 물건들 안에 들어 있는 과거와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일) ― 그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비록 곁에 없어도, 나는 그녀와 여전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 (1978. 8. 18)

 

 내게 속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물건을 생각한다. 어머니와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아버지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낡은 신발도, 옷도, 담배 냄새가 가득했던 방도 사라졌다. 사진 속에 표정이 없는 아버지가 있다. 이제 아버지는 우리들의 대화 속에 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대화 속에서만 살아 움직인다. 내가 몰랐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는 그들의 형제뿐이다. 롤랑 바르트처럼 꿈에서라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아직 꿈에서 아버지를 뵌 적이 없다. 어머니는 겨우 두 번 정도.

 

 그녀의 꿈을 꾸는 건 (나는 그녀의 꿈만을 꾼다) 그녀를 보기 위해서, 생생하게 다시 만나고 싶어서인데, 그러나 꿈에서 보는 그녀는 언제나 그와는 다른 마망, 나로부터 잘려나간 그녀의 모습일 뿐이다. (1979. 3. 18)

 

 누군가의 부재를 인정하라고 섣불리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가혹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가족과 연인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어떤 이에게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긴 시간이 주어지고 어떤 이에게는 찰나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지만 여전히 슬프다. 어쩌면 슬픔을 달래려는 건 나의 못된 이기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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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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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보면 장소는 무심하고 자명하며, 가까이서 보면 장소는 비밀스럽고 남루하다. 생의 매 순간 우울과 설렘 속에서 자리잡은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장소가 문득 지울 수 없는 뉘앙스로 마음에 새겨질 수 있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시선 속에서 특별한 장소로 전환되는 순간, 하지만 그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무감한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남아 있을까?’ (10~11쪽)

 

 어느 시절 서울은 내 삶의 일부였다. 길지 않는 날들이었다.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기 위해 도착한 서울은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병원이라는 거대한 공포도 서울에서만 이뤄지는 소중한 이들과의 만남 앞에 무감해졌다. 병원과 터미널 주변이라는 제한된 공간이었지만 우리는 짧은 만남의 긴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장소는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어떤 장소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광호의 말처럼 내게 서울이란 공간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용산이라는 공간으로 다가오겠지만 내게는 서울로 대치된다. 때문에 이광호가 부여하는 용산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어느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간이란 그런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 몰랐던 그곳의 역사와 아픔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니 나는 여행객이 된다. 선명하고 담담한 말투의 용산 안내자 이광호를 따라서 말이다.

 

어떤 장소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곳의 시간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다. 너의 장소를 벗어난다 해도 너의 부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88~89쪽)

 

 방송을 통해 만난 용산과 글의 골목을 따라 마주하는 용산은 묘한 슬픔이 감돈다. 현재 용산역의 화려함이나 고급스러운 동부이촌동으로 가려진 용산엔 여전히 눈물로 얼룩진 삶이 있다는 걸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현재의 용산을 쌓은 수많은 상처의 조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 속 전자상가 사람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이태원, 남산, 한남동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진다.

 

 이광호의 애련하고도 청아한 문장으로 태어난 용산은 아름다운 슬픔이 풍경으로 피어난 공간이다. 용산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용산은 어떤 삶의 부재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첫 발을 내딛는 당신이라면 이광호가 이끄는 동선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해도 좋겠다. 책에서 만난 어느 장소, 어느 공간 앞에 머물러 잠시 멈춰도 좋으리라.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무심하면서도 웅숭깊은 용산의 목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현듯 떠오르는 특별했던 공간과 해후하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이제는 평범한 장소로 전락했더라도 말이다. 분명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과 오롯이 마주한 나처럼.

 

‘어떤 지독한 기억은 이 생애가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지만 반드시 망각의 순간이 도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장 아름답고 참혹한 얼굴도 마침내 지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순간에도 망각은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너를 잊게 된다는 것’은 ‘네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152~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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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4 1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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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6 08: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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